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삿갓 시비
물염정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그 유명한 김삿갓의 시비가 세워져있다.
난고 김병연이 죽장에 삿갓을 쓰고 붓 한 자루 들고 전국방방곡곡을 주유천하하면서 동가식서가숙하다가 이곳 적벽의 선경에 취해 머물다가 결국 이곳에서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얼마나 이곳 풍광이 선경이었으면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다가 자신의 시신을 거두어줄 분들에게 두 편의 시만을 남기고 한 많은 유랑생활을 끝마쳤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그 역사적인 곳에 시비를 세워 표를 해 놓은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이를 추진한 추진 위원들과 군 재정을 투입한 화순군에 감사한다.
△ 물염정 동남간에 있는 ‘방랑시인 난고 안동김공병연 시비’ 동산 : 물염정과 잘 어울린다. 다만 전면 중앙에 비의 크기를 줄였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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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동산의 한 가운데에 ‘방랑시인 난고 안동김공병연 시비(放浪詩人蘭皐安東金公炳淵詩碑)’라고 정면에 까만 오석에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세로로 서 있다. 위용을 자랑하기는 하나, 물염정의 당호와 잘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 크기가 너무 크고 정면에 위압적으로 세워져 있어 아쉽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차라리 옆이나 뒤에 세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 김삿갓이 살아 와서 보면 기겁을 하였으리라. 정말 아쉽다.
△ 물염정 동남간에 있는 ‘방랑시인 난고 안동김공병연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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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浪詩人蘭皐安東金公炳淵詩碑(방랑시인 난고 안동김공 병연 시비)
공의 휘는 병연炳淵이요 자는 성심性深이며 호는 난고蘭皐니 안동인 이다. 순조 7년 정묘 3월 13일에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모인 김안근安根과 함평이씨의 차자로 출생하였는데 조고인 선천부사 익순益淳이 홍경래란에 항복한 죄로 처형되고 일가가 폐족이 된 후 가족이 강원도 영월로 이거 하였다.
공은 20세인 순조 28년에 영월 도호부에서 시행한 백일장에서 정가산의 충절을 지킨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하늘에 사무친 죄를 통탄하다는 시제로 장원하였는데 집에 돌아와 모친으로부터 김익순이 바로 조고임을 알고는 대성통곡 천하에 용납 못할 죄인으로 자처하고 하늘을 볼 수 없다하여 죽장에 삿갓을 쓰고 22세에 드디어 방랑의 길을 떠나니 이로부터 세인들이 공을 김삿갓이라 불렀다.
공은 행운유수와 같이 정처 없이 팔도를 유람하며 인구회자의 감상과 해학의 많은 시를 남기고 고종14년 3월29일에 동복에서 병을 얻어 향년 56세로 객사 3년 후 영월로 반장하였다.
아! 사람의 불행은 인륜으로 인한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이니 순임금이 부귀와 미녀와 천하의 인망을 얻고도 근심을 풀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호읍號泣한 것도 어버이에게 효도함을 얻지 못해서였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공자는 말씀하기를 어버이는 아들을 위하여 그 허물을 숨기고 아들은 어버이를 위하여 그 허물을 숨긴다하였다. 그런데 공은 조고의 불충을 통박痛駁하여 장원의 영예를 얻기까지 하였으니 그 회한과 처참의 심정이 과연 어떠하였으랴. 시대를 원망하고 방황하며 음영으로 울회를 표현한 것은 굴원屈原의 택반행음澤畔行吟과 방불하나 천륜을 범한 죄책으로 평생을 살아간 고통은 임금에게 버림을 받고 우번憂煩으로 투신한 일시의 고통보다 오히려 더하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의 시를 애송한자 공의 이와 같은 심정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격률의 기교만을 일컬은 다면 이는 공의 시를 진실로 이해함이 아닐 것이다.
공의 생애를 애석히 여기고 공의 시를 애호한 해관 장두석보가 동복이 공이 임종한 인연의 고을이라 하여 일찍이 적벽 강변에 추모의 시비를 건립코자 하였다가 호수의 조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금번에 망향정 건립을 계기로 이를 다시 경영코자 본군에 청원하니 군수 임공 흥락이 흔연欣然히 승낙하고 거액의 군재를 출연하여 착공하였다.
적벽의 상류인 물염정 경내에 기지를 정하고 동복관련 약간 수首를 정민貞珉에 각하여 세우니 시로 인하여 인륜의 변에 처한 공의 지행志行을 천양闡揚코자 한 임공과 장해관의 뜻 참으로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준공에 임하여 임공이 장해관과 송파 이규연 보甫를 통하여 비문을 청하기에 문헌에 의거하여 공의 행적과 시비의 의의를 우와 여히 기술하였다.
<흥덕 장한수 찬, 전주 이규연 서, 시비 발주처 : 화순군>
* 굴원 (屈原) : 중국 초(楚)나라 때의 충신·시인. 원(原)은 자이고, 이름은 평(平)이다.
자란은 그 부왕인 회왕이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대부(大夫)의 참언으로 영도에서 추방된 뒤 초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며 洞庭湖(동정호) 근처를 방랑하다가 汨羅水(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 택반행음(澤畔行吟) 연못가를 거닐면서 글을 읊음. 즉 굴원이 동정호 근처를 배회하면서 임금을 걱정한 시를 읊다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은 고사를 말한다.
* 우번憂煩 : 憂 [근심우], 煩 [번민할 번] : 근심과 번민
* 정민貞珉 : 貞[곧을 정], 珉 [옥돌 민] : 곧은 돌
* 지행(志行) : 지조(志操)와 행실.
* 천양(闡揚) : 드러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함. 천양 하다 천양 되다. 闡(밝힐, 열 천), 揚(날릴, 높일 양)
* 보甫 : 아무개
△ 김삿갓의 석상 : 오른손에 잡혀져 있던 죽장은 아쉽게도 잘라져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어 살아남은 사람을 부끄럽게 한다.
대나무가 아닌 죽장의 형상을 동으로라도 만들어 끼워주고 싶다. 석상의 뒤로 물염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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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촬영한 김삿갓의 석상 :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오른손에 죽장이 잡혀져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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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비의 오른편에는 죽장에 삿갓을 쓴 김삿갓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아쉽게도 죽장은 잘라져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있어 살아 남아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겨우 이 정도라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또, 시비의 뒷쪽으로는 화강석에 까만 오석을 박아 김삿갓의 시를 새긴 7폭 병풍이 둘러쳐져 있다.
○ 병풍 시비의 오른쪽부터 살펴보면 첫 번째 폭은 ‘무제(無題)’이다.
무제(無題) / 죽 한그릇/ 난고 김병연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 그 속에서 함께 떠도는구나.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물에 비친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떠도는 길 위의 산골,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하늘이 비치는 멀건 죽 한 그릇. 그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을 위로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준다.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그래도.
○ 두 번째 폭은 ‘약경심홍소(藥徑深紅蘇)’가 새겨져 있다.
藥徑深紅蘚(약경심홍선) 약 캐러 가는 길가엔 붉은 이끼가 깊게 깔려있고,
山窓滿聚微(산창만취미) 창 밖 산에는 푸르름이 가득한데,
羨君花下醉(선군화하취) 그대 꽃에 취해 있음이 부럽구려
胡蝶夢中飛(호접몽중비) 나비는 꿈속에서 날고 있겠지.
△ 시비의 뒷쪽에 까만 오석에 새긴 김삿갓의 유묵 시 : 이 유묵은 김삿갓이 동복에서 쓴 친필시호이며 지금 동복의 정근호씨가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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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동복에서 쓴 시이며, 지금도 그 친필 시호를 동복 창원정문인 정근호(丁斤鎬)씨가 소장하고 있단다.
‘도광(道光)30년 동복여소(同福旅所)’라고 써 있는 것으로 보아, 동복을 여행 중에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또, ‘도광(道光)’이란 연호는 청나라 의종의 재임기간의 연호로써 도광 원년이 1821년이므로, 도광 30년은 서기 1850년이 되며 도광연호는 그것으로 마감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는 1850년에 동복 여행 중에 쓴 것이며, 정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정말 소중한 사료인가 싶다.
이 시는 구암마을의 서편에 있는 와우산록에 있었든 정씨소유의 정자인 망미대(望美臺)에서 시상을 얻어 썼구나 하는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자에서 보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 있고 앞에는 굴 바위들과 새봇들이 널리 펼쳐 있고 아득히 멀리 동복 소재지와 옹성산이 불그레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산색이 보랏빛으로 아름답게 솟아 있음을 보고 느낀 시상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단다.
○ 세 번째 폭은 ‘군루승효상(郡樓乘曉上)’이다.
郡樓乘曉上 (군루승효상) 새벽 일찍이 군루에 올라
盡日不能回 (진일불능회) 진종일 돌아 갈 줄 몰랐네.
晩色秋將至 (만색추장지) 늦은 석양 빛깔은 가을이 이르려 함인지
長風送月來 (장풍송월래) 긴 바람 불어 가드니 달이 솟아 오는 구나.
* 군루(郡樓) : 군(郡)이나 관청에서 관리하는 누각(樓閣))
이 시는 동복 현의 동헌 앞에 있었든 협선루(俠仙樓)에 올라 동복 시가지를 내려다봄은 물론 널따랗게 펼쳐진 번지들 향교를 만경들과 남북으로 유유히 흐르는 동복천의 비경과 멀리 서북 편에 높이 솟아있는 성산 무등산 등의 운치에 매료되어, 그 정취에 취해 해지는 줄 모르다가 이 누각의 일경인 동산월출을 보고 황홀한 풍경에 반해 읊어진 시임이 자명한 시구라고 보고 있단다.
이 시 역시 동복에서 쓴 시이며, 지금도 그 친필 시호를 동복 정근호씨가 소장하고 있단다.
○ 네 번째 폭은 ‘파격시’이다.
破格詩(파격시)/ 난고
天長去無執 (천장거무집)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 (화로접불래)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菊樹寒沙發 (국수한사발)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枝影半從池 (지영반종지)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江亭貧士過 (강정빈사과)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大醉伏松下 (대취복송하)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月利山影改 (월이산영개) 달 기울고 산 그림자 바뀌니
通市求利來 (통시구리래) 장사치들이 돈벌러 저자에 오네.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무릎이 쳐진다.
천장에는 거무집(거미집)이 쳐져 있고 / 화로에서는 접(겻)불 내가 나는구나. /국수는 한 사발인데 / 지령(간장)은 반 종지 / 강정이 빈 사과 / 대취(대추)와 복송하(복숭아) / 월리(워리) 산영개(사냥개)야 / 통시(변소) 구리래(구린내) 맡고 오느냐.//
* 겻불 : 겨를 태우는 불.
* 내 : <냄새>의 준말.
* 지령 : 간장
* 워리 : 개를 부르는 소리
* 통시 : 경상도 지방의 방언으로 변소
△ 시비의 뒷쪽에 하얀 화강암에 까만 오석을 박아 김삿갓의 시를 새긴 7폭 병풍이 둘러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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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폭부터 마지막까지는 난고의 수십편 시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蘭皐平生詩(난고평생시)’가 새겨져 있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회한과 회고하는 마지막 시란다. 그 평생시를 여기 옮겨 본다.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거늘
願我平生獨自傷 (원아평생독자상)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竹杖芒鞋路千里 (죽장망혜로천리)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걸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簪纓先世富貴人 (잠앵선세부귀인)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早晩前期官蓋場 (조만전기관개장)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髮毛稍長命漸奇 (발모초장명점기)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멸족의 화를 입어 상전이 벽해로 되고 말았지.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이 세상인심 박해지고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황폐해졌네.
終南曉鍾一納履 (종남효종일납이)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風土東邦心細量 (풍토동방심세량)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心猶異域首丘狐 (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南州徒古過客多 (남주도고과객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轉蓬浮萍經畿霜 (전봉부평경기상)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결口圖生惟所長 (결구도생유소장)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光陰漸向此中失 (광음점향차중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千金之子萬石君 (천금지자만석군)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身窮每遇俗眼白 (신궁매우속안백)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歲去偏傷?髮蒼 (세거편상빈발창)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畿日彷徨中路傍 (기일방황중로방)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 ?=?(살쩍 빈, 귀밑털 빈)의 속자
한 많은 생을 자전적으로 써 놓은 이 회한의 시는 죽장망혜로 풍월행장의 빈 주머니 하나들고 박정한 세상의 온갖 학대와 모멸을 당하면서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면서 한평생의 기박한 운명과 역경 속에서 체험한 고독과 울분과 회한이 역역한 시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마지막 생을 마감한 운명의 땅에 이 시비를 새웠으니 저승에서나마 다소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물염정에서 내려다 본 시비 : 가장 뒤로 7곡병이 쳐져 있고 그앞 정면에 시비가 서 있으며, 그 동편으로 김삿갓의 석상이 보인다. 지금 이 모습은 시병풍의 뒷 모습인데, 전면에 한자로 새겨 놓고 이 뒷면에 한글로 번역을 해 놓았다. 친절한 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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