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 歷史와 메시지
D. M. Z - Blue illusion
"불나비, 그것은 숙명이었다. 불이 좋아 불을 그리다가, 불을 향하여, 불을 위하여
불 때문에 그 몸마져 불꽃이어라" 고 외치는 자작시구처럼 그는 우선 강렬하다.
"나의 작품은 현대문명과 원시작업의 공존이다. 고대 삼엽충이 수천만년 후 화석이 되었듯이
우리의 난지도도 역시 수천만년 후에는 화석으로 변하지 않을까 -
이것이 나에게 영감을 준 동시에 작품의 소재이자 동기이다."
나는 이 비밀을 알 수 없다
문명의 탑
"그가 다루어야 할 역사물의 소재들은 따라서 그에게서 상징적으로 <난지도>로 표현되는 특수한,
일상의 상황 속에 널려 있는 온갖것들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우리의 현대문물이 폐기처분한 온갖 잔흔들, 톱니바퀴, 쇠붙이, 콜라병뚜껑, 레코드판과 옷걸이, 고기그물, 유리,
종이, 타이어, 창살... 바로 이것들이 장차 화석화 되어질 오늘 우리 역사의 기록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 김복영(미술평론, 서울시립대)
유럽이미지 3
유럽이미지 1
"그 방법들은 이러한 잔존물, 폐기물들을 프로타쥬법에 의해 '전사轉寫'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주제와 구성이 확정되면 드리핑과 기타 보조적 인위적 행위들, 예컨대
에어브러싱, 페인팅, 드로잉, 지움행위가 시도된다. ... 전사된 형태들이 단순하게 부상되든 복잡하게 얽혀 구성된
복합성을 통해서 드러내든 그의 화면은 항상 잘 통제된 긴장성을 잃지 않는다."
- 김복영(미술평론, 서울시립대)
향수
자연 Image
" 고독을, 외로움을, 캔버스에 담는다. 욕심을 담는다. 꿈을 담는다.
그러나 지나면 항시 물거품, 오늘도 새로운 물거품을 담는다.
예술가의 감정은 쉽게 감동하고 쉽게 취한다.
유럽의 인상은 나의 지친 사고를 잠시 쉬게한다."
- 작업노트에서
비상
만추
야생
[자연, 생명, 향수]를 통한 회화적 교감
"이철희의 작업에서
정작 현대문명의 폐해에 대한 비판의 완곡한 어조가 읽혀지는 것은 근작에 와서 비롯된다.
청호반새를 비롯하여 후투티, 올빼미, 꾀꼬리, 매 등 조류와
나비, 버섯, 뱀 등 자연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정치(精緻)한 묘사와 짜임새 있는 배치로 담아내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우선 메시지의 함축 이전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자연, 생명, 향수라는 부제가 붙은 이철희의 금번 개인전은 모티브나 소재면에서 일신된 느낌을 가져다 주기에 족하다.
기왕의 그의 작품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기존의 그의 작품이 지녔던
답답한 틀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 변신이 때마침 우리가 겪게된 '문명의 위기' 적 증상에 대한
환기임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찬미로서의 기능을 다하길 바라며 다음 작업을 기대해 본다."
- 윤진섭(미술평론)
가면을 통한 이중적 성격에 대한 성찰
"지난 2006년 금호미술관에서 가진 조각 개인전 이후 이철희는 인간과 환경, 그리고 문명이라고 하는
자신의 일관된 주제를 지속해서 발전시켜 왔다. 국내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향후 국제 화단에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그는 그것의 전초 단계로서 이번 <마니프>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출품작들은 지난 번 금호미술관 개인전 이후에 새롭게 모색해 온 주제에 입각한 것으로서
환경이나 문명 쪽보다는 인간의 문제에 더 큰 무게의 중심을 싣고 있어서 주목된다."
"<골드 페르소나(Gold Persona)>라는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페르소나'라는 말은 원래 연극의 배우들이 사용하는 '탈'에서 유래한다.
탈에 표현된 표정과 그 뒤에 숨겨진 배우의 얼굴이 다르듯이, 현대인에게는 사회적 존재로서 갖춰야할 얼굴과
본래의 자아가 담긴 얼굴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 얼굴에 가려진 인간의 본래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철희는 인간이 지닌 이 이중성과 익명성을 주제로 퍼즐의 조각을 기본 컨셉트로 한 인간의 얼굴을 조형화한다. "
- 윤진섭(미술평론, 호남대)
‘신인류[ ]프론티어’, 새로운 세대(C-Generation)를 기다린다.
"비록 고전적인 조각의 방법에 호소하고 있을지언정 이철희가 바라는 프론티어들은
이러한 소통에 익숙하고, 그것을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일 것이다.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인류의 출현 역시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사회적 조건의 성숙과 함께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디지털문명이 너무도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미디어가 걸어놓은 최면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줄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에게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사회와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통 역시 사회적 행위인 바에야 인간 모두를 향해 소통하지 않고 그들만의 소통에 집중한다면
‘신인류[ ]프론티어’들은 또 다른 특권을 누리는 ‘가까이 하기 너무 먼’ 당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낡아버린 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갈 것이므로,
이 새로운 세대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 최태만(미술평론)
조형예술가 / 이철희
• - 1984년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졸업 - 1993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졸업 (석사청구논문 : “도시공간에서의 환경조각에 관한 연구)”
개인전10회, 단체전 50여회 - 수 상 - - 1988 동아미술대전 동아미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1988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국립현대미술관) - 2005-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2001-전.경.련 40주년 기념조형물, ·2002-강진 청자박물관 상징 조형물 공모당선제작 ·2002-한국담배인삼공사 상징조형물제작, ·2002-월드컵유산조형물공모당선 시공(울산시) ·2004-아시아나 항공 상징조형물제작, 2005-한국노총 미술장식품공모당선 2005-서울시 마포대교 공모당선 -건설안전본부, 2005-서울시 북부노인병원 공모당선 - 건설안전본부 2007-시립미술관, 2007-충북예산 예당조각공원
위 글의 내용
그 말 한마디
어릴 적 나는 꿈이 별반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열등생이었다. 대학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공부 역시 취미가 없었다,
책가방 안에 벌레가 살 정도였다면 알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이 끝나고 학교 가기가 싫어 9일 동안 몰래 학교 가는 척하고 들로 산으로 가서 놀던 시절이 있었다. 많이 혼나던 시절이다. 당시 아버지께 듣던 말 중” 모래판에 떡시루 엎었다, 될 놈은 떡잎부터 알어본다” 아주 절망적인 이야기다. 기분 나쁜 것 보다는 미안했고 죄송했다. 정말 학교가 싫었다.
어떻게 겨우 중학교는 다녔는데 고등학교는 졸업장이라도 받으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야간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입학 후, 며칠 되지 않아 새로 사귄 친구들 때문에 미술부에 가입하여 미술을 시작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입 첫날 그린 그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전에는 독고탁 만화를 보고 몇 번 따라 그려본 것이 전부였는데, 돌계단이 있는 허름한 골목풍경을 그런대로 스케치 하고 돌담그림자도 표현해 넣었었다.
그 시절 미술부는 담당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선배들에게 매를 맞으면서 배우던 시절이다. 당시 재수하시던 선배(김진수, 현 미술교사)가 유심히 내 그림을 보면서 “참 잘한다, 재능있다.” 이런 말들을 아직 낮선 여러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한다. 그 선배님의 말 한마디에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비로소 갖게 되었고, 마법에 걸린 소년처럼 미술에 취해 외길 미술인생을 살게 되었다.....
epilogue
국수표 라면과
풀빵표 찐빵이던
시절이 있었다. 광주
산수동 근방에서 2층 작은 화실을
내어 때절은 후배들과 매일 타시락거리던
어느 날 '쥐포' 선배가 '덴뿌라' 후배들더러 "오늘은
단색조로 그려와라" 주문을 하였다. 몇 시간 뒤 그림이
쭉 늘어섰고 대개 고만고만한 가운데 제법 눈에 띄는 그림도
하나 보였다. 노란 셀로판지를 대놓은 듯한 '데생 위주'의 그림이었다.
철희가 선배 말을 따라 예의 그 '모노톤'으로, 흐린 산수동 골목 하나를 여지없이
그려 돌아왔다. 피차 초름하고 가난했던 시절, 모처럼 '재조 있는' 후배가 들어와 그림이
이런데, 반갑지 않고 배기겠는가! 칭찬은 두고라도 속으로 편애는 조금 있었으리라... 삼십수년
후, 오늘, 새삼 전화가 온 것은 이랬다. "철흰디요. 제가 어디다 글을 내는디 형님 이름 달아도 돼요?" 였
다...... 한 때는 또 이 친구들과 수많은 서울을 전전한 적도 있었다. '재수생 강사' 였던 나와 새로 올라오는
후배들이 한데 얼려 '서울의 달'로 떠돌았다. 나는 끝내 낙향하였고, 더러는 남아 철희처럼 바람도 되고 잔별도
되고 압구정 공원도 되어 간간이 '필'이 오면 고향삼아 내게 소식도 보내온다. 나도 그때 그시절이 참 애틋하다.
이철희의 전 작품이 어딘지 그럴싸하고, 견고한 듯 휘우듬하고, 제친듯 여민 소외와 도피,
깡깡하고 냉정하고 초릿하고 가면을 내세우는 것이 '서울의 달'처럼 외롭지만 그 자신은 실가리 토장국이고
소여물이며 틀림없이 땔나뭇꾼 게으른 머슴이 버금이다. '페르소나 컨셉' 에서처럼 '보여지는' 나를 위해
무엇을 '감추어야'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자아를 내세우는 것도 감추는 것도 모두 미술의 언어가
지닌 걸칠만한 '외투'임에야, 자주 벗을 중절모에 지팡이만 갖추면 한뎃 어딜 못다니겠는가! 내가 가끔
사람에 속는 것은 '누구나 자기완 다른 삶을 희구하는 인간 본능의 보편'을 망각한 경우이다. 저널의
유명 미술강사에서 압구정 학원장, 화가에서 조각가, 공공미술가, 국제작가로 스스로 꽃대를 밀어
올려야하는 한정없는 뿌리줄기의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가? '생래적 불행'과 우울한 유소년기,
날칼의 끼에, 벼린 '성공'에의 불? 아직은 실패를 모르는 편이 낫겠다. 아무도 반드시 이길
수는 없다는 것에 대해 조만간 일러두는 것이 그가 원하는 '선배된' 자의 의무는 아닐 터.
도의 견해에서 보면, 흩어지고 떨어짐은 현현히 솟아오르는 것의 동의어이어니.
그가 내 '재조'에 대해 언급할 때도 있다.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는 핀잔으로도
들릴. 그러면 '재조 있는 자'로서 가슴이 톱톱해진다.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철희, 그런 질문은 차제에 아끼라! 오늘은 말이 길어졌다. 어제 썼던 짧은
편지가 좋았는데 컴퓨터가 실어주지 않았다. 아침이 되니 어인, 쓸 맴이
도졌다. 날도 꾸무럭하고 소가지없는 계집애처럼 댕기머리 당기며
날짜는 번개처럼 내달리고 고리고리 늙은 후배들이 보고싶다.
마흔여덟의 소년 철희도, 고 보다 조금 위인 '토끼탕' 영섭이,
'짜장면' 정식이, '고구마' 계호들도... 2008. 2. 25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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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철희님과 진수님의 밑의 글보고 이내 코끝이 찌잉하더니,
이 댓글 쓰는 내내 앞이 흐릿합니다.
나도 이런 멘토가 진작에 있었으면...
좀 더 먼길 돌지 않고,
좀 더 아픔도 덜 느끼고,
좀 더 빨리 내 행복에 가까이 갔을텐데...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 만나러 갑니다.
혹여 저 같은 사람 있으면 가슴에 씨앗 던져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