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모사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제갈양이지만, 저는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군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사람은 이미 비교의 대상에서는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조조에게는 수많은 모사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중요한 인물들만 해도 순욱, 순유, 가후, 곽가, 정욱, 유엽, 진군, 종요, 양수 등 다수입니다. (사마의는 주로 조조의 손자 조예 때에 활동했으므로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음)
이들은, 조조가 워낙 뛰어났었기 때문에, 사실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그들 중 제일 큰 일을 남긴 사람은 역시 순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책에는 순욱이 조조의 위왕 등극을 반대하다 죽었다고 전하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순욱이 죽었을 때에 시호도 받고 작위도 받았습니다.
순욱은 옛 제나라의 관중과 같은 사람입니다. 관중은 자신의 군주 환공의 행실이 개나 돼지와 같음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젊은 시절엔 환공에 대항해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관중이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든 이유는, 환공이 아니면 어지러운 세상을 안정시킬 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순욱은 조조가 좋아서가 아니라 (조조는 대단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아들들이나 심복 경호장수인 허저조차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
당시 천하에 있던 군벌들 중 그나마 조조가 제일 세상의 난을 진정시킬 확률이 높았기에 세상을 위해 조조를 도운 것입니다.
[조조가 서주를 칠 때 수만 명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서주태수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물려 주었고, 서주의 귀족들이 조조가 아닌 유비를 돕게 되었으니, 그것은 죽을 때까지 조조를 괴롭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조조의 모사들 중 진군(陳群)은 사실 서주 사람으로 대대로 한왕조의 충신 집안이라, 유비의 초대 모사였습니다만 (소설책엔 이런 얘긴 안 나옴),
돌아 보니 유비에게는 장래성이 없을 것 같아 조조에게 투항한 인물로, 역시 대대로 지켜 온 명분보단 실리를 택한, 세상을 읽을 줄 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유비를 섬겼다는 과거 때문인지 조조는 그를 전쟁에는 데리고 나가지 않아, 주로 내정에만 업적을 남겼으니 (정일품, 정이품 하는 9품 제도를 창시함), 역시 처음 시작이 잘못되면 끝까지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그 외에도 할 말은 많지만, 가후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가후(賈 言+羽)는 전형적인 트러블메이커로, 자기 혼자 살기 위하여 한왕조를 완전히 망친 사나이입니다.
여포가 동탁을 죽였을 때, 동탁 밑에서 간사한 짓을 하던 자들 중 하나인 가후를 죽이려 하자, 가후는 동탁의 잔당인 이각, 곽사를 충동질하여 여포를 치게 하였습니다.
여포는 장안에서 한왕실을 재흥시켰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포는 후한 최후의 충신입니다.
여포는 한족도 아닙니다. 오원(지금의 내몽고 중부) 에서 태어난 몽골족입니다. 여포란 한자 이름도 아마 누군가가 지어 준 것이었을 겁니다.
십중 팔구 어렸을 때에 노예로 베(布) 한 필에 여씨 집안에 팔려 왔다가, 무예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알고 보면 여포도 살아남기 위해 아주 부단히 애쓴 사람입니다.
중국인들이 여포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가 몽골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후의 지략으로, 여포는 이각, 곽사에게 패하여 전국을 유랑하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조조에게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후는 이각, 곽사를 이용하였으나 이들 밑에 있어 봤자 별볼일 없다 생각하고 장수(張繡)라는 군벌 밑에 들어가 조조를 함정에 몰아넣어, 거의 죽일 뻔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장수가 자기를 대우해 주지 않자 다시 조조에게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태위 (지금의 국방장관) 까지 지낸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고 트러블메이커이지만,
결국 위의 두 사람보다 더 큰 영화를 누렸습니다.
대국적인 관점을 보자면, 순욱은 대국을 상당히 볼 줄 알았고, 진군은 그런대로 볼 줄 알았으며, 가후는 당장 다가오는 찰나적인 것만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 필요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대세를 보고 예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같이 당장 돌아가는 일을 보고 단기적인 것을 예측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저는 시야가 넓지 못하고, 백 년 후, 천 년 후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읽지 못합니다. 당장 현실이 돌아가는 것만 해도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그리 타고 난 걸 어찌하겠습니까.
대국적인 것이나 앞으로의 미래는 저보다 더 잘 설명하실 분들이 계실 것이니 그건 그분들에게 맡겨 두고, 저는 당장 돌아가는 상황판단, 단기적 결정에 대해서만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조조 모사들 비평에서 보듯, 저는 정의니, 자유니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글을 읽으면 파시스트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할 것인데,
저는 대륙회복과 천하대란 진정이라는 두 개의 대명제만 해결된다면 어떤 정치제도, 어떤 희생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문제도 생존보다 우선은 없습니다. 아래 제가 쓴 예양에 대한 글처럼, 하늘이 돕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살아남아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전통에는 민주주의니,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개소리는 없었습니다. 왕이 있고 (혹은 단군이 있고) , 현인들이 일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세상이 올 겁니다.
안타깝지만, 환경운동, NGO운동 등은 이제 다가오는 천하대란에서 아주 참혹히 처단될 것입니다. 석유가 끊겨 분노한 민중들은 정부나 권력자들을 칠 수는 없으니,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겁니다.
임꺽정, 정여립 등 변화를 꿈꾸던 이들의 참혹한 종말로부터 우리 나라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든싫든 다시 총칼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고, 미국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2001년 9월까지 인류가 누렸던 최고의 시절은 이젠 갔습니다.
화려한 날들은 영원히 갔습니다.
이제는 무차별 살육과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서구문명 붕괴론을 내세운 제이 핸슨 선생도,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고, 잠적했다고 합니다. 올두바이 이론의 리처드 덩컨 교수도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 다, 이미 글로써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 말했으면, 들을 넘들은 다 들었을 것이고, 안 들을 넘들은 어쩔 수 없다 이것입니다.
카페 게시글
천하대란과 개벽 게시판
(잡담) 조조의 모사들과, 저의 앞으로 글 쓸 방향
P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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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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