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오늘 6월 6일 현충일이네요.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금강경 제11분, 무위복승분 - 이라고 하는 내용부터 할 차례입니다.
無爲福勝分 第十一
須菩提야 如恒河中所有沙數하야 如是沙等恒河가 於意云何
수보리야 여항하중소유사수하야 여시사등항하가 어의운하오
是諸恒河沙가 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시제항하사가 영위다부아 수보리언하사대 심다니이다.
世尊이시여 但諸恒河도 尙多無數어든 何況其沙리잇가
세존이시여 단제항하도 상다무수어든 하황기사리잇가
須菩提야 我今實言으로 告汝하노니 若有善男子善女人이
수보리야 아금실언으로 고여하노니 약유선남자선여인이
以七寶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 以用布施하면
이칠보로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하야 이용보시하면
得福이 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득복이 다부아 수보리언하사대 심다니이다 세존이시여
佛告須菩提하사대 若善男子善女人이 於此經中에
불고수보리하사대 약선남자선여인이 어차경중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而此福德이 勝前福德하리라
내지수지사구게등하야 위타인설하면 이차복덕이 승전복덕하리라.
제목이 無爲福이 秀勝하다 - 그랬습니다. 무위복이 수승하다. 무위복.
저 앞에도 이제 無爲法으로서 차별을 만들었다- 이런 말이 있었죠.
불교에서는 이 無爲라고 하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왜 그 무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고, 없던 것을 일으켜 세우고 만들고 조작하고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을 有爲라고 합니다. 作爲, 人爲 그런 말
을 쓰죠. 그런데 무위라고 하면은 그런 작의적인 게 아니고 인위적인 게 아니고
본래 있던 것, 이미 있는 것, 사람이 만들기 전에도 있고, 만들어 봐야 그것은 만들어
지지도 않는 것- 이런 것을 무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이 무위복, 이미 있는 것, 본래적인 것, 그런 행복과
그런 복덕과 그런 신통과 이것을 숭상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찾는 것을 불교의 최종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걸 소위 成佛이라고 하죠. 성불이란 지어서 되는 게 아니예요. 이룰 成자를 쓰기는
합니다만은, 이루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고 이미 있는 복을 두고 성불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견성이니 성불이니 뭐 불교에서 어떤 기도나 정진이나 간경이나 참선
이나 그런 숭고한 노력을 설사 기울인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그런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복이나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개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죠. 그런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
는데 그게 아니고 본래 있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느끼고, 깨닫고, 보고 하려는 그
런 노력이죠. 그러니까 이미 있습니다. 보던 못보던, 알던 모르던 이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조작이 없는 복이고, 무위복이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금강경은 대승정종분, 제3분에서 가장 큰 가르침이면서 正-宗- 바른 가르침이고 그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다, 라고 제목을 그렇게 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이야
기 했는고 하니
중생들을 제도했으되 제도한 바가 없다. 제도했다고하는 그런 相을 도저히 낼 수 없
게 되어 있다 이치가. 왜 그런고 하니 사람사람이 본래로 제도가 되어있고, 이미 성불
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하는 그런
의미죠. 그러므로 相을 낼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이치를 이야기했습니다. 거의 맥락
이 똑같이 흐르고 있어요.
여기 이제 무위복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본래적인 것,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 이것을
드러내는 이야기이고 그것을 드러내는 금강경의 가르침이 또한 바로 무위복이 된다,
무위복을 드러내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역시 금강경 그 자체도 무위복이 된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수보리야, 항하 강에 있는 모래수와 같은, 이와 같은 항하 강이 있다고 하자. 어
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항하강의 모래가 얼마나 많음이 되겠는가?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항하강에 있는 모래 수, 그 모래 수와 같은 항하강이
있고, 그 항하강의 모든 모래 수, 그게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말이죠. 그 뭐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하기를,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但諸恒河도 尙多無數어든 - 다만 저 여러 항하강도 오히려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거든,
왜 그렇죠? 항하강에 있는 모래숫자와 같이 많은 항하 강, 이렇게 했으니까 그래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항하강을 이야기했으니까 항하강의 모래수하고 똑 같죠. 그
러니까 무수죠. 그런데 하물며 그 많고 많은 항하강에 있는 모래이겠습니까?
어찌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하황기사리잇가.
須菩提야 我今實言으로 告汝하노니 -
내 참 진실한 말로 내가 그동안 방편설로 많이 하긴 했다만은 지금 여기서 금강경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진실한 말로서 내 그대에게 고하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서 이와 같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삼천대천세
계에 가득 채워서, 금은 보화를 가지고요, 이러한 항하강의 모래수가 뭡니까? 항하
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항하강이 있고 그 많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지구- 삼천
대천세계를 지구라고 합시다. 그런 지구위에다가 가득 금은보화를 쌓아서 보시를 했
다고 하자. 그랬을 경우 得福이 多不아- 얻는 복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랬습니다.
須菩堤가 言하사대 甚多니이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須菩堤하사대,-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사대,
善男子善女人이 이 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금강경 전체는 많으니까 그만
두고 사구게 만이라도 수지해서,
이 受持라는 것은 일단 써서 경책을 지고 다니는 것을 말하고, 지고 다님으로 해서 지
니고 다님으로 해서 그것이 내 마음에 간직되는 것- 이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수지라
는 것이, 받아 가지다 라고 했는데 종이와 먹으로 된 책을 우리가 핸드백이나 걸망이
나 조래기나 자기 소지품을 담고 다니는 모든 거기에, 항상 읽든 안읽든 간에 지니고
다니는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아주 중요해요.
근데 저도 뭐 어디 나갈 때 스님들이 들고 다니는 조래기라고 있습니다. 어깨에 걸고
남방스님도 다 걸고 있고 북방스님도 그렇고, 다 그런걸 가지고 다니는데, 거의 비슷
하죠, 거기에다가 읽든 안읽든 자기가 좋아하는 경전, 금강경이 됐든, 천수경이 됐든,
임제록이 됐든 그걸 넣어서 어디를 출행을 하면은 왠지 마음이 든든해요.
근데 그걸 어쩌다 빠트리고 나가면 섭섭하고 어디가 빈 것 같고 그래요.
그래서 일단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렇게 일차적인 수지를 함으로 해서 그 다음에 우리 마음에 아로새기는 그런 수지,
마음에 받아가지는 그런 수지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지, 일차적인 책을 지니고 다니는
자세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마음에 그걸 지니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물론 뭐 큰 근기야 소위 佛器라는게 있죠,
그릇의 어떤 경계를 초월한 그런 그릇이야 가능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게 불
가능하니까 그래서 이제 책을 일단 지니고 다녀라.
지니고 다닐 때에는 지니고 다니고, 최소한도 금강경 한권 정도는 읽든 안읽든 책상
에 꽂혀 있는 것, 그것도 일종의 수지가 됩니다.
사구게 등 만이라도 그렇게 해서 爲他人說-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해준다면은 而此
福德이 勝前福德하리라.-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 훨씬 수승하리라. 그랬습니다.
앞의 복덕이 뭐죠?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항하강에 있는 모래 수와 같은 그런
삼천대천세계, 이 지구 - 거기에다 칠보로서 가득 채워가지고 사람들에게 보시를 했
다 이거죠.
서울 운동장에다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그걸 가지고 보시를 했다손 칩시다. 그것
만 해도 어디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항하 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상상을 초
월한 숫자입니다.
보통 세속적인 그런 어떤 이론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예요.
깨달은 사람의 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비유를 구사하는데도 아주 자유자재
입니다.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내용이죠,
어쨌거나 무위복이 수승하다- 진리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이고, 진리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이미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복, 이미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그런 복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금강경이나 내지 금강경 사구
게가 그대로 무위복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의 이치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복과, 둘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 금강경을 통해서 어떻습니까? 본래 가지고 있는 복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거죠.
그야말로 어두운 밤에 등불이 있음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잘 찾을 수 있고,
창고 안에 보물인지 돌덩이인지를 분별해서 보물을 들고 나올 수 있다고 하는 것-과
우리가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면은
아! 이 금강경의 가르침이야말로 그야말로 무위복이구나 , 그런것을 우리가 느낄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부처님의 가르침,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되고, 또 그것을 자
꾸 가까이하고 읽고 쓰고 또 사유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게 불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또 궁극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치를 깨달으면 그 뿐이예요 불교는.
이치를 깨달으면 그 뿐인데 그렇지 못하니까 여러 가지 방편이 또 등장하게 되는 것
이죠.
그래서 그만 방편을 숭상하다보니깐 그냥 몇 십년이고 선방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
고,
절에 다니는 일반 신도도 몇 십년을 법당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고, 몇 십년을
주력만 외우는 사람이 있고,
몇 십년을 사경만 하는 사람이 있고,
뭐 익숙하니까 하고, 하다보면은 그게 또 업이 되어가지고요,
마음에 뭔가 흐뭇함을 느끼고 고런 재미도 있습니다. 있기는. 결과야 어떻게 되었던
간에.
그러나 이제 우리는 부단히 발전하고 마음이 열려야 되고,
불교를 이해하는 것도 자꾸 이제 열린 마음으로 발전이 있어야 그게 정말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의 보람이 아닐까 이런 생각합니다.
그다음 그 밑에 이야기가 그런 뜻을 바로 받쳐주고 있어요.
正敎 - 바른 가르침을 존중해야 한다.
당연하죠, 불교에는 별별 가르침이 많습니다.
그 방편이라고 하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가르침이 있는지 정말 거품이 너무 많아
요.
이제 方便 그만 쓸 때도 됐는데, 이렇게 밝은 세상에 교육 수준도 높고 모든 정보를
다 공유하면서 사는 그런 시대에 있으면서 유독 불교 안에만 그렇게 거품 불교, 방편
불교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염화실에서 공부하는, 정법을 공부하는 여러 염화실 법
우님들이라도 이런데 대한 바른 이해가 있고 또 거기에 대한 의무감, 책임감을 가지
고 좀 열심히 정법을 선양해야 된다 -이런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법 운동을
펼치는 것도 그래요, 그런 데 뜻이 있습니다.
존중 정교라- 그랬죠, 바른 가르침은 존중되어야 됩니다. 존중되지 못하고 바위가
이상하게 생긴데에다 대고 뭐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뭐니 뭐니 이렇게 의미를 부여
해가지고 거기다 대고 절을 하지 않나, 그리고 또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게 수
준이 그만하다 보니까 그걸 광고 하면 또 모이거든요, 광고하는 사람도 그렇지 만은,
광고한다고 따라 가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도 또 문제가 많습니다.
소위 우담발라화라고 우담화라고, 그것도 물잠자리 알 실어놓은 것인데도 불구하
고, 틀림없거든요. 습한데, 어두운데 구석진 데,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돋보
기를 갖다 대어야 겨우 보일만한 아주 가늘디 가는 그런 물잠자리 알이 거기 있는데,
그걸 가지고 우담발화라고, 우담발화라고 법화경에 나오는 성인이 나왔을 때 한번
피고 삼천년 만에 한번 핀다하는 그런 전설의 꽃인데, 그 꽃이 피었다고 야단이고,
왠 놈의 우담발화가 우리 나라에 그렇게 많이 핍니까?
삼천년 만에 한번 핀다는데 절마다 다 펴요, 범어사도 저기 저 으슥한 불상 뒤에 가서
돋보기로 잘 찾아보면 아마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절마다 거의 있어요, 목불, 또는
나무로 된 속 법당 서까래 같은 데 많이 붙어있고 그래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지금도 불교 신문에 보면 광고를 해요. 신도들은 그 왜 광고를
받아주느냐 하지만, 광고는 광고 장사가 하는 거니까 티브이나 라디오나 불교 신문
이나 광고는 광고하는 사람들이 돈만 되면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니까 탓할 수는 없습
니다.
그것도 우리가 제재를 할 수 있다면 광고를 우리가 전부 염화실 광고로 다 사서 채워
버리고 못 내게 할 힘이 있으면 그게 가능하지만 그게 안되면 그런 광고 못내게 할 수
가 없거든요.
그런 광고를 내어가지고는 그렇게 미혹한 중생들을 현혹을 시킨다니까요. 그리고 또
부처님을 臥佛을 크-게 몇십 미터 크기로 만들어 가지고 몸 속 법당이다 해가지고
끊임없이 광고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불러들여가지고 먼지라도 좀 떨어지게 한다던지 하는 그런 식, 금년
에 칠월달에 또 윤달이 들어가지고 얼마나 그게 성할지, 참 그게 문제예요.
이게 뭐 기독교가 불교 비방하고 어쩌고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불교 안에 썩어빠진 가르침들이 이게 문제예요.
그런 방편이라고 하는 미명하에 그런 거품 불교가 그렇게 성행합니다.
곳곳에 기도처다, 薦度齋다 아주 유수한 사찰에서 우리나라에서 손가락 세 개, 일등
이등 삼등으로 꼽을 만한 그런 큰 절에서 그저 천도재한다고 귀신 천도한다고 그렇게
끊임없이 천도재를 올리고, 천도재 광고를 하는 그런 걸 보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
기 이루 말할 데가 없습니다.
이게 正敎- 바른 가르침이 존중되지 못하고
邪敎가 삿된 교가 존중되고 삿된 가르침이 존중되는 그런 일입니다.
이걸 우리 불자님들이 아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는 분들이 주위 사람들에
게 깨우쳐 주어야 돼요.
깨우쳐주면 이것도 아주 큰 복이고 큰 전법 활동입니다. 이런 것 깨우쳐 주는게 큰 전
법 활동입니다.
그러니 그런 데 대한 소신과 의무감을 가지고 좀 깨우쳐 줘야 돼요. 우리가 염화실에
서라도 이런 운동을 좀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復次須菩堤야- 또 수보리야,
隨說是經하대 따라서 이 경을 설하되 쭉- 순서대로 지금 12분까지 따라서 설했죠,
乃至四句偈等하면 사구게등을 설할 것 같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일체 세간과
세간 사람들과 천상 사람들과 아수라가
皆應供養 다 마땅히 공양해야 하는 것을
如佛塔廟라 부처님의 탑묘에 하듯이 해야 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제일 불자가 정성을 들여서 供養, 供敬하는 곳이 어디인고
하면 탑묘입니다 .塔廟-탑이예요, 탑 속에다 부처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그래서 廟
자라고 하는 묘자가 붙어 있어요. 부처님의 탑묘라 그래요, 이게 부처님의 생존시에
말씀하신거와 같이 되어 있지만은
結集이 부처님 열반하시고 500년 뒤에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것들이 그런 경험
과 역사가 묻어 있습니다. 결집을 하면서 옛날에 부처님이 설법을 하신 그 정신을 각
색을 한거죠, 말하자면.
결집이라는게 그런 것입니다. 금강경의 근본 사상은 옛날에 부처님이 실지로 말씀하
신 그 사상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시대에 맞는 그런 어떤 어법과 그런 예절과 분위
기와 이런 것들을 섞어서 그 시대에 아주 감동스러운 그런 가르침으로 세상에 드러내
놓는 일이거든요.
그게 결집 내지 편집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結集하거나 편집 할 때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하거든요.
그러니까 탑묘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이 열반도 안했는데 탑묘라는 말이 등장한 것
아니겠습니까?
경전을 보면 열반을 안했는데 내용을 보면 열반을 한거로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공양해야 된다 이거요,
사구게만 있어도 금강경 한 권만 있어도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런데 책만 있어도 그렇게 해야 되는데 어찌 하물며 어떤 사람이 盡能受持讀誦가-
다 능히 수지하고 독송하는 것이겠는가?
금강경을 가지고 있거나 외우는 것이겠는가?
사람이 있다면 이건 말할 나위도 없이 부처님 탑에 공양, 공경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해
야 된다 이겁니다.
사람이 부처님이죠, 그러니까.
그리고 금강경을 독송하고 금강경을 의지하고 금강경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사람이라
면 이건 뭐 부처님 중의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법당에 쫓아가서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이 금강경- 正敎 , 바른 가르침을 따르고 바른 가르침을 선양하고 바른 가
르침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을 공경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이제 가족들에게 나는 금강경 행자다. 금강 행자- 금강행자다 - 그렇게 하
고 공경하라고 그러세요.
스님에게 들었다고, 어째서 공경을 받아야 되느냐? 나는 금강행자이니까, 금강반야
바라밀 행자니까,
그래서 공경받아 마땅하다. 최소한도 우리가 그런 소신과 자부심과 그런 긍지를 가지
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금강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 수지독송하
는 사람, 이 사람은 최상 제일 희유한 법, 최상 희유한 법이요, 제일 가는 법이요 희유
한 법을 성취한 사람이다.
그렇죠, 금강경을 우리가 그대로 신봉하는 금강행자라면은 이건 정말 최상의 법을,
제일가는 법을, 희유한 법을 성취한 사람이죠.
달리 어떠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있겠어요?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까? 세상에.
금강행자가 위대한 사람이고 금강행자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若是經典所在之處는 則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
그렇습니다.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종이로 된 경전입니다.
경전이 있는 곳에는 부처님이 계시는거나 똑 같고, 그렇죠, 부처님이 경전에 계시잖
아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요 경전을 우리가 펼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읽고 음미
하고 새겨보고 하는 그런 시간에 만나는 부처님, 그게 뭐 부처님의 억만분의 일이라
고 합시다.
억만분의 일이 되는 그런 나의 경에 대한 이해라손 치더라도 제일 부처님을 잘 만나
는 것입니다.
법당에서 부처님이라고 천번 만번 쳐다보는 것보다 경전 안에서 부처님의 정신을 다
믄 얼마라도 가까이하고 이해하고 사유하는 그런 시간이 부처님을 제대로 만나는 것
이 돼요.
그러니까 유불 약존중제자- 부처님만 있습니까? 존중 제자도 있죠.
여기 수보리가 있죠, 아난이 있죠, 오백 아라한이 있죠, 오백 아라한들이 모여서 경전
을 결집했으니까, 금강경 속에 다 있어요,
부처님도 있고, 수보리도 있고, 아라한도 있고, 내지 오백 아라한도 있고.
또 금강경을 강원에서 공부하는 교재는 <金剛經 五家解>라고 해서 거기에는 다섯분
의 조사스님까지 있어요. 一佛 五祖師-라 해요,
한 부처님과 오조사 뿐입니까, 사실. 수보리도 거기 있고 아라한이 결집했으니까 아
난도 있고,
그리고 또 다섯 조사 , 다섯 조사 뿐입니까? 거기 설이가 붙어가지고 우리 나라의 함
허 스님까지도 그 속에 다 계시죠.
금강경 오가해 안에는 그렇게 여러 聖人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이 부처님과 존중할 만한 제자, 높은 제자- 존
중 제자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제자가 있는 것이 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금강경이 있는 곳을 우리가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고, 금강경
을 높이 받들어야 되고, 또 금강경을 높이 받들어야 된다는 말은 그만치 금강경을 우
리가 마음 써서 공부하자- 하는 그런 의미죠.
뭐 종이와 먹으로 된 걸 가지고 뜻하겠습니까? 사실.
그런 건 다 알아 들으시겠죠, 이제.
참 이 대목이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은 무슨 천도재
다 기도다 불상이다 절이다 몸속 법당이다 무슨 우담화 꽃이다 무슨 기기묘묘하게 생
긴 바위다 이런 그 삿된, 불교를 그렇게 세상에 파다하게 선전해쌓는 이런 시대에 바
른 불교- 正敎, 정교를 존중하고, 하는 그런 풍토가 크게 일어났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 경전은 정말 여기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그대로 세존이 계시고, 훌륭한
제자가 있는 그래서 그들의 심오한 대화, 이치에 맞는 대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
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 하는 그런 대화들이 오고 간 그런 내용들이 아닙니까?
그런 뜻에서 우리는 정교를, 바른 가르침을 존중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
습니다.
그 다음 이 쯤 왔으면 사실 금강경의 주된 내용은 여러 번 이야기한 택이 됩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은
우리의 본래적인 아주 지극한 행복, 지극한 복, 무량대복, 한량없는 신통, 이미 가지
고 있는 본래적인 그런 복을 깨우치는 일이고,
그 깨우치는 방법으로서의 금강경, 종이와 먹으로 된 것도 위대한 것이다. 어떤 물질
적인 그런 보시보다도 금강경의 가르침, 또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래 지니고
있는 우리들의 복에 눈을 뜬다면은 이건 뭐 지구상에다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보다도 훨씬 값어치 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
다.
如法受持分 第十三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
이시에수보리가백불언하사대세존이시여당하명차
이며 我等이
경이며 아등이
云何奉持하리잇고 佛告須菩提하사대 是經은 名爲金剛
운하봉지하리잇고불고수보리하사대시경은명위금
般若波羅蜜이니
강반야바라밀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하라
이시명자로 여당봉지하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密이 卽非般若波
소이자하오 수보리야 불설반야바라밀이 즉비반야
羅密일새
바라밀일새
是名般若波羅密이니라
시명반야바라밀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所說法不아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여래가 유소설법부아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如來는 無所說이니다
수보리가 백불언하사대 세존이시여 여래는 무소설이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이 是爲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이
多不아
시위다부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諸微
수보리언하사대 심다니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塵을
제미진을
如來가 說非微塵일새 是名微塵이며 如來가 說世界도
여래가 설비미진일새 시명미진이며 여래가 설세계도
非世界일새
비세계일새
是名世界니라
시명세계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가이삼십이상으로 견여래
不也니이다
부아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으로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세존이시여 불가이삼십이상으로 득견여래니 하이고 오
如來가 說三十二相이 卽是非相일새 是名三十二相이니
여래가 설삼십이상이 즉시비상일새 시명삼십이상이니다
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수보리야 약유선남자선여인이 이항하사등신명으
布施하고
로 보시하고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
약부유인이 어차경중에 내지수지사구게등하야
人說하면
위타인설하면
其福이 甚多니라
기복이 심다니라
그러면 이제 이러한 가르침을 뭐라고 명명을 해서 후대에 오랫동안
되는데 뭐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如法受持分인데요, 여법하게 수지하라 그랬습니다.
여법하게- 법과 같이 책으로 만들어 지니든 아니면 마음에 새기든 어떻든
여법하게, 불교에서 여법하게란 말을 참 좋아하죠, 잘 쓰죠, 또 좋은 말이예
요, 이치와 같이, 진리와 같이, 법 답게.
스님들도 우리 여법하게, 이번 철에 우리도 여법하게 살아 봅시다.
결재할 때 그런 다짐들을 합니다.
여법 수지, 경전을 수지하는 것도 여법하게 수지하는 거예요,
그게 정말 알맞은 제목을 갖다 붙이는 일입니다.
불교에는 경전 체계가 참 잘 잡혀 있는게 유교 경전을 보더라도 <논어>같은
것도 말이라는 뜻이고 또 거기에 술이편이니 무슨 편이니 무슨 편이니 편명
도 첫째 두 글자를 따가지고 편명을 붙이고 그랬어요.
그런데 불교에는 경전 이름만 가지고도 그 경전의 전체 뜻을 파악할 수 있
게 되어 있고, 또 여기에 하나하나 과목 붙인 것만 보더라도 그 제목이 그대
로 그안에 들어있는 단락을 다 뜻을 나타내주는 그런 식으로 아주 치밀하고
아주 정교하게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는 제목이 비로소 13분에서 나오게 된 그런 연
유인데요 ,
그때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경전을 무엇이라고
이름해야 하며,
我等이 云何奉持함이며, 어떻게 받들어 가지겠습니까?
그랬습니다. 佛告須菩提하사대 是經은 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이다.
以是名字로 汝當奉持하라 이런 이 名字로서 너희들이 마땅히 받들어 가지라.
그러니까 요 내용을 이제 마음에 새길 때 또는 이것을 책으로 써서 세상에
남길 때 표지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경- 요렇게 한다는 거죠. 그게 여법하
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 아주, 어쩌면 이렇게도 선명하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지요.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密이 卽非般若波羅密일새
是名般若波羅密이니라
내가 이 경전의 내용, 또 지금까지 한 법문의 내용을 하나로 뭉뚱거려서 하
나의 제목을 부칠 때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어떻습니까?
또 그 금강반야바라밀.. 참 금강반야바라밀 집착은 내가 제일 잘 하죠?
그래서 얼마나 집착을 잘 했으면 금강반야바라밀에 대한 책도 내고,
금강반야바라밀경 강의할 때 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그냥 열을 올려가지고
막 합니다. 이게 아마 집착이 아닐까요?
그래서 부처님이 그런 집착을 떼주느라고 집착하고 있으면 제대로 금강반
야바라밀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따르지 못하니까 그래서 그런 집착을 떼주
는 것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지만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할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 금강경은 뭐라고?
無相으로 爲宗이라- 경 이름의 무상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금강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이름이 금
강반야바라밀이다.
우리가 그동안 공부해서 마음에 쌓인게 있는것 같지만, 또 내놓고 보면 아
무것도 없죠. 그러니 금강반야바라밀에 대한 그런 집착과 어떤 상을 만들지
마라- 하는 것입니다. 상을 만들지 마라.
그 다음에 그러고 나면 이제 부처님 설법은 어떻게 합니까?
이런 생각이 들죠, 부처님의 설법, 說法 無相, 설법도 또 상으로 형성해서
마음에 새겨놓지 마라.
설법의 무상을 여기서 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가 有所說法不아,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는가?
須菩堤가 白不言하사대,
世尊이시여, 如來는 無所說입니다.
수보리가 아주 겁도 없이 여래는 무소설이다, 여래는 설한것이 없습니다.
여래는 설한 것이 없습니다 그랬어요.
아주 스승과 제자가 지금 궁합이 잘 맞고 서로 지원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수보리도, 설한바가 없습니다.
須菩堤야, 於意云何오 .맞는 말이다 이거요.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이제 금강경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또 설법까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사실은 이제 어지간히 금강경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중생들은 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떨까?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아주 작은 분자들, 微塵 , 그 당시 분자들은 미진이죠, 미진들은 어떨까? 작은 먼지들, 작은 먼지가 쌓이고 쌓여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도 無相인가?
부처님이 저렇게 잘 생겼는데 이렇게 잘 가르쳐 놓았는데 얼굴을 떡- 쳐다
보니까 32상 80종호가 앞에 있다 말이여, 그러니까 또 32상 저 훌륭한 상은
또 어떤가?
또 이런 집착에 떨어져 있는 중생들이 있잖습니까? 눈에 아주 선하죠, 뭐.
뻔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 어지간히 금강경을 다 이야기 했는데 삼천
대천 세계, 이 지구를 이야기하는 거죠.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대천세계에 所有微塵이 是爲多不
아.- 이 지구상에 있는 먼지가 얼마나 많은가?
수보리가 말하기를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지구는 먼지로 되어 있죠, 하나하나 쪼개면 먼지고, 먼지 하나하나가 결
합되면 결국은 지구가 되고, 처음에 이 우주 공간에서 하나의 별이 생길 때
도 그렇게 생겼지 않았습니까?
먼지 하나 하나가 결합하고 결합해서 결합할 때 마다 만나서 모일 때 마다
거기에 어떤 충돌이 일어나고 충돌에 의한 자력이 생겨가지고 주변에 있는
먼지가 자꾸 와서 붙죠.
하나씩 하나씩 붙어가지고 그래서 어느 순간에 큰 게 되어서 비로소 지구
라고 하는 별들이 형성되어서 저 밤하늘에 그 수 많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량 아승지의 별들이 있습니다.
그 별은 지구같이 작은 ,지구는 참 작은 것입니다. 지구보다 몇 만 배 큰 그
런 별들도 있구요,
수보리야, 이 세계는 미진으로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여기까지 해놓고 그
다음,
須菩堤야, 모든 微塵을 如來가 說非微塵일새 是名微塵이다- 그랬어요.
미진도 사실은 미진이 아니고 이름이 미진이다.
微塵의 無相입니다. 먼지의 무상입니다. 그 작은 먼지도 그 작은 먼지도
무상이다. 상이 없다.
그 다음에 이제 세계에 대한 무상을 이야기합니다.
如來가 說한 世界도 非世界일새 是名 世界니라.
여래가 말한 세계도 또한 세계가 아니라 이름이 세계다.
세계에 대한 무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어느 것 하나도 마음에 상으로 존재하게 되면은 그건 이미 진정
한 나를 못 보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는 위대한 부처의 세계를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못하죠. 왜냐? 상 때문에 그렇다.
금강경에서는 그렇습니다. 금강경에는 상 때문에 그렇다, 뭐 무명이다, 번뇌
다, 이런 소리 안해요. 욕심이다, 그런 소리도 안합니다. 그런 소리 안하고
여기서는 상 때문이다 . 얼마나 간단 명료합니까?
그래서 먼지의 무상, 세계의 무상, 그 다음에 32상의 무상을 이야기 합니
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그런데 이제 금강반야바라밀경도 무상이고, 부처
님 설법도 무상이고, 작은 먼지도 무상이고, 큰 세계도 무상이다.
그런데 내 앞에 놓여있는 32상을 갖춘 부처님은 또 어떤가?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32상으로 여래를 보는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으로 得見如來니 - 가히 32상으로서 여래를 보지 못합니
다. 그 뭐 지금까지 내가 바봅니까? 지금까지 들어온 것만으로도 여래라고
하면은 32상, 그 허망한 상가지고 여래라고 할 게 있습니까? 이 말이여.
何以故- 왜 그런고 하면, 如來가 說하신 32相이 卽是非相일새- 곧 상이
아닐새 , 是名三十二相니이다- 이름이 32상니이다.
그랬습니다. 이런 식의 글이 30회나 나온다고 그랬죠? 여기 벌써 헤아려 보
십시오. 얼마나 많습니까?
요 분만 하더라도 13분만 하더라도 금강반야바라밀, 미진, 설법, 세계, 32
상, 이렇게 여섯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30회가 나왔다는게 맞죠.
32상도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신의 훌륭한 상호만 남겨두고
다른 것만 부정한다면 말도 아니죠.
저 앞에서는 당신의 깨달음도 깨달음이라 할 게 없다고 했고, 당신의 설법
도 설법이라 할 게 없다. 그 다 깨달음의 무상, 설법의 무상을 말씀하셨습니
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하고 -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몸의 목숨으로서, 이 생명으로서 보시를 했다, 야! 대단한 거죠.
또 어떤 사람은 -若復有人은,
이 경전 가운데서 전체거나 내지 四句偈 등 만이라도 受持해서 爲他
人說하면 -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한다면은
其福이 甚多니라- 그 복이 매우 많나니라.
그랬습니다. 더 많다, 승피- 저 복보다 더 많다, 이런 표현을 쭈욱 해왔는데,
놀랄까봐 제자들이 목숨이야기, 세상에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데 목
숨 이야기해놓고 네 목숨보다도 금강경이 훨씬 더 가치 있다, 더 위대하다
이렇게 해버리면 부처님을 잘 안믿을려고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약간 이렇게 충격을 줍니다.
그래 놓고 15분에 가면은요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中日
分에, 낮에, 아침에 하고, 점심에 하고, 저녁에 해가지고 以身命을 그렇
게 수없이 보시한다 하더라도 뭐라고-
이 경전에 信心不逆(신심불역)한다,
이 금강경을 듣고서 마음에 거슬리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 복이 저
복보다, 이 몸의 목숨을 항하강의 모래와 같은 목숨을 보시하는 것 보
다도 훨씬 수승하다, 뛰어나다 이런 말을 뒤에 합니다.
여기서는 그 말 하기 위해서 전조로 위타인설하면 그 복이 심다다- 매우
많다, 그랬죠.
그러나 속뜻은 저 복보다 선남자선여인이 항하사등신명으로 보시한 복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런 뜻이 그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뭔가 우리가 금강경의 의미를 골똘히 새겨
보려고 하고, 깊이 사유하고, 백번 이백번 삼백번 읽어보고, 또 열 번 스무번
써보고 그렇게 할 가치가 있지 않겠어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부처님께 속는 폭 잡고 그렇게 한번 해보죠. 뭐. 얼른 그 믿음이 안가지
면... 속아도 부처님께 속는 거야 뭐 손해갈 게 있습니까?
다른 속인들에게, 사람들에게 속으면 손해가 많지만 부처님께 속는 건 크게
손해볼 것 없습니다. 결코 속는 일도 아니죠, 물론.
오늘 금강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법문녹취:불퇴지) |
若有善男者善女人이 於此經中에 乃知受持 四句偈等 하야 爲他人說하면 而此福德이 勝前福德 하리라. 이경중에서 사구게등이라도 지니고 다니면서 다른사람을 위해서 설한다면 그공덕이 수승하리라.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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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나무금강반야바라밀다경 ()()()()()>
감사드립니다. _()_
성불하십시요() ()()....오늘 강의 까지 배우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_()()()_
염화실을 만난 인연에 감사, 감사드립니다...._()()()_
고맙습니다..._()()()_
큰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_()()()_
____()()()____삼가 큰스님전에 삼배올니나이다
대명,대대명의 가르침입니다.기존 불교의 많은 방편 비판 공감갑니다.
법문 감사히 들었습니다_()()()_
고맙습니다.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 금강반야바라밀. 나무 금강반야바라밀. 나무 금강반야바라밀. _()()()_
_()()()_감사하고 감사하옵니다.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_()()()_
無相爲宗 불교는 깨달으면 그만이다. 방편 자체을 숭상하다보니 몇십년을 선방에 앉아있거나 기도 주력 사경만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감사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 ..()()()..
언제나 정법을 가르치시는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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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있던 것, 이미 있는 것, 사람이 만들기 전에도 있고, 만들어 봐야 그것은 만들어 지지도 않는 것- 이런 것을 無爲라고 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좋은법문 늘 들을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_()_
염화실 방문하는 즐거움으로 하루 보냅니다_()_()_()
여법하게 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