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유선배가 물었다. 하종두를 기억해 내고 심란한 한 주일을 보낸 뒤의 주말, 기어코 나는 이제 머리가 희끗해진 대학교수 유선배를 만났던 것인데 유선배는 내 몰골을 보더니 첫말에 그렇게 물었다.
"고작 칠 팔십년 아니겠어요?"
"그래.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생각 해보지 않았니? 이를테면 전생의 나와 이승의 내가 함께 존재하는 어떤 시점과 부딪히면 거기 존재하는 나는 무엇일까?"
"에이, 선배님도. 윤회라는 게 뭐 그렇게 확실하게 눈에 나타나는 건가요? 전생의 나와 이승의 내가 만날 일이 어딨나요?"
나는 시부적이 대답했다. 그러자 유선배도 곧 말의 방향을 틀어 버렸다.
"맞다. 그런 게 당키나 하려구? 넌 그 동안 인쇄 공장 다니면서 많은 글자들을 찍어냈겠지. 광고지며 논문 카탈로그 등 말이야. "
"그렇죠, 뭐. 온갖 글자들이 세상에 나가는 걸 봤어요. 어떨 때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때 그 사건만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삼류 작가라도 되어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랬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테죠. 참, 알 수 없는 게 사는 건가 봐요. 난데없이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끼여들어 날 이렇게 망쳐 놓았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
유선배는 나의 말이 하소연으로 들리는지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사람의 생이란 순간 순간이 맞닿아 고리를 이루는 거야. 학문도 부질없고 사는 것도 부질없어. 도대체 무엇이 날 어디로 이끌어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때가 많아. "
그러면서 유선배는 자신이 학문을 택했던 것은 천성적인 학구열을 믿었기 때문인데 그 학구열이 바로 걸림돌이더라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난 어릴 때부터 일등을 놓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곤 했어.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 일등은 결코 필요없다는 걸 깨달았어. 학문은 감각이야. 무엇이 신선한 것인지 무엇이 고리타분한 것인지를 감지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존재하는 사실들 가운데서 새로운 걸 발견해 내야 하는 창작이더라고. 그러니 나같이 죽어라고 책만 들여다보면 그만인 줄 아는 치들은 그냥 그걸로 밥이나 먹는 셈이지. 그럴려면 애초 왜 학문을 하겠다고 우쭐거렸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시정잡배들한테 돼지국밥이나 푸지게 말아 주면서 인심이나 쓰고 살 걸 싶기도 해."
유선배의 말은 이제 제법 여유가 생긴 나머지 나처럼 이도 저도 맘대로 못해 본 사람 앞에서 괜스레 너스레를 떨어대는 것으로 들렸다. 그런 너스레도 일종의 여유라는 생각에 입안에 씁쓰레한 침이 맴돌았다.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애를 써 온 사람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야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나에게는 그 동안 참으로 여유라는 게 자리잡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선배님까지 심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저같은 사람은 도대체 무얼 의지하고 살라는 건가요? 자식? 마누라? 돈요? 에이, 정나미 떨어져요. 마누라는 지금 서른 두 평에 살면서도 마흔 여섯 평이 날마다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허리띠를 자꾸 동여매기만 하지요, 자식놈들은 텔레비전 좀 봤다고 어쩌니 저쩌니 아는 체를 해대죠, 참. 이러다 나이 더 먹으면 내 꼴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아득하기만 해요. 양로원에 갈 때까지는 돈 버는 일에나 열중하겠지만 정작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땐 뭘하죠? 주름살과 병만 남은 노인네들끼리 모여 앉아서 말이에요."
"허허. 뭣하긴 뭘 해. 소설을 쓰면 되지. 세상 다 살아 보고 쓴맛 단맛 다 본 뒤니까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어? "
"예에? 소설요? 이미 꿈이 된 지 오래지요. 무지개는 지나갔고 나는 흙투성이에 발을 내딛고 있다구요."
대충 그런 이야기를 쓸데없이 늘어놓다가 유선배와 나는 헤어졌다. 그리고도 다시 몇 주일이 규칙적으로 흘러갔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직장에 나가고 집에 돌아왔다. 하종두라는 사내는 그날 이후 다시는 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고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간에 택시를 타게 될 일이 있으면 부랑자를 만났던 중앙동의 그 자리를 피해 서 있곤 했다. 그 부랑자를 다시 만나게 되거나 하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라는 어떤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운명은 사람을 업신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시 한 번 나를 그 하종두라는 사내의 기억 속을 떠밀어 버릴 수 없는 거였다. 그것도 내가 그처럼 자주 드나드는 재송동의 내 아파트 앞에서 하종두를 떠올리게 하는 부랑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날은 큰아이의 생일이라 일찍 돌아와 집에서 식구들과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조카애 생일에 선물을 사 들고 왔다가 돌아가는 누이를 배웅하려고 아파트 현관까지 나갔던 나는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한 사내를 목격했다. 내가 중앙동에서 마주쳤던 그 사내처럼 더부룩한 머리와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었는데 경비원이 밖으로 밀어내려고 양손을 뒤로 바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고 몸을 뻗대며 알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어머나. 오빠. 이런 아파트에도 거지가 들락거려요? 참 !"
누이는 이상한 거지도 다 보겠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고는 뽑은지 얼마 되지 않는 소나타를 몰고 사라졌고, 나는 경비원이 빈손으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야 내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내가 지정해 준 흡연실인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사내는 정말 돌아갔을까. 어쩌자고 이처럼 경비가 삼엄한 아파트 단지에까지 들어왔을까. 아파트 사람들이 그런 류의 인간을 얼마나 혐오하며 두려워하는지를 도대체 몰랐단 말인가 싶은 생각과 함께, 어쩌면 중앙동에서의 그 사내처럼 나에게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마음이 일었다. 불길함은 자꾸 불길한 쪽으로 내 의식을 몰아붙였다. 중앙동에서 이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그 사내의 모습은 결국 하종두였다. 그날 그렇게 죽어서 사라져 버린 하종두라는 사내가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어느 날, 나는 기어코 압량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말았다. 하종두를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그가 내게 주절거린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는 명분을 세우고서. 그의 망령이 시도때도 없이 나의 심약한 부분을 건드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젊은 날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소설이란 것이 환상과 공허로 이루어지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종두라는 인물을 잊어버리기 위해, 또는 하종두라는 그 인물 때문에 완전히 달라져버린 나의 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생은 어차피 우연의 연속일 뿐이고 내 앞에 우연히 새로운 어떤 일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킨 결심이었다. 한편으로는 태경의 출세에 못지 않은 어떤 가치를 내 인생에다 부여하고 싶은 질투심 또한 단단히 나를 부추겼으리라. 태경이 자식, 제가 출세를 했으면 했지 그만한 일로 친구를 완전히 모른 체 하다니 정말 매몰찬 인간이었다. 내가 만약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소설가였다면 제가 그처럼 나를 모른체 했겠는가 싶자, 새삼 태경이 섭섭하게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광기였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는 중년의 광기. 광기란 참으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하종두의 광기가 나를 망쳤다고 그를 원망하면서도 그의 광기가 저물어 가는 마흔의 나를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저버리지 않고 있었나 보았다. 오랫동안 익명의 삶을 살아온 뒤 마지막으로 생을 향해 정면으로 물음을 던져 보고 싶은 애타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꺼져 가는 불꽃이 마지막으로 화르륵 세찬 불기운을 피어 올리듯이 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몰입해, 그날 하종두가 내게 말해 준 단편적인 기억들을 차근차근 되새겨 보았다. 경산에 가면 두룩산이 있고, 거기에 고대가 있다, 그리고 고대에는 옛 장수들이 병졸을 모아 무예를 연마한 정기가 서려 있으며, 하종두가 찾아 헤매던 거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시 나를 들뜨게했다. 하종두의 말이 어느 정도만 사실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혼이 이 세계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지만 사람은 때때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안고 있었다. 압량에 한 번 가 봄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굳이 거창하게 정하지 않았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남겨 두고 간 한 토막의 이야기를 확인해 본다는 것이 마흔의 밍밍한 생활에 어느 정도 신선한 자극을 주기만을 기대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영악한가. 자신이 원할 때나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은 더구나.
청명한 가을 하늘이 줄기차게 펼쳐져 있는 쾌청한 날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부고속도로는 청아한 햇살을 받으며 질주하는 차량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흐르고 있었다. 지나치게 속력을 내거나 정체되어 너무 늘리지도 않은 기분 좋은 소통이었다. 가족들을 두고 혼자 떠나온 홀가분함을 만끽하며 나는 비밀스런 여자를 만나러 가는 듯이 연신 콧노래를 불러댔다. 도려 양옆으로 펼쳐진 익을 듯 말 듯한 벼이삭의 고개 숙임과, 살풋 누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산자락, 그리고 그 위의 희고 몽실한 구름, 가끔 부딪히게 되는 허리 잘린 산이 드리운 칡넝쿨 등이 감미롭게 가슴을 적셨다. 경산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암시라도 해주듯이 영천 들어서부터 줄곧 나타나기 시작한 사과나무들은 분홍색의 살갗을 햇빛에 드러내고 있었으며 벌써 잎의 색깔이 변한 포도나무들은 배배꼬인 사지를 뒤틀며 가을 바람에 조는 듯이 서 있었다. 그 유명하다는 대추나무들은 고속 도로변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는데 아마 국도를 따라 들어가는 구릉지에나 심어져 있는 듯 싶었다. 아무려나 지금 가고 있는 곳에 대한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편안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지나간 추억을 더듬으러 압량에 가는 것이고, 그곳에서 하종두의 흔적을 발견한다든가 또다른 작은 사건과 부딪히게 된다 하더라도 그다지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그저 압량에 가는 거였다. 하종두가 있었고 태경이 있었으며 4년 동안의 허랑한 대학 생활과 예안의 노인네들이 있던 시절을 아우르면 도대체 내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기도 하리라는 기대를 안고서. 그것이 그 모든 이유의 전부였다.
경산까지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조금 속력을 높인다면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그리 바쁘게 갈 이유가 없어 주행선에서 천천히 달린 때문이었다. 경산 톨게이트는 휴게실을 끼고 돌아 주차장을 지나서야 나타났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금방 내가 지나온 고속도로 아래로 길이 열린 낡은 국도가 뻗어 있었고 나는 무작정 그리로 방향을 잡고 보니 진량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카센터가 나타났다. 나는 진량 카센터로 차를 밀어 넣고 클랙션을 울렸다. 스무살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별로 달갑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로 나타나자, 나는 혹시 압량이라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고개를 갸웃하며 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건성 고개짓을 해주었다. 그대로 주욱 가면 압량면이 있다는 뜻인 듯했다. 경산 톨게이트에서 바로 압량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나는 묘한 기분에 잠시 사로잡혔다. 실재로 존재하는 압량의 땅, 하종두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십오 년 전 하종두의 말을 무턱대고 믿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할 수는 없었다. 말했다시피 내가 압량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단지 옛 사람들이 손수 흙을 쌓아 올렸다는 그 장대산 혹은 두룩산에 올라가 하종두가 꿈처럼 흘려준 그 노래며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고 싶은 이유 때문이었다.
진량 카센터에서 선화동이라는 이정표를 지나는 동안은 엉성한 소도시의 건물들이 길가에 즐비해 언뜻 대도시의 변두리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정표 앞의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언뜻언뜻 푸른 들판이 내비쳤고, 왼쪽으로는 진량 농공단지입구라는 커다란 입간판 너머로 아무렇게나 파헤쳐진 땅의 속살이 보였다. 넓은 들판의 한 부분을 농공단지로 조성하느라 그 모양인듯 했다. 그것이 나의 상상력을 일부 허물어 버렸다. 나는 하종두가 말하던 그 두룩산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안스럽게 일으키며 압량 쪽으로 차를 몰았다. 잠시 넓은 왕복 팔차선의 도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길은 곧 들판 가운데로 뚫린 왕복 이차선이었다. 미미적거리는 나의 뒤로 신바람을 내며 달려오던 용달차가 시끄럽게 클랙션을 울리며 재촉했다. 오른쪽 방향등을 켜서 용달차를 비켜 주고 나자 뒤이어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절반쯤 익어 누릇누릇해져가는 벼논을 향해 내려섰다. 구릉지대의 산들이 멀리 물러나 앉은 들판은 꽤나 넓었고, 바람에 넘실대는 벼포기가 너머로 참새 몇 마리가 후르륵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마침 지나가는 농부에게 이쪽으로 가면 압량이냐고 거듭 물어보았다. 농부는 여기가 압량면이며, 그 중에서도 압량리로 가려면 오 분쯤 더 가다가 압량교라는 다리에서 부적리로 빠진 뒤 면 소재지를 찾으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농부에게 그러면 압량리에 있는 두룩산을 아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고개를 흔들었다. 산은 많지만 그런 산은 처음 들어본다는 거였다. 혹시 동네 뒤편에 있는 조그마한 산이라면 먼 동네 사람은 알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그럴 듯하게 들렸다.
농부의 말대로 이 분은 달렸을까. 드문드문 포도밭이 나타나고 길가 집 텃밭에 심어 둔 대추나무들이 보였다. 대추나무들은 가끔 무리 지어 나타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가뭇없이 압량의 진미 압량 참외라는 조잡한 글씨들이 왼편으로 나타났다. 찢겨져 너덜거리는 비닐하우스며 길가에 내놓은 평상 등으로 미루어 참외가 나는 철에는 노랗게 잘 익은 참외를 거기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차량들의 발길을 붙잡은 듯 싶었다. 불현듯 갈증이 일었다. 노란 참외를 깎아 한 입 덥석 베물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누르며 압량교라는 조그마한 다리를 통과했다. 부적리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를 끼고 이어졌다. 단아한 연립 주택이 몇 채 시야에 들어왔다. 이미 물씬한 시골 냄새를 벗어 던진 마을길에 흰 회를 뿌린 듯 햇빛이 잘게 부서져내렸다.
부적리를 통과해 압량리에 도착한 것은 낡은 지붕들이 안고 있는 압량상회 압량우체국 등의 간판들로 미루어 담박에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압량에 온 거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가 찾아온 그 두룩산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손차양을 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을의 낮은 지붕들 너머로 다소 밋밋하게 솟은 언덕이 보이는 곳이 두 군데. 그러나 하종두가 말하던 그 토축 고대란 짐작은 도무지 일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그 언덕을 바라보았다. 아래가 둥그스럼한 원통 모양의 언덕이 구름장 낮게 내려온 하늘을 향해 담담하게 서 있다 했던 하종두의 말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산이 이 넓은 구릉지대의 지형을 따라 풍화되고 침식되어 밋밋한 언덕으로 엎드려 있음을 애써 감추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자신의 조락한 처지를 끝내 수긍하고 싶지 않은 나 또는 하종두의 마음처럼 말이다. 하종두는 그때 말했었다. 압량국은 진한의 소국들 중에서도 강성한 나라였고 신라의 전신인 경주 지방 소국들의 세력 팽창 때문에 결국 쇠락하고 말았지만 이 넓은 평야와 강, 그리고 비옥한 땅위에 그들은 이런 고대식광장을 세 군데나 남겨 놓았다고. 그 중 하나가 압량리에 있으며 이 꼭대기에서 강줄기를 따라 내리(內里) 두룩산 유적지, 거기서 다시 십 리 못 가 선화리에 또 하나 있다고 말이다. 두룩산이란 두리산, 즉 둥그스럼한 산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흙을 날라 고대식광장을 만든 압량인의 정신도 놀랍지만 그곳에서 심신을 수련한 그 기상이 천 년 세월을 넘어와 자신을 휘감고 있다고 말이다. 꼭대기 광장은 지름이 백여 미터는 되었소. 몇 백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이지. 훗날에는 김유신도 그곳을 연무장으로 사용했다더군요. 하종두의 혼이 어디선가 나를 발견하고 날아와 바람결인 듯 꿈결인 듯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아, 그러면? 나는 진량 카센터에서 막 지나온 선화동을 그제야 떠올렸다. 그러면 그 선화동이 바로 선화리? 나는 나의 무지를 다시 책하며 가는 길에 선화리 내리까지 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제야 그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긴 십오 년 전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마치 까마득 잊어버리고 있던 집을 나간 어머니를 알아보고 그 혈연이 끌어당기는 대로 본능적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그 본능적인 기억을 그냥 간직하기로 작정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압량에 왔고, 하종두의 귀신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두룩산 유적지에 대해 상세히 물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가 그곳에 서서 금호평야를 향해, 또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갑옷 입은 장군이기라도 했으면 여겼다.
그러나 나는 선뜻 그 밋밋하고 잡목을 몇 그루 세운 언덕을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이 두룩산이라고 믿어 버리기에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꼭대기랄 것도 없고 가파를 것도 없는, 거기다 도무지 하늘을 향해 기상을 떨칠 만한 구석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밭의 한가운데에 뿌리 가득 돌멩이를 안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냥 언덕 같았다. 하종두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세월에 깎이고 풍화되었다 하더라도 웬만큼의 두룩산 형체는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저 납작하게 엎드린 자세하며 도무지 신성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언덕이 어째서 두룩산이어야 하는가 싶자, 그만 먼길을 달려온 내 소행이 어이없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서기에는 그간의 내 행적이 너무도 억울한 노릇이었고, 어쨌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 두룩산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애써 추스렸다. 어쨌거나 차가 들어가는 곳만큼은 가 보리라 여기고 언덕을 향해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그러나 길은 곧 커다란 포도밭의 입구에 닿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웠다. 내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포도밭에서 한 여자가 모자를 쓴 채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저 언덕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길을 물었는데 여자는 남의 선산에는 왜 가려 하느냐고 시큰둥 대답했다.
"선산이라고요?"
여자는 아주 옛날부터 이 동네 터잡이인 강씨들의 조상 무덤이 점유하고 있는 곳이라고 일러주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부산에서 왔으며 산 비슷한 걸 찾고 있다고, 다시 한 번 두룩산에 대해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 부근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며 혹시 저 곳을 찾아온 것은 아니냐고 손길을 뻗쳐 보였다. 커다랗게 솟아올라 멀리서 보아도 옛 무덤이 분명한 봉분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 다시 바람결인 듯 하종두의 목소리가 뇌리에 되살아났다. 경산 지방은 전기 가야 연맹에 속했던 지역으로 진한의 맹주 역할을 했던 신라권에 통합되었지만 내륙 산간 지방의 가야 연맹은 그 후로도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지요. 경산 임당동에 가면 전기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나는 어느 사이 여자를 향해 저기가 경산 임당동이냐고 묻고 있었다. 여자는 경산시 임당동과 경계를 짓고 있는 이곳은 압량리지만 저기 커다란 무덤이 있는 쪽은 분명 경산시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곧 압량리도 경산시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차를 돌려 커다란 봉분들을 향해 가보기로 했으나 낮은 집들의 골목을 통과해 봉분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아무렇게나 파헤쳐진 흙더미와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널려 있는 황량한 사막 저편에 봉분은 있었고, 비닐 줄로 막아 놓은 곳곳에 출입금지라는 딱지가 나붙어 있었으며 경비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도저가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차머리를 집어넣고 무턱대고 황무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덜컹거리며 차체가 요동을 쳤으나 때때로 승용차나 트럭이 지나다닌 듯 영 못 갈 길은 아니었다. 직선으로 뻗지 않고 지그재그로 뻗은 자갈과 흙무더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니 허물지 않고 보존된 배수지 앞에 커다란 경고판이 나붙어 있었다. 여기는 문화재 관리국이 설정한 유적 발굴지이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함. 나는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배수지에서 앞으로 둔덕진 곳에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함직한 바라크가 지어져 있고, 경산 임당동 제2택지개발지구라는 커다란 글자들이 눈을 찔렀다. 택지 개발 공사를 하는 도중 유적이 나타나 그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경사지게 내려간 공사 현장은 다시 언덕을 이루며 아직 철거되지 않았거나 용케 철거 예정지를 벗어난 임당동의 주택들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를 돌려 다시 압량리 우체국까지 빠져나오는 동안 줄곧 그 황량하게 파헤쳐진 택지 개발 지구의 흙들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어쩌자고 이 곳에 왔던가 하고 스스로 물어 보았을 때는 참으로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중앙동에서 만난 그 부랑자 사내에서부터, 아니 십오 년 전 그 하종두에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이처럼 스스로를 던지게 되었을까 생각하자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큰길에서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선 압량우체국 마당 앞에 차를 세워 두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하종두, 존재하지 않는 두룩산의 정체를 알려 줄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애썼다. 그러나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바람결엔듯 꿈엔듯 하종두가 내게 속삭여 준 듯한 소리는 간곳없이 사라진 뒤였다.
더럭 겁이 나기 시작한 나는 부르르 제풀에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나는 미쳤을까? 하종두처럼 미쳐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가.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아무리 세상살이가 심심하고 지루하다지만 이런 일까지 억지로 만들어야 할 만큼 나는 방황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더 도시에서 버티며 살아갈 기운이 있었고, 요령도 터득하고 있었다.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는 추석에는 예안에도 가야 할 거였다. 이제 한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웃어른들 틈에 끼어 제법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여기저기 성묘도 다녀야 하리라. 내게 주어진 삶이 이렇게 마흔이라는 어중간한 나이에 끝이 나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 하종두의 환상에서 벗어나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지면서 나는 이 도깨비 장난 같은 압량행이 어느 순간에는 좋은 추억 거리가 되리라 여기기로 작정을 해보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청춘의 한때 어이없는 치기와 실수로 하종두라는 인간을 뇌리 속에 박아 두었듯이, 중년의 나이에 맞이한 이 정체불명의 외출도 따지고 보면 그리 나쁠 것 없이 내 생에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처음의 그 홀가분한 기분으로 돌아가서 하종두라는 인물은 제쳐 두고 나 자신을 돌이켜야 할 때가 되었으며 꼭 한 번만 더 우체국에 들어가 확인 해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설 일이었다.
우체국으로 들어가자 시골 우체국의 창구를 무료하게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의 직원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조심스레 두룩산에 대해서 말해 보았으며, 그들이 고갯짓을 하는 도중에 혹시 경산에도 문화원이나 문화재 관리국 같은 것이 있느냐고 재차 물어 보았다. 여자 직원이 114로 전화를 해서 경산 문화원을 한 번 찾아보라고 말해 주었다. 공중전화는 우체국 문 밖에 있었다. 나는 우선 114로 전화를 걸어 경산 문화원의 전화번호를 문의한 다음 다시 한 번 다이얼을 돌려 경산 문화원의 여직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여직원은 내가 차근차근 두룩산 혹은 장대산을 찾아다닌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자 책을 찾아보겠다며 한참 부스럭대더니 당신은 제대로 왔으며 압량리에 두룩산이 있었고 내리와 선화리에도 한때 두룩산인지 두리산인지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밭으로 흡수되어 그 흔적이 모호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요? 이거 애써 왔더니 헛수고를 했군요."
미안할 것도 없는 여직원이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 때는 차라리 홀가분했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발길에 다져지고 빗물에 씻겨 내린 두룩산의 환영이 하종두라는 인물과 함께 말끔히 내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제 정신을 추스리지 못하는 하종두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믿으려 애를 썼으면서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일말의 의구심조차도. 나는 고맙다고 경산 문화원 여직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빗물에 잎을 씻어 낸 나뭇잎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곧 부산으로 출발했다.
돌아가는 길은 압량리에서 경산 톨게이트까지 진입하는 데만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여겼으나 곧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다녀오는 차량 행렬임을 알아차리고는 거북이 걸음으로 부산까지 가야 하리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경산 톨게이트를 지나자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은 그리 정체되지 않았으나 속력을 내기에는 무리가 갈 정도였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시간은 충분했다. 경산을 빠져 나와 영천 가까이 쯤 왔을 때는 영천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해 드는 차량으로 인해 한껏 속도를 낮추어야만 했다. 나는 차가 속력을 멈춘 것을 틈타 가을날 오후의 청명한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는 사과나무며 그 사이사이 보이는 대추나무들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어렵게 찾아온 길이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다음 주 쯤해서 내 문중에서도 벌초가 있었다. 대소 일가가 대대적으로 모여드는 문중 벌초는 제법 걸쭉한 잔치판으로 이제 나도 그 중에 끼이면 가운데 서열쯤으로 위치가 잡혀 있었다. 산해정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까치산 중턱에 있는 문중 선산의 주변을 에워싼 억새풀을 베어 내고 봉분들을 덮고 있는 잡초를 뽑으며 오랜만에 일가들의 낯익은 얼굴을 보는 일이었다. 조금 멀리 눈을 돌렸을 때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구릉들이 구불구불 기어다니는 경산 영천 들의 조용하고 고저늑한 풍경 속으로 이랴 말 모는 소리도 선명하게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옛 장수의 모습이 꿈결처럼 어른거려도 좋으리라.
나는 뇌리에 떠오른 그 옛 장수의 모습을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았다. 압량국의 한 장수가 이 들판을 바람처럼 가르며 종횡무진 말을 달렸듯이 하종두도 그렇게 상상 속에서 말을 달렸을 터이고, 나 또한 그런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곧 움직이기 시작한 앞차의 꽁무니를 따라붙으면서 나도 모르게 오른쪽 방향등을 켜고 갓길로 들어섰다. 고속도로변의 즐비한 과수목들의 그림자가 거기까지 올라왔을 리는 분명 없었다. 내가 본 것은 확실히 사람의 그림자였고, 그것도 오른쪽 백미러에 비친 하종두의 모습이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줄지어 선 차량의 꼬리만 보일 뿐 사람의 그림자는 얼씬도 않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백미러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그 그림자 같은 형체는 사람이었고, 덥수룩한 수염과 아무렇게나 팽개친 봉두난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 했으며 나를 향해 히죽 웃기까지 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 아래로 펼쳐져 있는 포도나무와 사과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사이 고속도로 아래로 달려 내려가 나무 그늘에 그가 숨어 버리기라도 한 듯이.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과수원까지는 제법 가파른 둔덕이었고, 단숨에 그리로 달려 내려갔다 하더라도 그 사이 완벽하게 몸을 숨길만큼 날샌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백미러로 그의 모습을 보았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가 거울 속에서 히죽 웃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 채 서 있던 나는 다시 차로 돌아와 무엇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림자가 어렸던 오른쪽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아, 그러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속에는 내가 처음 만났던 그 하종두가 뚜릿뚜릿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폈다. 줄지어 선 차량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한 번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마흔을 떠안은 사내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사내도 미간을 찌푸렸다. 우연일까. 내 얼굴 위에 겹쳐지는 하종두의 얼굴을 내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아니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 백미러를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던 하종두라는 인간이 바로 나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바로 하종두였고, 하종두 그는 바로 나의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예안을 떠나 태경의 집으로 갈 때 내 뒤를 따라온 그림자, 내가 박물관에 들렀을 때 나와 부딪힌 바로 그 그림자, 그리고 내가 태경의 집을 떠나 예안으로 돌아갔을 때 혼자 태경의 집에 남아 죽어 버린 바로 그 하종두. 내가 버리고 싶은 부분만을 고스란히 주워 모아 형체를 이룬 또다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