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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 사례 2개 – 문화 속으로
조 샘
이번에 다루는 기업 2개는 K국의 두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다. K국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자국민들에게 법적인 종교의 자유가 있고, 외국인 출입이 자유롭고 빈번하며, 거주 비자도 쉽게 나온다. 외국인이 기업을 세우는데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하면 법적 절차가 용이하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서 이미 오랫동안 사역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가 무슬림이고, 극소수의 숫자 만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이토록 선교의 진전이 약한 것은, 이 나라의 이슬람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강한 집단주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로서의 이슬람은 이 사회에서 큰 의미가 없다. 모스크들은 많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여자들의 사회 활동 역시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과의 오랜 대립과 경쟁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고 있고 기독교를 적대 문화로 간주하고 있다. 한 개인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친족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감을 의미한다.
때문에, 문화나 종교가 아닌 진리로서의 복음을 제대로 나누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그런데, 한 개인이 복음을 듣을 수 있는 자리까지 데려오기가 너무나 어렵다. 설사 복음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다고 해도,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압박으로 인해서 신앙생활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다. 이하에서 다루게 되는 두가지 사례는 바로 이런 배경 가운데 견뎌온 BAM 사례이다. 또 이 기업들은 모두 10년 이상 된 것들이어서 내용적으로 풍성하다. 이 사례를 위해서 모두 2번 이상의 인터뷰와 현지 방문을 통해서 자료를 얻었다.
이 국가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오래 전에 들어와있던 소수 민족들로부터 최근의 정치적 변동으로 들어와있는 이란인, 요르단인 난민들까지 아주 다양한 무슬림들이 들어와있다. 이번에 다루는 사례는 모두 이 소수민족들을 주대상으로 한 사역자들의 사례다.
사례를 읽기 전에, 몇가지 전제들을 말하고 싶다. 첫째, 아래 사례 내용이 이 기업들의 모든 내용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이 기업들에 대해 모은 기초 자료는 아래 적은 것 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자료들 가운데, 이번 연재의 목적을 위해서 자료들을 선별하였다. 양이 많아서 다 적을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사례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재해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객관성을 위해서, 해당되는 분들과 사례 초본을 리뷰하는 과정을 거쳤다.
둘째, 사례를 읽을 때에 모델로서 이 기업들을 바라보는 것을 지양한다. 사례는 사례일 뿐이다. Only an example! 비즈니스와 사역에는 아주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한다. 이하의 사례들에서 어떤 전형을 발견코자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특별히, 이번에 선정한 사례들은 비즈니스가 교회개척과 함께 갔던 케이스들이다. 교회 개척은 선교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반드시 모든 선교사역이 교회개척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이번 연재의 경우, 교회개척에 대한 부분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이제, 이상의 전제를 염두에 두고 사례들을 보도록 하겠다.
BAM 1. 태풍으로 들어가다
S 선교사는 (이하 S) 1953년 생으로 자동차 분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생산과 영업 쪽의 경험을 한 후, 20대 중반인 1978년 일찍 사업을 시작한 사업가였다. 자동차 엔진 연료 공급 방식이 캬브레타 방식에서 전자 제어 방식으로 바뀌는 시점에 기술력을 확보하여 다이캐스팅 사업을 시작하였다. 초기 기술력은 있으나, 양산 기술 개발과 제조를 동시에 해야 하는 탓에, 초기 자본 투자가 계속 들어가면서 사업의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20대 중반 결혼 후, 명목상 기독교인이었던 S는 어느 선교단체에 멤버였던 아내의 영향으로 신앙을 다시 갖기 시작했다. 그 후, 그 선교단체에서 시작한 직장인들을 위한 독수리 DTS 과정에 주말마다 참여하면서, 내적 변화를 갖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 들어간다. 또 이 시기, 전문인 선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면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이었던 전문인 사역에 대한 모임을 친구와 함께 시작하였다. DTS 훈련의 마지막으로 방문한 비젼 트맆으로 간 곳이 바로 K 국이었다. 그 때에 선교에 대해서 처음 생각했고, 자신의 전문분야인 비즈니스와 연결해볼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80년 말부터, 사업에서의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양산 체제가 가능해지고,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선정이 되면서 이익이 현금으로 급속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 S는 하나님으로부터 사업을 그만 두고 선교사로서 준비하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1991년 많은 반대와 큰 재정적 손해 가운데서도 사업을 정리한 후, S는 인도하심에 따라서 선교 준비를 위해서 독수리 DTS 의 전임 간사가 되었다.
본인 스스로 “이해하면 바로 순종하는” 타잎이라는 S의 이 첫 번째 순종은 인생에 있어서의 첫 번째 폭풍 속으로 들어간 셈이 되었다. 그동안 사장으로 지시를 하는 위치에서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팀으로 같이 일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풍족하게 남에게 도움을 주던 위치에서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만을 바라보며 남의 도움으로 사는 처지가 된 것이다.
3년 반의 훈련을 마친 뒤, 가족 모두는 1994년 K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K국에서 S가 마음을 둔 사역은 소수민족인 D 족이었다. 이 소수 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라는 한 남부도시에 들어가게 된 S 가족은 현지 문화와 언어를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시작하였다. 비즈니스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있었던 S 는 일단 현지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면 사업은 쉽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낯선 땅에서의 비즈니스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전세와 유산으로 갖고 온 돈을 가지고서 친구와 함께 식당사업을 준비하였다. 개업하기도 전에, 현지인에게 이용당하고 그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 당시의 초기 후원금이 매달 30만원 정도였는데, 이 작은 금액이 생활비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의 학비와 그리고 사업자금으로 나뉘어지는 아주 극심한 어려움에 들어가게 된다. 그 뒤, 여러가지 사업들을 시도하였다. 무역업. 원단 사업. 여행 가이드 등등 사업자금이 많이 안 들어가는 일들을 손을 대면서 잠시의 현금 흐름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하긴 쉽지 않았다. 자신 있었던 비즈니스에서 폭풍을 다시 만난 것이다. 선교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3년 반 동안의 광야 학교에서의 재정훈련이 이 기간을 살아남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폭풍 속에서의 10년 동안, 자라난 것들도 있었다. 그것은 현지인들과의 관계와 네트워크, 이 지역에서 비즈니스와 사람을 분별하는 센스 그리고 언어였다. 한국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 용사들과 우연한 기회로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 교제가 자라나서 참전 용사들이 1년에 한번 모이는 기념모임을 시작하고 호스팅하게 되었다. 군의 영향력이 중요한 이 나라에서, S는 이 일을 계기로 지방 유지들과 가까워지게 되며 동시에 그 지역 행사에도 자주 초대되는 명사가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 되어진 인적 인프라는 사업상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자택으로 동네 사람들이 놀러와서 시간을 보내는, 그 사회의 일원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2003년 한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육상 보급로가 필요하던 차에, S가 거주하는 도시가 중요 루트 안에 있었고, 이 수송 로지스틱스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비즈니스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지역 문화를 잘 알고 인맥이 있으며 사업경험이 많은 S가 그 일의 적임자였던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정부 세관, 지역관리, 운전사, 통관사 등등 현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계가 필요했던 것. 2년여 동안의 자이툰 부대의 공급 중개업을 하면서 운송 로지스틱스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후, 자이툰 부대가 떠난 뒤, 북이라크의 재건 사업에 관련된 수송관련 사업들을 진행하게 된다.
2009년에는 전체 프로젝트 규모가 약 120만불 정도였다. 2010년에는 매출이 없었고, 2011년에는 전년에 투자한 많은 일들이 열매를 맺으며 매출의 급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고용인원은 비즈니스가 한참일 때는 5명 정도가 사무실에 일하는 규모이다. 프로젝트성 사업이기에 커미션 기준으로 매출이 발생하는데, 사업적으로 본다면 아직은 작은 규모이고,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 안정이 되고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사역적으로는, 처음 올 때부터, 이 지역의 D 소수민족 교회개척 사역을 목표로 하였다. 지역 언어와 문화가 충분히 편해지기까지, 소규모의 개인전도는 하였지만, 교회 개척 사역은 자제하며 때를 기다렸다. 1997년에 독일인 선교사와 교회 개척 사역을 돕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교회개척을 시작한 것은 현지 적응을 충분히 하여 현지인처럼 사고가 된다 라고 느끼기 시작한 8년 뒤였던 2002년 이었다.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S가 이렇게 오랜 기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가 자리 잡는 것과 현지 적응을 하면서 기도 가운데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의 싸인을 기다린 것이다. 소규모로 모이던 모임이 2004년 7월 창립예배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20-30명 가량이 등록하고 15명 가량이 정기적으로 나오는 교회가 되었다. 현재는 이 교회를 넘겨줄 현지인 리더를 키우고 있으며, 이라크 북부에 있는 D 소수민족을 선교하는 비젼을 교회적으로 갖고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국가에 온 것이 1994년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에야 사업 모델이 잡혀가고 교회가 모양을 갖춰가는 셈이니, 이 사례의 제목인 “폭풍으로 들어가다” 라는 제목이 맞지 않을까? 예수님의 명령으로 배를 탔던 제자들이 만났던 폭풍, 그리고 그 후에 창조주의 예수님을 깊이 만났던 제자들처럼, 이 긴 기간 동안 실제로 예수님께서 다루신 프로젝트는 바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배에 올라탔던 S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BAM 2. 나도 그들처럼
70년 생인 Y 선교사가 (이하 Y) 선교에 대해서 처음 결심하게 된 것은 군 제대 후 복학한 고신대학교 학부 1학년 때인 1992년 선교한국에 참석해서였다. 처음에는 중국 무슬림 사역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후 1996년, 신대원 1학년 때에 1년을 휴학하고 키르키즈스탄으로 단기 선교를 가면서 관심의 영역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 지역에 개척된 교회에서 주일학교 담당 교역자로 사역를 하면서 동시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역 조사를 하면서 Z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민족에 대한 마음이 타올랐던 것.
단기선교 동안의 지역조사를 통해서 또 깨달은 것은, 무슬림 국가에서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전문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두가지 아이텀이 눈에 띄었는데, 한가지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능력. 두번째는 IT 였다. 자신이 개발할 수 있는 아이텀이 IT 라고 본 Y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금의 파송선교단체에 들어가 컴퓨터의 기본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신대원에서 휴학 연장이 어려움을 알고는, 석사과정을 자퇴하고, 결혼을 한 후 1998년 3월, 그동안 기도해왔던 Z국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언어를 배워가며 적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선교 베이스에서의 내부고발로 인해서 신분이 드러나며 1년 반 만에 Z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Z민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지만 불과 1년 반만에 그 땅에서의 추방은 아픔이 컸다. 다음번 사역지를 정하면서 하나님께 두가지 기도를 하였다. 첫째는, 장기사역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달라는 것. 두번째 기도 제목은, 신분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고 사역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두번째 기도제목을 주목할 만 한데, 이는 많은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역의 주민들로부터 본인을 어떤 사람인가로 얘기할 것인가, 즉 정체성 문제는 많은 선교사들에게 중요한 이슈이다. 복음은 삶을 통해서 전해지는데, 우리 삶을 오픈할 수 없고 투명할 수 없는데, 복음 만을 입술로 전하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기도 가운데 K국을 선정한 것은, 처음 파송되었었던 Z 국의 난민들이 이 나라에 많이 들어와있다는 것과, IT 사업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인프라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언어적으로도 두 국가의 언어가 상당히 유사해서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2000년 1월 가족 모두 K국의 경제중심인 T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며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하여 2000년 5월부터는 중소기업의 하청을 프로젝트 위주의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이후 2004년 정식 독자 회사를 설립하였다. 초기부터 프로젝트 위주로 조금씩 사업을 늘려나가기 시작하였고, 이 도시에 들어와있던 한인회의 홈페이지 제작과 컴퓨터 교육 및 IT 관련 업무들을 진행하였다. 그곳에서 연결된 한국계 중소기업들에게 컴퓨터 인프라 설치를 제공했던 것이 지금의 주요 비즈니스 아이텀이 되었다.
사업 초기부터 손익분깃점을 내기 시작한 비즈니스는 꾸준히 유지되어 2010년 매출 30만불 규모의 작은 기업이 되었다. 현지 정규직 종업원 2명과 한국인 비정규직 직원 1명을 고용하고 있다. 기업에서 나는 이익은 비즈니스 재투자와 사역 그리고 후원으로 다 채우지 못하는 자녀학비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사업영역으로는, 기존에 해오던 IT 관련사업 부문과 칩 프로그래밍 기기를 수입해서 파는 부문, 그리고 뻥튀기 기계 수입 세가지 분야이다. 그동안 아이텀들을 다양하게 시도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는데, 대기업의 가격경쟁력 그리고 현지기업들의 관계에 의한 도전을 극복하며 아이텀을 개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Y의 하루생활은 여느 직장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지 크리스챤 직원들과 함께 오전 9시반에 출근하여 5시까지 하루 7-8시간 주 5일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 저녁과 주말에는 교회와 관련된 활동 그리고 두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직원을 더 고용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딱 정해진 시간만을 일하며 나머지 시간을 교회공동체를 세우는데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직장 내에 있는 직원들도 정해진 시간에는 열심을 다해서 일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교회공동체를 돕고 세우는데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처음 들어와 언어를 배우고 가족이 정착하며 동시에 비즈니스 아이텀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 3-4시간 밖에 잘 수 없는 바쁜 일정 때문에도 그러했지만, ‘사역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조바심과 ‘내가 비즈니스 만을 하려면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2000년 언어학교에서 Z국에서 온 T 형제를 만나게 되었는데, 가족이 서로 친구가 되면서 복음을 같이 공부한 후, 2001년 4월, 예배를 같이 드리는 기초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른 Z 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2001년-2003년 동안 15명 정도가 집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역할도 컸는데, 아이를 돌보는 일부터, 전도와 목회적인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었다.
모임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정체성의 고민이시작되었다. 과연 교회 개척을 해서 전문사역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비즈니스맨으로 살 것인가? 하는 갈등이었다. 1년여 동안의 기도와 고민 가운데 내린 결론은, 본인의 소명이 교회개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양육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교회개척과 목회가 아닌, 사회 속의 건강한 그리스도인을 세우는 제자 양육이 자신들의 사명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 나라의 교회에 필요한 것이 이런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role model 이 되기로 한 것이다.
교회개척 대신, 이미 있는 기존교회의 일부가 되기로 결정하고 2004년부터 전체 공동체가 공인된 교회의 예배 일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는 주일날 모이는 인원이 약 30-50명 가량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교회 공동체를 돌보고 돕는 일을 즐기는 만큼, Y 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만나는 K국 현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긴다. 명절 때 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방문하며, 할 일이 없더라도 거래처에 들려서 같이 차를 마시고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하는 삶의 공유 자체가 비즈니스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풍성함들이다.
시사점 1. 문화 속으로
BAM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금, 비즈니스모델, 기술력, 인력, 초기 일거리, 관계적 영성 모두 다 중요하다. 그러나, 빠질 수 없고, 어쩌면 선교사들이 개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문화의 깊은 이해이다. 언어 습득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비즈니스 세계 안에 들어가면서 그 안에 통용되는 집단적인 합의와 행동 그리고 기대를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문화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님나라의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다. 비즈니스는 이런 면에서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례에서 우리는 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BAM 의 중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사례에서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한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결국 나중에 교회개척이나 비즈니스 자체에 어떻게 선순환 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두번째 사례에서는, 비즈니스 자체가 문화 안의 한 사람으로 나를 진입시키는 통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교지역에서 손님이나 관광객이 아닌 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선교사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비즈니스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 때의 비즈니스는 명목상의 비즈니스가 아닌 진짜 일로서의 비즈니스를 의미한다.그 때에만, 진짜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투명하게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호 연재인 “문화로서의 비즈니스”에서, 나는 복음의 임재성과 초월성을 나누었다. 복음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나라는 소금으로 빛으로 세상 속에 영향을 미친다. 복음이 나눠지기 위해서, 우리는 소금과 같이 문화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임재성 immanence 이다. 최근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예수님의 직업이 가구를 만드는 목수라기 보다는 건축현장에서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건축 목수라는 설이 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임금, 계약, 고용, 건축에 대한 무수한 비유들이 이런 면에서 이해가 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나누는 때가 차기까지, 예수님은 30년 동안 인간의 문화 가운데 깊이 들어왔고, 그 때가 찼을 때 갈릴리의 언어와 방식으로 복음을 나누셨다. 그리고 그 복음 안에 우리의 문화를 넘어선 빛과 같은 가치, 하나님 나라의 신비한 초월성 trenscendence 이 담겨졌고 사람들에게 비춰졌다. 우리가 문화 속으로 먼저 들어가는 일이 없다면 복음의 초월적 신비를 나눌 기회 조차가 없는 것이다.
시사점 2. BAM 은 마라톤이다.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면에서, BAM 은 장기 사역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다. 굳이 시간으로 나누자면, 적어도 2년 정도의 언어 학습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되기까지 3-5년을 잡아도 좋을듯 싶다.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되면서 교회개척이나 또는 지원 등의 다른 사역 쪽으로도 확장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비즈니스 자체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드러나는 일들은 늘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서든지, BAM 사역에 있어서 비즈니스 모델의 안정은 기초가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거나 단기간에 결과를 내려고 하면, 일과 가정에서의 밸런스가 깨지기가 아주 쉽다. BAMer 들은 전반적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가족이 되곤 한다. 나는 최근 BAMer 들을 방문할 때에 부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곤 한다. 부인들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져 있음은 안 좋은 싸인이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와 관계가 모두 필요한 통합된 인간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첫번째 사례에서는, 이 과정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번째 사례의 경우에는 비교적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시간이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져 배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사역 쪽의 시간을 건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비즈니스 부분의 지나친 확장을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비즈니스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었기에 장기적인 사역이 가능하였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BAMer 들과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왜 BAM 을 하려고 하세요?” 라는 말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번 인터뷰에서 재미있게 본 점은, 비즈니스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할 수 있는 S의 경우에는 “폭풍으로 들어가다” 라는 제목만큼 혹독한 과정을 거친 반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업경험이 전혀 없는 Y 의 경우에는 큰 위기없이 10년 이상 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는 정말 사람마다 모양이 다른가보다. 그러나, 그 두가지 사례 모두, BAM 사역에서 장기적인 헌신이 요구됨을 보여준다.
시사점 3. 영향력인가? 교회 개척인가?
교회 개척은 중요한 일이며, 이 지면을 빌려서 그리스도의 충만인 교회의 중요성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 우선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삶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개인이 공동체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참 예배자가 없는 공동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우선한다. 개념적인 말장난인가? 그렇지않다. 실제 사역의 현장에서는 바로 이것이 실상으로 차이를 낸다.
이번 K국 방문을 통해서 궁금하게 생각한 점은,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왜 큰 두 개의 도시에 몰려있는가였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 개척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소도시나 작은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은 그 지역에서 금새 눈에 띄게 되고, 더구나 교회 모임은 바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개인영혼구원과 교회개척을 하기가 용이치 않은 것이다. 익명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대도시로 옮겨서 사역을 하는 이유가 된다. 지나친 가설인가?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자체가 빛나는 곳은 지방과 중소도시들이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간 후,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금새 드러난다. 이제 빛을 드러내는 일만 남은 셈이다. 무슬림 지역에 깊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침략적이고 방탕하며 공격적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할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 지역은 로마제국이 깔아놓은 도로처럼 큰 바위로 덮여있는 땅과 같아서 씨를 뿌리기 조차 힘들다. 이 곳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열매를 추수하려는 이들이 아니라, 이 딱딱한 바위들에 정을 대고 깨서 빼낼 사람들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남으로 가능하다. 가장 보편적인 삶의 현장인 비즈니스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서 빛을 드러낸다. 세상의 가치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비즈니스의 과정과 관계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후에 가나안으로 부르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케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루트인 해변길과 왕의 대로가 동과 서로 지나는 바로 그 지점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이 놀라운 섭리가 이제 다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재연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리일까?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이들을 찾으신다.
첫번째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꾸준히 삶 자체를 살아냈던 일이, 나중에 교회를 세운 후에 보호막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작은 도시에서! 두번째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이런 삶의 모델을 직접 선교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은 예루살렘도 아니고 그리심산도 아니고,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그곳이다!
시사점 4. BAMer 에게 있어서 재정후원의 의미.
이 문제는 나중에 한 주제로 따로 깊이 다룰 필요가 있지만, 일단 여기서 짧게나마 건드리고 가려고 한다. BAMer 에게 재정후원이 필요한가? 아닌가? 필요하다면 얼만큼 필요한 것일까?
이 두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낯선 땅에서 비즈니스를 개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두가지 사례 모두 재정후원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사례나 두번째 사례 모두 생활비로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재정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BAM을 지속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비즈니스를 통해서 재정적 독립하는 것이, BAM 을 하려는 동기라면 그건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BAM 이라는 이름 자체 만으로 지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BAM을 하나의 관점으로 확대 해석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BAM 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그렇게 해야한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다가 치루는 어려움은, 본인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몫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이유가 될 수 없다. 후원 재정 및 기타 다른 지원을 네트워킹을 통해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는 경우는, BAM 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기업이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기 어려운 인프라나 조건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운영하는 경우에 제한된다.
현재 한국교회의 선교사 후원은 전반적으로 약하다. 더구나 최근 한국 교회의 하강 조짐으로 볼 때에, 앞으로 선교사의 재정은 더욱 약해질 전망이다. 이 두 사례에서 보듯이, BAM 사역이 이런 점에서 부분적으로 약한 재정을 채우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필요 전체를 채우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BAM 들에게도 생활비 면에서 꾸준한 재정지원이 요구된다. 앞서 말한 대로, BAM 은 마라톤이다. 재정지원이 없다면, BAM은 생활의 압박으로 단거리 달리기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무리수는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모양으로든.
또 한가지 이슈는,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월급이나 이익금을 전혀 안 받을 것인가의 질문이다. BAM 사역의 재정적 유지 가능성 (financial sustainability) 을 위해서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더러 손익을 계산함에 있어서 선교사들의 월급이나 이익배당이 빠져있는 경우들이 있다. 심지어, 자신들이 월급이나 이익 배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건강한 계산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재투자로 비즈니스에 넣거나 좋은 일에 쓴다고 하더라도, 같은 경력의 현지 매니져가 받을 정도의 금액을 차감해서 일단 받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는 현지인들에게 바른 증거가 된다는 점도 있지만, 비즈니스의 건강성을 현실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추천된다.
시사점 5. Bam? baM? bAm?
BAM 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런 요청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벤치마킹할 모델 case 를 보여주세요.” 대답해주느라 몇가지 사례를 얘기해주지만, 대개는 만족하지 못한다. 왜? 한 BAM 사례가 모든 것을 다 갖출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견한 모델 사례 하나. 예멘 싸나에 있는 심장수술에 사용되는 첨단 의료기기 전문제조회사. 초기 2년 설립과정과 수출입 통관 과정에서 뇌물을 주지 않기 위해서 큰 고전을 한 후, 지난 10년간은 매출과 이익이 꾸준히 성장해 온 중견 기업이다. 2010년 매출은 3,300 만불이었고, 영업이익율은 35% 였다. 약 400명의 현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중에 크리스챤이 1/3 이며 지난 1년 동안 개종한 직원은 25명이다. 게다가 직원의 1/3 은 지체장애자이고 1/3은 여자 직원들이다.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다른 회사보다 좋고, 개인들에 대한 배려와 공정한 절차가 잘 구비되었다. 환경 보호 하수 처리 시설을 완벽하게 설치하여, 2010년에는 정부의 모범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익에서 나는 상당 부분은 공익재단을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쓰여질 뿐 아니라, 여러 가정 교회들의 사역을 돕는데 사용되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옆나라인 수단에 같은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 현지 선교사들과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Wow! 놀라운가? 하하하. 용서하시라. 가상의 기업을 한번 만들어 본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기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BAM 기업들은 위의 일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해보려고 분투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아주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성 가운데, 이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BAM 이라고 불릴 수 있도록 꼭 있어야 할 그 중심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무엇이 BAM을 BAM 답게 하는 것일까?
BUSINESS as mission?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다워야 하며,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영향력이 있어야 미션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문제 제기다. 아주 자주 듣는 말이다. 그 비즈니스 다움이라는 것이, 대기업에서 일하는 방식들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이라면 반대다. 세상의 방식 가운데 하나님의 일반은총 가운데 따라가야 할 부분도 있지만,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사업적 성공이라는 것이 계속된 확장과 많은 이익을 남겨서 남에게 나눠줄 만큼 되는 것을 말한다면 꼭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성공이 재정적 유지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동의한다. 즉, 앞으로도 꾸준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재정적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면 동의한다는 뜻이다.
business as MISSION?미션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 대답이다. BAM 이라면 교회가 몇개가 개척되고 새로운 개종자가 꾸준히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답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서 나는 먼저 이원론의 냄새를 맡는다. 비즈니스 따로 있고 미션이 따로 있다는 태도다. 비즈니스를 하나님나라의 가치로 새롭게 보려고 하고, 그 원리대로 순종해서 진행하고자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앞서 말한 비즈니스를 강조하는 대답이나 미션을 강조하는 대답 모두에서 결과주의의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경계하셨던 누룩의 냄새다. 내면의 동기와 과정이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업적과 파워와 기적을 쫒아가려는 인간의 본성, 너무나 전염성이 강한 그 것!
business ASmission!과정에 초점을 맞춘 대답이다. 이번의 두 사례를 보자. 두 사람 모두 큰 돈을 벌은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힌 계시를 받거나, 기적을 행하거나 경험한 것도 아니고, 순교자를 낸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전도한 것도 아니다. 작은 기업들을 운영하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과의 만남에서 BAM 의 본질이 느껴진다. 이 두 사람이 결코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는 외국 땅,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살았던 그 진실하고 절절한 시간과 여정에서 오는 감동 때문이리라.
두번째 사례인 Y선생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인용이다. “나의 삶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나의 삶인 일을 하는 모습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비즈니스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복음을 나누고 섬기는 것이기에 틈틈히 하는 것 뿐이죠” 복음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던 이 분의 간증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그렇다. 우리의 참 예배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섬김과 복음전도로 나타난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의 노동을 치루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고 순종함으로 최선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을 섬기는 것 자체가 예배다. 또한, 매일의 생활 가운데 노동을 접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미래의 먹고사는 염려를 뒤로 미루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독 공동체와 함께 하고 육체적으로 쉬는 것이 참 안식이다. 교회건물 안에서의 예배과 안식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큰 돈을 벌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큰 사업체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할 수도 있고 또, 직장 안에서 제자훈련을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인터뷰와 관찰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기 위해서 큰 사업적 성공을 갈망하는지 수없이 보았다. 수많은 목회자들부터 큰 선교 사업을 위해서 큰 조직과 행사를 이루는데 마음이 뺏겨져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런 비젼과 성공을 위해서 치닿아가는 과정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매일 순간 가운데 진실하게 만나고 사랑하는 일을 잊어버린다면, 본질을 잃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매일 매일 지금 이 순간의 삶이다. 미래의 비젼이 아니다. 비즈니스와 사역은 수명이 있고 때가 되면 문을 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냥 지속될 그 무엇이 아니며 매달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매일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매번 기억되며 열납된다. 삶의 현장 가운데 내가 치루는 섬김과 성실과 기쁨과 슬픔이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나오는 매일의 예배가 된다면, 그래서, 바로 내 안의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다른 이웃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바로 그것이 business AS mission 이고 life AS mission 이 아니겠는가?
내가 도움을 줘야만 하는가? 결코 그렇지않다. 직장을 잃고 어려워서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남에게 가르침을 줄 수도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다.
도대체 내가 사역에서든 비즈니스에서든, 이런 저런 모양의 성공, 속칭 대박을 쳐야만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위치에 서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런 기대는 복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남은 결과가 도망간 제자들과 당시에는 사람으로 계수되지 않았던 몇명의 여자들 뿐이었던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나?
마치면서: 십자군인가? 예배자인가?
요르단에서 지난 몇년간 BAM 을 해온 한 미국 선교사를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무엇이 BAM 사역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냐고. 그분은 어제 직장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때 그들이 집안의 걱정거리들을 자신과 진실하게 나누는 순간이었다고 대답하였다. 얼른 이해가 안되는가? 아마도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길 원했으나, 오랫동안 손님으로 이방인으로만 취급받아서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비기독교인들 즉 바리새인들에 의하면 죄인들인 사람들과 매일의 일상 가운데 만나는 것 자체가 놀라운 특권이다. 더 이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와 친구의 관계로서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교제하셨던 예수님의 기쁨이 바로 이 것 이었으리라. 그분은 실로 죄인들의 친구셨다! 놀랍게도, 우리도 직장에서 이 놀라운 기회를 매일 누리고 살고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그래서 나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그 놀라운 특권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Crusade 라는 말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집회같은 대규모 전도집회를 의미한다. 알다시피, 이 말은 십자군 원정을 의미했던 말이다. Crusade 의 시대는 끝이 났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이런 대규모 집회와 동원이 더이상 비기독교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파워와 크기와 부로 상대를 압도하는 십자군들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순종과 희생으로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미치는 참된 예배자들이다.
BAM 의 본질은 삶에서 매일 드려지는 예배이며, 이 일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문제는 성직자와 일반 기독교인을 나누고, 선교지와 피선교지를 나누고, 예배 처소와 일터를 나누고, 과정과 결과를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 안의 뿌리깊은 이원론이다. 우리 내면의 이 잘못된 구분이 변화될 때에, 우리는 매일 생활 가운데,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관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는 우리 삶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이런 예배자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