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BS 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을 품은 전도자의 중심과 동기이다. <사진은 서수복 집사(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98년 광안리 문화 센터에서 다락방을 인도한 후 일꾼들과 함께 한 모습>
‘전도는 되어진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신다.’ 전도의 갈급함이 있던 이들에게 가장 충격이 되었던 다락방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되어진다’는 것. 그 동안은 인간의 힘으로 불신자의 마음을 바꾸려고 했고, 교회에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사실상 진정한 열매는 맺혀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성령의 배에 탄 듯 정말 믿음 속에서 하나님을 따라가면 일꾼은 세워져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다 보니 현장에 죽어 가는 영혼들이 보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열정이 생기고, 복음만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시간과 장소를 열어놓고 생명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수복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부산 전도신학원 서무과장?선교사 훈련원 총무처장?46)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도를 하는 사람이 어떤 동기와 중심을 가지고 지속하는가 중요하고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도 움직여진다고 말한다.
서집사는 91년도 12월 가나안 수양관에서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임마누엘 교회 담임)의 메시지를 처음 접하고 삶의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말씀운동을 펼쳤는데, 한 지역에서 시작한 다락방은 10여 군데의 지역 다락방으로 확산이 되었고, 그 다락방에서 복음을 받은 이들은 현재 중요한 일꾼들로 세워져 각자의 현장에서 또 다시 서 집사와 같은 전도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
■ 기능 가진 자가 복음을 만났을 때 GBS(Group Bible Study) 사역자로서 말씀사역을 했던 이들 가운데 서 집사의 사역은 ‘기능 가진 자가 복음을 올바르게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한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전도하게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적인 사역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어릴 때 하나님을 만나고 불신가정에서 자라 우상숭배하면 어떻게 망해 가는지를 보니까 영혼에 대한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차원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데리고 오지만 그들이 교회 안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즈음 다락방 메시지를 접했고,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집회에 계속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서 집사가 처음 은혜를 받게 되었던 메시지의 내용은 류 목사가 전하는 전도의 3요소 였다고 한다. 그 메시지는 전도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한데, ‘전도하고자 하는 일꾼’과 ‘현장’이 있어야 하고, ‘전도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듣고 서 집사는 자신에게 일꾼을 양육시킬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지속되어지지 않았던 이유를 번쩍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서 집사는 크로마 하프 부산지부장으로 부산전역에서 크로마 하프 그룹 레슨을 하다보니까 200여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다.
처음 다락방 메시지를 접하고 서 집사는 그들에게 처음으로 전도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이중생활을 하면서 누리지 못하고 있던 신자들이 인생의 답을 얻고 일꾼으로 세워졌다. 이 다락방이 서 집사의 집에서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며 시작된 남천동 다락방(A)의 출발이다.
“남천동에서 일꾼을 키울 때 메시지 자체가 영적인 메시지이니까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표시 안 나게 구역을 통해서 현장다락방을 하니까 영혼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서 집사는 당시 남천동 M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교회의 목회자는 자신도 사역을 하지 않는데 평신도가 그러한 사역을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서 집사의 다락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들이 소문이 나게 되어 교단에서까지 알려지게 되자 M 교회 목사에게 압력이 들어오고 그 결과 M 교회 목사는 서 집사의 다락방을 저지했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서 집사는 결단을 내리고 93년 4월에 부산 임마누엘 교회로 이동하게 되었다.
서 집사의 집에서 시작한 남천동 다락방(A)은 서 집사가 95년 그 집에서 이사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많은 사역자들이 그 다락방을 거쳐갔고, 새로운 전도의 문을 여는데 바탕이 되었다.
■ 지역 다락방에서 공단 다락방 연결 서 집사는 남천동 다락방(A)에 정확하게 누가 와서 은혜를 받았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로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와서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94년 류 목사의 메시지 가운데 공단복음화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 무렵, 서 집사는 다락방에서 공단 복음화를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공단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숙사의 사감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그 남천동 다락방(A)에 ‘송월 타월’ 공단에 다니고 있던 청년이 참가하여 은혜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공단 기숙사의 사감은 기독교신자인데 다락방을 좀 싫어한다고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절묘하게 느낄 정도로 또 그 사감의 친구인 H교회의 사모가 그 남천동 다락방(A)에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 집사는 H교회의 사모의 소개로 송월 타월의 기숙사 사감을 찾아가게 되었다. 기숙사 사감은 처음부터 크로마 하프에 관심을 더 가졌다.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며 서 집사에게 몇 명을 모아 놓을 테니 일주일에 하루씩 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서 집사는 복음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락방을 먼저 밝혔다. 그랬더니 그 사감은 정색을 하며 다락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자기 혼자만이라도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며 전화가 왔다. 서 집사는 사감을 찾아가 기도하며 크로마 하프를 몇 번 지도했더니 이 사감은 ‘서 집사 같은 경우라면 다락방이 괜찮겠다’며 말씀도 함께 듣길 원했다.
송월타월 공단 다락방은 이렇게 시작되어 이곳에서 영접운동이 일어났고, 신자였던 그 사감은 영접운동을 보고 놀라게 되었고 방송을 하며 청년들을 불러모았다. 그때 복음을 받은 자매들이 부산 임마누엘 교회에 연결되어 사역자로 세워지기도 했다.
■ 병원, 학교, 지역으로 다락방 파급 남천동 지역다락방(A)을 계속 진행하면서 서 집사는 94년 전국 순회팀 훈련의 팀장으로 섬기기도 했다. 순회팀에서 현장을 나가는 날, 부산 대학병원을 나가기로 했는데 또 재미있게도 남천동 다락방에는 부산 대학병원의 방사선과 과장의 아내 K 집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K 집사의 소개로 그 과장을 중심으로 현장을 파고들기로 했다. 서 집사는 한번도 그분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완벽하게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병원을 찾았다. 맨 처음 원목실에 가서 예수 믿는 선생님들이 계시면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선생은 누가 있는가? 하고 물었는데 한태성 선생이 있다고 소개를 받았다. 한 선생을 만나려고 했지만 이미 그때는 퇴근하고 못 만난다고 했다. 그러면 서 집사는 다음에 와야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분명히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이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원합니다. 하나님, 만나게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며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K 집사의 남편을 병원 마당에서 만난 것이다.
또 그 방사선과 과장 선생님을 만나고 있는데 한태성 선생도 만나게 되었다. 서 집사는 두 사람과 모두 초면이라 그들은 선뜻 문을 열지 않는 듯 했는데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복음 받고 이렇게 변화되었다’고 짤막하게 간증하자, 이 두 사람은 ‘크로마 하프요?’ 하며 놀라며 자기들이 너무 배우고 싶으니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부산대학병원에 다락방이 열리고 간호사들에게도 복음이 연결되었다. 한태성 선생은 이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거기서 만난 신혜경 간호사도 복음을 받고 힘을 얻었다.
“저는 GBS와 TBS(Team Bible Study) 사역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 같습니다. 남천동의 지역 다락방을 중심으로 하면서 10개 지역으로 다락방이 확산되었죠.” 그러면서 서 집사의 다락방에서 조장과 사명자들은 자연스럽게 일어섰다고 한다. 새신자를 키우면서 또 다른 다락방을 열어갔던 EBS의 사역도 동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김정숙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와의 만남도 크로마 하프로 만나게 되었다. 서 집사가 김 집사가 근무하던 학교에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러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물론 김 집사는 이미 다락방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대신동 지역다락방에서는 남옥희 집사의 가정에서 진행되어 남 집사의 남편 강신대 집사가 복음을 받고 영접을 하기도 했다.
■ 학원, 문화센터에도 말씀운동이… 96년, 97년을 거치면서 서 집사는 한 때 개인적인 일로 힘든 과정을 거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서 집사는 불신앙을 하지 않고 생명운동을 지속했다. 95년 남천동의 서 집사의 집에는 김정숙 집사가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는 또 새로운 지역다락방과 교사다락방이 진행되고 있다. 이후 용호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 서 집사는 용호동을 중심으로 또 다른 지역 다락방이 열리게 되는데 다락방은 아주 예측 못할 정도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먼저 P 집사의 집에서 남천동 지역다락방(B)이 시작되었다. 그곳도 예전처럼 복음을 듣기 위한 갈급 한 영혼들이 많이 찾아왔다. 어느 날 P 집사를 통해 남천동 지역 다락방(B)에 누가 찾아왔는데 이 영혼은 ‘만약 당신이 지금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너는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왔는가 하고 질문을 하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듣고 도전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간이 안 좋아 목숨까지 위태했던 C 집사는 복음을 받고 광안리에 있던 자신의 카페를 문화센터로 내놓았다. 아쉽게도 C 집사는 한동안 은혜를 받고 질병도 많이 회복되었으나 현재는 다락방을 하지 않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한동안 광안리 문화센터에서 서 집사는 다락방을 오랫동안 지속했고, 이곳에서도 청소년 사역이 활발히 진행된 바 있다.
용호동 지역에서는 세명학원에서 복음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어느 날 팀사역 훈련의 팀장으로 들어가 있던 서 집사는 강의 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살짝 빠져 나왔는데 교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전화를 했던 세명학원 원장 S 집사는 다락방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관심을 표했다. 그래서 서 집사는 다음날 용호동 지역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서 집사는 그 지역에서 이사를 하고 난 뒤 루디아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다음날 찾아간 서 집사는 S 집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전도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내용을 전하며 다락방이 열렸다. 학생과 선생님들도 많이 도전 받았다. 그 한 교사 가운데는 남편이 류 목사를 이단이라 지목하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부인 통해 영접하고 현재는 총신연구원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 하나님의 가장 큰 역사, 전도제자 일어나는 것 ◇ 부산 용호동에서 송림 어린이 집을 경영하며 현재 어린이 전문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홍민희 집사(36?부산 임마누엘 교회)는 1998년 그 지역에 팀사역 훈련을 하며 현장에 나왔던 다락방의 일꾼들을 통해 복음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다가 잠시 교회를 안 나가고 있던 홍 집사는 원색적인 복음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소개로 용호동의 세명학원에서 다락방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명학원 다락방에 가서 제가 도전을 받은 것은 현장에서 말씀운동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홍집사는 당시 송림 어린이 집의 교사였다고 한다. 다락방 메시지를 받고 홍 집사는 어린이 집에서 다락방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도하고 있다.
이 어린이 집에서는 불신자, 기존신자였던 교사들이 복음을 받고 다락방 훈련을 받고 5인1조 기도팀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교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 진 기숙 집사(부산 전도신학원, 선교사 훈련원 간사?46)도 서 집사가 교회 내에서 크로마 하프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했을 때 만난 일꾼이다. 남천동 다락방(B)에도 하루도 안 빠지고 참여하고 서 집사가 남산동에서 토요일 아침 핵심멤버 모임을 할 때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다락방에 모였던 이들이 거의 은혜를 받았다. 개인을 띄우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과 깊은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진 집사는 당시 다락방의 분위기를 회상하며 서 집사와의 만남의 축복에 감사했다.
이외에도 알로에 마임 산업전문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최옥자 권사도 서 집사와 함께 해온 일꾼이다.
◇ 서 집사의 다락방은 전국의 일꾼들이 찾아올 정도로 모델적인 다락방 사역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서 집사가 복음메시지를 전하는데 특히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응답도 참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합숙훈련을 왔다가 식중독이 일어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서 집사가 그날 따라 자기의 안 좋은 부분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했다.
‘예수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찬양을 하는데 그 사람은 식중독이 물로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다락방에는 은밀하고 말 못 할 문제를 가진 사람도 많이 오고 그런 것이 치유되기도 한다고 한다.
“육신치유도 중요하지만 다락방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서 집사는 당시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다.
서 집사의 사역을 통해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닮은 한 믿음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김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