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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북구의 유일한 오카리나 교실인 농소 1동 주민자치센터 오카리나반의 이일남씨. 매주 월, 수요일이면 다른 회원들과 함께 깊고 맑은 오카리나 소리에 빠져든다. | “오카리나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악기예요. 비오는 날은 탁한 소리를 내고 맑은 날은 투명한 울림을 내죠. 악기 스스로 음을 만들어 낸다고 할까요? 그래서 알면 알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마추어 연주자이긴 하지만 자원봉사로 오카리나를 가르치고 있는 이일남(48·북구 매곡동)씨. 그의 오카리나 경력은 3년 남짓이다. 쉽고 간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배우고 싶어 지난 2002년 북구 농소 1동 주민자치센터에 마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오카리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부드럽게 울리는 자연 그대로의 소리는 이씨를 사로잡았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주부지만 오카리나의 부드러운 울림에 푹 빠져 반전문가가 된 이일남씨. 배우는 과정에 있으면서 다른 주부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북구의 유일한 오카리나 교실을 이끌어 가고 있다. ◆
주민자치센터의 오카리나 강좌는 매주 월, 수요일 두 번 열렸다. 회원은 10여명. 대부분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주부들이었지만 아름답고 영롱한 소리를 내기 위해 열정을 갖고 배웠다.
그런데 강좌가 열린지 1년 쯤 지나 가르치던 강사가 유학을 가게 돼 오카리나 수업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1년 넘게 배운 공도 있지만 오카리나 연주를 포기하기엔 다들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별 수 없이 첫 멤버였던 이 씨가 자원봉사 강사로 나서게 됐다. 전문강사만큼의 실력은 안되지만 그 스스로 오카리나에 푹 빠져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씨는 비록 아마추어긴 하지만 오카리나를 가르치는 강사이면서 계속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 씨와 다른 회원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도 변함없이 매주 월,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오카리나 교실이 열린다.
“오카리나 배우는 것이 처음엔 쉬운 것 같다가도 6개월 무렵 되면 어려워집니다. 나 역시 학교 때 수업 시간에 접한 음악이 전부인데 악보가 복잡해지면 힘이 들거든요. 이 시기만 참고 견디면 오카리나와 내가 한 호흡이 된다는 걸 조금씩 느낄 수 있답니다.”
 ◆"오카리나는 연주자도 중요하지만 악기 스스로 살아 숨쉰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농소1동 자치센터에서 연습하고 있는 이일남씨.◆
이 씨 역시 전문강사가 아니라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싶으면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 동호회에서 다운 받아 반복해서 듣고 음을 연구해 자신이 연주해 보고 다른 회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물로 반죽한 흙을 가마에서 한 번 구워낸 거위 모양의 악기인 오카리나는 스스로 수분을 흡수하고 발산도 한단다. 그래서 기온이나 날씨에 따라 음색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흙으로 빚어서 그런지 만질 때 감촉도 좋고 자연의 소리를 낸다. 뿐 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부는 사람과 듣는 사람도 서로 다르게 느낀다.
이 씨는 이런 오카리나에 흠뻑 빠져 앞으로 계속 오카리나 강좌를 하고 싶지만 자원봉사자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북구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오카리나 교실은 유일하게 농소 1동에만 있답니다. 하지만 공간도 좁고 전문강사도 구하지 못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을까 싶어요. 오카리나 교실 회원들의 작은 바람은 배울 수 있는 장소와 강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어 못 배우는 사람들이 북구에 많을 겁니다.”
 ◆"좀 더 넓은 곳에서 전문강사한테 배울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카리나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 씨는 오카리나의 신비로운 매력을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
이 씨가 매료돼 있는 것은 오카리나에 뿐만은 아니다. 전업주부로 오랫동안 지내왔지만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통장으로 지내면서 주민들과 함께 구청에 건의해 아파트 입구에 승강장을 만들고 매곡체육시설도 짓게 됐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구청과의 다리가 된다는데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통장직에서 떠났지만 현재 농소1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지역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시정홍보위원회 위원을 맡아 오고 있기도 하다. 농소농협 풍물패 단원이기도 하다.
 ◆이 씨는 오카리나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통장으로 일하기도 하는 등 지역의 숨은 일꾼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 농소 1동 주민자치위원이기도 한 이 씨가 정순상 농소1동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런 활동을 통해 평범한 주민으로 있을 때는 몰랐던 ‘행정’ 현실을 많이 알게 됐고 행정기관에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걸 체험으로 깨달았다.
이런 이 씨를 남편은 물론 20대인 아들, 딸도 모두 자랑스러워 한단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카리나를 처음 배우려고 할 때도 뭘 별 걸 다한다고 의아해 했어요. 집에서 연습할 때는 시끄럽다고 하기도 했구요. 근데 제가 오랫동안 이 악기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니까 이제 가족들 모두 오늘은 어떤 연주를 하나 관심을 갖고 들어요. 사회활동도 마찬가지죠.”
용기가 없어 사회활동을 못하고 있는 전업주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거, 참 맞는 말입니다. 나쁜 짓만 아니라면 뭐든지 도전해 보세요. 단, 뭔가 시작하면 뿌리를 뽑겠다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남편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맹렬 아가씨들’보다 잘 해 낼 수 있는 힘이 솟구칠 겁니다.”
글·사진/ 김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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