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장애인 복지 프로그램 연구 (평택대학 사회개발대학원 장애인 복지론 시간에 발표한 글)
1. 서론
장애인은 성경에서 돌보라고 한 사회적인 약자에 해당된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회적인 약자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병자와 장애인등을 들 수 있다. 장애인은 신체나 정신 등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상실되어서 기능장애가 있고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능력의 장애를 동반하게 된다. 기능장애와 능력장애는 결국 사회적인 불리까지 당하게 된다. 장애인도 엄연한 인격을 가진 존재이다. 비장애인과 똑같은 존엄성이 있고 개개인의 가치가 있으며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장애라는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및 문화생활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사회적인 불리함 속에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장애인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시민권과 정치적인 권리와 문화적인 혜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불리와 약자의 위치에 있기에 생존권을 위한 사회적인 보호와 행복하고 인간적인 삶에 필요한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 자신도 건강한 사회적인 구성원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자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인간의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이다. 장애를 가졌어도 그 인격과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다. 교회는 장애로 인하여 아파하고 차별 받고 사회적인 불리를 당하는 영혼에 대한 관심 마땅히 가져야한다. 장애인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교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통하여 장애인 복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본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장애인 증가의 원인
(1) 등록 장애인의 증가
장애인은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법적으로 인정된 등록 장애인 숫자도 1990년 248,000명에서 1998년도 582,913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5년도 장애인 실태 조사에서 장애인수는 1,053,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복지적인 혜택이 적절하고도 다양하게 주어질 경우 등록하는 법정 장애인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2) 교통사고와 안전사고의 급증과 질병
한국적인 상황에서 교통 사고의 빈발은 많은 장애인의 양성을 가져오고 있다. 1999년도에 교통 사고의 사상자수는 70만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교통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인수는 더욱 증가될 추세이다. 또한 산업재해와 복잡한 삶의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안전 사고 등으로 장애인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95.3%가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인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교통사고 등의 안전사고로 인하여 장애인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1995년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실태조사)
(3) 환경오염으로 인한 선천적인 장애인 증가
공식적인 조사와 통계는 없으나 환경 호르몬과 공해 등으로 인한 유전적인 장애와 선천적인 장애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의하여 인근 지역에서 선천적인 장애아의 출생이 급증함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과다한 약물남용과 갖가지 화약물질로 인한 오염과 공해 등으로 인하여 유전자가 변형되고 선천적인 장애아의 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과학적인 조사와 통계를 내지 못하여서 그렇지 선천적인 장애는 앞으로 계속하여 증가할 것이다.
(4) 장애인 범주의 확대로 인한 증가
장애의 범주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장애인 복지법은 장애인을 지체장애, 시작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등 정신장애자로 되어 있고 만성신장 및 심장질환자등 내부 장애도 장애인의 범주에 포함하는 등 정애인을 확대하여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2002년까지는 만성호흡기질환, 만성간질환, 알콜및 약물중독까지도 장애자에 포함할 예정이고 2003년까지는 안면기형과 치매와 비뇨질환과 피부질환까지 장애자의 범주에 포함할 예정이어서 장애자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5) 노령화로 인한 노령 장애인 증가
노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노령으로 인한 장애도 급증을 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1995년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볼 것같으면 연령별 장애출현율은 나이가 많을수록 장애가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40대 후반에서 출현 율이 증가하며 65세 이상부터는 급격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 노인이 되면은 한두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질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장애문제는 단순한 장애만의 불리함만이 아니다. 점점 중증화, 증복화, 고령화의 경향을 가져오고 있다. 장애의 중증화와 중복화는 그만큼 장애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으며 장애인의 노령화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상인도 언제 장애자가 될지 모르는 예비장애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더구나 모든 인간은 늙기 마련이다. 노령이 되면 될수록 장애가 될 확률이 높음은 당연한 일이고 통계학적으로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3. 성경과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장애인 문제
(1) 성경에서는 장애인 차별이 없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임을 가르쳐 왔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구별되는 별종의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차별한 기록이 없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다만 육체에 흠이 있는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온전하시기에 흠이 있는 상태로는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졌다고 제사장이 못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레21:16-23)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 앞에 결례(깨끗한 예)를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
(2) 장애인은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이었다.
장애인은 고아, 과부, 나그네 등과 함께 돌봄을 받아야할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정신장애를 가졌을 때에 악기를 연주함으로 치료하여 주곤 하였다. 다윗은 또한 사울 왕가가 몰락하고 남은 자손이었던 므비보셋을 돌보았다.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하반신 장애를 가진 자였다.
신약 성경에서도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그를 외면하지 아니하고 그를 돕고 치료해주고 그를 안전한 곳에까지 데려다 주고 사후처리까지 행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들고 있다.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온 이유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눅4:18)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주님은 무수한 장애인들을 고쳐 주셨다. 병을 고치는 것은 주님의 큰 사역 중의 하나였다. 주님은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농아자에게 '에바다.'(열려라!) 명령을 하심으로 고쳐 주셨다.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되었다.(막8:31-35) 손이 마른 자체 장애자들 고쳐 주셨고 벳세다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의 눈에 침을 바르고 안수하심으로 만물을 밝히 보도록 고쳐 주셨다. 중풍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마비 장애인도 고쳐주시면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눅2장1-12)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귀신을 추방하는 장면이 많은데 귀신들림 현상을 정신장애로 본다면 정신장애자까지 치료하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치료 사역은 지체장애, 시작장애, 언어장애, 청각 장애, 정신 장애등 장애의 모든 범위에 해당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제자들도 장애인들을 치료하였다. 성전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하반신 지체 장애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 말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쳐 주지 못하는 제자들을 주님은 꾸짖으셨다.
12제자에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장애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중요한 사역이었다. 성경에는 이처럼 장애자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과 돌봄으로 대하였으며 한 단계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고쳐주었음을 볼 수 있다.
(3) 장애는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성경에는 나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근거를 이룬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쳐서 다리를 절었다. 장애를 가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 고쳐주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시는데 크게 쓰임을 받았다.
사도 바울은 몸에 가시를 가졌다고 하였다. 무슨 질환인지 정확하게는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장애를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장애를 이기면서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맡은바 사명을 다하는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훌륭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밀톤은 시각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실락원] [복락원]등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고 베에토벤은 청각 장애를 가졌으나 훌륭한 음악을 남기었다. 헬렌컬러는 중복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극복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 주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고귀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장애는 극복해야할 불편일뿐이다. 장애인은 더불어 살아야할 이웃이었다.
4. 장애인 문제에 교회의 개입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삶을 돌보고 지탱해 주는 하나님의 기관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고귀한 인간이 육신과 정신적인 장애를 입었을 때에 교회는 당연히 개입을 해야 한다. 성경의 정신도 사회적인 약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돌보는데 있고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장애자들을 직접 고쳐 주셨고 제자들에게는 장애인들을 치료하라고 명령까지 하셨다. 교회는 또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역 주민의 공간이며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지역 공동체이면서 어느 기관보다 지역민들의 실상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교회내의 기관과 조직들이 있다. 교회가 장애인 문제에 참여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장애인 문제에 공헌을 할 수 있다.
장애인 문제는 교회와 지역 사회의 첨예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경기 광주군에는 여러 장애인 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다. 삼육재활원, 향림원, 한사랑마을, 인덕학교, 은혜의집등 장애인을 수용하거나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 들어설 정도로 장애인 문제는 지역사회의 문제로 부각이 되었다. 광주 세브란스 정신병원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치료와 병원 낮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나 장애를 가진 가정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 사회의 문제이며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할 현실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을 병원이나 시설이나 행정적인 자치 단체에만 떠맡길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장애인 문제에 눈을 돌려야하며 어떻게 장애인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연구하며 실행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들은 교회에 찾아오기도 하고 장애인에 대하여 관심 있는 교인들은 장애인 시설과 유대관계를 맺고서 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각 교회는 장애인이나 장애인 문제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장애인이 예배에 참여하는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지 못하다. 더구나 교회는 계단이 많은 2층을 본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장애인이 접근하기 힘들다. 교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한 실정이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인간으로 존중받고(인간존중)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하여 장애인을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의 주류로 이끌어 낼 것이 요구된다.(주류화) 따라서 교회에서 장애인에게 비장인과 같이 교육을 받고 함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합예배를 드릴 것이 필요하다.(통합화)
또한 개교회적으로 재정과 인적 자원과 정보 등이 부족하여 개체 교회가 감당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지방회(노회)와 연회와 총회 차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복지 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건의도 하고 인식도 전화시킬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감리교는 총회와 연회및 지방회는 그 구성 분과가 선교와 교육과 사회부로 구성되었다. 선교도 열심히 하고 기독교 교육도 잘하는 편인데 사회부는 사회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이슈에 대응을 전혀 못하였다. 겨우 자체내의 경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의 장애인 문제는 지방회 차원에서 접근하면 알맞을 듯하다. 사회복지의 전반적인 면을 연구하고 체계화를 세우는 것은 연화나 총회 차원에서 시행하여 나갈 수 있다. 감리교는 현재 총회 차원에서 사회복지법인으로 감리교사회복지 재단이 설립되어 있다. 기독교 정신과 감리회의 이념에 입각하여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인류복지와 지역복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5. 장애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
(1) 가치 판단의 역할
교회가 장애인 문제에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가치를 판단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혁과 개발은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이에 합당한 가치를 판단하여 실행할 때에 이루어진다. 이 역할을 하기에 가장 좋은 기관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응답을 하고 지역 사회에 무엇이 옳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시급한 일인지 가치를 판단자의 역할을 할 것이 필요하다. 본 교회는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을 위한 특별 행사 등을 갖어야 하며 교인 모두가 장애인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요, 바로 우리들의 문제요, 교회의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2) 장애인에 대한 용어및 성서 언어 정립
교회에서 우선 장애인에 대한 용어를 정립할 것이 절실하다. 개역 성경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없다. 불구자, 절뚝발이, 앉은뱅이, 소경, 벙어리, 귀신 들린자, 언어가 어눌한 자등 장애인을 원색적인 언어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설교나 성경공부 시간에 장애인에 대한 원색적인 용어는 피하고 있으며 교우들에게도 지체 장애자나 시각 장애자, 청각장애자, 정신장애자 등의 단어로 고쳐 부르도록 주지시켜야 한다. 언어는 사상이며 사람의 마음과 일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진 도구이다. 언어부터 장애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을 수 있는 단어로 고쳐 부를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성경의 언어도 현대 맞게 새로운 단어로 정립할 것이 요구된다.
(3)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장애인 체험
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함과 가치가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교회에서부터 차별과 편견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거나 차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동등한 인격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도록 했다.(사회통합화) 또한 비장애인들도 언제 장애인이 될 지 알 수 없기에 예비장애인임을 인식시키고 장애인 문제를 이슈로 제기하여 성경 공부 시간에 토론도 하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학생 수련회와 청년 모임 등에서는 장애인 체험을 하도록 한다. 잠시 동안이지만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자가 되어서 더듬거리면서 걸어봄으로 장애인의 애로와 고통을 느낄 수 있었으며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수도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많은 턱이 있고 작은 계단이라도 남의 도움이 없이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함을 체험하고서 장애인 문제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교회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하여 문제를 파헤치고 사회와 인류가 나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설교는 무지한 자를 깨우치고 잠재된 사회적인 역량을 끄집어내며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기능도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교회학교 때부터 장애인 아동이 비장애인 아동과 함께 분반 모임을 하도록 한다. 장애인과 어려서부터 접촉하고 함께 생활함으로 장애인을 이해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거리감이 없어짐을 볼 수 있다.
(4) 장애인의 교회 활동 참여 유도
장애인이 사회적인 활동이 저조하고 집안에만 움츠리고 있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편견과 장애인 자신의 소극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교회는 장애인을 활동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교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모든 활동에 장애인이 참여를 활 수 있도록 적극유도를 할 것이 필요하다.. 능력이 있는 장애인은 그 능력에 따라서 봉사도 하고 교회의 각 부서에서 활동을 하게 함으로 장애를 극복하는 정신력을 기르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을 갖도록 한다.
야외 예배를 드리러 교회 밖으로 나갈 때에 장애인들은 움직이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해 한다. 그래서 안 따라 왔으면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먼저 장애인을 데리고 야외 예배 장소를 답사하고 장애인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을 준비하고 도우미를 붙여 주는등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체가 이미 예배이고 사랑의 나눔이 아닌가?
6. 장애인을 위한 교회 프로그램
(1) 장애인 간증 집회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해소하고 장애인들에게는 힘과 격려를 불어넣기 위하여 장애인 간증집회가 효과적이다. 장애인들에게도 도전이 되고 비장애인들에게도 장애인의 마음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또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어서 좋다. 그리고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2) 장애인의 정보통신 교육
장애인들이 집안에만 움츠려 있거나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사는 것에서 탈피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컴퓨터 통신이다. 요즈음은 인터넷이 발전하여 통신망의 활용이 장애인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자판만 두드릴 수 있으면 통신망을 적극 활용하도록 할 것이 필요하다. 통신망을 활용함으로 사회적인 활동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으며 통신망을 통하여 인간관계, 취미활동, 나아가 사업까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움직이기 힘들어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통신망을 통한 사귐을 가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얻으며 다양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장애인 후원 결연 사업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장애인을 후원하고 결연을 맺어 주는 것이다.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후원과 결연 사업은 활발하지 않고 비장애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실정이다. 시설에 있는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은 결연과 후원이 잘되는 편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결연과 후원 사업은 아주 미미한 실정이다. 교회에서 먼저 솔선 수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장애인과 결연을 하여 후원도 하고 정과 사랑을 나누는 사업에 적극 참여할 것이 필요하다. 교회학교 교사들은 자기반에 있는 장애인 아동들이 자동으로 사랑의 후원자가 되도록 하면 여러면에서 유익하다.
(4) 장애인 통신 단체와 연결
장애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고 활동을 위하여 통신망 동아리를 이용하면 아주 편리하고 많은 정보와 자원을 얻을 수 있다. 통신망 동아리로는 하이텔에 두리하나등 여러 개의 장애인 단체가 있다. 특히 두리하나 동아리를 통하여 장애와 재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모임에 참여도 하고 함께 돕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두리하나등 장애인 통신 단체들은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장애인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아주 뛰어난 역할을 한다. 신속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장앤인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을 할 수 도 있다. 또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힘을 모아서 문제를 극복하고 대응을 하였다.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통신망 활용은 장애인의 권익 보호와 장애인 활동과 장애인 문제의 극복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고 있다. 통신망을 통한 모금 운동으로 장애인 돕기 운동도 여러 차례 계속되어 왔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는 운동도 통신망을 통하여 해 나갈 수 있다. 2000년 4.13 총선 에서 광주군에서는 장애인이 투표장에 갔으나 투표장이 2층에 있고 도와주지 않아서 투표를 못한 사례가 있었다. 이런 사례도 즉각 통신망에 올렸다. 하이텔의 플라자란과 여러 홈페이지에 올려서 잘못된 정책에 항의를 하기도 한다.
(5) 장애인을 위한 자원 봉사 활동
장애인을 위한 자원 봉사를 정례적으로 실시하도록 함은 교회의 봉사 차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가가 된다.
(6) 장애인을 위한 교통 봉사와 Task Force
장애인의 긴급 상황이나 차량을 이용하고 싶을 때에 교회 차량이나 교우들의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갖추어 놓고 활용을 할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시적으로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는 장애인을 돕기 위한 활동으로 Task Force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차량이 없는 장애자들의 이동에 교통 봉사는 아주 실제적으로 필요한 도움이 되고 있다.
(7) 속회 조직을 통한 장애인 재가 복지
교회의 속회 조직은 단순한 예배만 드리는 모임이 아니다. 예배와 삶을 통해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져가는 실제적인 기관이다. 속회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낮프로그램 역할과 주간보호 역할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장애인을 둔 가정들끼리 속회 조직을 구성하면 교대로 돌아가면서 장애인을 보호할 수 있고 낮병동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교회에서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지 않았어도 장애인을 둔 가정들은 급한 일이나 직장 등으로 인하여 장애인을 낮시간 동안 교대로 돌보는 주간보호센타 역할을 가정 내에서 이미 시행되어 오고 있다. 재가복지 측면서 경비도 적게 들고 교회에서 프로그램화하면 성공할 수 있다.
7. 문제점과 맺는 말
장애인을 위한 교회 프로그램은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고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문제점들과 앞으로 보완되어야 할 점들이다.
(1) 프로그램의 지속성 부족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간증 집회도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면 별 소득이 없다. 이유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인적, 물적, 정보 등의 자원도 효과적 관리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예산이 부족하여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2) 장애인을 찾아가는 교회로의 전환
지금까지 교회는 장애인들이 찾아오면 대응은 아주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교회로 찾아오면 교회 공간이 장애인들이 활동하기에 영 불편하다. 이제는 소극적으로 장애인이 교회에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회가 장애인 모임과 단체와 시설에 찾아갈 것이 필요하다. 가령 교회에 와야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 장애인 시설에 직접 찾아가서 부서별로 예배도 드리고 활동도 할 수 있다.
(3) 시설미비
교회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여러모로 불편을 초래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2층에 오를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시설도 없고 화장실 시설도 전무하고 장애인들이 쉬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만한 공간이 없는 실정이다. 건물을 지을 때에 처음부터 장애인을 위해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개조하기는 쉽지 않다. 건물 구조도 고치기 힘들고 예산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시설은 처음 지을 때부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미리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현재는 장애인이 없다고 일반 건물로 지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장애인이 들어올 것임을 예상하고 건물을 지을 것이 필요하다.
(4) 장애인 후원 미흡
장애인과 결연사업이 필요하나 장애인을 후원하고 결연을 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다. 앞으로 비장인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서 장애인 문제를 자신의 미래의 문제로 인식할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여서 장애인을 후원할 수도 있고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 갈 수 있다.
교회가 장애인을 위한 재가복지적인 측면서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고 장애인을 위한 복지의 한 분야를 담당할 수 있음을 찾아보았다. 교회는 지역실정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장애인 문제를 실제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좋은 기관이 되고 있다. 교회에는 어린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적이 자원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특히 활동이 왕성한 청년부와 장년부는 좋은 인적 자원이 다. 또한 교회는 정기적인 헌금의 수입원이 있어서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복지사업을 감당할 수 있고 만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임을 전제로 하는 기독교 정신 또한 장애인 복지의 이념과 서로 일맥을 같이 하고 있다. 교회는 끊임없이 사회문제에 이슈를 제기하면서 교육, 봉사, 참여 등의 방법으로 장애인 문제를 직접으로 담당할 수 있는 좋은 기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