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이성계는 개념 미술의 선구자였다 >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이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던 중에 남해 금산에
이르러서 마음 속으로 발원을 하였다고 한다.
"내가 대권을 잡게 해 달라. 만약 나의 소원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때 이
곳을 전부 비단으로 덮어서 감사의 표시를 하겠노라."
그러나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남해 금산을 다 비단으로 덮겠다던 발원을
실행하자니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그렇다고 약속을
그냥 까뭉개 버리자니 그것도 마음에 꺼림직했다.
그래서 이성계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그 지역에다가 새로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금산' (비단 금, 뫼산)이라고. 비단산이라는 지
명을 주었으니 그 지역을 전부 비단으로 덮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
다.
여기에서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이성계가 진짜 비단을 덮지 않고,
이렇게 말장난 비스무리하게 돌려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정치
가들의 교묘한 말돌리기, 고도의 떼어붙이기 수법일까? 극단적으로 말해
이성계가 사기를 친 것일까?
만약 이성계가 자신의 약속대로 그 곳에 비단을 다 덮었더라면, 그는 분
명 설치 미술가이다. 흰 천을 온 데다 덮는 설치미술가, 크리스토보다
몇 백년 앞선 설치미술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명을 금산으로 바꾸었을 때, 그는 개념미술가임에 틀림없다. 설
치 미술과 개념 미술의 사이에서 이성계는 설치 미술을 뛰어넘어 바로 개
념 미술에 도달해 버렸던 것이다.
이성계가 설치미술가가 되어 그 곳을 비단으로 다 덮었더라면, 그 당대
의 그곳 주민들은 상당한 덕을 보았을 것이다. 비단 구경하러 오는 사람
들의 관광 수입,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비단 팔아서 주민 수대로 나누어
갖게 되는 이득을 말이다.
이성계가 실제 비단을 덮지 않고 이름에다 비단 금(錦) 짜를 넣어 줌으로
써 그 당대의 주민들은 '속았다' 라는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낄지 모르지
만, 지명에 얽힌 유래를 남김으로써 수백년 동안 그 땅은 관심의 대상이
되므로 결국 그 후손들에게는 크다란 이득을 남기는 셈이다.
개념 미술이 허무맹랑한 의식의 장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도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이성계는 앞서서 우리에게 보여 주
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설치 미술 작품들을 보면 '돈으로 싸바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
다. 단 며칠간의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내 해체되어 쓰레기로 전락할 설
치물들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제작하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작품의 재료와 사이즈 등, 제원을 밝히듯이, 설치 작품의 경우에는 소요
된 경비도 밝혀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성계는 이미 몇 백년 전에 설치미술을 뛰어넘어서 개념미술까지 보여주
었는데, 후손인 우리들이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정신없이 남의 것 흉내내
느라 거금을 낭비하고 있는 점은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카페 게시글
제 3 전시실
태조 이성계는 설치미술가인가, 개념미술가인가?
녹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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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09 09:3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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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상천외한 발상입니다. 녹차한잔님... 금산을 보시고 이런 상상을 하시다니...우와~~ 정말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머리속에 가득하신것 같습니다. 개념미술가 테조 이성계... 설치보다 개념이술이 한단계위의 생각이긴 하지만 이론적인것이랑 실제는 엄청난 감정의 차이를 가져오지요..개념과 설치의 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