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胎 圖 第 四
道胎圖
且此图楞严经原本有之妙旨,俗僧不知道胎者,因当初未续图之过耳。今以阐扬,修士方知如来有道胎真实之功夫在矣。盖胎者,非有形有像而别物可以成之,实则我之神气也。先以神入乎其气,后气来包乎其神,神气相结,而意则寂然不动所谓胎矣。且气凝而后神灵,故经曰,亲奉觉应,二气培养。故曰,日益增长,气足胎圆,从顶而出,所谓形成出胎,亲为佛子者矣。
도태도 (道胎圖)
이 도태(道胎)란 그림은 능엄경(楞嚴經) 원본(原本)에 실려 있으나 속된 승려들이 도태의 묘한 뜻을 모르고 모두 이 그림을 도중에 삭제하여 전하지 않은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수도자들에게 여래의 진실한 도태의 공부가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사실 도태(道胎)라는 것은 어떠한 형태나 모습이 있는 별개의 물체가 아니라 실제로 닦아서 도태를 이뤄보면 자기의 신(神)과 기(氣)를 일컫는 것이다.
먼저 신(神)을 기(氣)속에 집중하면 기(氣)는 저절로 신(神)을 감싸듯 받아들여, 신(神)과 기(氣)가 서로 뭉쳐져서 생각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를 가리켜 도태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기운이 뭉친 뒤에 정신이 신령스럽게 밝아지기 때문에 경전에도 말하기를 신(神)과 기(氣)가 뭉치면 깨달음을 이루나니 두 가지 기(氣)를 양성하여 기른다 함이라. 이런 까닭으로 날마다 기와 신을 다듬고 다듬어서 기(氣)가 꽉 차면 도태가 원만히 성숙해져 두정(頭頂)을 통해 나가는 경지가 오는 바 형체로 나툰 육신을 벗어나니 친히 부처의 아들(佛子)이 되는 것이니라.
[正本首楞嚴經 券 八]
형상形相이 이루어지고 태胎에서 벗어나서 친히 불자佛子가 된 것을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나니라.
부처님의 삼마지三摩地를 닦아 증득修證하려면 어지러운 생각亂想을 제거하여 없앨 수 있으리니 이는 마치 깨끗한 그릇에 있는 독한 꿀毒蜜을 제거하고 끓인 물湯水에 재와 향香을 섞어 그 그릇을 깨끗이 씻어낸 다음에야 감로甘露를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현재의 업業을 어기고 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난阿難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이 여래의 혜명각성(慧命覺性)은 누구든지 다 갖추고 있나니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대승大乘의 경지를 닦는 사람은 삼마지三摩地에 대해 가볍게 편안히 보아 비추어서 마음을 항복받고 기미를 기다려서 화합하고 응집해야만 바야흐로 부처님의 도道를 이루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善男子가 욕애欲愛가 말라버려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 앞에 나타나는 남은 바탕이 다시는 계속하여 생기지 않을 것이요 집착하는 마음이 비고 밝아져서 순수한 지혜만 남게 될 것이며 지혜로운 성품이 밝고 원만해져서 시방세계十方世界가 환하게 통해서 그 지혜가 마른 것은 "간혜지(乾慧地)"라고 이름한다.
욕애의 습기習氣가 처음으로 말라서 여래의 법류수(法流水)와 접하지 못하므로 모든 부처가 비로소 씨앗이 있는 터전에 응할 수 있는 때를 정하여 보배 구슬을 거두어 들여서 보호하면서 항상 이렇게 미묘한 법륜法輪을 굴리셨으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켜서 여래께서 수련하던 바른 길을 밟아서 더디게도 말고 속하게도 말아 정상적인 행동을 자세히 살펴야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러한 마음으로 가운데로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면 오묘하고 원만함이 열려 퍼지리니 참되고 오묘하고 원만함을 따라서 거듭 참되고 오묘함을 발생하여 오묘한 믿음이 항상 머물러서 일체의 부질없는 생각이 남김없이 없어져서 중도中道가 순진하게 되는 것을 "신심주(信心住)"라고 하나니라.
[正本首楞嚴經 卷 一]
"여래가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원인과 결과와 세계의 작은 티끌이 마음으로 인하여 실체를 이룬다.'고 하나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세간에서 모든 수학(修學)하는 사람들이 현재 눈앞에서 비
록 아홉 차례나 결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정기가 새어나가는 것
을 다 끊어 아라한이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저 나고 죽고 하는
허망한 생각에 집착해서 진실한 것인 양 오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비록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성인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나니라."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동요하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동요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질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참다운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짓을 하느냐? 성품에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몸인 줄 알고 있으면서 그 속을돌고 돌아 스스로 끌려 다님을 취하느냐?
[正本首楞嚴經 券 二]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 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正本首楞嚴經 卷 四]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 들인다.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 되나니라.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 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 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리켜 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 하나니라.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空)이 없어 닦아 익히는 데에 미치지 못 한다'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三摩地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아야 혼탁[濁]에 물들지 않고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초발심을 얻게 된다.
[正本首楞嚴經 券 五 ]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고요함을 깨달아 성문이 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마하가섭 같은 이는 오래전부터 의근(意根)이 없어졌어도 원만하고 밝게 깨달아 앎에 있어 마음을 쓰지 아니하나니라
아난나! 지금 네가 모든 감각기관에서 원만하게 벗어나면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여 이러한 부질없는 대상인 물질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들이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이 녹는 듯해서 생각을 따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리라.
과위 중에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암마라식과 공여래장, 대원경지등 일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각기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해서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게 엉김은 마치 금강왕(金剛王)이 항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근원은 같으며 얽매임과 해탈도 둘이 아니며 의식하는 성품의 허망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알고 보는 것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는 곧 열반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긴 참되고 청정함이니 어떻게 그 가운데에 또다시 다른 물체를 용납하겠느냐?
너는 어우러진 마음 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 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이것을 이름 하여 ‘묘연화', '금강왕보각', '여여불삼매'라 하나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초월하리라.
숨쉬는 것을 돌려 공(空)을 따름이 곧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없어지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나이다.
몸과 마음이 문득 공(空)해져서 三, 七일 동안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져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나이다.
저는 그때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백억의 몸으로 분신하여 그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겠사오니, 비록 그 사람이 업장이 깊어서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몰래 그 사람의 이마를 만지며 옹호하고 편안하게 위로해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열리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겨서 들고 나는 숨이 변하여 광명이 되어서 시방세계를 비추어서 아라한이 되었나이다.
저에게 큰 말재주가 있음을 아시고 음성륜(音聲輪)으로써 저로 하여금 발양(發揚)하게 하셨는데 저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도와 법륜을 굴리면서 사자후(獅子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니, 법음(法音)으로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몸을 단속하여 몸이 자재하게 되고, 다음에는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통달한 연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통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맑은 데로 돌아가 마음의 빛을 발함이 마치 흐린 물을 가라앉혀서 오래되면 맑고 깨끗하게 되는 듯함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리가 된다.'고 하시며 저로 하여금 백해(百骸)와 사지의 따뜻한 기운을 두루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비한 광명이 안에서 엉키면서 많은 음심이 변하여 지혜의 불을 성취하니, 그로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화두(火頭)'라고 부르셨는데 저는 화광삼매(火光三昧)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나이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뒷세상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되어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려지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밴 것과 같을 것이니 이를 이름 하여 향광엄장(香光嚴蔣)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正本首楞嚴經 券 六]
문수보살의 게송
법은 내진(內塵)이라고 하는데 내진에 의한 것이면 반드시 처소가 있으리니 주체와 객체가 널리 통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 숨 쉬는 것은 들고 남에 통하기는 하나 교차하는 순간에는 기운이 없어 연속하여 들어가지 못하거니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지킴은 몸만을 단속하는 것 몸이 아니면 단속할 것이 없으니 원래가 일체에 두루하지 아니한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세상의 교묘한 환술사가
환술로 만들어 놓은 남자와 여자 같으니,
비록 모든 감각기관을 움직일 수 있더라도
요점은 한 고동을 트는 데에 달린 것이네.
그 고동을 멈추어 움직이지 않게 하면
모든 환술로 된 것은 성품이 없으리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이와 같아서
원래는 하나의 정밀하고 밝음에 의지하여
이것이 나뉘어 여섯 개와 화합하나니
한 곳이 회복함을 이루면
여섯 작용이 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티끌과 때가 생각을 따라 없어져서
원만하게 밝고 청정하고 오묘하게 되리라.
남은 티끌은 아직도 배워야 하지만
밝음이 지극하면 곧 여래이니라.
대중과 아난아! 너의 거꾸로 듣는 기관을 돌려서 듣는 놈을 돌이켜 자성을 들으면 그 성품이 위없는 도를 이룰 것이니 원만하게 통함이 사실 그러하니라.
크게 자비하신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부처가 되는 법을 이
미 깨달아 법대로 수행함에 의혹이 없어졌거니와 늘 듣자오니
여래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는 제도되지 못하였으나
먼저 남을 제도하는 것은 보살의 발심이고 스스로 깨달음이 이
미 원만하게 되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여래께서 세상
에 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제도되지는 못하였
으나 말겁의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떠나신지 점점 멀어지면 사악한 스승
의 설법이 항하사와 같으리니 그 마음을 가다듬어 삼마지에 들
어가고자 하면 그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 도량을 편안히 세워
서 모든 악마의 일을 멀어지게 하여 보리심에서 퇴굴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아난을 칭찬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물은 것과 같아서 도량을 편안히
세워서 말겁시대에 방황하는 중생들을 구호하려고 할진댄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아난과 대중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비내야[계율] 가운데 수행하는 세가지 결정한 뜻
을 설명하는 것을 늘 들었을 것이다. 이른 바 마음을 항복받는
것으로 계를 삼고 그 계로 인하여 선정이 생기며 그 선정으로
인하여 혜(慧)가 발하나니 이것을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없애는 세 가지 학문 이라고 한다.
아난아! 어떻게 마음을 가지는 것을 내가 계율이라고 이름하
는고.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들이 그 마음이 음란하지 아
니하면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되는 것을 따르지 않으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塵勞 : 여덟 가지 고통)에
서 벗어나고자 함이거늘 음란한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진로
에서 벗어니지 못할 것이니 비록 지혜가 많아서 선정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만일 음욕을 끊지 못하면 반드시 마구니
의 무리에 떨어지리니, 크게 잘 되어야 마왕이 되고 중간쯤
되면 마왕의 신하이고 하품은 마왕의 백성이니 그 마구니들도
역시 무리가 있어서 각각 스스로 위없는 도를 성취했노라 고
하나니라.
내가 멸도한 뒤 말법 가운데 이러한 악마가 세상에 많이 번
성하여 음욕을 탐내어 널리 음행을 행하면서 선지식이라고 말
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애욕의 구덩이에 떨어지게 하여 보
리의 길을 잃게 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비구로 하여금 음욕을 끊고 도를 깨닫게 하겠
노라. 왜냐하면 음욕을 여의고 고요하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이니 만약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올바르게 수련
하는 방법을 얻으면 근기의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불과(佛果)
를 이룰 것이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한번 더러워진 습지는 만겁을
지나도 소멸되기 어렵다. 만약 음욕을 탐하여 음탕하게 사는
것보다는 계를 지키면서 정결하게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네가 세상 사람을 시켜서 삼마지를 닦게 하려면 먼저 음욕을
행하려는 마음을 끊게 해야 할지니 이것이 여래선불세존께서
제일로 결정하신 청정하고 분명하신 가르침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음욕을 끊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 자
는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모래을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
으니 여러 겁을 지내더라도 다만 뜨거운 모래라고 이름할지니
왜 그런가 하면 이는 밥이 되는 근본이 아니고 모래로 밥을 지
으려 하기 때문이다.
네가 음란한 몸으로 부처님의 오묘한 과업을 구한다면 비록
오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모두 음욕의 근본이
다. 근본이 음욕으로 이루어져서 삼도에 전전하며 윤회해서 반
드시 해탈할 수 없을 것이니 여래의 열반을 어떻게 닦아 증득
하리오?
아난아! 반드시 음란한 기미를 제어하고 교화하여 몸과 마음
에 모두 끊어버리고 끊었다는 성품마져도 없어져야 부처님의
보리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먼저 탐욕을 버리고 애욕을 제거하여서
대상을 대해서도 무심하여 여여(如如)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영
원히 나고 죽는 윤회의 근본을 끊으면 부처님이 인정하시기를
이 사람은 불법을 분명히 믿고 알아서 보리의 위 없이 지혜로
운 깨달음을 깨닫게 되리라. 나와 같은 이러한 말은 부처님의
말이라고 할 것이요 이와 같이 않은 말은 곧 파순(波旬)의 말
이니라.
[正本首楞嚴經 券 七]
만약 말세에 도량에 앉고자 하거든 먼저 비구의 계율을 청정하게 지켜야 하는데, 마땅히 계행이 청정한 제일가는 사문(沙門)을 선택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할지니 만약 참으로 청정한 스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너의 계율을 반드시 성취하지 못하리라.
출입할 적에 반드시 목욕하고 여섯 시간은 도를 행하되 그렇게 잠을 자지 않고 三七일(스믈하루)을 지내면 내가 몸을 나타내어 그 사람 앞에 이르러 정수리를 만지며 위안해서 그로 하여금 깨달음이 열리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말세의 사람이 도량을 세우고자 할진댄, 먼저 눈 덮인 산에서 큰 힘을 가진 흰 소를 구해야 할지니 이 소는 눈 덮인 산의 맑은 물만 마시고 그 산에서 나는 살찌고 기름지고 향내 나는 물만 먹어서 그 똥이 매우 부드럽고 미세하니 그 똥을 가져다가 전단향과 골고루 섞어서 그 지면에 바를지니라. 만약 눈 덮인 산이 아니면 그 소가 냄새나고 더러워서 땅에 바를 수가 없으니 특별히 평평한 언덕에서 땅 거죽을 거두어내고 다섯(五) 자 아래에서 황토(土)를 취해다가 전단향, 침수향, 소합향, 훈육, 울금, 백교, 청목향, 영능향, 감송향, 계설향과 골고루 섞어서 이 열(十) 가지를 곱게 갈아 가루를 만들어서 황토(黃土)와 배합하여 진흙을 만들어 도량의 지면에 발라야 하나니라. 발우 속에는 먼저 중추의 이슬을 담아 놓고 그 물 속에는 꽃잎을 넣어 둘 것이니라. 흰 소의 젖을 가져다가 十六 그릇에 담아 놓고 젖으로 떡을 만들고 세 번째 七일 동안(21일)은 하루 종일 한결같이 부처님의 반다라 주문을 지송하면 七일째 되는 날에 시방여래가 일시에 출현하여 거울 빛이 교차하는 곳에서 부처님이 정수리를 만져주심을 받을 것이고 즉시 도량에서 삼마지를 닦아서 이와 같이 말세에 수학하는 자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됨이 마치 유리와 같게 될 것이다. 三七일이 지난 후부터는 단정히 앉아 편안히 기거하면서 一백일을 지나게 되면 예리한 근기를 가진 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서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다. 비록 그 몸과 마음에 성과 (聖果)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더라도 결정코 틀림없이 성불할 것임을 알 것이니 네가 물어본 도량을 건립함이 이와 같나니라”
여래정의 주문을 늘 외우면 어떤 독기도 그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감로의 맛으로 변하며, 일체의 사악한 별과 모든 요귀가 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해치려고 하여도 그러한 사람에게는 침범할 수가 없나니라.
[正本首楞嚴經 券 八]
행하는 것이 부처님과 같아서 부처님의 기분을 받음이 마치
중음신이 스스로 부모를 구할 적에 음계의 소식이 가만히 통하
는 듯해서 여래의 종성(種性)으로 들어감을 "생귀주"라고 하나
니라.
이미 도태에 들어서 친히 부처님의 아들을 봉양함이 마치 세
상의 부녀자가 이미 아이를 배어서 사람의 모양이 결함이 없는
듯한 것을 "방편구족주"라고 하나니라.
용모가 부처님과 같으며 마음도 같은 것을 "정심주"라고 하
나니라.
몸과 마음이 합하여 이루어져서 날로 점점 자라나는 것을
"불퇴주"라고 하나니라.
십신(十身)의 신령한 모양이 일시에 구족한 것을 "동진주"라
고 하나니라.
형체가 이루어지고 태에서 벗어나서 친히 불자가 된 것을
"법왕자주"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부처님의 아들을 성취하고나서 여래의
한량없이 오묘한 덕을 완전하게 갖추어서 시방에 순하게 따르
는 것을 '환희행'이라고 하나니라.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요익행'이라고 하나
니라.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여 거스리고 막는 것이 없음을
증득한 것을 '성냄과 원만한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갖가지 중생들이 생겨남에 따라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삼세에
평등하며 시방에 통달함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모든 것이 합해지고 같아져서 갖가지 법문에 차오(差誤)가
없게 되는 것을 '어리석고 어지러움을 벗어난 행위'라고 하나
니라.
가지가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모두 제일의 바라밀다인 것을
'존중행'이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원융해서 능히 시방 모든 부처님의 법칙을 이룩한
것을 '선법행'이라고 하나니라.
하나하나 모든 것이 청정하고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없어진지라 한결같이 참되고 작위가 없어서 성품 본래 그
대로인 것을 '진실행'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신통력을 만족하게 갖추어서 부처님의
일을 이루고 나서는 순결하게 정진해서 남아 있던 모든 시름이
멀어지거든 마당히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하는 상(相)을 없애고
작위가 없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열반의 길로 향하는 것을 '일
체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여윈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너뜨리고 여의어야 할 것은 여의어야
하는 것을 '무너뜨릴 것이 없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본래 깨달음이 맑고 고요해서 그 꺠달음이 부처님의 깨달음
과 같음을 '모든 부처님과 같은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정밀하고 참된 것이 밝음을 발하여 지위가 부처님의 지위와
같아짐을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세계와 여래가 서로 들어가되 걸림이 없는 것을 '다함이 없
는 공덕장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부처님의 지위와 같은 데서 그 지위 가운데 각각 청정한 원
인이 생기고 그 원인에 의해 빛을 발휘하여 열반의 도를 취하
는 것을 '평등한 선근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
라.
참된 선근이 이미 이루어져서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나의 본
성인지라 그 성품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중생을 잃지 아니함
을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일체 법에 나아가며 일체상을 여의나니 나아가고 여의는 두
가지에 집착함이 없는 것을 '진여상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참되고 여여한 것을 증득해서 시방에 걸림이 없는 것을 '얽
매임이 없이 해탈한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성품의 덕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법계에 한량이 없어진 것
을 '법계무량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렇게 청정한 마흔 한 가지 마음을 다
하고 다음으로 네 가지 오묘하고 원만한 가행(加行)을 이루나
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나의 마음을 삼아 나갈듯하면서 나가지
못함이 마치 불을 피울 적에 그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을
'난온지'라고 하나니라.
또 자기의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밟아오신 것을 이루어서 의
지한 듯하면서도 의지하지 않음이 마치 높은 산에 오를 적에
몸은 허공에 들어갔으나 아래는 약간 걸림이 있는 것과 같음을
'정상지'라고 하나니라.
마음과 부처 그 두 가지가 같아서 중도를 잘 증득한 것이 마
치 모든 일에 잘 참는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고 밖으로
내보내지도 않는 것처럼 함을 '인내지'라고 하나니라.
헤아림이 없어져서 미각(迷覺)과 중도 그 둘 다 지목할 수
없음을 '세계일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큰 보리에 대해 잘 통달하여 그 깨달음
이 여래와 통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다한 것을 '환희지'라고 하
나니라.
다른 성품이 같은 데로 들어가고 같은 성품도 없어진 것을
'이구지'라고 하나니라.
맑음이 지극하여 밝음이 생김을 '발광지'라고 하나니라.
밝음이 지극하여 깨달음이 원만함을 '염혜지'라고 하나니라.
일체의 같고 다름이 이르지 못하는 것을 '난승지'라고 하나
니라.
작위가 없는 진여가 되어서 성품이 맑아지고 밝게 드러나는
것을 '현전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끝까지를 다한 것을 '원행지'라고 하나니라.
한결같은 진여의 마음 뿐인 것을 '부동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작용을 발하는 것을 '선혜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모든 보살들이 이로부터 이전에는 닦고 익히는
공부를 마치고서 그 공덕이 원만하여졌으므로 그 경지를 지목
하여 '닦아 익히는 지위'라고 하나니라.
자비의 그늘과 오묘한 구름이 열반의 바다를 덮은 것을 '법
운지'라고 하나니라.
여래는 흐름을 거스리지만 이러한 보살은 순하게 행하여 이
르러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 어울린 것을 '등각'이라고 하
나니라.
아난아! 간혜의 마음에서부터 등각에 이르러야만 그 깨달음
이 비로소 금강심 가운데에 첫 간혜지를 얻게 되나니라.
이렇게 거듭거듭 열 두 가지를 홑으로 겹으로 해야만 바야흐
로 묘각을 다하여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라.
[正本首楞嚴經 券 9]
세존이시여! 만약 이 오묘하고 밝고 참되고 청정한 맑은 마
음이 본래 두루두루 원만한 것이라면 이와 같이 큰 땅덩어리의
풀, 나무와 꿈틀거리는 함령(含靈)들이 본래 근본인 진여이므
로 이는 곧 여래께서 부처가 된 참다운 실체로서 부처님의 본
체가 진실하거늘 어째서 또다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간, 하늘 등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도는 본래 저절로 생긴 것입니까? 아니면 중
생의 허망한 습기로 생긴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보현향 비구니 같은 이는 보살계를 지키다가 사
사로이 음행을 저지르고 거짓으로 말하기를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 살생도 아니고 훔치는 것도 아니므로 업보가 있을 수 없
다 고 했더니 그 말을 하자마자 먼저 여인의 음근에서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더니 그 다음에 사지의 마디마디 맹렬한 불이 붙
었으며, 유리는 구담족성을 죽여 없애고 선성은 부처도 없고
불법도 없고 열반도 없다고 망령되게 말하다가 산 몸둥이 그대
로 모두 아비지옥에 빠졌습니다. 그러한 지옥은 정해진 곳이
있는 것입니가? 아니면 자연히 저마다 업보를 일으켜 각각 스
스로 받는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어리고 어두운 자들을 일깨
워 주셔서 계를 지키는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한 이치를 듣자옵
고 기뻐서 이마로 받들어 조심하고 정결하여 변함이 없게 하소
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통쾌하다 그 물음이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사특한 소견
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해 주겠다.
아난아! 일체 중생이 사실은 본래 참되고 청정한 것이건만
허망한 소견으로 인하여 허망한 습기가 생기나니 그것으로 인
하여 내분과 외분으로 갈라지나니라.
아난아! 내분이라고 함은 곧 중생의 분내(分內)이니 모든 애
욕의 생각으로 인하여 허망한 정이 일어나나니 그 정이 쌓여서
그치지 않으면 능히 애욕의 몸이 생긴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마음에 좋은 음식을 생각하면 입 속에서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앞에 만났던 사람을 생각하여 가엾게 여기거나 원한을 품으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재물과 보배를 탐내거나 구하면 마
음에 침을 흘려서 온 몸이 빛나고 윤택해지며 마음에 집착하여
음욕을 향하면 남자와 여자의 음근에 자연히 액체가 흐르나니
라.
아난아! 모든 애욕이 비록 서로 다르지만 흐르고 맺힘은 같
으니 윤택하고 촉촉한 습기는 올라가지 못하므로 자연히 아래
로 떨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내분'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외분(外分)이라 함은 곧 중생의 분외(分外)이니 모
두가 목마르게 우러르므로 인하여 허망한 생각이 발생하게 된
다. 그 허망한 생각이 쌓여서 그치지 아니하면 능히 수승한 기
운이 생기게 되나니,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에 금하는 계율을
가지면 온 몸이 가볍고 맑아지며 마음에 주문이나 보인(印)을
가지면 돌아봄이 웅장하고 굳세어서 마음이 하늘에 나고자 하
면 꿈 속에서나 상상속에 늘 날아다니고 마음 속에 부처님 나
라에 살고자 하면 성인의 경지가 아득히 나타나며 선지식을 잘
섬기면 스스로 몸과 목숨을 가벼이 하나니라.
아난아! 그러한 것들은 모두 저 중생들 스스로가 지은 업보
대로 감응된 것이니 열 가지 익힌 버릇이 씨앗이 되어 여섯 가
지의 교보(交報)를 받나니라.
무엇을 열 가지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첫째는 음
란한 버릇을 접촉함이 서로가 비비는 데서 생겨나나니 서로 비
비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맹렬한 불길이
그 가운데서 일어남을 느끼나니 마치 사람이 손을 서로 비비면
뜨거운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타오르
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 등으로 가
하는 고통을 받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음
란하고 방탕함을 지목하여 '애욕의 불'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
의 음욕 보기를 마치 불 구덩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둘째는 탐욕의 버릇으로 서로 계량함이 서로를 빨아들이는데
서 생기나니 빨아들이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
질 때에 추위가 쌓이고 단단한 얼음이 그 가운데서 얼어붙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들이마시면
찬 감촉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업
신여기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타타, 파파, 라라 등 벌벌
떨면서 푸르고 붉고 흰 연꽃 등의 얼음 지옥에서 추위에 떠는
고초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탐내어 구
하는 것을 명목하여 '독한 물'이라고 똑같이 이름하였고 보살
이 탐욕 보기를 마치 장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셋째는 거만한 버릇으로 서로 업신여김이 서로가 뽐내는 테
서 생기나니 뽐내는 마음이 치달려서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허공에 날고 파도에 달려가서 그 파도가
쌓여 물이 되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술에 혀
를 대고 빨아 맛을 보면 그로 인하여 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동(鼓動)하므로 지옥에 들어
가서 핏물, 잿물, 뜨거운 모래, 독기있는 바다와 구리 녹인 물
을 마시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거만한 것을 명목하여 '바보가 된다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거만함을 보면 큰 물을 피하듯이 하나니
라.
넷째는 성내는 버릇으로 서로 충돌함이 서로를 거슬리는 데
서 생기나니 거슬림이 맺혀서 그치지 않으면 마음의 열이 불길
을 발하여 기운을 녹여서 쇠가 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
에 칼, 산, 쇠곤장, 세워진 칼, 칼수레, 도끼, 작두, 창, 톱
등으로 가하는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날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두 가지 버릇
이 서로 공격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거세당하고[宮] 짤
리우고[割] 목을 베고[斬] 도끼로 찍히고[斫] 톱으로 썰리고 찔
리고[刺] 몽둥이로 때리고[槌] 치는[擊] 등의 고통을 받게 되나
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성내고 분해하는 것을 명
목하여 '예리한 칼날이다'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성내는 것 보
기를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하듯이 하나니라.
다섯째는 간사한 버릇으로 서로가 유인함이 서로 아첨하는
데서 생기나니 그렇게 아첨하여 끌어들이기를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밧줄과 나무로 목을 조르거나 비트
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밭에 물을 대면 풀과 나무가 나
서 자라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뻗어나므로 지
옥에 들어가 쇠고랑과 수갑과 항쇄, 족쇄와 채찍과 곤장 등의
형구로 가하는 고초를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간사함을 명목하여 '참소하여 해치는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보
살이 간사한 것 보기를 승냥이나 이리처럼 두려워하나니라.
여섯째는 속이는 버릇으로 서로 속임이 서로를 무고하는 데
서 생기나니 속이는 것이 그치지 않아서 마음을 날려 간사함을
지으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티끌과 흙과 똥, 오줌의 더럽고
깨끗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티끌이 바람에 날려
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
로 더해지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빠지거나 차 올리는 것과 날았
다 떨어졌다 하는 것과 뜨고 가라앉는 것 등의 고통을 받게 되
나니 그러므로 시바의 모든 여래가 속이는 것을 명목하여 '겁
살'이라고 이름하고 보살이 속이는 것 보기를 뱀을 밟는 것처
럼 여기나니라.
일곱째는 원망하는 버릇으로 서로 미워함이 서로가 원한을
품은 데서 생기나니 원한이 쌓여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
어질 적에 돌을 날리고 바위를 던지고 뒤주에 가두고 함거에
싣고 독 속에 넣고 부대에 넣어 메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
나니 이는 마치 음흉하고 독한 사람이 가슴에 악독함을 품어
쌓아두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한을 머금고 있
으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던지고 차고 얽어매고 때리고 쏘고 당
기고 움켜쥐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원한 품은 집을 명목하여 '위해귀(違害鬼)'라고
하고 보살이 원한 있는 이를 보기를 마치 독 술을 마시는 것처
럼 여기나니라.
여덟째는 송사하는 버릇으로 서로 밝힘이 서로가 어기는 데
서 생기나니 어겨 배반함이 쉬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
에 왕사와 관리가 문서로 증명하고 집행관이 문서를 가지고 고
문하고 신문하고 추국하여 파헤치고 밝혀내어 사사롭고 외곡된
것을 판단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오가면
서 서로 마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어우
러지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가슴을 치거나 혀를 뽑거나 불
로 지지거나 회초리로 때리거나 말로 변명하는 등의 고초를 받
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송사하여 해치는 일을
명목하여 '사악한 소견의 구덩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송사
의 허망하고 편협한 고집장이 보기를 마치 독한 구렁에 빠지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아홉째는 모함하는 버릇으로 서로 모함을 가함이 서로를 비
방하는데서 생기나니 비방하여 해치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산과 합하고 돌과 합하여 연자와
맷돌로 갈고 부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남
을 모함하여 해치는 사람이 선량한 사람을 핍박하는 것과 같
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누
르고 비틀고 때리고 뭉게고 치고 쥐어짜고 꺼꾸로 매다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모함하고 비방
하는 것을 명목하여 '모함하는 범'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바르지 못한 것 보기를 마치 번개를 만난 것처럼 여기나니라.
열째는 덮어 씌우는 버릇으로 서로 시끄러움이 서로를 가리
고 숨기는 데서 생기나니 숨기고 피하는 것이 그치지 아니하므
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거울로 비춰보고 촛불로 비춤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햇볕에 그림자를 숨길 수가 없는 것과 같나
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발하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악한
벗, 업보의 거울, 불 구슬로 묵은 업보를 파헤쳐서 대질해서
징험하는 모든 괴로움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
가 덮어 감추는 것을 명목하여 '음흉한 도적'이라고 이름하였
고 보살이 덮는 것 보기를 마치 높은 산을 머리에 이고 큰 바
다를 밟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아난아! 세상에 모든 마음을 닦는 사람이 선나에 의지하지
못하여 지혜는 없으나 다만 능히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않아서 다니거나 않거나 간에 생각이 모두 없어져서 애욕의 더
러움이 생기지 아니하여 욕계에 머물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즉
시 그 몸이 범천의 무리가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중천'
이라고 하나니라.
애욕의 습기가 이미 없어져서 애욕을 여읜 마음이 나타나고
모든 계율에 대해 좋아하여 순하게 따르면 이 사람은 즉시 범
덕(梵德)을 행할 수 있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보천'이라고
하나니라.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해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고
금하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밝게 깨닫기까지 하면 이 사람
은 때를 따라 응하여 범중을 통솔하게 되어서 대범왕이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대범천'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모든 고뇌가 핌박하지 못
한다.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로 닦지 못했으나 청정한 마
음 속에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동요하지 아니하
므로 '초선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그 다음은 범천이 범천 사람을 통솔하고 범행이 원
만하게 되어서 맑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고요하고 맑아
서 빛을 내는 그러한 한 무리는 '소광천'이라고 하나니라.
빛과 빛이 서로 어울려서 밝게 비침이 끝이 없으며 시방세계
를 두루 비추어 유리과 같이 된 이러한 한 무리는 '무량광천'
이라고 하나니라.
원만한 광명을 흡수해 지켜서 교화의 실체를 성취하여 청정
한 교화를 발휘하여 응용이 다함이 없는 이러한 한 무리는 '광
음천'이라고 하나니라.
[正本首楞嚴經 券 10]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들의 유혹을 받게 되리라.
입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되 눈과 귀와 코와 혀가 모두 정토며 남근과 여근이 곧 보리와 열반의 참된 곳이라고 하면 저 무지한 자들은 이러한 더러운 말을 믿으리니 이는 고독(蠱毒)과 염승이라는 악귀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면 제자와 스승이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항상 하늘 혹은 용 등 여러 호법 신장과 산과 강의 호법 신장이 간 데마다 지켜주고 보호하며 금강역사가 이르러 수시로 지켜줄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계를 지키고 경전을 받아서 지성으로 봉안하면 그윽한 향기가 방에 피어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뜰에 가득하여 업장이 사라지고 복과 지혜가 점점 자라날 것이요
지극한 덕이 이루어져야만 지극한 도를 이룰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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