다음 날 우리는 폼페이를 거쳐 정다운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고장인 소렌토와 나폴리를 돌아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을 보았다. 그 책을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5학년 가을, 원주시내 모든 초등학교 4학년 이상 학생들이 모여 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열었다. 몇날 며칠 단체로 뙤약볕 아래서 카드섹션,337박수 등 응원 연습도 했다.
체육대회 당일날 담탱이가 나는 체육대회에 참석하지 말고 교실을 지키라고 했다. 당시 내가 반장이었는데, 담임에게 엄마가 인사를 하지 않아 미운 털이 박혀 있었다.
섭섭한 마음이 순간 들기도 했지만, 곧 혼자서 교실에 남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애들은 몽땅 공설운동장으로 응원도구를 들고 가고, 나는 혼자서 가을햇볕이 환한 교실에 남아 하루종일 학급문고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읽은 책 중에 하나가 '폼페이 최후의 날'이었다.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그 화려하던 도시가 몽땅 화산재에 파묻힌 장면은 그 날 가슴에 오롯이 기록되었고, 화산재에 파묻힌 그들의 화려함을 보고 싶었으며, 그래서 폼페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폼페이를 본다는 기쁨에 설레었다.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의 소렌토 언덕은 기대보다 멋있지 않았다. 그리고 일정이 여의치 않아 먼발치에서 보아야 했다.
소렌토 언덕을 지나 세계3대 미항 중에 하나인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 역시 너무 기대를 갖고 있어 그런지 그저 평범한 항구에 지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는 나폴리와 카프리섬, 소렌토를 잇는 바다가 3대 미항이므로 진정한 나폴리를 보기 위해서는 카프리섬을 다녀와야 한단다. 그러나 그 코스는 옵션으로 걸려 있어 고객들의 신청을 받아야 한다며 의견을 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인당 100유로 정도를 더 내야 했는데, 가기를 원한 사람은 우리 팀과 또 다른 신혼부부 뿐이어서 무산 되었다. 입맛이 썼지만, 단체관광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우리 팀에서 설레발을 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돈으로 마누라 이태리 명품 가방들을 사주기로 서로 합의를 봤단다. 참내, 명품 가방이 뭐라고...... . 나는 명품 이름조차 지금 기억에 없다. 뭐였지? 이태리 명품이?ㅋㅋ
나풀리에서 남편과 나는 거리 카페에 앉아 샐러드와 맥주 한 병을 깠다.
금쪽 같은 자유시간 1시간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맥주 마시는 걸로 소일하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술 좋아하는 남편 만난 죄를 누굴 탓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