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 출전 : 조선일보 2001. 3. 4.
[창간특집] 시민을 존중하는 쿠리티바市 시설들
쿠리치바 시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튜브 정류장’과 ‘지혜의 등대’는 시민을 존중하는 행정당국의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2월18일 쿠리치바 시내 ‘에오프라시오 보헤야’ 버스전용차로 튜브 정류장에서 만난 프란세아(여·53)씨. 직장을 은퇴하고 교회 자선봉사 활동으로 바쁘다는 프란세아씨는 “과거엔 버스가 서는 곳을 따라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먼저 타려는 사람들에 떼밀리는 일도 흔했지만 지금은 사람 대접을 받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튜브 정류장은 승객보다는 버스 중심으로 짜여진 기존 개념을 뒤집어 버렸다. 승객은 요금을 내고 유리로 된 원통형 튜브 정류장에 올라가 버스를 기다린다. 비도 피하고, 양쪽 의자 턱에 기대 독서도 할 수 있다. 도착한 버스는 발판을 내려 정류장의 승객과 높이를 맞춘다. 휠체어 장애인도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튜브정류장을 고안한 도시계획연구소(이푸키·IPPUC)의 전문가들은 버스와 정류장의 평행을 맞추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팀원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영화에서 중세 유럽의 성들이 성문을 내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바로 저것’이라며 무릎을 쳤다.” 쿠리치바시가 도입한 튜브정류장은 2000년 12월 현재 353개. 시는 올해 22개를 더 만들 예정이다.
‘지혜의 등대’는 주민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지역 도서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변두리 동네에 44개가 만들어진 지혜의 등대는 3층짜리 철골 구조물로 등대를 모방해 설계했다.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도록 빨강, 노랑, 파랑 등 밝은 색으로 칠했다. 등대 1층엔 5000~8000권 정도의 책들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취업 정보를 교환하는 등 지역의 정보창고 노릇도 한다. 무엇보다 1층 서가쪽은 유리로 만들어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호기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도시계획연구소 루이스 마사루 하야가와 소장의 설명이다.
2층에선 연극과 음악활동, 체스 등 동호인 활동으로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고, 3층 등대는 경찰이 고정 배치돼 밤이면 불을 밝혀 말 그대로 치안의 등대 구실을 한다. ‘등대지기’ 사리타(여·45)씨는 “마을 주민 6343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다”며 “지혜의 등대가 생긴 뒤로 부랑아가 줄고 사용자가 너무 많아 운영진들이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 최장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