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음
황금찬
그대의 마음은
오월
하늘 한 조각.
떡갈나무 잎새 위에
두 줄의 무지개.
밤 비 개인
아침
계곡의
물소리.
시간이 멎은
하이얀
꽃잎.
사랑과 행복
황금찬
사람은
사유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랑은 행복보다
강한 것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사람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라.
행복은
사랑의 성 안에 피어나는
작은 꽃잎이다.
어제 오늘 내일
최은하
내일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참 행복하리.
내일은 언제나 내일이요
오늘은 곧 오늘일 뿐이네.
내일은 필시
오늘로 내일이네.
이 자리, 내일로 살려고 부산이지만
어제의 내가 부끄러워
머리 위로 떠오른 오늘 해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네.
하냥 내일은 그대로이고
난 오늘따라
풍선을 띄워날리는 놀이에 열중이네.
오늘은 지독하게도
별 재미가 없는 하루네.
어제는 되짚어 오늘이요
오늘은 미루어 내일이네.
그 씨날줄에 고이 걸린
나는 회오리바람 속이네.
내 알면서도
최은하
길 가다가 돌아설 때도 있겠지.
돌아서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세상 끝이려니 할 때도 있겠지.
고쳐먹은 맘, 잠깐인 줄 알면서도
약속의 숲길이나 늪 한가운데였지.
다짐 속에 빠져들면 지병이 되는 줄 알면서도
언제나 마주한 웃음, 따라 웃기만 했었지.
그 웃음이 정작 웃음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날 그 자리, 한마디 물음도 왜 못했을까.
대답만 해서는 어처구니없는 줄 알면서도
언제나 혼돈의 회오리 눈 속이었지.
아낌만이 더 없는 귀함인 줄 알면서도
오기부려 구분없이 살기를 바라기도 했었지.
죽음이 죽음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내 믿음만은 스스로 믿고 우러렀지.
이렇게 혼자서 쓴 잔을 들어 마실 줄 알았으면서도
팔싸리
황송문
내 인생은
민화투 놀음의 팔싸리.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좀처럼 오지 않는 행운.
바닥에서 알짝이 일어날 때까지
싸리 껍질만 불끈 쥐고 살아온
시업(詩業).
아내가 움켜쥐고 싶어하는
돈이나 권세
그리고 실속.
송동월(松桐月) 광도 떨어버리고
흑싸리 껍질만 홍싸리 껍질만
그저 빈 껍질만 불끈 쥐고 살아온
가난 속에
청빈의 물소리 쪼르륵 들리나니,
가난해야 넉넉한
내 시의 산술법(算術法)……
마음을 열면
뜰의 달빛……
보자기로 구름 잡는
내 인생은
無能한 無無明亦無無明盡無老死
팔싸리……
고집으로 걸어온 내 詩道는
화투놀음에서 그야말로
끝내주는 팔싸리.
스카이라운지
황송문
하늘이 땅과 식을 올린다.
쳐들린 도시의 손가락 끝에
반지를 둘러 끼우는 중이다.
웨딩드레스 휘감아 돌 듯
한 시간에 한 바퀴
풍경을 사로잡는다.
맥주 컵마다 출렁이는 은하수
별은 반짝이고,
이야기는 하늘 끝
위성이 돌고 있다.
하늘에는 전등
땅에는 별
웨딩마치가 한창인데,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라이트 불빛이 뻗쳐 흐른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전등
신부는 가슴에 보석을 걸치고
한 시간에 한 바퀴
신랑의 품에서 반짝인다.
화왕산(火旺山)에서
김년균
화왕산에 갔다가
늦가을 억새풀 우거진 산정(山頂)에 오르다가
나는 보았다.
휘어진 지팡이 짚고 베낭을 메고 어깨를 마주하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들의 모양새는 서로 같지만
몸 속에 절인 짜디짠 속내는 각기 다르다는 것을.
남 몰래 감춰둔 뜻과 생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빼곡이 쌓인 포부와 야망은, 그 빛깔과 형체는
조금도 같지 않고, 갈 길도 다르다는 것을.
저 높은 별을 따려고 머리를 하늘에 두고 오르는 사람,
모진 바람에도 꼼짝 않는 돌과 나무의 정기를 받으려고
짐승과 새들조차 마을 아래로 쫓아내 버리고
돌과 나무를 밑동까지 짓밟으며 오르는 사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낯선 이웃의 영화를 탐하면서
가파른 산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화왕산에 갔다가
산은 높지도 않은데 땀 흘려 심장까지 적시다가
나는 알았다.
가는 길이 달라도 산을 함께 오를 수밖에 없듯이
세상의 길은 혼자서만 걸을 순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어울려서 함께 가며
어느 길이 좋을까, 너른 길은 어딜까, 기웃거리며,
모르는 길은 묻고 막힌 길은 뚫고 진흙길은 파고,
앞뒤서 받쳐주고 끌어줄 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도 힘들면 괘도 밖으로 떨어지는데,
아무리 지체 높아도 쓰러져 눕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한 자들이 벌써 산 아래 널려 있다는 것을.
혹시라도 누군가 붙잡아 줄까 싶어
허공에 손 내밀며 참회의 눈물도 흘린다는 것을.
화왕산에 갔다가
거친 세월에 멱살 잡혀 여기까지 끌려온 나는,
산의 중턱에도 오르지 못하고 망연히 돌아서며
조그만 이치를 깨닫는다.
석양은 언제나 꿈길처럼 눈물겹게 호화롭지만
금세 어둠이 깃들고,
산은 아무리 얼굴이 고와도 저 밑을 보면
단지 돌밭이라는 것을.
길은 어차피 다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듯
화왕산은 항상 창녕에 우뚝 서 있고
나는 서울에 돌아와 다시 흘러간다.
그리운 각설이
-연극 ‘품바’를 보고
김년균
흘러간 세월을 다시 본다.
어둡던 시절의 슬픈 역사를 다시 본다.
눈감아도 잊히지 않는 사람을 다시 본다.
너는 그새 어디 있었더냐, 무엇을 하며 지냈더냐,
문 밖의 길가엔 아직도 쓰라린 흔적이 남아 있고,
그게 병든 세월을 씻어주는 빗줄기인 줄 몰랐으나
그 빗줄기를 타고 되돌아오는 진기한 풍경을 본다.
왜 이리 향기가 짙으냐. 무슨 꽃이 저리 고우냐.
‘품바’란 연극을 보자 각설이가 살아서 걸어온다.
너무 반갑고 이상해서 웃지도 못하고 눈물만 난다.
머리에 울긋불긋한 벙거지모자를 눌러쓰고
갈기갈기 찢어 붙인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세수도 안한 얼굴에 깡통 들고 목청 돋구며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제 불렀던 그 노래 싫지도 않은지 또 부르며
남의 집 문 앞에서 신명나게 떠들어댄다.
식은 밥 한 덩이 얻어도 그만, 못 얻어도 그만,
굶어도 그만, 죽어도 그만, 뱃속이 늘 텅 비어도
손발이 시려도 걱정 없이 싱글벙글 살아간다.
돌멩이도 걱정을 버리면 금강석이 된다는데
그 깊은 마음의 샘을 세상은 눈치채지 못한다.
흘러간 세월을 다시 만난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을 다시 만난다.
누가 탓하랴. 누가 저들에게 손가락질하랴.
밤이면 다리 밑에 거적때기 쓰고 누웠어도
세상 이치 바로 알고, 먹을거리가 없어도
남의 것 탐내지 아니하고, 배운 것이 없어도
잘난 친구가 없어도 무릎 꿇지 아니하고,
쓸모없는 것 다 버리고, 빈손만 남았어도
몸속엔 항상 정의의 피가 끓던 이들,
겉을 보면 한낱 구경거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안을 보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던 이들,
옛날에 왔던 각설이.
밤 바다에서
이세연
폭풍우에 떨고있는 나를 불러서
당신의 옷 벗어 감싸주던 날
안으로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처음 만났던 날을 더듬어
찾아가는 길 너무도 멀기만 하여
밤 바다에 눈물 뿌리고
그 이름 부르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안팎으로 어둠만 가득할 때
파도에 실려오는 음성
고개 들어보니
당신은 등불 들고 다가와
곁에 서계십니다.
이상도 하여라
찾아 헤메던 섬이 반가이 맞아주고
터질듯 한 가슴앓이도 사라져
이제는 가벼워진 걸음걸음으로
오늘도 당신 뒤를 따라갑니다.
하늘 바라보기
-커피 타임
이세연
커피 향기에 젖어
두 손으로 감싸면
메모지에 적혀있던 낙서들이 종이배 되어
갈색 호수에 떠돕니다.
소나기 한차례 지나고나니
무심히 넘기던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이
창 가득 선명한 그림이 되고
이만큼 한 거리에서
태연할 수 없는 헤어짐으로
몸살은 일상으로 굳어버렸습니다.
함께 지낸 동안 나누었던 눈빛이
내 안에 흔적조차 없건만
빈 자리를 싸고도는 바람에
그림자 서성이면
목마름은 그리움으로 마냥 피어오릅니다.
지금 나는 어지럼증 달래며
하늘 아래 홀로 서있습니다.
문득 유년의 맑은 것들
최창일
앙상한 나뭇가지 위의 까치집, 은행나무에 걸려있는
찢어진 가오리 연, 빈 논 벼 포기 위에 남아있는 잔설,
농부가 검불모아 불질한 먹물 칠한 논두렁
바람 없는 날 흙굴뚝 아래 질펀하게 흐르는
청솔 연기마당을 돌아 뒤안을 돌면
청솔 연기 밟아놓고 취하여
빙빙 돌았었다.
나뭇가지 위에서 가지위로 나는 산새들 발은 여리어
보라색 맨발 철 이른 오싹한 나뭇가지에 머물지 못하고
하늘을 날며 시린발 부볐었다.
양달아래 봄배추 갉아먹는 어린 멧토끼 솔바람에
귀 붉은 힘줄 세우고 왈칵 눈물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에 나를 헹구고 싶었던 시절
돌아가는 해질녘, 이른 잠청하는 멧새를 깨워 어둔
공제선 위로 날려 보내고 길 잃고 헤매는 모습에 맘이
편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아슴아슴 떠오르는 까만 고무신 시절.
어려운 시
시인에게
최창일
왜
어려운 시를 쓰느냐고
물었더니
삶이 어려운 세상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언어라도
고르지 않으면
살맛이 나느냐고
반문하였다.
길 건너간 나목(裸木)
이오장
잎새 떨구는 나무 아래선
노래하지 말아야지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손 놓으며 지르는 소리
끝내 알아듣지 못하리.
휘날려가는 모습 산모롱이 돌아설 때
그림자 지워버려도
나무는 놓아버린 손 꼬옥 쥐고
바람을 안는다.
한 사람이 그렇게 떠나 버렸다.
혼자만의 잰걸음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 건너 사라졌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옷자락
크게 휘저으며
못 듣는 척 서둘러가고 말았다.
구부러진 등에 어둠 가득 지고
발자국 없이 떠나간 뒤에서
기우러진 깃대가 되어버린 나목
쌓이는 낙엽 위로
타오르는 저녁노을에 불땀이 된다.
빈 가지를 찍는 사진기
이오장
라일락꽃 진자리는
떠난 사람이 머무르는 자리
골목어귀를 향한 내 눈망울이
아침바람 저어대는 잎새에 멈춘다.
처마 끝 막새에서 떨어진 이슬방울이
메마른 손목을 적시고
끝내 놓치지 않으려다 고스러진 잎에
웃는 모습 어른거린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맨손으로 흔들어 대다가
꽃이파리 사이로
시각은 가지에 초점 맞추고
움직일 때마다 찰칵거린다.
다가오라는 손짓이나
가다리지 말라는 도리질을
인화지에 드러낼 수 없어도
골목 햇살은 아침마다 눈부시다.
언제라도 올 것같아 바라다보는 골목
오늘도 오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손짓하며 웃고 섰다.
철 로
지창영
저 산 모퉁이 돌아 서로 만나려나
그대가 다가오면 내가 물러서고
내가 다가서면 그대가 물러나네
한 발짝도 가까워져서는 안 되고
한 치도 멀어질 수 없는 우리
영원한 그리움으로
불타는 산자락을 굽이 감도네.
눈밭에 뒹굴어도 포옹할 수 없고
뜨거워도 이탈해서는 안되네.
우리가 실어나르는
육중한 꿈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마다마디 바람의 관절로
더운 입김 찬 서리 견디며
끝없는 평행선으로 누워
저 산 굽이를 돌면 우리 만나려나
연 필
지창영
혼신으로 써야 할 사연이
그리도 많은가
한 줌 재로 돌아온 아들의
외짝 신발 부여안고 까무러치던
여인의 한을 쏟아내며
명을 재촉한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짧아지는 목숨
흰 쥐와 검은 쥐가
시간의 끈을 갉아먹는다.
까맣게 타버린 속심
닳아 없어질 때까지
끝없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쓴다.
소래포구
유회숙
소래는 바다다
새우 꽃게 민어 홍어 낙지
다 올라와 좌판을 벌이는
시끌벅적 뭍바다다.
함지박에 담긴 이도 저도
갯내 나는 삶의 터
낮은 구름 지휘하듯
날아가는 갈매기도
바다를 물고 있다
뭍을 바라본다.
아파트 노래방 상가
도시가 풍기는 비린내음
고요도 잠깐
가슴 가득 출렁이는 소래
제 속에 노을을 보는
폐경기의 넉넉한 아낙이다.
파시의 그날그날
새우젓 멸치젓 조개젓 갈치젓
사람냄새 물씬 나는 소래포구
도심 속 낭만이 깃든 뭍바다다.
가을 억새
유회숙
늦가을 새가 날아간다
가깝게는 화왕산에 와서
억새가 새라는 진실을 안다.
사바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저희들끼리 깃털을 부비며
날개를 손질하는 중이다.
우우 갈바람 분다
가을을 맞아 내 가슴 속에도
접은 날개 깃털을 부비는
젖은 소리 들린다.
제 속을 다 비우고
가을을 채우는 은빛 물결
비상하는 억새의 날갯짓
화왕산 정상을 오르며
한때 새였다는 것을,
사람들 저마다 말을 아낀다.
제 길을 걸어가는
가을이 조금은 분주해지고
조금은 쓸쓸해진다.
겨울 바다
정 희
새벽바다에 더딘 해돋이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을 문득 생각해본다.
내 일상을 밀어내며 출렁이는
숨었던
짐승
은회색 구름송이 두엇
수평선은 해말간 풍경화
겨울바다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닿아보지 못한
저 시간 속으로 노 저어서
겨울을 건너는
작은 사람아.
늙은 시계수리공
정 희
남대문 시장 시계골목
작은 시계수리점 남일사
한 평 남짓한 골방에 개구리눈으로 툭 불거져 나온
돋보기 시계수리공 김씨
똑딱거리는 시계소리에 육순을 훌쩍 넘기고
고장난 시계를 오늘도 만진다.
낡은 시계들이 꼬리표를 달고
먼지 속에 쌓여있다.
시계 줄이 그를 꼭 잡고 있다.
북한산의 첫 추위
오정수
북한산 단풍은 점점 붉게 타고
가난한 자의 추위는 성큼 다가왔네.
산짐승들은 걱정스레 제집으로 달아나고
갈곳없는 메뚜기 한 마리
굿당 담벼락에 웅크리고 떨고있네.
섬돌의 양지쪽에 졸고 있던 고양이는
갑작스런 무당의 꾕가리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리고
오직 계곡입구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축배의 노래만이
어스름한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지네.
외삼촌은 백록(白鹿)이 되었는가
오정수
돌아가시기 전 한번쯤 들여다 뵈야 한다면서
여객선에 시달리며 외갓집 갔던 길
고만고만한 섬마을 초가집
낮엔 모두들 밭에 나가고
비루먹은 망아지만 집을 지켰다.
그 뒤 얼마 안 돼 이사무소에서 걸려 온 전화
외삼촌 사망소식
그 시절 *
당산나무 베어내던 걸 말리던 무당이 목 매단 후
밤에는 산사람, 낮에는 경찰에 쫓기던 두 아들
피 흘린 채 계곡에서 발견된 이래
줄 곳 혼자 살아왔던 외삼촌
이젠 한라산 계곡을 헤매는 백록(白鹿)이 되었는가.
염습을 끝내고 멍석이 깔리고 도세기 * 삶아내던
그 날도 집 앞 당산나무는 밤새 울어댔다.
이튿날 새벽
어딜 가나 똑같아 뵈는 한라산 오름들
억새풀 우거진 산길을 넘어넘어
아들 뒤따라 간 외숙모 곁에 관을 묻자
모든 차례는 끝나버렸고
외삼촌 살던 집터엔 음식점이 생겼다.
* 그 시절 : 제주도 4.3사건 * 도세기 : 돼지(제주도 사투리)
어머니와 콩나물
박기동
지난여름 손수 거두신 검정콩.
아들 여섯 딸 하나 봉지봉지 사랑 건네주신다
알맞게 불은 콩으로 콩나물시루를 안친다.
어린 날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내 모습도 보인다.
일주일 지나 모두들 와와 소릴 지르며 시골눈을 뜬다. 제각각 내민 머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키 재기하며 제 갈 길로 뽑혀갔다.
이젠 빈 시루 같은 시골집.
먼발치에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잠자리에 든 따뜻한 겨울밤.
당신의 자랑인 우리 일곱 남매 눈에 밟혀 어머니,
얼마나 외로우실까.
잠이 오지 않는다.
눈 오는 소리에도 밖을 내다보시는 어머니,
어머니 귀기울이시는 모습 콩나물에 담겨있다.
첫사랑
박기동
석류가 익어간다
부끄러워 고개 숙인 그
발그스레 물든 얼굴
나를 보고
더욱 붉어진다.
만져보고 싶어
손 내밀자
검지에 가시 박혔다
걱정어린 눈길로
어머니, 나를 바라보신다.
석류를 딴다
손끝이 아리다, 첫 사랑 떨림
시골집 뒤란에 묻어 둔
기억을 딴다
덜 아믄 상처가 따스하다.
유달리 석류를
좋아하던 이웃집 숙이
웃는 모습만 담겨있다.
아내의 생일
이병훈
새해 달력에
표를 살짝 해두었다
지난 해 깜박하고 지나친
아내의 생일날에
점 하나 찍어두었다.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생각을 굴렸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스쳐가는 엊그제 밤
물끄러미 홈쇼핑 방송을
바라보던 아내의 모습,
그녀가 잠든 사이
손가락을 몰래 재어보았다
결혼반지 끼워주던 때의
그 곱던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마디 굵은 손가락이 가슴을 친다.
그 날이 오면
아침은 내가 지어야지
미역국도 끓여놓고 아내를 깨워야지
그녀가 곤히 잠든 사이
굵어진 손가락에 살며시 끼워준
내 마음 젖지 않도록…
단 추
이병훈
벗어놓은 옷자락에
가지런히 매달린 단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보살펴주기 위해
평생토록 불평 없이
생을 칭칭 동여매고 있을
그녀의 내면이 보인다.
옷을 고를 때
옷맵시에만 신경을 썼던 나를,
싱긋이 바라보는 듯하여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랫목에는
힘든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가정을 꾸려온 아내가
곤한 잠결에도 미소를 짓고 있다.
겨울 나무
최연숙
지난 밤 찬 바람에
가지마다 하늘 향하여
맨몸으로 우러러 본다.
잎새는 떠나지 못하고
떨어진 자리를 맴돈다.
푸르던 날 어우르던 새들도 떠나가고
시린 날 다가오는 언덕엔
깃털 하나 내려앉는다.
나무는 바람에 휘감겨도
꿈을 위해 제자리 지키며
하얀 길 굽어본다.
지하철 놀이터
최연숙
축구 선수 복장으로
옆구리에 공을 끼고
승강장으로 내려와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니는 해맑은 아이
행인들의 바쁜 걸음 틈바구니에서
한바탕 숨바꼭질로 공을 찬다.
이럴 때는 언제나
역장님 다가와 맞장구치며
술래가 되어준다.
흐린 날은 어디론가 멀어지고 있는
발걸음소리 알아 차렸는지
하늘 향해 울부짖는 그를
포근하게 껴안아 준다.
오늘도 들락거리며
지하철 역무실 문을 여니
눈시울 뜨거워지는 눈길이 모아진다.
마른 잎 하나
최혜숙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가는
그의 어깨 위에
마른 잎 하나 떨어진다.
발자국 소리 멀어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바라보는
가로등 너머 캄캄한 하늘
떨어진 잎들
내 발치에서 바스러진다.
입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은
그에게 닿지 못한 채
낯선 곳에서 떠돌다 사라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어둠
아무도 없는 골목에 서서
이울어지는 조각달을 본다.
바람에 날아가던 마른 잎 하나
문 밖에서 울고 있구나.
그 해 여름
최혜숙
어머니를 묻고 제방 둑에 앉아
앞을 바라본다.
길게 뻗은 둑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 숙이고 앞서 가는 막내
몸에 맞지 않은 상복치마가
흙바닥에 끌려 끝자락이 붉다.
땅 위에 붙은 그림자는
저만큼 기우뚱거리며 앞서가고
힘이 부친 나는 태양을 등에 지고
비틀거리며 따라간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무덤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고
갈참나무 위에 멧새 한 마리
퍼덕이며 울고 간다
서서히 내리는 어둠은
나무 끝에 걸린 태양을 숨기고
조금씩 무게를 더하여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부 활
서정주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만이냐.
그날 꽃상여 山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江들은 또 몇 천 리, 한 번 가선 소식없던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되는 애들 -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수야! 수야! 수야! 너 이젠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군나.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서정주 약력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하여 같은 해 김광균(金光均)·김달진(金達鎭)·김동인(金東仁)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1년 〈화사(花蛇)〉〈자화상(自畵像)〉〈문둥이〉등 24편의 시를 묶어 첫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19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국장을 거쳐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후 조선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1959~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2000년 12월 24일 사망하였다.
저작에는 《한국의 현대시》《시문학원론》《세계민화집》(전5권) 등이 있으며, 시집에는 위의 시집 외에 《흑산호》(1953), 《국화 옆에서》(1975),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 5·16 민족상, 자유문학상 등을 받았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 다시 찾아 읽는 글 (수필)
종점(終點)에서 조명(照明)을
법 정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하고 거지(擧止)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성찰(自己省察)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부침(浮沈)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일상인(日常人)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惰性)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되돌아오고 만다.
자기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필자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忘憂里)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짓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생(生)을 죽음 쪽에서 조명(照明)해주고 싶어서였다. 여지(餘地)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망우리! 과연 이 동네에서는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는 것일까. 우뚝우뚝 차갑게 지켜 서 있는 그 비석(碑石)들만 아니라면 정말 지극히 평온할 것 같았다. 죽어본 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을 깊은 잠에서 불러 깨운다면 그들은 되찾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형수에게는 일분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落照) 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서 심화(深化)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심화 없는 범속한 되풀이만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듣기 좋은 노래’가 되고 말 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
(19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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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발표작품
제242회 시낭송 작품모음{2006. 12. 3 (토) 대학로 [상상]연극 극장}
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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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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