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葬 禮란? 사람이 죽어서 습,염등 과정을 거처 관에 입관하여 현지에 매장할때 까지를 통틀어 행하는 葬禮를 말한다.
◆ 상례(喪 禮)란? 한사람이 죽음을 시작하여 모든장례의 행사를 마치고 일상으로의 복귀 즉 상前의 정상생활로의 복귀까지 치루어지는 장사예절이라 일컬을수 있다.
◆ 장의(葬 儀) : 장의라고하는 말은 일본인들이 사용는 말입니다. 상장례(喪葬禮).장사(葬事)라고 써야 옳습니다. 앞으로는 장의(葬 儀)라는 말은 쓰지않는것이 좋겠습니다. 염습을 하는사람을 염사라고 하는데 상장례사 , 상장례지도사라고 불러야합니다.
♣ 상.장례의 기본정신 상장례는 사람의 죽음을 맞고 그 주검을 갈무리해 장사지내며 근친들이 일정기간 슬픔을 다해 죽은이를 기리는 의식절차입니다. 아무리 생활여건이 달라졌다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옛날과 현대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죽은이에 대한 마지막 모심이기 때문에 슬픔을 극진히 하며 엄숙하고 경건하게 장례를 치릅니다. 모든 절차는 경제적 여건과 생업의 사정에 따라 사람마다 한결같을 수는 없으나 여기에서는 가장 기본적이며 표본이 될 수 있는 제도를 예시합니다. ♣ 초종(初終) 초종은 사람의 죽음을 맞는 절차입니다. 초종이란 사람 노릇의 끝남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 첫째 날 질병 천거정침(疾病 遷居正寢) 사람이 위독하면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나 가능하면 자기의 집 안방에 모십니다. 머리가 동쪽으로 가게 눕힙니다. 자기가 평소에 살던 곳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보고싶어 할 사람과 환자를 보아야 할 사람에게 연락합니다. 환자가 혼자 있지 않도록 가족이 항상 곁을 지키되 조용하게 합니다. 집의 안팎을 정돈합니다. 만일의 경우 알려야 할 곳을 기록해 정리하며 가족들이 하는 일도 죽음에 대비해 준비합니다. 환자의 마지막 유언(遺言)을 잘 들으며 유서가 있으면 챙깁니다. 환자의 더러워진 옷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힙니다. 가능하면 의사가 환자의 곁을 지키게 합니다. 환자의 입이나 코위에 탈지면(脫脂綿)이나 솜을 얇게 펴서 올려 놓아 숨지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자손과 근친들이 환자곁에서 엄숙하게 지킵니다.
운명거애(殞命擧哀) 이윽고 환자가 숨을 거두면 의사를 청해 사망을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받습니다. 사망이 확인되면 지키던 근친들은 슬픔을 다합니다. 가까운 근친들에게 연락해 오는대로 죽은이를 보고 슬픔을 다합니다. 평소에 죽은이를 보지 않던 이성(異性)은 구태여 죽은이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죽은이의 방은 비우지 않습니다.
복초혼(復招魂) 죽은이의 직계자손이 아닌 사람이 죽은이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며 죽은이의 평소의 칭호를 세 번 부르고 내려와 그 웃옷을 죽은이의 가슴에 덮습니다. 이것은 죽은이의 몸을 떠난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의식입니다.
* 수시(收屍) 주검을 갈무리하는 절차입니다. 남자 주검은 남자 근친이 하고, 여자 주검은 여자 근친이 합니다. 수시의 시기는 죽은 때로부터 약 1시간이 지난 후가 좋습니다. 수시의 시기는 너무 늦으면 안 됩니다. 눈을 쓸어내려 잠자듯이 감깁니다. 주검을 머리가 남쪽으로가게 방의 한쪽에 반듯하게 눕힙니다. 발바닥이 벽에 닿아서 반듯하게 합니다. 무릎을 펴서 붕대나 백지로 묶습니다. 두 손을 배위로 모아 흉사시의 공수를 시켜 붕대나 백지로 묶습니다. 머리를 반듯하게 유지시킵니다. 입에는 나무젓가락 등에 솜을 말아 물려서 오무려지지 않게 합니다. 솜으로 귀를 막고 가제로 코와 입위를 덮어 곤충이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홑이불로 얼굴까지 덮습니다. 시신(屍身·주검) 앞을 병풍이나 장막(帳幕)으로 가립니다. 그 앞에 향상(香床)을 차리고 향을 피우며 촛대를 좌우에 세우고 촛불을 켭니다. 방안의 지저분한 물건들을 치웁니다.
* 입주상·주부(立主喪·主婦) 주상은 그 상의 바깥주인이고 주부는 안주인입니다. 죽음을 슬퍼할 근친 중에서 정합니다. 아내의 죽음에는 남편이 주상, 큰며느리가 주부입니다. 남편의 죽음에는 큰아들이 주상, 아내(미망인)가 주부입니다. 다만 삼우제가 지나면 큰며느리가 이어서 주부가 됩니다. 부모의 상에는 큰아들이 주상, 큰며느리가 주부입니다. 만일 큰아들 큰며느리가 없으면 큰손부가 되는데 이것을 승중(承重)이라 합니다. 큰아들이나 큰며느리가 죽으면 아버지가 주상이고 어머니가 주부입니다. 기타의 죽음에는 가장 가까운 근친부부가 주상,주부가 되는데 처가나 친정사람은 주상, 주부가 되지 못합니다. 만일 같은 촌수의 근친이 여럿이면 연장자 부부가 주상, 주부가 됩니다.
* 설 호상소(設 護喪所) 호상소란 주상과 주부가 슬픔 때문에 상을 치르는 일을 직접 관리할 수 없으므로 주상과 주부를 대신해 상을 치르는 사무소입니다. 호상소에는 다음과 같은 인원을 둡니다.
* 호상(護喪) 주상을 대신해 상을 관리하는 책임자입니다. 죽은이나 주상과 잘 알고 예절을 알면서 근친이 아닌 사람에게 맡깁니다. * 사서(司書) 상가(喪家)의 각종문서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사무원입니다. 주상의 친구나 상복을 입지 않는 친척을 시킵니다. * 사화(司貨) 상가의 재물을 관리하는 경리원입니다. 주상의 친구나 상복을 입지 않는 친척을 시킵니다.
* 집례(執禮) 각종 축문을 작성하고 읽으며 의식절차를 진행하는 사회자입니다. 예절을 잘 아는 사람을 시킵니다.
* 집사(執事) 의식절차를 행하는데 협력하고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절을 잘 아는 친척을 시킨다. * 안내(案內) 손님을 인도하고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젊은 남녀를 시킵니다.
* 잡역(雜役) 상가의 잡다한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호상소의 인원은 모두 호상의 명을 받아 일합니다. 호상소는 집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들르기 쉬우면서도 주상과의 연락이 수월한 곳에 설치합니다. 호상소에는 다음과 같은 장책(帳冊)과 서류를 비치합니다.
* 조객록·조위록(吊客錄·吊慰錄) 죽은이가 남자면 손님이 죽은이에게 인사하고 주상에게도 인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객록을 비치합니다. 죽은이가 여자면 손님이 주상만을 위문하기 때문에 조위록을 비치하여 손님을 기록합니다.
부의록(賻儀錄) 상가를 돕기 위해 물건이나 돈을 부조하는 사람과 품명·수량· 금액 등을 기록합니다. * 금전출납장(金錢出納帳) 현금이나 수표 등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합니다.
* 물품수불부(物品受拂簿) 모든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합니다.
* 축철(祝綴) 상장례를 치를 때 읽어야 하는 모든 축문을 써서 책으로 맨 것입니다. 메모지책 등 기타 필요한 문서들을 비치합니다. * 역복·소식(易服·素食) 주상,주부 이하 근친들은 화장을 지우고 액세서리를 떼며 옷을 단조롭게 바꾸어 입고,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고례에는 불식(不食)이라 해서 장례를 치를 때까지 먹지 않았으나 현대는 술이나 고기 등 좋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남자 자손이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을 때는 아버지의 상에는 왼쪽 소매, 어머니의 상에는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습니다. 이것을 삽임(扱 )이라 했습니다. 주상, 주부, 아들, 며느리, 딸은 양말이나 버선을 신지 않고 방석을 깔지 않습니다. 모든 근친은 면도,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고례에는 아들, 며느리, 시집가지 않은 딸은 머리를 풀었습니다.[被髮] 현대에는 쪽을 찌거나 땋지 않으므로 풀 머리가 없습니다.
* 정 장례절차(定 葬禮節次) 근친과 호상이 상의해 장례절차를 결정합니다. 장례를 치르는 날은 기후, 반드시 참례해야 할 근친의 교통사정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죽은이를 땅에 묻는 매장(埋葬)을 할 것인가,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을 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매장할 경우에는 묘지장소를 다음 각항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묘지소재토지의 소유권분쟁이 일지 않을 곳 토지형질변경(개간 및 주거지)이 되지 않을 곳 물에 잠기거나 침수되지 않을 곳 묘지보전에 지장이 없을 곳 교통사정 등 관리에 편리한 곳 화장할 경우에는 다음 각항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화장은 어디에서 할 것인가, 골분은 소산(消散)할 것인가, 납골(納骨)할 것인가, 납골한다면 어디에 할 것인가, 장례방법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를 다음 각항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 죽은이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아야 합니다. 가족장이 아닌 다른 방법은 관계있는 직장 단체 분야(分野)의 관계자와 사전에 합의하여야 합니다. 가족장 이외의 경우에는 장례집행부서나 관계자와 절차를 협의 결정합니다. 죽은이에게 입힐 수의와 관(棺)의 재질(材質)과 종류·제조방법을 결정합니다. 주상, 주부 이하 근친과 기타 추모하는 이들이 입을 상복과 상장(喪葬)의 종류와 제조방법을 결정합니다. 장지(葬地)까지 가는 방법(교통편)과 노제(路祭)의 유무와 장소 주관자를 결정합니다. 죽음을 사회에 알리는 부고(訃告)의 방법을 신문지상·우편·인편·통신 중 어느것으로 하며, 누구에게 알릴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 수의봉재(壽衣縫裁) 죽은 이에게 입힐 옷과 소·대렴에 쓰일 이불 등을 수의라 합니다. 죽은 이가 남자면 속바지, 바지, 허리띠, 버선, 대님, 신, 행전, 속저고리, 저고리, 토시, 두루마기, 도포, 도포띠, 멱목, 복두, 악수, 소렴금, 대렴금, 주머니 5개, 맬끈, 천금, 지요, 베개를 준비합니다. 죽은이가 여자이면 속바지, 바지, 속치마, 치마, 버선, 신, 속저고리, 저고리, 활옷, 띠, 멱목, 복두, 악수, 소렴금, 대렴금, 주머니 5개, 맬끈, 천금, 지요, 베개를 준비합니다. 수의의 재질은 옛날에 비단이던 명주제품과 가장 질긴 삼베를 썼던 것을 이유로 화학섬유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순본견제품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화학섬유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화학섬유는 정전기가 일어나는 폐단이 있으므로 살에 닿는 부분은 명주나 무명, 삼베 등 천연섬유가 좋을 것입니다. 수의 만들때에는 겹으로 지으며 산 사람의 옷과 반대로 오른쪽 섭이 밖으로 나오게 여미도록 짓습니다.
* 상복봉재(喪服縫裁) 주상, 주부 이하 근친들이 입을 상복을 짓습니다. * 치관(治棺) 관은 죽은이를 넣는 나무상자입니다. 매장할 때 관까지 함께 묻을 것이면 좋은 나무로 두텁게 만들어 방부칠을합니다. 매장할 때 관을 제거할 것이면 묘지까지 갈때에 지장이 없으면 됩니다. 혹 진공관(眞空棺)을 쓸 것이면 전문제작자에게 의뢰합니다. 기타 상장례에 필요한 기구를 준비합니다. * 부고(訃告) 미리 정한 방법으로 죽은 이와 복인들의 친지에게 죽음을 알립니다. 부고는 호상의 명의로 작성합니다. 고례의 부고는 다음과 같은 서식으로 죽은 사실만을 알렸습니다.
* 고례 부고서식 누구(주상의 이름)의 어떤 이(주상과의 관계) 본관성공(여자의 씨)이 ○월○일 무슨 병(사망원인)을 얻어 불행하게 ○월○일에 세상을 버리셨기 이에 알립니다. 년 월 일 호상 ○○○ 누구에게 (某親 某人 以某月某得疾 不幸於某月某日棄世 玆以告訃 某年 某月某日 護喪姓名上 某位座前)
사회적 지위는 있으면 사실대로 쓰고 없으면 안씁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어도 안 쓸 수도 있습니다. 주상 이름은 사실대로 씁니다. 만일 남편이 주상이면 성도 쓰고, 어머니의 상에도 주상의 성을 써야 합니다. 주상과의 관계는 사실대로 씁니다. 어머니는 大夫人, 아내면 夫人, 할아버지면 王大人, 할머니는 王大夫人입니다. 죽은이의 본관성명은 사실대로 쓰는데 죽은이가 여자면 '公'을 '女史(士)'라 씁니다. 고례에는 이름을 안썼으나 현대에는 쓰는 것이 식별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월일시는 사실대로 씁니다. 사망원인은 사실대로 씁니다. 만일 지병(持病)으로 죽었으면 '宿患', 노인이면 '老患'이라 쓰는데 그 경우에는 사망 원인의 '月 日'은 쓰지 않습니다. 죽은 장소는 사실대로 쓴다. 병원이면 '○○病院'이라 씁니다. 발인 일시, 발인 장소, 장지는 사실대로 정확하게 씁니다. '主喪'이란 말은 고례에도 쓰지 않고 현대에도 쓰지 않는데 부고의 성격과 격식상 꼭 써야 합니다. 주 의 :죽은이와 주상과의 관계는 꼭 씁니다. '嗣子'는 큰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큰손자가 주상이면 '承重'이라 쓰고, 만일 아내의 상이면 남편이 주상이므로 '夫'라 쓰고 아래에 성명을 쓰며 다음줄 主婦를 쓰기 전에 '嗣子'라 쓰고 큰아들의 이름을 써야 합니다.
'主婦'도 고례와 현대에 쓰지 않는데 '主喪'과 같이 꼭 써야 합리적입니다. '未亡人'은 남편의 상을 당한 경우입니다. 요즈음 남편의 상에 주상앞에 '未亡人'을 쓰는 것은 잘못입니다. 엄연히 미망인은 주부이고, 주부는 주상 다음에 씁니다. 죽은이와 성이 다르니까 성명을 모두 씁니다. 만일 부모의 상에 큰며느리가 주부이면 의 ' 婦 ○○○'라 쓰고, 다음줄에 ' 婦 ○○○'는 안씁니다. ' 婦'란 큰며느리란 뜻인데 미망인은 삼우제 까지만 주부이고 그 다음은 큰며느리가 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써야 합니다. 남편이 主喪일 때 큰아들을 主喪 다음에 '嗣子'라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순서는 요사이 아들, 딸, 며느리, 사위의 순서로 쓰는데 잘못입니다. 당연히 아들 며느리 딸 사위의 순서로 써야 합니다. 사회활동을 하는 성인만 씁니다. 일자는 죽은 다음날 부고를 내더라도 죽은 날로 씁니다. 고부자(告訃者)는 반드시 호상의 명의로 합니다. 부고를 알기 쉽게 한글로 쓰려면 한문서식을 우리 말로 풀어씁니다. 예:"부고.○○병원 원장 明日의 아버님 ○○시장 水原 白 知洙 선생님께서 10월 19일에 사고를 당하시어 불행하게도 10월 29일 오전 6시에 ○○병원에서 세상을 버리셨기 이에 알립니다.(이하는 사실대로 씁니다.)* 설 영좌·상차(設靈座·喪次) 영좌는 손님이 죽은이에게 슬픔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상차는 주상 이하 상제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대개 영좌와 상차를 붙여서 같은 장소에 설치합니다. 고례에는 염습 후에 설치했으나 현대는 염습 전에도 조문을 받아야하므로 일찍 배설합니다. 영좌와 상차의 설치 장소는 집이 좁으면 시신이 있는 방에 차립니다. 집이 넓으면 시신의 방에 가까운 곳에 차립니다. 가능하면 남자 손님을 받는 곳과 여자 손님을 받는 곳, 두 군데를 차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상제들이 상복을 입는 성복(成服)을 하기 전에는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치지 않습니다. 조상석은 고운자리를 깔아도 좋습니다. 주상, 주부 이하 상제들이 앉는 자리는 거친자리여야 합니다. 고례에는 점석( 席)이라 해서 풀자리를 깔았습니다. 원래는 괴침(塊枕)이라 해서 흙돌벼개였고 근래에는 짚벼개를 곁에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죽은 자식들은 죄인이라 몸을 풀밭·들판[草野]에 던진다는 뜻입니다.
* 상가배비(喪家配備) 상가배비란 찾아오는 손님이 찾기쉽게 큰길에서부터 표시합니다. 안팎에 조명시설을 해서 밤샘에 지장이 없게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음식 조달과 손님에 대한 간단한 다과 대접을 위한 준비를 말합니다. 목표건물이나 큰길 정차장에서부터 상가까지 행로(行路) 표시를 합니다. 상가의 문앞에는 상가표시를 합니다. 상가표시는 밤에도 식별되게 합니다. 상가의 안팎에 불을 밝힙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장소와 자리 등을 준비합니다. 춥지않고 덥지않게 냉난방시설에 유의합니다. 조문객(弔問客)에게 간단한 다과(茶菓)를 대접합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식(酒食) 대접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호상소와 잡역을 하는 사람들의 음식에 불편이 없게 합니다.
설전(設奠) 죽은 사람이라도 밥먹을 때에 그대로 지나기에는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아침과 저녁에 시신의 오른쪽 어깨 옆에 상을 차려 올리는 것을 설전이라 합니다. 밥이나 국, 반찬 등 상하기 쉬운 것은 차리고 잠시 후에 치우지만 과실, 포, 술은 다음 전까지 두었다가 새로 전을 올릴 때 먼저 것을 치웁니다.
사자밥(死者飯) 상가의 대문앞에 저승의 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상을 놓고 밥, 나물, 짚신, 돈 등을 차리는 것을 사자밥이라 합니다.
무시거애(無時擧哀) 고례에는 대곡(大哭)이라 해서 상제 대신 곡을 하는 사람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근친들은 언제든지 슬프면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합니다. 일부러 곡을 할 것은 없지만 저절로 나오는 흐느낌이나 소리내어 울고싶은 것을 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 둘째 날
* 조상·문상(弔喪·問喪) 고례에는 주상, 주부 이하 복인들이 상복을 입습니다. 서로 조문하는 성복례(成服禮)를 치르기 전에는 외부손님의 조상이나 문상을 받지 않았으나 근래에는 죽음을 알면 즉시 조상과 문상을 합니다. 고례의 조상과 문상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조상(弔喪)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을 말합니다. 죽은이가 남자면 손님이 영좌 앞에서 죽은 이에게 슬픔을 나타내기 때문에 남자가 죽은 상에 인사하는 것을 조상이라 합니다.(弔客錄에 기록합니다.)
* 문상(問喪) 근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묻는다는 뜻입니다. 죽은이가 여자면 손님이 죽은이에게는 인사하지 않고 주상, 주부 이하 복인에게만 죽음을 위문하기 때문에 여자가 죽은 상에 인사하는 것을 문상이라 합니다. (弔慰錄에 기록합니다.) 성복례를 하기 전에는 주상, 주부 이하 복인들이 슬픔으로 경황이 없을 것이므로 조상, 조문을 하지 않고 호상소에만 인사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죽음을 알면 즉시 조상도 하고 문상도 합니다. 조상과 문상을 합해서 슬픔을 나타내고 위문도 한다는 뜻으로 조문(弔問)이라 합니다.
* 조문의 방법 손님이 상가에 도착하면 호상소로 가서 조객록이나 조위록에 자기의 주소 성명을 기록합니다. 호상소에서는 정중히 인사하고 영좌 앞으로 안내합니다. 주상·주부 이하 복인들이 일어나서 흉사시의 공수를 하고 슬픔을 나타냅니다. 손님은 향안 앞으로 가서 향을 1번이나 3번 사릅니다. 흉사시의 공수를 하고 서서 죽은이를 추모하며 슬픔을 나타냅니다. 영좌가 입식(立式)으로 설치되었으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한 번 경례합니다. 좌식(座式)으로 되어 있으면 전통배례로 두 번 절합니다. 죽은이가 평소에 절을 하지 않던 아랫사람이면 절하지 않습니다. 약간 뒤로 물러나서 상제가 있는 쪽을 향해 섭니다. 상제가 먼저 경례 또는 절을 하면 손님이 맞절 또는 답배를 합니다. 이때도 평소에 절을 하지 않던 높은 쪽에서는 절하지 않고 아랫사람만 절을 합니다. 좌식 장소면 꿇어앉고 입식 장소면 공손한 자세로 서서 손님이 먼저 인사를합니다. 고례에는 죽은이와 복인과의 관계에 따라 인사말이 달랐으나 모두 '슬픔을 위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에는 누가 죽었든 "얼마나 슬프십니까?"라고 인사하면 됩니다. 복인이 대답하는 말도 고례에는 경우에 따라 달랐으나 내용은 '슬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에는 "오직 슬플 따름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조문할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면 공손한 자세로 물러납니다. 한가하면 다른 위문의 인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인이 피곤하지 않게 합니다. 다시 호상소에 가서 준비된 부조금품(扶助金品)을 내놓습니다. 호상소에서는 그 내용을 부의록에 기록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없습니까?"라고 협조할 일을 묻습니다. 대접하는 다과가 있으면 간단히 들고 일어납니다. 상가의 화제는 죽은이를 추모하거나 자손들의 효성을 칭송하거나 장례절차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잡담이나 큰소리, 노래, 춤 등으로 무례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 제문·천물(祭文·薦物) 손님이 죽은이에게 올릴 술, 과실, 포 등을 가져왔으면 호상소에서는 영좌의 제상위에 차리고, 손님이 조상하게 합니다.(薦物) 손님이 죽은이를 추모해 제문(祭文)을 지어왔으면 조상할 때 분향한 다음에 스스로 읽은 다음 절을합니다. 읽은 제문은 향상 아래에 놓습니다.
* 제문의 서식은 다음과 같이 씁니다. "단군기원 년 월 일에 ○○○은 존경하옵는 (사회적 지위) ○○○선생님 영전에 슬픔을 다해 곡하며 아뢰나이다. (이어서 죽은이를 추모하는 내용) 오호! 슬프기 끝이 없나이다. 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시옵기를 빌며 삼가 곡하며 절을 올리나이다."
* 부의(賻儀) 사람의 죽음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졸지에 상을 당한 상가를 돕기 위해 상장절차에 소용되는 물품이나 돈을 형편에 맞게 부조하는 것을 부의라 합니다. 부의는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앞서야 합니다. 물건이나 돈을 불쑥 내놓기 보다 일정한 격식을 차리는데 그것이 물목기(物目記)이다 물품이면 '賻儀品 麻布壹疋' 등 품명과 수량을 씁니다. 부의금품은 주상이나 복인에게 영좌 앞에서 주지 않고 호상소에 내놓아야 합니다. 매·화장신고와 준비 의사에게서 발부받은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시·읍·면·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합니다. 이어서 매장·화장신고를 합니다. 매장할 것이면 현지에 사람을 보내 묘지공사와 현장관리 일체를 준비합니다. 묘지·장지장까지의 교통수단을 준비합니다. 묘지까지 동행하는 회장(會葬)자를 점검해 현지에서의 음식준비를 합니다.
* 각지석(刻誌石)·표석(表石)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묘지를 표시하기 위해 묘지 앞 지하에 묻는 표지를 지석이라 합니다. 묘지 옆에 세우는 표지돌을 표석이라 합니다. 지석을 묻을 예정이면 문안을 작성해 조각을 의뢰합니다. 대개 두 장의 돌로 만들어 양쪽에 글을 새기고 글새긴 곳을 맞붙여 묘지의 발치에 묻습니다.
표석을 세울 경우는 표석의 규격은 높이 120cm이하의 돌에 전면에 지석·웃돌과 같이 새기고 좌우와 뒷면에는 지석 아랫돌의 내용을 새깁니다.
* 신주조성(神主造成) 죽은이의 각종 제례에 죽은이를 상징하는 표상의 신주입니다. 신주는 밤나무(栗)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고, 뽕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신주는 분칠을 한 몸체[神主]를 덮은 뚜껑[韜], 신주를 세우는 받침[趺], 신주밑에 까는 방석[籍], 신주를 넣는 상자[ 座], 상자를 덮은 덮개[ 蓋]로 이루어지는데 독좌와 독개는 까맣게 칠합니다. 글씨는 쓰지 않습니다.
* 명정조제(銘旌造題) 명정은 죽은 이를 관에 넣은 다음 누구의 관인가를 나타내는 표지깃발입니다. 입관 후에는 관의 동쪽에 세웁니다. 관을 옮길 때는 앞에 먼저 갑니다. 묘지에 매장할 때는 관이나 시체 위를 덮습니다. 명정은 빨간 천 온폭을 길이 2m정도로 잘라서 아래와 위에 가는 나무를 대고 꿰맨 것을 3m정도의 장대에 매어 답니다. 명정의 글씨는 흰 분가루를 접착제(아교)에 개어 붓으로 다음과 같이 씁니다.
직명·본관·성명을 씁니다. 남자에게 직명이 없으면 "學生"이라 쓰고 부인이 벼슬있는 이의 아내이면 '夫人'이라 씁니다. 남자가 학덕(學德)이 있고 호(號)가 있으면 호를 써서 '念齋居士' '梅軒處士' 등으로 쓰기도 합니다. 부인에게 당호(堂號)가 있으면 '師任堂夫人' '雪軒夫人' 등으로 쓰기도 합니다.
* 반함(飯含) ·목욕준비 반함이란 죽은이의 입에 물리는 것을 말합니다. 저승에 가서 써야 할 식량과 재물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쌀 한줌을 물에 씻어 그릇에 담습니다. 구슬이나 동전 몇 개를 깨끗이 씻어 접시에 담습니다. 버드나무로 만든 숟가락을 준비합니다. 이상의 반함물을 조그만 쟁반에 얹어 놓습니다. 목욕이란 죽은이를 목욕시키는 것입니다. 목욕물은 쑥을 삶은 물 20리터 정도 따뜻하게 해 놓습니다. 쌀 씻을 때 나오는 뜨물을 10리터 정도 준비합니다. 세수대야 3∼5개, 물수건 2장, 마른수건 2장, 머리빗 1개, 가위나 칼 2개, 너비 1m 길이 2m정도의 비닐, 여자인 경우는 화장품 약간 등을 준비합니다.
* 목욕·습·염·입관(沐浴·襲·斂·入棺) 죽은이를 목욕시켜 옷을 입히고 이불로 싸서 묶어 관에 넣는 절차입니다. 고례에는 죽은 첫날 목욕과 습을 했습니다. 현대는 의학의 발달로 숨을 멈추고 24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회생가능성이 있으므로 죽은 다음날 이 절차를 진행합니다. 고례에는 습·소렴·대렴을 다른 날 따로 따로 했으나 3일장을 치르는 현대는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목욕(沐浴) 죽은이가 남자이면 남자 근친이 목욕시킵니다. 죽은이가 여자이면 여자 근친이 목욕시킵니다. 험한 주검을 보면 놀랄 것이므로 목욕시키는 사람 외에는 밖에서 슬픔을 나타내며 대기합니다. 주검의 머리·허리·다리쪽을 양쪽에서 들어 비닐위로 옮깁니다. 머리쪽의 홑이불을 벗깁니다. 입에 물린 보침물을 빼고, 뜸물로 머리를 감깁니다. 마른 수건으로 닦은 다음 빗으로 곱게 빗깁니다. 그때 빠지는 머리털은 주머니 하나에 담습니다. 죽은이가 평소 빠진 머리를 보관했으면 함께 담습니다. 수시할 때 묶었던 끈을 풉니다. 쑥물로 세수시키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습니다. 여자면 약간의 화장을 시킨 다음 홑이불로 얼굴을 덮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홑이불을 떠들고 옷을 벗깁니다. 잘 벗겨지지 않으면 칼이나 가위로 자릅니다. 이때 칼·가위·수건 등 기구들이 시체의 위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칼·가위·수건 등 기구들은 각각2개씩 준비합니다. 시체의 앞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물수건에 쑥물을 묻혀 깨끗이 씻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습니다. 이어서 시체를 좌우로 재켜 모로 뉘면서 뒤도 그렇게 씻고 닦습니다. 주머니 5개와 칼이나 가위만 남기고 모든 목욕준비물과 벗긴 헌옷들을 일정한 곳에 치웁니다. 구덩이를 파고 묻기도 하고, 묘지에 가서 태우기도 합니다.
습 (襲)
주검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습(襲)’이라한다.
‘습’을 담당하는 사람을 시자(侍者)라고 하는데 남자의 습은 남자가, 여자의 습은 여자가 하는 것이 관례이다.
시자는 먼저 자기 손을 깨끗이 씻고 주검을 씻길 목욕물을 준비하여 주검을 모셔 둔 병풍 뒤로 간다. 이 때 상주들은 밖에서 선채로 북향하여 기다린다.
‘습’에 쓰는 목욕물은 향나무를 잘게 쪼개어 삶은 향탕수(香湯水)나 쑥 삶은 물을 쓴다. 쌀뜨물을 쓰기도 한다.
향탕수가 준비되면 주검의 아래 위 양쪽에 각각 네 그릇을 준비해 두고, 주검을 씻어 내기 위한 새 솜과 물기를 닦아내기 위한 수건 서너 벌을 마련하며 주검의 머리카락, 손발톱을 깎아 담기 위한 주머니인 조발낭(爪髮囊) 4개 그리고 칼과 빗 등을 준비한다.
먼저 수시할 때 묶었던 손발의 끈을 풀고 옷을 벗긴다.
향탕수로 머리를 감긴 뒤에 남자는 상투를 틀어 동곳을 꽂고, 여자는 쪽을 지어 버드나무 비녀를 꽂는다.
이어 향탕수를 솜으로 찍어 시신의 얼굴과 윗몸, 아랫몸을 차례로 씻고 준비해 둔 수건으로 물기를 말끔히 닦아 낸다.
빠진 머리카락과 깎아 낸 손발톱을 조발낭에 각기 담아 두었다가 ‘대렴’ 때 이불 속에 넣거나 관 속에 넣는다.
또 수의의 소매나 버선에 넣어 두기도 한다.
습에 쓴 물과 수건, 빗 등은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넣어 묻는다.
주검의 목욕이 끝나면 준비해 둔 수의를 입히는데 이를 ‘습의(襲衣)’라고 한다.
먼저 버선을 신기고 아래옷을 입힌 뒤에 상체를 일으켜 웃옷을 입히고 베로 만든 갓 모양의 복건을 머리에 씌운다.
수의를 입히는 요령을 미리 터득하지 못하면 ‘습의’가 어렵다. 따라서 시자는 습의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적절하다.
습의가 끝날 무렵 ‘반함(飯含)’ 의례를 하게 된다.
반함(飯含) 이어서 죽은이의 입에 반함을 합니다. 주상·주부 이하 모든 복인이 들어와서 정한 자리에 끓어앉습니다. 주부가 반함물 쟁반을 들고 발쪽으로 돌아서 주상의 오른쪽에 꿇어앉습니다. 주상이 아닌 아들이 죽은이의 머리를 들고, 주부가 아닌 며느리가 베개를 뺍니다. 머리를 바닥에 놓습니다. 주상이 머리쪽의 홑이불을 벗깁니다.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쌀을 퍼서 죽은이 입의 오른쪽 안에 넣습니다. 구슬이나 동전을 넣습니다. 이어서 왼쪽에 넣고 끝으로 가운데에 넣습니다. 남은 반함 준비물을 한쪽으로 치우고, 주부가 발쪽으로 돌아서 원자리로 돌아옵니다. 아들은 머리를 들고 며느리는 베개를 머리밑에 베어줍니다. 주상·주부 이하 모든 복인이 극진하게 슬픔을 나타냅니다. 고례에는 아들과 딸은 죽은이의 몸위에 엎드려 시체를 잡고 울고, 며느리는 시체밑에 손바닥을 넣고 받들어 들듯이 하며 울고, 다른 근친은 수의를 잡고 운다고 했습니다. 홑이불로 얼굴을 덮고 주상 주부 이하 근친들은 밖으로 나옵니다. 솜으로 귀를 막고 멱목으로 얼굴을 덮어 끈으로 묶고, 복두를 씌워 끈으로 묶고 홑이불로 씌웁니다.
염 (殮)
‘습’이 끝나면 ‘염’을 한다. ‘염’에는 ‘소렴(小殮)’과 ‘대렴(大殮)’이 있다.
소렴
소렴은 습의에 이어 다른 의복들(正衣, 倒衣, 散衣 등)을 입히고 소렴포로 주검을 매는 것이나 의복들을 새로 입히지 않고 소렴포로 싸기도 한다.
소렴포를 이용하여 주검을 가로 세로로 감싸서 묶는데, 가로로 묶을 때는 먼저 발끝에서 위로 세 매듭을 차례로 묶고, 다시 머리쪽부터 차례로 내려오며 세 매듭을 묶은 다음, 가운데는 제일 나중에 묶어서 일곱 매듭을 짓는다.
이렇게 소렴이 끝나면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묶은 매듭마다 끼워두기도 한다.
고깔은 망자가 저승의 열두 대문을 지날 때 문지기에게 씌워 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렴
대렴은 입관을 위해 주검을 베로 감아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소렴을 행한 이튿날 곧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에 한다.
먼저 주검을 칠성판에 올려놓고 일곱자 일곱치로 된 칠성칠포(七星七布)를 두가닥으로 나누어 끝에 한 자 정도는 붙여두고 발부터 싸매되 두 가닥을 서로 어긋나게 싸 올라간다.
끝은 묶지 않고 실로 꿰맨다.
소렴(小殮)
소렴이란 작은 이불로 주검을 싸고 맬끈[맬끈]으로 묶는 것을 말합니다. 작은 이불의 너비는 주검을 둘러서 쌀 수 있어야 하고(삼베라면 4폭정도), 길이는 죽은이 키의 배는 되어야 합니다. 맬끈은 끈의 너비에 따라 먼저 가로매는 몇가닥을 놓던 폭을 연이은 길이가 죽은이 키보다 약 50cm는 더 길어야 하고(삼베라면 7가닥정도) 각 가닥의 길이는 주검을 두르고서도 약 50cm의 여유는 있어야 하며, 세로매는 죽는이의 키의 배에 약 60cm정도는 더 길어야 합니다. 먼저 가로매를 잇대어 깔고, 그 위에 세로로 세로매를 놓고, 그 위에 작은 이불을 편다. 가로매와 세로매의 양끝은 모두 3가닥으로 쪼갭니다. 그러면 삼베의 경우 가로매가 7폭에 21가닥이 됩니다. 주검을 조심스럽게 들어 작은 이불위로 옮기고 베개를 뺍니다. 구겨진 옷을 반듯하게 펴서 윈쪽을 먼저 여미고 그 위로 오른쪽을 여밉니다. 두 손은 배위에 모아 흉사시의 공수를 시킵니다. 주머니 5개를 각기 주머니에 담은 내용물(머리털, 손·발톱)의 위치에 놓습니다. 턱밑, 어깨위, 팔과 몸사이, 두 다리 사이, 발등 위 등 빈 곳을 헌옷, 종이에 싼 짚, 솜 등으로 채워 묶을 때 몸이 상하지 않게 합니다. 이불을 먼저 발쪽을 여며 이불 끝이 배 위에 오게 하고, 다음에 머리쪽을 여며 이불 끝이 배 위에서 발쪽의 끝과 맞닿게 하고, 다음에 왼쪽을 여미고 끝으로 오른쪽을 여며 쌉니다. 세로매를 배 위에서 모아 세로매 끝의 3가닥 중에서 아래와 위의 왼쪽 가닥을 먼저 묶고 다음에 오른쪽 가닥을 묶고 끝으로 가운데 가닥을 묶씁니다. 가로매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묶어 내려가는데 첫째 가닥은 묵지않고 왼쪽을 여미고 오른쪽을 다음에 여며 머리를 보기좋게 싸고, 이어서 둘째 가닥도 윈쪽을 먼저 여미고 오른쪽을 다음에 여민 다음 셋째 가닥을 위 두가닥을 여민 위의 중앙에서 묶습니다. 계속해서 21번째 가닥까지 묶으면 매듭이 2가닥은 여미기만 했기 때문에 19매듭이 된다. 모든 매듭은 다시 풀 일이 없기 때문에 고(紐)를 내지 않으며 매듭이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이 되게 묶습니다.
대렴(大斂)
대렴이란 큰이불로 주검을 싸고 맬끈으로 묶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이불의 크기와 맬끈의 길이 등은 소렴 때와 같다. 먼저 맬끈 가로매 5폭을 깔고, 그 위에 세로로 세로매 1폭을 깐 다음, 그 위에 큰이불을 폅니다. 각 맬끈의 3가닥을 쪼갭니다. 그러면 가로매는 5폭에 15가닥이 됩니다. 큰이불을 아래·위·윈쪽 순으로 여미고, 세로매를 배 위에서 윈쪽 가닥·오른쪽 가닥·가운데 가닥 순으로 묶습니다. 가로매는 머리쪽 첫폭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가닥은 묶지 않고 왼쪽 오른쪽의 순으로 여미기만 하고 세 번째 가닥부터 중앙에 모아 묶는 것은 소렴 때와 같습니다. 전체 매듭수는 가로매 5폭 15가닥중에서 2가닥은 여미기만 했으니까 모두 13매듭이 됩니다. 주검의 상중하에 삼베나 무명 온폭을 길이 4m정도씩 잘라 들끈을 3가닥 만들어 놓습니다. 입관이나 묘지에서 시신을 하관할 때 편리합니다.
* 입관(入棺)
대렴까지 한 주검을 관에 넣는 일입니다. 바닥에 관받침대를 상중하에 놓고 그 위에 관을 올려놓고, 뚜껑을 엽니다. 관의 바닥이나 4방에 흰종이를 깔고, 바닥에 지요를 깔고 머리쪽에 베개를 놓은 다음, 들끈을 들어 주검을 관안에 모십니다. 천금을 덮고 들끈을 천금위에 서려서 놓고 흰종이로 덮은 다음 빈 곳을 헌 옷 등으로 보침(메꿈) 합니다. 주상·주부 이하 모든 복인들이 들어와 슬픔을 나타낸 다음 뚜껑을 덮고, 나무못이나 격자(格子) 등으로 뚜껑을 고정시킵니다. 든든한 끈으로 관의 상중하를 묶은 다음 역시 들끈을 상중하에 만듭니다. 방의 동쪽에 머리가 북쪽을 향하게 관을 안치하고, 관 앞에 병풍을 둘러친 다음 발치쪽에 명정을 세웁니다. 영좌를 다시 설치하는데 사진에 검은 리본을 맵니다.
영좌 (靈座)
입관을 마치면 영혼을 별도로 모셔야한다.
교의(交椅)에 영혼을 상징하는 혼백이나 사진을 모시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두고 영좌(靈座)를 설치한다. 이것을 ‘혼백’ 또는 ‘영좌’라고 한다.
4번과 6번의 사이를 벌려 7번의 앞면이 8면의 앞면과 맞붙게 벌린다. 그러면 4번과 6번의 앞면이 보이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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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의 끝을 3cm찜 접어서 끝이 4번과 6번의 앞면에 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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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과 8번의 사이를 벌리고 나머지 한끝을 3cm찜 접어서 끝이 7번과 8번의 앞면에 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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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번과 6번 사이와 7번과 8번 사이를 벌리기 전과 같이 접는다. 그리하면 7번과 8번이 앞면끼리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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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을 접어 4번과 6번 사이에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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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과 5번이 반씩 접혀 중앙에 맞닿는 부분이 앞이고 그 반대쪽이 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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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부분에 3cm너비의 백지로 띠를 두르고 뒤의 이스매에 "上"자 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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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上" 이 서쪽을 향해야 한다.
먼저 교의를 차려놓고 거기에 ‘고복’때 사용한 망자의 웃옷을 한지에 싸 놓은 뒤에 혼백상자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근래에는 사진만 세워 두기도 한다. 혼백은 영혼이 주검에서 떠나 머무는 곳을 상징한 물체로서 한지를 전후좌우로 몇 차례 접어서 만들거나 삼색 실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엮어 만든다.
혼백을 흰 상자에 넣어 모시는데, 이를 혼백상자라 한다.
영좌는 교의 앞에 차려 둔 제상을 일컫는데, 제상 양쪽에는 촛대를 하나씩 세우고 서쪽에는 향로 동쪽에는 향합을 놓는다.
영좌 위에 망자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을 얹어 두기도 한다.
영좌의 오른쪽에는 붉은 비단에 세로로 길게 고인의 관직과 성명을 쓴 명정을 세운다.
영혼을 모시는 절차까지 끝난 셈이다.
* 혼백(魂帛)
혼백이란 죽은이의 혼령이 깃들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삼베·모시·명주 온폭으로 약 70cm정도로 혼백을 접습니다. 먼저 약 8cm 정도씩 접으면 8칸이 나오고 6cm의 여유가 남습니다. 정한 방법으로 혼백을 만들고 중앙 부분에 3cm 너비의 백지로 띠를 두르고 뒤의 이스매에'上'자표시를 합니다. 언제든지 '上'이 서쪽을 향해야 합니다. 백색 뚜꺼운 종이로 상자를 만들고, 복·초혼(復·招魂)을 한 죽은이의 웃옷을 흰 종이로 싸서 상자에 담고, 그 위에 혼백을 얹고, 뚜껑을 덮습니다. 혼백 상자를 영좌의 사진 앞에 모시고 뚜껑을 열어 놓습니다.
* 상복의 제도(服制) 상복이란 죽은이를 기리며 애도해 근신하는 근친들이 일정기간 입는 옷을 말합니다. 고례(古禮)의 복제는 상복의 재질과 봉제방법에 따라 5복이 있었고, 그것을 입는 기간에 따라 9복으로 나뉘어 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고례의 정신을 살리면서 구하기 쉬운 재질과 실용성있는 디자인과 이해하기 쉬운 명칭과 합리적인 입는 기간을 고려해 예시합니다.
* 현대의 상복예시 옛날에는 삼베로 지은 제복을 입었으나 여기에서는 백색한복으로 합니다. 옛날에는 굴건(屈巾)을 썼으나 여기에서는 건(巾)만 쓰기로 합니다. 옛날에는 가장 긴 기간을 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데 3년이 걸린다는 것에 대한 보은으로 3년복 즉, 36개월의 기간으로 했으나 현실의 시대성을 감안 춘하추동 4계월을 모두 겪는 12개월을 기준으로 합니다. 백색한복을 마련할 수 없는 형편이면 차선으로 흑색양복을 입습니다. 흑색양복도 갗추기가 어려우면 현란하지 않은 평상복으로 합니다.
* 상복의 명칭과 기간 옛날의 참최(斬衰)를 중대복(重大服)이라 하고 12개월을 입습니다. 옛날의 재최(齊衰)를 대복(大服)이라 하고 9개월을 입습니다. 옛날의 대공(大功)을 대복(大服)이라 하고 9개월을 입습니다. 옛날의 소공(小功)을 소복(素服)이라 하고 3개월을 입습니다. 옛날의 시마( 麻)를 경복(輕服)이라 하고 장례일까지 입습니다.
* 중대복(重大服·斬衰) 죽은이의 배우자 주상·주부·아들·며느리·딸이 입습니다. 중대복의 예복은 남자의 경우 백색 한복정장에 황색(삼베)건을 쓰고, 여자는 백색 한복정장에 황색(삼베) 머리쓰개[蓋頭]를 씁니다. 부득이 흑색 양복이나 평상복을 입을 때도 남자는 황색건, 여자는 황색 머리쓰개를 씁니다. 예복 아닌 평상복으로는 현란하지 않은 한복이나 양복·양장을 입는다. 대복(大服·齊衰) 죽은이의 부모와 형제자매·손자·손녀·사위 및 그 배우자가 입습니다. 대복의 예복은 남자의 경우 백색 한복정장에 백색(무명)건을 쓰고, 여자는 백색 한복정장에 백색 머리쓰개를 씁니다. 만일 부득이 흑색 양복이나 평상복을 입을 때도 납자는 백색건, 여자는 백색 머리쓰개를 씁니다. 예복 아닌 평상복으로는 현란하지 않은 한복이나 양복·양장을 입습니다.
중복(中服·大功) 죽은이의 2촌 존손과 4촌 비속·4촌 형제자매 및 그 배우자·외손자·외손녀가 입습니다. 중복의 예복은 남녀 모두가 백색 한복정장에 왼팔에 황색(삼베)완장을 두릅니다. 부득이 양복·양장을 입을 때도 황색 완장을 두릅니다.
* 소복(小服·小功) 죽은이의 3촌 존속과 4촌 비속·4촌 형제자매 및 그 배우자가 입습니다. 소복의 예복은 남녀 모두가 백색 한복정장에 왼팔에 백색(무명)완장을 두릅니다. 만일 부득이 양복·양장을 입을 때도 백색 완장을 두른다. 예복이 아닌 평상시의 복장은 현란하지 않은 옷을 입습니다.(중복도 같습니다.)
* 경복(輕服· 麻) 죽은이의 8촌 이내의 존비족 형제자매 및 그 배우자와 기타 죽은이를 애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입을 수 있습니다. 경복의 예복은 남녀 모두가 백색 한복정장에 왼팔에 흑색 완장을 두릅니다. 만일 백색 한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었을 때도 흑색 완장을 두릅니다. 예복이 아니라도 현란한 옷은 입지 않습니다.
* 성복(成服)
고례에는 대렴을 한 다음날에 성복을 한다고 했으나 3일장을 치르는 현대는 입관한 즉시 성복을 합니다. 성복이란 주상·주부 이하 모든 복인들이 정해진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성복(成服) 대렴 입관한 즉시 주상·주부 이하 복인들은 다른 방에서 정해진 상복을 갖추어 입습니다. 풀어내렸던 머리는 걷어 올리고 맨발이었던 발에도 버선이나 양말을 신습니다. 한복을 입은 경우 한쪽 팔을 뺐던 소매도 제대로 꿰어 입습니다.
성복례(成服禮) 성복례는 주상·주부 이하 복인들이 슬픔에 젖어 서로 조문하지 못했으므로 복인들이 조문하는 절차입니다. 고례에는 아랫사람이 차례대로 웃어른 앞에 조문했으나 현대는 남녀 복인간에 조문하는 절차로 진행합니다. 집례(集禮·讀服禮)가 영좌 앞의 제상에 술·과실·포·젓갈 등 제수를 차립니다. 남자는 영좌 앞에 동쪽에서 서향에 서고 여자는 서쪽에서 동향에 서는데 영좌에 제일 가까운 위치에 주상과 주부가 서고 이하는 차례대로 섭니다. 집례가 분양하고 술을 따릅니다. 모두 끓어앉아 극진히 슬픔을 표하고 일어납니다. 남자는 서쪽의 여자를 향해 두 번 절하고 여자는 동쪽의 남자를 향해 네 번 절을 합니다. 고례에는 절을 하지 않고 곡을 했으나 현대의 도시생활에서는 곡을 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절하는 것이고, 엄숙 경건한 의식이므로 겹절을 합니다. 고례에는 성복례를 지낸 다음에나 외부의 손님을 맞았었습니다.
* 치장(治葬) 치장이란 주검을 땅에 묻든 화장하여 납골하든 죽은이에 대한 마지막 갈무리를 하는 절차입니다. 장례의 시기 고례에 의하면 죽은때부터 치장할 때까지의 기간은 다음과 같다. 지위가 높지 않은 선비가 죽으면 유월장(踰月葬)이라 해서 죽은 달을 건너 뛰어(踰月)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장례치르는 달사이에 한 달을 두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죽으면 3월장(三月葬)이라 해서 죽은 달을 빼고 3월, 그러니까 2월에 죽었으면 5월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현대는 3일장 이라 해서 죽은 다음 다음날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3일장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사정이 있을 때는 3일을 초과해서 장례를 치룹니다. 묘지의 규모 고례에는 신분에 따라 묘지의 규모가 달랐습니다. 가장 높은 신분이라도[一品官] 묘역의 주위가 64m를 넘지 못했고, 작은 규모[七品官 이하]는 묘역 주변의 길이가 22m 이하여야 했습니다. 현대는 정부에서 전체 넓이를 6평 이하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묘지의 규모는 토지의 효용성과 관리능력에 따라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 묘지조성 축문 묘지공사를 하기 전에 토지의 신[山神]에게 아뢰는 예를 올립니다.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은 상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평상복으로 지냅니다. 산신제의 제수는 술·과실·포·젓(酒果脯 )을 차립니다. 산신제를 지내는 장소는 묘지 예정지 내의 동북(東北)쪽에서 북쪽(위쪽)에 제단을 차려 제수를 차리고 남쪽에서 북향해 지냅니다. 토지의 신은 지하에 있을 것이니까 분향은 않고 뇌주( 酒) 재배만 하고 참신(參神) 헌주 정저(獻酒·正箸)하고 독축(讀祝)·하저(下著)한 다음 사신(辭神)하는 순서로 지냅니다.
* 산신제축문 한문서식 維 檀君紀元四千三百三十年歲次丁丑 五月戊申朔 二十二日己巳 學生金吉童 敢昭告于 土地之神今爲○○高等學校校長金敬培之父 ○○郡守金海金公 營建宅兆 神其保佑 殺後無艱 謹以 淸酌脯 祗薦于神 尙 饗 연월일과 산신제를 지내는 제주의 직급성명은 사실대로 씁니다. '幼學'은 직급이 없는 경우입니다. 직급·성명은 주상을 사실대로 씁니다. 묻힐 사람에 대한 주상과의 관계와 직급·성명을 사실대로 씁니다. 직급이 없으면 '○○郡守' '學生'으로 고치고, 주상의 어머니이면 '之母 孺人(夫人) 德水李氏(사실대로)'로 씁니다. '營建宅兆'는 새로 단독 묘지를 조성하는 경우입니다. 만일 이미 묻힌 부인의 묘지에 합장하는 경우라면 '合 于孺人(夫人) 德水李氏(사실대로) 之墓'라 써야 합니다.
* 산신제축문 한글서식 단군기원 4330년 5월 22일에 幼學金吉童은 土地의 神에게 감히 아뢰나이다. 이제 아버님 金海金公의 무덤을 지으려하오니 神께서는 보살피사 어려움이 없게 하소서. 삼가 술과 음식을 차려 정성을 다해 받들어 올리오니 어여삐 여기사 흠향하시옵소서.
만일 이미 조성된 부인의 묘지에 합장할 경우에는 먼저 묻힌이에게도 주상이 아룁니다. 아뢰는 장소는 묘지의 정면 앞에서 묘지를 향해 지낸다. 제상에 차리는 제수는 산신제와 같습니다. 지내는 절차는 분향, 뇌주, 참신, 헌주, 정저, 독축, 낙저, 사신의 순서입니다.
* 고선장(告先葬)축문 한문서식 維 檀君紀元四千三百三十年歲次丁丑 五月戊申朔 二十二日己巳 孤哀子敬培敢昭告于 顯 夫人(孺人) 德水李氏之墓 敬培罪逆凶 先考○○郡守府君見背 日月不居 葬期巳屆 今以 合封于墓右 昊天罔極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축문 중 연월일·직급·성명 등은 사실대로 씁니다. 주 의 '合封于'는 어머니의 묘지에 아버지를 합장하는 경우이므로 먼저 묻힌이가 아버지이고 어머니를 합장할 경우에는 ' 于'로 고칩니다. 주 의 '墓右'는 어머니의 묘에 아버지를 합장하는 경우이므로 아버지의 묘에 어머니를 합장할때는 '墓左'로 고칩니다. 예절(여기)에서는 左 右는 상좌(자기들)의 左 右 입니다.
* 고선장축문 한글서식 단군기원 4330년 5월 22일에 외롭고 슬픈 아들 敬培는 어머님 夫人 德水李氏의 산소에 감히 아뢰나이다. 敬培가 크나큰 죄를 지어 아버님 ○○군수께서 세상을 버리시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장례를 모실때가 되었나이다 이제 어머님의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자 하오니 슬픈마음 가눌 길이 없나이다. 삼가 술과 과실을 차려 공경을 다해 아뢰나이다.
한문서식과 같이 연월일·관직·성명·관계 등을 사실대로 고칩니다. 만일 조상묘지의 근처(先塋)에 묘지를 조성할 경우에는 같은 곳의 조상 묘지중 가장 웃대 조상의 묘에서 주상이 아룁니다. 해당 묘지 앞에서 합장할 때와 같은 상차림과 절차로 지냅니다.
* 고 선영(告先塋)축문 한문서식 維 檀君紀元四千三百三十年歲次丁丑 五月戊申朔 二十二日己巳 曾孫敬培敢昭告于 顯曾祖考 學生府君 顯曾祖 孺人德水李氏之墓 今爲 孫○○郡守達柱 營建宅兆 于左 謹以 酒果用伸虔告謹告 연월일 관계 직급 성명 등은 사실대로 씁니다. '營建宅兆'는 새로 묘지를 조성할 때이고, 합장할 때는 사실대로 '合 '이라 씁니다. 위치는 사실대로 쓰고, 합장일 때는 먼저 묻힌이를 사실대로 '孫婦 夫人 德水李氏之墓'라 씁니다.
* 고 선영축 한글서식 단군기원 4330년 5월 22일에 증손敬培는 증조할아버님과 증조할머님 덕수이씨의 산소에 감히 아뢰나이다. 이제 손자 ○○군수 達柱의 무덤을 왼쪽 옆에 지으려 하나이다. 삼가 술과 과실을 차려 공경을 다해 아뢰나이다. 한문서식과 같이 연월일·관계·직급·성명·위치 등은 사실대로 고쳐씁니다. 주상의 자기지칭 위 묘지조성축문의 고선장축문중에 주상이 자기지칭을 고애자(孤哀子)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상이나 죽은이의 아들이 자기를 어떻게 지칭하는가를 예시합니다. 고자(孤子)는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이고, 애자(哀子)는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이고, 고애자(孤哀子)는 누가 먼저이든 부모가 다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이고, 고손(孤孫)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간 다음에 할머니는 살아계시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주상인 손자이고, 고애손(孤哀孫)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간 다음에 누가 먼저이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셨을때의 주상인 손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묘지조성 먼저 묘역주변을 표시하고, 그 중앙에 외광과 내광(外·內壙)을 팝니다. 외광은 너비 2m 길이 3m 정도, 깊이 1m 이상을 판다. 내광은 외광의 중앙에 너비 50cm에 길이는 죽은이의 키보다 20cm 정도 더 길게 50cm 정도 깊이로 파고 곱게 다듬습니다.
♠ 세째날
* 조우조(朝于祖) 조우조는 죽은이가 묘지를 향해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조상을 뵙는 절차입니다. 주상 이하 복인들이 관 앞에 차례대로 서고 집례가 아룁니다.
* 천구고사(遷柩告辭) 한문서식 : 今以 吉辰 遷柩 敢告 천구고사 한글서식 : 이제 장례를 뫼시는 날이 되었사옵기 관을 옮기고자 감히 아뢰나이다.
사당 앞으로 명정·혼백·관·주상·주부·복인의 순으로 옮겨 배설합니다. 집례가 영좌 앞에 꿇어앉아 아룁니다.
* 조조(朝祖)고사 한문서식 : 請 朝祖 조조고사 한글서식 : 청하나이다 조상 신위 앞에 떠나는 예를 드리소서.
주상 이하 복인들이 극진히 슬픔을 나타낸 후 본래의 자리로 옮깁니다.
* 설 조전(設祖奠) 죽은이가 살던 집에서 마지막으로 대접받는 절차입니다. 영좌 앞에 상을 차리고 집례가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습니다.
* 조전(祖奠)고사 한문서식 : 永遷之禮 靈辰不留 今奉柩車 式遵道 조전고사 한글서식 : 영원히 떠나시는 예를 행하겠나이다. 혼령께오서 오래 머무실 수 없으시기에 이제 영구차에 받들어 모시고자 하나이다.
주상 이하 극진히 슬픔을 나타내고 절을 합니다. 천구(遷柩) 영구차에 죽은이를 모시는 일입니다. 조전상을 물리고 집례가 아룁니다.
* 천구고사 한문서식 : 今遷柩 就輿 敢告 * 천구고사 한글서식 : 이제 옮겨서 관을 영구차에 모시겠기에 감히 아뢰나이다. * 관을 조심스럽게 영구차에 싣습니다.
* 발인(發靷)·견전(遣奠)
영구차 앞에 영좌를 설치하고 상을 차립니다. 주상 이하 모두가 정한 자리에 섭니다. 집례자가 술을 올리고 아룁니다.
견전고사 한문서식 : 靈 旣駕 往則幽宅 載陳遣禮 永訣終天 견고고사 한글서식 : 혼령을 이미 영구차에 모셨사오니 이제 가오시면 영면하실 묘지이옵나이다. 영원히 떠나시는 예를 올리오니 이제 가시면 영원하시나이다.
* 구행(柩行) 구행이란 장례행렬입니다. 요사이는 영구차에 함께 타고 가지만 고례에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행렬을 지었습니다.
* 방상씨(方相氏)
험한 얼굴, 검은 웃옷에 붉은 아래옷, 왼손에 창 오른손에 방패를 든 사람 크기의 인형 두 개가 좌우에 섭니다. 앞길을 개척하고 호위하는 것입니다.
* 명정(銘旌) 누구의 장례행렬인가를 나타내는 깃발입니다.
* 혼백(魂帛)
혼백과 사진. 옛날에는 영여(靈輿)라 해서 가마에 싣고 갔습니다.
* 만장(輓章) 죽은이를 기리고 슬퍼하는 글을 쓴 깃발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천에 죽은이를 기리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공포(功布) 장대에 2m 길이의 삼베천을 매단 깃발입니다. 길이 좋고 나쁨을 알리는 신호기 역할을 합니다.
* 대여(大輿)
관을 실은 영구차를 말합니다. 주상과 복인들이 차례로 따고 그뒤를 호상 손님이 따릅니다.
* 노제(路祭) 장례행렬이 죽은이의 연고지나 친지가 사는 곳을 지날 때는 멈추어 사실을 고하는 제례의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 구지(柩至) 장례행렬이 묘지에 도착해서 치르는 일입니다. 묘지의 남쪽에 관의 상(上)이 북쪽을 향하게 모시고, 관의 서쪽에 영좌를 설치하고 명정으로 관을 덮습니다. 주상 이하 남자 복인들은 묘지의 동쪽에서 서향해 서고, 주부 이하 여자 복인들은 묘지의 서쪽에서 동향해 서서 슬픔을 나타냅니다. 이어 영좌 앞에서 손님을 맞습니다.
* 하관·성분(下棺·成墳)
주검을 묘지 광중에 모시고 봉분을 짓는 일입니다. 명정을 걷고, 관묶음을 풀고, 관까지 매장할 때는 들끈으로 관을 들고, 관을 벗길 때는 뚜껑을 열고 시신만을 들끈으로 들어 광중 내광안에 반듯하게 모십니다. 광중 안의 빈 곳을 흙으로 채우고, 명정으로 덮은 다음 횡대(橫帶)로 덮습니다. 주상의 시신의 가슴 부위에 청색 폐백을, 다리 부위에 홍색 폐백을 횡대를 들고 얹습니다. 주상은 절하고 모두 극진히 슬픔을 나타냅니다. 먼저 고운 흙으로 외광을 채우고, 시신의 발치에 지석을 놓고, 봉분을 지어 떼를 입힙니다.
* 사후토(祀后土) 묘지를 조성했으므로 산신에게 아뢰는 절차입니다. 모든 절차는 묘지 조성전에 지냈던 산신제 방법과 같습니다. 다만 축문중의 '營建宅兆(무덤을 지으려 하오니)'를 ' 玆幽宅(무덤을 지었사오니)'으로 고칩니다.
* 제주(題主) 신주에 글씨를 쓰는 일이다. 영좌의 동남쪽에 탁자를 놓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서향해서 씁니다. 주상 이하 복인들은 탁자의 앞에서 북향해 섭니다.
* 신주의 한문서식 : 顯考 ○○郡守 府君 神主 할아버지는 '祖考', 할머니는 '祖 '이다. 주 의 관직은 사실대로 쓰는데 어머니나 할머니는 '孺人(夫人)'이라 쓰고 성씨를 씁니다. 신주를 보아서 왼쪽 아래에 '孝子○○奉祀'라 씁니다.
* 제주제(성분제·반혼제) 묘지 앞에 혼백을 모시고 혼백 앞에 신주를 모신 다음 상을 차리고 지냅니다. 모든 절차는 차례(茶禮)를 지낼 때와 같은데 축문서식이 다릅니다.
* 제주축문(題州祝文)
* 한문서식 維檀君紀元四千三百三十年歲次丁丑 五月戊申朔 二十二日己巳 孤子敬培敢昭告于 顯考 ○○郡守府君 形歸 神返室堂神主旣成 伏惟 尊靈 舍舊從新 是憑是依 모든 내용은 사실대로 씁니다. 주 은 만일 신주를 만들지 못했으면 '神主未成'이라 씁니다. 주 는 신주를 만들지 못하고 사진을 모셨으면 '舍舊從影'이라 씁니다.
* 제주축문 한글서식 이제 단군기원 4330년 5월22일에 외로운 아들 敬培는 아버님 ○○군수 부군 앞에 감히 아뢰나이다. 남기신 몸은 무덤에 묻히셨사오니 혼령께오서는 집으로 돌아가사이다. 신주를 이미 이룩하였사오니 혼령께오서 옛 것을 버리시고 새로움을 좇으시어 신주에 깃드시고 신주에 의지하소서. 모든 내용은 한문서식을 참고해 사실대로 씁니다.
* 반곡(反哭) 주상 이하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절차입니다. 묘지로 갔던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영좌를 궤연( 筵)에 모시고 극진히 슬픔을 나타냅니다.
* 궤연( 筵) 궤연은 주상이 상복을 입는 기간동안 영좌를 모시는 장소입니다. 조용한 방에 병풍치고, 교의를 놓고 교의 위에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그 앞에 제상 향안을 배설합니다. 죽은이가 평소에 쓰던 물건들을 궤연에 배설합니다.
* 상식(上食)·삭망(朔望) 상식은 궤연을 모시는 동안 조석으로 상을 차려 올리는 일입니다. 삭망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상식보다 낫게 상을 차려 올리는 일입니다. 조석과 나들이할 때는 살아계실 때와 같이 받듭니다.
* 답 조장(答弔狀) 삼우제를 지낸 다음에 조문왔던 손님들에게 인사장을 보냅니다.
답조장의 한글서식 저희 집안의 흉화로 아버지께서 홀연히 이승을 버리시고 떠나시니 끝없는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우러러 어지신 은혜로 위문의 말씀을 내리심을 받자와 슬픈 마음을 가눌 수 있었습니다. 첫여름이라 덥사온데 형께서 존체만복하심을 빌면서 삼가 글월로 사례하고자 하오나 다 펴지를 못하겠나이다. 단군기원 4330년 5월 27일 중대복인 김경배 아룀 李吉純 존형좌하
* 상중제의(喪中祭儀) 상중제의란 사람이 죽어서 상복을 입기 시작한 때로부터 상복을 벗고 통상생활을 할 때까지의 사이에 죽은 이에게 올리는 추모행사입니다.
♥ 고례의 상중제의
* 초우제(初虞祭)
장례를 치른 날에 지냅니다.
* 재우제(再虞祭) 초우제를 지내고 처음으로 맞는 유일(柔日·일진에 乙丁己辛癸가 드는 날)의 아침에 지냅니다.
* 삼우제(三虞祭) 재우제를 지낸 다음에 처음으로 맞는 강일(剛日· 일진에 甲丙戊庚壬이 드는 날), 즉 재우 다음날 아침에 지냅니다.
* 졸곡제(卒哭祭) 죽은 때로부터 3개월이 지난 다음에 맞는 강일을 골라 아침에 지냅니다.
* 부제( 祭)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죽은이가 남자면 할아버지, 여자면 시할머니의 신주 앞에 죽은이의 신주를 붙여서 모시는 제사로서 졸곡제의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사당이 없으면 지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소상(小祥) 일주기(一周忌)입니다. 남편이 주상인 때는 10개월만에 지냅니다.
* 대상(大祥) 이주기(二周忌)이며 탈상(脫喪)제라고도 합니다. 남편이 주상인 때는 일년만에 지냅니다. 상복을 벗고 소복(素服)을 입습니다.
* 담제( 祭) 대상후 계절의 중월(仲月·음력 二·五·八·十一月)에 날을 잡아 지냅니다. 상복을 벗고 입었던 소복도 벗고 평상복으로 환원하는 제사입니다.
* 길제(吉祭) 담제를 지낸 다음다음달에 일진의 정·해(丁·亥)가 드는 날을 골라 지냅니다. 죽은이가 장자손(長子孫)일 때 웃대 신주를 고쳐쓰는 제사입니다. 죽은이가 장자손이 아니거나 사당이 없는 집에서는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 연상(練祥) 연상은 처상(妻喪―忌子는 父在母喪)인데 사망한 달부터 11개월 만에 丁日에 지낸다.(小祥과 같습니다) 고례 상중례의의 절차 상중제의 중에서 부제와 길제를 제외한 기타의 제의는 제수(祭羞)와 절차가 기제사(忌祭祀)와 같으므로 제례편의 기제사를 참고하고 여기에서는 축문의 내용과 기타 다른 부분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 우제(虞祭) 축문을 주상의 오른쪽에서 읽습니다.
* 우제(虞祭)축문 한문서식 維檀君紀元 四千三百三十年歲次丁丑 五月戊申朔 二十二日己巳 孤子敬培敢昭告子 顯考 ○○郡守府君 日月不居 奄及初虞 夙興夜處 哀慕不寧 謹以 淸酌庶羞 哀薦 事 尙 饗 연월일 주상자칭 이름은 사실대로 쓰고 아내에게는 '敢昭告于'의 '敢'을 쓰지않고, 비속(卑屬)에게는 '敢昭'를 쓰지 않습니다. 죽은이의 표시는 사실대로 씁니다. 재우에는 '再虞', 삼우에는 '三虞'라 고쳐씁니다. 8자를 아내에게는 '悲悼酸苦 不自勝堪'이라 씁니다. '謹以'를 아내 이하에게는 '玆以'라 씁니다. '哀薦'을 아내 이하에게는 '陣此'라 씁니다. ' 事'를 재우에서는 '虞事', 삼우에는 '成事'라 씁니다.
* 우제(虞祭)축문 한글서식 "이제 단군기원 4330년 5월 22일에 외로운 아들 敬培는 아버님 ○○군수부군 앞에 감히 아뢰나이다. 해와 달이 머물지 않아 언듯 초우를 당하오니 밤낮으로 슬프고 흠모하옵는 마음으로 가득하옵나이다. 삼가 맑은 술과 음식을 차려 슬픈 마음으로 받들어 올리며 초우의 의식을 행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사 흠향하시옵소서. " 연월일 기타 등은 한문서식에 의해 고쳐씁니다.
초우제를 지내고 혼백을 정갈한 땅속에 묻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후에는 궤연에 신주만 모십니다.
* 졸곡(卒哭) 축문을 주상의 왼쪽에서 읽는다. 졸곡부터 길사(吉事)이기 때문입니다.
* 졸곡(卒哭)축문 한문서석 우제축문과 같게 쓰는데 다만 '孤子'를 '孝子'로 '初虞'를 '卒哭'으로, ' 事'를 '成事'로 쓰는 것만 다릅니다. 만일 다음날 부제( 祭)를 지낼 것이면 '成事' 다음에 '來日 于 祖考學生 府君(여자면 '祖 孺人 本貫姓氏')이라 써 넣습니다.
* 부제( 祭) 우리 나라의 전통관습으로는 궤연을 받드는데 초우 후에 혼백은 땅에 묻었습니다. 부제때 신주를 사당에 붙여모신다면 궤연은 비워지게 됩니다. 미루어 부제는 궤연을 모시지 않는 경우에 지내는 것이라 이해됩니다. 궤연을 모시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므로 여기에서는 부제에 관해서는 생략합니다.
* 소상(小祥)축문 한글서식 단군기원 4331년 5월 20일에 큰아들 敬培는 아버님○○군수부군앞에 감히 아뢰나이다. 해와 달이 머물지않아 언 듯 소상을 당하오니 밤낮없이 슬프고 흠모하옵는 마음으로 가득하옵니다. 삼가 맑은 술과 음식을 차려 슬픈 마음으로 받들어 올리며 소상의 의식을 행하오니 어여삐 여기사 흠향하시옵소서.
* 대상(大祥) 모든 절차는 기제사와 같다. 다만 축문을 소상축문과 같게 쓰되 '小祥'을 '大祥'으로, '常事'를 '祥事'로 고치면 됩니다. 대상을 지내면 상복을 벗고 소복을 입습니다. 담제( 祭) 모든 절차는 기제사와 같습니다. 다만 축문을 소상 축문과 같이 쓰되 '小祥'을 ' 祭'로 '常事'를 ' 事'로 고치면 됩니다. 담제를 지내면 소복도 벗고 완전한 평상복을 입습니다.
* 길제(吉祭) 죽은이가 장자손이고 사당이 있을 때만 담제 다음날 지냅니다. 즉 할아버지의 신주가 죽은 아버지의 봉사(封祀)로 '顯考'라 쓰여진 것을 '顯祖考'로 고치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4대(고조까지)봉사를 하는 가정에서는 고조 내외분의 신주를 다른 현손(玄孫)에게 옮기거나, 현손이 다 죽었으면 친진(親盡)이 되었으므로 신주를 없애는 것입니다. 다른 신주는 죽은이를 기준으로 쓰여진 것을 새로 제주·봉사자가 된 사람을 기준으로 고칩니다.
* 길제축문 한문서식 維 檀君紀元 四千三百一年歲次己卯 九月甲子朔初三日丙寅五代孫 敬培敢昭告于 顯五代祖考 ○○○○府君 顯五代祖 ○○○氏 (이하 모든 신위를 차례대로 이어쓴다) 玆以先考 ○○郡守 府君 喪期己盡禮當 遷主入廟 顯吳代祖考 ○○○○府君 顯五代祖 ○○○氏 親盡 神主當 顯高祖考 ○○○○府君 顯高祖 ○○○氏 (이하 모든 신위를 차례대로 이어씁니다) 神主 今將改題 世次迭遷 不勝堪愴 謹以 酒果用伸 虞告謹告 길제 후에 죽은이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고 궤연을 철폐합니다. 근래 사당을 모시는 경우가 흔하지 못하므로 자상한 언급은 생략합니다.
현대의 상중제의 현대는 복상기간이 2년까지 입는 사람이 드물고, 사당을 모신 경우도 흔치 않으므로 고례의 상중제의대로 행해지기 어렵습니다. 궤연을 모시지도 않는 사람이 많으며, 사찰(寺刹)에 위패를 붙이고 49일만에 사십구재를 지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불교의식에 의한 것입니다. 혹은 집에서 궤연을 모시더라도 백일만에 탈상하는 경우도 있는 바 현대의 복상관행은 전통의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중제의는 고례의 의례중에서 적절하게 원용하는 방법과 가정의례준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현대복제에 의한 상중제의(예시) 상복의 명칭을 바꾸고 복상기간도 12개월을 최장기간으로 조절하는 현대복제를 위에서 예시했으므로 그에 의한 상중제의를 예시합니다.
* 우제(虞祭) 우제는 고례와 같게 지냅니다. 삼우제를 재우 후 첫 공휴일 아침에 지내고 묘지에 성묘를 합니다. 삼우제를 경복(輕服)을 벗는 제례라는 의미로 경복제(輕服祭)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 소복제(小服祭) 죽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난 첫 공휴일 아침에 지냅니다. 소복제는 소복(小服)을 입은 복인들이 소복을 벗는 제사입니다. 소복제를 지내고 묘지에 성묘를 합니다.
* 중복제(中服祭) 죽은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첫 공휴일 아침에 지냅니다. 중복제는 중복(中服)을 입은 복인들이 중복을 벗는 제사이다. 중복제를 지내고 묘지에 성묘를 합니다.
* 대복제(大服祭) 죽은 날로부터 9개월이 지난 첫 공휴일의 아침에 지냅니다. 대복제는 대복(大服)을 입은 복인들이 대복을 벗는 제사입니다. 대복제를 지내고 묘지에 성묘를 합니다.
* 중대복제(重大服制) 일주년이 되는 제사입니다. 중대복제는 가장 무거운 상복을 벗는 제사입니다. 중대복제를 지내고 묘지에 성묘를 합니다.
* 개제주제(改題主祭) 고례의 길제와 같습니다.
* 연상제(練祥祭) 최장기복을 12개월로 하며 소상에 준한 제사입니다. 죽은 달부터 11개월 되는 달 丁일에 지냅니다. 소상에 준하는 제사이므로 묘지에 성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