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료는 "비지팅아트"(Visiting Arts) 제공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The Cambodia Cultural Profile)의 내용 중,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은 "캄보디아 문화예술부"가 협력하고 미국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이 재정을 지원하여 만들어진 정보이다. |
캄보디아의 공연예술 (상편)
Performing arts
1. 캄보디아의 전통 공연예술
캄보디아의 문화적 발전에 대한 필요성 속에서, 공공 분야의 관심이 곤경에 처한 국가의 유형의 문화유산에 집중하는 일은 불가피했다. 특히 UNESCO와 같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통한 사업들은 거대한 앙코르 사원군을 보존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런 연유로 국가의 무형 문화유산들, 특히 전통적인 행위예술이 처한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을 통해, 여러 전통적인 크메르 공연예술 분야가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제례, 민요, 민속무용을 비롯하여 20여종의 공연예술이 포함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왕궁과 관련된 고전무용이다. 이러한 예술 장르들이 전통적으로 구전(口傳)을 통해 전수된 것은 캄보디아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형식을 문헌으로 기록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한 세대의 스승은 다음 세대의 제자에게 단순히 전수만 시켰다.
폴 포트(Pol Pot) 정권 하에서 엄청난 수의 캄보디아 전통 예술가들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들의 사망과 함께 캄보디아 전통 공연예술 분야의 절반이 소실되었다. 1979년 크메르루즈가 몰락하고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이 수립된 직후, 전통적인 행위예술 장르들이 잔존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생존한 행위예술가들을 파악한다는 라디오 방송의 발표가 있었다. 이를 통해 9개 분야가 부활되었고,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유네스코(UNESCO) 등의 국제기구와 함께 이들 고전 예술 형식에 기반한 예술가들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전력해왔다. 전통적인 행위예술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가운데, 캄보디아에서는 대화극이 충실하게 보존되었고,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뮤직, 그리고 현대적인 무용도 느리지만 발전하기 시작했다. (원서의 문서 최종수정일: 2008-2-28)
2. 원형적 공연예술

(사진) 숫사슴춤[뜨롯]
캄보디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연예술 장르는 일반적인 동남아시아 예술 형태와 관련이 있는 분야들이다. 이러한 장르들은 농촌지역에서 오락과 사회적 통합, 혼령의 위무 등의 기능을 담당했다. 여기에는 서사시 및 시가(詩歌)의 게송을 음송하는 것은 물론, 조상숭배 및 정령신앙과 관련된 무당춤(trance dances)도 포함되어 있다.
제의적 기원을 가진 공연형식으로 꺼 꽁(Koh Kong) 도에서 지내는 "풍어제"(port ruong: 혹은 "삼신제"[ruong tree spirit-worshipping)의 무용, 시엠립(Siem Reap) 도의 "낭메오 기우제의 춤"(nang meo rain dance), 그리고 시엠립 도와 밧덤벙(Battambang) 도에서 전승되는 "숫사슴춤"(뜨롯[trott]춤)이 있다. "숫사슴춤"에서는 사슴으로 분장한 배역과 사냥꾼이 악단과 함께 집집마다 돌면서 새해의 풍요를 기원하고 복전을 수금한다.

(사진) 짜뻐이를 연주중인 캄보디아 전총음악의 대가 꽁 나이 옹.
현재 캄보디아 정부는 이 외에도 여러 중요한 "원형적 공연예술 형식들"(proto-theatrical styles)을 지원하고 있다. 북부지방의 소수의 시골 신당에서는 아직도 "무당춤"이 행해지고 있고, 노래와 이야기가 합쳐진 형식은 "짜뻐이"(chapei)로 남아 있다. "짜뻐이"는 이 형식에서 사용하는 류트류의 현악기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보다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형식 문답형식의 극예술로는 "라카온 아야이"(lakhaon ayai)를 들 수 있다. 이 형식은 남녀 간에 설전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문헌에 근거한 것이지만 대부분 즉흥적인 개사를 반영한다. 공연자들은 "코음"(khoeum: 양금류)과 "뜨로"(tro: 아쟁류 현악기)의 반주에 맞춰 단순한 춤동작을 반복하는 가운데 대사를 주고받는다. "라카온 아야이"는 다양한 방식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웃한 라오스의 "이암"(Iam)과 차이가 난다. 짜뻐이와 라카온 아야이는 전통적으로 고대 신화를 재해석하곤 했지만, 오늘날에는 시사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건들을 주제로 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장르를 활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진) 라카온 아야이
고대적이고 아주 오래된 원형적 공연예술들은 보다 후대의 고전 공연예술들에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새로운 세대의 공연예술들은 기원 후 1천년 간의 외래적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발전해왔다. (원서의 문서 최종수정일: 2005-8-3)
3. 크메르 고전 공연예술의 발전
중국의 기록을 보면, 243년에 중국 황제 앞으로 파견된 "푸난 왕조"의 외교사절단 중에 왕실 악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6세기에는 "첸라 왕조"의 여성 무용수들이 힌두교 사원에 봉헌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앙코르 시대(pre-Angkorian period)의 음악과 무용의 정확한 모습은 불분명하지만, 당시의 특징인 국제교역이 괄목할만하게 증대되면서 이 지역의 모든 문화예술에 인도와 중국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음은 분명하다.

(사진) 크메르 고전무용
기원후 1,000년 동안 중국의 문화적 영향이 적지 않았도, 오늘날에도 크메르 음악의 많은 측면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가령 "짜뻐이"는 중국 현악기 "유에친"(月琴, yuèqín "당비파"라고도 함)에 해당하는 악기로 달(月) 모양을 닮은 류트(lute: 기타[guitar]의 조상)의 중국적 개량형이다. 또한 2줄을 가진 "뜨로"(tro)는 중국의 호금(胡琴, hú qín 한국의 해금과 동일하며 몽골에서 유입되어 "얼후"[二胡]라고도 불림)에 상응하며, 14줄을 가진 양금류의 악기 "코음"(khoeum)은 중국의 금(琴: 양금과 유사한 작고 납작한 하프류의 악기)에 상응한다. 하지만 크메르 공전 공연예술(Khmer classical performing arts)에 보다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인도 문화로, 인도에서 직접 전래되었거나 혹은 인도네시아 군도를 거쳐 전파되었다.

오늘날 전승되는 크메르 왕실 음악과 무용은 9세기 이후의 앙코르 시대 군주들의 지원 하에서 발전한 것이다. 앙코르 제국의 개국자 자야와르만 2세(Jayavarman II : 802-850)가 인도에서 성행하던 "신왕"(神王, deva-raja) 숭배 문화를 캄보디아로 도입하자, 그에 관련된 공연예술 장르들이 따라 들어왔다. 아마도 여성들이 추는 궁정무용은 국왕의 신비-종교적 힘을 강화시키는 의례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왕실의 후궁들로 구성된 무용수들은 그들의 공연을 통해 국왕을 대지 및 풍요를 지배하는 지하에 있는 신들의 힘과 연결시킴으로써, 통치자와 신적 권능의 합일을 축복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서도 힌두 신화인 <라마야나>(Ramayana)와 [그보다는 조금 덜 대중적이긴 했지만] <마하바라따>(Mahabharata) 서사시, 그리고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다룬 <자따까>(Jataka, 본생담) 같은 작품들이 무용극 및 남성이 출연하는 가면극과 그림자 인형극 등 여타 궁정 공연예술 장르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크메르 고전무용인 "라카온 끄밧 보란"(lakhaon kbach boran)은 크메르 사원들의 회랑에 광범위하게 조작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도 성스런 형식을 갖춘 것은 <로밤 압사라>(robam apsara: 천상의 무희 압사라)로 오늘날 약 60곡의 순수한 춤과 40부의 무용극을 전승하고 있다. <로밤 압사라>에서는 "삔삐엇"(pinpeat) 악단의 반주에 맞춰 여성 합창단이 서사시를 노래하는 동안 여성 무용수가 춤을 춘다. 크메르 여성무용은 태국이나 라오스에 전파되어 변형된 여성무용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보다 느리고 미묘하면서 통상 제의적 숭배를 보다 많이 표현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라카온 끄밧 보란"은 2003년에 UNESCO가 제정하는 "인류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Masterpiece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당시 이에 지정된 예술형식은 47종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 라카온 카올
여성 무용은 "라카온 카올"(lakhaon khaol)로 불리는 남성 가면무용극을 보조적 형식으로 채택한다. 이 가면무용극은 <라마야나>의 캄보디아 판인 <리엄꺼>(Raemker)를 소재로 한 것으로 초기 앙코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본질적으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다룬 <리엄꺼>는 위쉬누(Vishnu) 신의 화신인 라마(Rama) 왕자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라마가 태어나기 전에 신들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다양한 시험과 모험을 통과해야만 하도록 했다. 라마 왕자는 왕좌를 포기하고, 아름다운 아내 시따(Sita)와 동생인 락슈만(Lahksman)과 함께 여러 해 동안 황야를 떠돌게 된다. 악마의 왕 라와나(Ravana)가 시따를 납치하지만, 라마 왕자는 원숭이들의 왕이자 바람의 신의 아들인 하누만(Hanuman)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녀를 찾아내고 만다.

"라카온 카올" 가면극에서는 남성 무용수가 남성과 여성 배역 모두를 담당한다. 또한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여성 가면극인 "라카온 빠올 스라이"(lakhaon paol srei)도 수 세기 동안 발전되어 왔다. "라카온 카올"과 "라카온 빠올 스라이"는 "삔삐엇" 악단과 함께 앉아서 노래를 하는 합창단의 노래와 서사적 게송 낭송도 그 형식 속에 포함하고 있다.

(사진) 스바익 뽀
"라카온 카올"의 미학과 레파토리들은 그 기원적 측면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인류의 고전적 예술장르인 인형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2종의 그림자 인형극을 보유하고 있다. "스바익 또웃"(sbek toch: 작은 피부)은 작은 조각을 이어붙인 가죽 인형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 원형인 자바의 "와양 꿀릿"(wayang kulit)의 영향 때문이다. "스바익 톰"(sbek thom: 큰 피부)은 크고 넓은 2차원적 가죽 인형을 사용하여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인형극에서는 스크린 앞뒤에서 인형 조정자들이 춤을 추면서 인형의 움직이지 않는 부분들을 조정한다. "스바익 톰"은 2005년에 UNESCO의 "인류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다. 최근 수년 간 캄보디아 "문화예술부"(Ministry of Culture and Fine Arts)의 전문가들이 제3의 인형극이라 할 수 있는 "스바익 뽀"(sbek por)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인형극은 주간에 공연되며, 중간 크기의 칼라풀한 가죽 인형을 사용하는데, 인형의 각 부분들은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사진) 스바익 톰
징류(gongs)와 철금류(metallophones)의 악기들은 매우 이른 시기에 캄보디아에 전해졌을 터지만, 모든 형태의 크메르 고전 공연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들에 대해 음악을 제공하는 "삔삐엇" 악단은 앙코르 시대 왕궁에서부터 발전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최대 10명 정도의 악사로 구성되는 "삔삐엇" 악단은 그 원형인 말레이 문화권의 "가멜란"(gamelan) 악단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악단은 다양한 크기의 징류(심벌류)를 등나무로 만든 원형 걸이에 세트로 배치한 "콩 웡"(khong wong)이라 불리는 악기와, "로니엇"(roneat)이라 불리는 나무 실로폰, 철금들과 확장된 공류들, 드럼류, 심벌, "스럴라이"(sralai: 예전에는 "삐 샤나이"[pi shanai]라 부름)라 불리는 2개의 리드(접입구)를 가진 오보에류의 관악기 등을 사용한다.

(사진) 삔삐엇 악단
"삔삐엇" 악단은 "클랑 츠낙"(khlang chnak)과 "플라엥 끄농 스꼬"(phlaeng knong schoor) 같은 여타 크메르식 전통 악단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이들 악단들은 전통적으로 장례식에서 많이 공연했다. "삔삐엇" 악단이 영향을 준 또 다른 악단 형식으로는 현악기가 주도하는 "플라엉 머하오리"(phlaeng mahaori)가 있는데, 이 형식은 사원의 의례나 신들에 대한 공의에 사용되었다. 또한 "삔삐엇" 악단은 태국과 라오스의 "삐팟" 악단 형식이나 버어마의 "흐시앙"(hsiang) 악단 형식에도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사진) 삔삐엇 악단
이어지는 수세기 동안, 앙코르 제국의 쇠퇴와 이 지역 내에서 시암(태국), 베트남, 라오스, 버어마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패권다툼을 시작하였다. 또한 시암과 라오스의 란상(Lane Xang) 왕조, 그리고 버어마는 각기 자국 영토 내에 옛 앙코르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앙코르의 공연예술과 유사한 예술 전통의 보급을 장려했다. 이리하여 태국, 라오스, 버어마의 여성무용과 가면극이 탄생했고, 태국과 라오스의 그림자 인형극도 이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는 19세기의 크메르 국왕 엉 두엉(Ang Duong: 1796-1859)의 시대에 일단락되는데, 엉 두엉 국왕은 태국으로부터 전문가들을 초청해 캄보디아 궁정 공연예술을 복원시키려 했다.
여성 고전 무용의 정치적 의미에 주목해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무용은 통치자를 조상의 세상 및 정령들의 세계와 연결시켜주어, 통치자의 신적인 위세를 확인시켜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 부여는 심지어 프랑스 식민당국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1928년 "왕립 극장회사"(royal company)의 관할권을 "캄보디아 예술학교"(École des arts Cambodgiens: 현 "왕립 예술대학"의 전신)로 가져간 것은 "이 무용을 통제하는 자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오랜 격언에 따라 이 무용의 권위를 인정한 셈이었다. "왕립극단"은 1942년 프랑스 비시정권(Vichy government: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여 세운 위성정권) 시절에 해체되었다가 1948년에 재창단되었다.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통치기인 성꿈 리어스 니욤(Sangkum Reastr Niyum) 정권기에 여성 무용과 남성 가면극 전통이 전성기를 맞이한다. 시하누크 공의 모친이었던 시소왓 모니웡 꼬써막 니어리 리엇 와따나(Sisowath Monivong Kossomak Neary Rath Vattana) 왕후가 직접 왕실극단을 관장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그 레파토리들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사진) 현재의 캄보디아 국립극장
1960년대에 대중적인 예술의 센터로 신축한 국립극장이 완공되고나서, 소위 "캄보디아 로얄 발레"(Cambodian Royal Ballet)라 불리는 예술형식이 내국인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공연되었다. 당시 이 극단은 외교사절을 상대로 한 공식 리셉션과 몇 차례의 해외 순회공연을 통해, 국제적인 문화 외교의 수단으로서도 대단히 성공적인 역할을 했다.
크메르루즈 정권 시절인 1975-1979년 사이의 비극이 끝난 후, 살아남은 소수의 전직 궁정무용단 멤버들이 다시금 서서히 재결합했다. 1980년에 "극단회사"가 이웃한 태국 영토에서 부활되어 망명 정부의 소관으로 이첩되었다. 이 조직은 아직도 "국립극장회사"(National Theatre Company)의 한 부분으로 존속하고 있는데, 여타 크메르 공연예술 형식들을 보존하면서 오랜 기간 캄보디아 촌락 예술로 격하되었던 궁정 그림자 인형극도 복원시켰다. "극단회사"는 민간설화극 및 서커스도 보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 고전무용극단"이 이제 더 이상 왕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비록 이 극단이 외국 순회공연에 오를 때면, 외국의 흥행사들이 아직도 "캄보디아 로얄 발레"라는 명칭으로 홍보하긴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일이 기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원서의 문서 최종수정일: 20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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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처음 캄보디아에 와서 압사라 춤을 보고 우리나라 고전무용에 대해 생각을 바꿨어요.우리나라 고전 무용(민속춤)이 참 심심하다고 생각 했는데 압사라 춤은 더 심심하더라구요. 그런데 코코넛댄스라고 아이들이 추는 춤을 보고는 진짜로 빠져버렸어요. 초등학생들이 추는 것을 보았는데 생각만 해도 즐거워요. 그런데 같은 춤인데도 어른들이 그 춤을 추니 그런 느낌이 아니더라구요. 지금도 그 아이들 얼굴이 생각나면서 즐겁네요...
하하하, 재미잇는 말씀이시네여~ 하여간 춤과 노래는 제가 볼때 21세기 최고의 대중문화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는 민족이 인도로 보입니다. 인도는 음악도 서양음악이 12음계(미-파, 시-도 이 두 군데만 반음 차이이고 나머지는 한음[즉 2개의 반음 간격] 차이)로 나눠서 표현합니다만, 인도의 음계는 이 동일한 한 옥타브(가령 낮은 도-높은 도) 사이가 24단계로 분할되어 굉장히 복잡한 선율을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리듬도 그렇고, 동시에 춤도 엄청나게 역동적이며 눈동자, 손가락, 허리의 움직임 이런 것이 다 따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한 10년 동안 제가 인도 음악을 안 듣다가, 여기 캄보디아에 오니 위성방송으로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쉬 방송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놀랍게 성장햇더군요. 즉 원래 그들이 고전적으로 가진 그 복잡성을 현대적인 대중음악과 완벽히 결합시켰습니다. 즉 인도인들이 힙합을 하면 흑인이나 한국이 밴드보다 잘하면서도, 거기에 인도 고유의 복잡성이 가미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테크노를 하면 또 서양이나 선진국의 테크노보다 한 차원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고... 게다가 "볼리우드"로 불리듯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촬영하는 나라답게 영상미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여간 힌디어의 투박한 발음과 도둑놈처럼 생긴 인도 남성들의 이미지만 좀 바꾸면, 21세기 대중음악은 반드시 인도가 석권하는 날이 멀지 앟아 보입니다. 하여가..... 제가 처음 크메르 무화를 공부하면서, 언어나 복식 등에서 인도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보여서 캄보디아 음악이나 무용도 그럴 줄 알았습다. 그런데 의외로 보다 정적이더군요. 요즘은 간혹 TV에서 압사라 춤을 보면 그 정적이 가운데 묘하게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만..... 음계나 이런 것은 인도보다는 티벳과 유사한 측면이 보이더군요. 하여간 차츰 또 살펴보아야겠스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