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영원한 드림카로 지목되는 슈퍼카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는 수많은 카매니아들에게 멋진 슈퍼카를 제작하는 브랜드로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이벌인 페라리가 부드럽고 우아한 여성미를 가지고 있다면 람보르기니는 엠블럼의 투우(황소)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강하며, 거친 이미지를 내뿜는 남성미가 넘치는 브랜드입니다. 박력있는 디자인과 파워풀한 성능, 엔진의 거친 사운드를 듣는다면 마초적 느낌까지 강한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라는 회사는 원래 자동차를 제작하는 곳이 아닌, 트랙터를 제작하는 회사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트랙터 제작회사였던 람보르기지의 주인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페루치오는 세계 제2차대전 종전 후 (1946년부터)트랙터 사업을 비롯하여 에어컨, 오일버너 판매로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여들였습니다. 게다가 페루치오는 벤츠 300SL, 제규어 E-Type, 알파로메오1900, 마세라티 3500GT, 페라리 250GT SWB 등을 수집하고, 개조할 정도로 열렬한 자동차 매니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중에서도 페라리 모델을 가장 좋아하여 모든 페라리를 모조리 섭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즐겨타던 250GT SWB 모델의 잦은 클러치 고장 때문에 상당히 짜증냈던 페루치오는 몇번이고 편지를 보냈었지만, 답장이 없자 페라리 본사에 방문했습니다. 그 때 직접 엔초 페라리를 만나 "차 좀 제대로 만드시오"라고 결함 수리를 요청했었지만, 당시 오만하기로 유명했던 엔초가 "트랙터나 만드시오"라고 촌놈 취급하여 응수해 열받은 페루치오는 결국 엔초의 콧대를 누를 수 있는 스포츠카 메이커를 설립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때 부터가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람보르기니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페루치오는 1963년 볼로냐에 막대한 거금을 들여 람보르기니 자동차 공장을 세웁니다. 그리고 당시 페라리에서 일하던 지오토비자리니를 비롯하여 수많은 젊은 인재들을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트랙터와 에어컨 사업으로 번 돈 덕에 모을 수 있었던것. 이 '혈기왕성한' 멤버들은 V12엔진을 얹은 첫 자동차, 350GT를 완성합니다. 페루치오를 비롯한 멤버들은 곧바로 그 해에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하게 되는데, 상당히 뜨거운 반을을 얻었던 350GTV는 곧바로 양산형인 350GT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350GTV는 V12엔진 개발이 끝나자마자 지오토 비자리니가 람보르기니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초기 비자리니가 설계한 V12엔진의 기존 출력은 400마력이었지만, 페루치오는 레이스카의 스펙이 아닌 GT카의 스펙을 원해 280 마력으로 디튠하기에 이르러서 비자리니가 "람보르기니는 레이스카를 만들지 않는다"라고 판단해 떠나게 됩니다.
1963년 350GTV
람보르기니는 350GTV 양산형인 350GT, 그리고 400GT, 400GT+2로 성공을 거뒀지만 페루치오는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차를 내놓습니다. 그것은 1966년 토리노 모터쇼를 충격으로 내몰았던 '미우라' 마르첼로 간디니가 포드 GT40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이 아름다운 보디를 가진 차는 양산형 스포츠카 최초로 미드십이라는 독특한 엔진 배치 방식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엔초는 미우라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지사의 차량들(페라리)도 미드십 방식의 GT카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것을 본 페루치오는 '페라리가 이제는 우리를 흉내낸다'라고 조롱까지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좋은 반응을 얻게된 미우라는 양산을 시작하며 1970년 통산 400대를 돌파하는 동시에 엄청난 이익을 남기게 됩니다.
1968년 Miura Roadster
1971년, 또 한번의 충격을 가져다준 카운타크는 람보르기니의 역사상 전설로 기록될 만큼 상당한 충격을 줬던 자동차 입니다. 곡선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만큼 상당히 각지고 납작한 디자인과 수직으로 열리는 걸윙도어, 구겨넣다시피한 V12엔진, 불편한 시트는 무척이나 거칠어 장거리 운전시, 드라이버를 녹초로 만들기엔 충분했었지만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가진 매니아들에겐 최고의 자동차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카운타크는 이태리의 지방 사투리로 '쿤타치'라고 부르며 '바로 이거다!'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973년 1차 오일쇼크 부터 최악의 일들이 벌어집니다. 페루치오는 당시 병행하던 트랙터 사업을 위한 새 공장을 짓고, 자재들을 확보했었는데 퇴조하는 농업으로 인해 대규코 트랙터 주문이 취소됨에 따라 엄청난 거금을 날리게 되어 이 트랙터 공장은 1972년 SAME(이탈리아 트랙터 회사, 현 SAME/Deutz-Fahr)에 넘어가게 됩니다. 게다카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경제불황으로 인해 자동차사업도 어려워지게되었습닏. 결국 자동차사업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페루치오는 람보르기니 경영권을 스위스 사업가 로세티에게 나머지 49% 지분은 라이머에게 넘기고 자동차사업에서 물러나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페루치오가 떠난 람보르기니는 방황하게 되지만 기회가 왔다는듯, BMW M1의 생산권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기회도 잠시, 생산권이 1년만에 취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기사회생의 비책으로 선보였던 SUV, 치타는 단 1대만 생산하고 자취를 감춥니다. 게다가 이 SUV에 과도한 투자까지 하는 바람에 어려움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사실 1977년에 람보르기니는 실직적으로 파산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1980년에는 이태리 재산 관리인 Giorgio Mirone와 법정 관리인이었던 Artese 박사가 회사를 청산하기로 하였는데 그 때 아주낮은 가격에 패루치오가 인수하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80년대 초반, 거대 식품업체 주인인 패트릭 밈람이 람보르기니를 흡수해 람보르기니를 살리기 위한 아낌없는 투자와 새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해 1981년, 치타의 후속인 LM001을 생산합니다. 그리고 이 LM001은 LM002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최고시속 181km/h 나 냈던 수퍼 오프로더인 LM002는 멋진 차량이었지만, 소수의 AWD매니아와 아랍의 부호들에게만 팔리고 그쳤습니다. 그래도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꾸준한 성장을 람보르기니에게 거대한 자본이 필요해지자, 1987년,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하게 됩니다.
1990년 Diablo
그리고 1990년, 크라이슬러의 힘을 엊은 람보르기니는 디아블로를 내놓게 됩니다. V12 5.7x 485마력을 탑재한 디아블로는 제로백 100km 4.09초, 최고시속325km/h의 엄청난 성능을 내는 슈퍼카였습니다. 디자인은 카운타크를 담당했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지만 크라이슬러의 개입으로 전통적 직선형 디자인에서 한결 부드럽게 다듬어 졌습니다. 덕분에 1991년, 디아블로는 절정의 판매고를 올려 큰 이익을 남깁니다. 그래서 디아블로는 람보르기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차량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와 자동차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고가의 슈퍼카 시장은 판매량이 급속이 하락함에 따라 또 다시 경영이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 크라이슬러는 1994년 인도네시아의 메가테크에 람보르기니를 넘기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메가테크로 넘어간 람보르기니는 회사 대표를 비토리오 다 카푸아를 대표로 정하고 그를 앞세워 슈퍼카의 단점인 비싼 원가를 절감, 직원을 재편성하는 등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 97년, 흑자를 냅니다.
그리고 1998년 람보르기니는 마침내 아우디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끝없는 인수배틀이 종결됨으로서 아우디가 최종 종착지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 팬들을 비롯, 많은 사람들에게 우려를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즉슨 대량 생산 메이커이며 독일의 완고한 정신 기질이 강하던 아우디에게 들어감으로서 개성을 잃을 것이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럼 우려는 간단하게 제기듯 2001년 폭스바겐 그룹에 속한 후로 첫번째 슈퍼 스포츠카, "무르시엘라고"를 공개합니다. 디아블로의 DNA를 이어받은 디자인과 성능이지만 반대로 날카로운 라인을 소유한 무르시엘라고는 심장인 V12엔진의 파워풀한 성능으로 전세계 카 매니아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듭니다. 우려와는 달리 이태리의 열정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독일의 완벽주의와 품질관리라는 것을 더함으로서 완벽한 슈퍼카가 태어난 셈입니다.
2002년 무르시엘라고
2003년에는 V10 엔진을 탑재한 베이비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발표합니다. 응집된 람보르기니의 기술력, 아우디의 기술들이 가미된 이 슈퍼카 역시 대성공을 거둬 세계적인 슈퍼카 메이커로 완벽히 도약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2007년 가야드로
2008년 레벤톤
2010년 무르시엘라고 LP670-4 SV
2012 아벤타드로 LP700
1963년에 설립된 람보르기니는 1970년대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현재의 폭스바겐에 소속되어 현재까지 모두가 꿈꾸는 차량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우디 인수 이후 거칠던 차가 부드러워져서 개성이 줄었다는 평가도 따르고 있습니다만 21세기의 람보르기니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