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3대 패밀리 와해 서방파, 김태촌 수감 이후 흩어져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올 7월 출소 OB파, 두목 이동재 美서 수퍼 운영
요즘 건달들은 경찰 추산 202개파 4138명 '활동'
조직 동원하는 피튀기는 싸움 자제 사업통해 勢확장… 돈 있어야 두목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출신 김태촌(60)씨가 형기만료로 17일 부산교도소에서 출소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확정 선고받은 김씨는 구속기소된 지 3년 만에 형이 종료됐다. 본지 11월 17일자 보도김태촌씨가 생애 10번째 교도소 생활을 마쳤다. 소년원까지 포함하면 13번째다. 기간만 따지면 그는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가 출소한 날 지인들은 반갑게 두부를 건넸다.
두부를 입에 넣은 김씨는 미리 준비된 구급차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때 국내 조직폭력계 대부로 군림했던 김씨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조직의 보스로 돌아오는 걸까. 지금 조폭계의 판도는 어떨까.
◆'3대 패밀리'는 어디에
'징역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대검찰청 형사부장 출신으로, '조폭수사의 대부'로 불렸던 조승식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아무리 김씨지만 예전처럼 조직을 운영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 ▲ 교도소 앞에서 13번째 먹는 두부 맛은 어떨까. 조승식 변호사는“김태촌씨 얼굴이 신문에 나가면 그의 후배들이‘우리 형님이 아직도 영향력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뉴시스
김씨가 이끌던 서방파는 1970~80년대 조폭계의 '3대 패밀리'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둘은 양은이파, OB파다. 서방파는 김씨가 수감된 동안 와해됐다. 두목이 없어 조직이 관리되지 않자 조직원들이 뿔뿔이 떠난 것이다.
일본 야쿠자와 달리 국내 조폭은 조직력이 약하다. 한번 야쿠자 두목이면 영원히 두목이지만 국내 조폭 두목은 감방에 가면 끝이다. 김씨의 부하들도 그랬다. 많은 수의 조직원들은 자기 계파를 꾸리거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서방파 막내였던 A는 강남에서 큰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으며, 중간보스 B는 카지노사업에 손을 댔다가 현재는 서울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방파는 소규모 조직원들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김씨가 출소할 때 마중 나온 지인들만 끝까지 충성한 걸까. 조 변호사는 "오랜 감방 생활로 김씨의 힘은 빠졌다"며 "옛 부하들이 보스가 아닌 선배로 대접하고 '김태촌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태촌 브랜드'는 아직 효과가 있다. 주먹들은 경찰이나 검찰이 지어준 이름보다 "○형님 밑에 있다" "○형님 식구"라는 말을 쓴다. 최근 C씨가 김씨와 조양은씨 이름을 대고 룸살롱에서 외상을 하다 적발된 게 이를 증명한다.
양은이파나 OB파도 마찬가지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는 1980년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돼 15년간 감방생활을 했다. 그는 그 후에도 사기와 폭행, 해외원정 도박 등으로 여러 차례 감방을 드나들었다. 2007년 5월에는 폭행 혐의로 기소돼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08년 7월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고 올 7월 출소했다. 그는 최근 외국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1988년 9월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의 공격을 받아 심한 상처를 입고 미국으로 갔다. 그는 현재 뉴욕에서 수퍼마켓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았다.
조 변호사는 "요즘 주먹계는 돈이 있어야 보스가 될 수 있다"며 "스스로 세력을 확장한 조직원들은 더는 전(前) 두목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킨다"고 말했다.
◆바뀐 건달들의 세계
경찰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202개 파 4138명의 조폭이 있다. 하지만 실제 조폭의 수는 이보다 많다. 조직의 이름이나 개수도 무의미하다. 폭력조직의 명칭은 검경이 출신지, 지역, 두목 이름을 따 임의로 붙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조직이 없어지면 그 조직원들이 몽땅 손을 씻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폭력 조직은 연꽃과 비슷하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물속의 뿌리 줄기처럼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폭들은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며 달라졌다. 이전 조직들은 피 튀기는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야 했고 그러기 위해 대규모 조직이 필요했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 이후엔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웬만해선 조직 전체가 동원되는 싸움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조 변호사는 "조폭들이 범행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비경제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라며 "같은 돈을 벌어도 처벌을 덜 받는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광복 이전 김두한으로 대표되는 '주먹'들은 무기 없이 맨주먹으로 겨뤘다. 승자는 패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패자는 승자를 인정했다. 일본 야쿠자에 대항해 조선 주먹을 대표했던 그의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드라마화되고 있다.
그러나 광복 후 정치깡패가 등장하고, 싸움판에 회칼과 야구방망이가 등장하면서 조폭의 세계도 바뀌었다. 피가 피를 부르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상황은 유흥 향락문화가 늘어나면서 계속됐다.
결국 1990년 10월 3일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274개 파 1421명이 구속됐다. 웬만한 조직의 두목이나 주요 간부는 이때 다 철창신세를 졌다. 이후 폭력조직들은 새로운 살 길을 모색했다. 수사기관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조직으로 겉으로는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유흥업소, 호텔업, 성인오락실, 건설업, 사채, 심지어 벤처기업에까지 손을 뻗쳤다. 어떤 이는 주가 조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새로 생겨난 조직의 두목들은 전통이나 주먹 계보에 얽매이지 않고 탄탄한 자금력으로 독자 조직을 구축했다. 조직이 통합될 경우 돈 많은 사람이 두목이 됐다. 낭만이나 의리는 사라지고 돈만 남은 것이다.
정치권과 관계를 맺고 공생하는 조폭도 생겼다. 조폭 출신 인사들이 축적한 자금과 인맥을 활용해 대형 비리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용호 게이트'의 D씨와 '나라종금 사건'의 E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