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이름으로 살아가기
손 수 향
아버지와 다른 남자 찾기
어릴 적 소꿉놀이 할 적 “난 엄마 할래, 넌 아빠 해!”하면서 엄마 아빠흉내를 내면서 부터인가? 초등학교 남자 짝지를 맞이할 때부터인가? 멋진 친구 오빠를 보면서부터인가? 시발점은 잘 모르지만 ‘내 짝지 찾기’의 은밀한 작업이 어릴 적부터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될까? 나도 참 궁금했다. 좋은 짝지는 만날 수 있을까? 내 앞에 행복한 결혼생활은 펼쳐지는 것일까? 모든 게 의문이고 불확실함으로 늘 안개에 가려진 아침 들길을 걷는 것 같은......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한창 고민할 때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가 주위에는 보이질 않았고 ‘내가 누군가?’에 대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닐 때 철학이나 심리학공부를 해서 나에 대한 탐색을 꿈꾸던 시절엔 결혼하지 않고 수녀나 스님으로 나를 찾아 보리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웨딩마치를 울릴 때 쯤, 어머니께서 불현 듯 나에게 던진 한 마디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여자가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할 일도 많고 멋지게 살 수 있겠더라. 너도 굳이 꼭 결혼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마라”
외동아들에 시집와서 제사며 집안대소사 시부모 모시면서, 밖으로 바쁘고 친구 좋아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경제 활동까지 책임지는 어머닌 결혼이란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은 도리어 자극제가 되어 ‘옴마야, 결혼 안할 수도 있지만 결혼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과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끝까지 짝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짝지 찾기에 나섰다.
어느 해 첫날 올해는 꼭 결혼하는 해로 결심하고 삼일 째 되는 날, 선배선생님 소개로 호텔 커피숍에서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넘기고 계단을 투덜투덜 걸어 내려오는데 곱술 머리칼을 휘날리며 올라오는 남자를 보는 순간
‘저 남자와 결혼하면 저 헝클어진 머리칼을 매일 아침 드라이를 해줘야 하나?’ 이런 물음을 내게 던지면서 그 남자와 만남은 계속되었다.
나의 이상형은 외향에 사교성 많고 말 잘하고 멋진 외모의 아버지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짝지 찾기는 이러한 기준에 의거하여 재어보니 확실히 내 짝지가 맞았다. 말 수가 적고, 친구도 별도 들먹이지 않고 외모도 아버지에 비하면 왜소하기까지 해서 심지어 남동생은 우리 누나 아까워 못 주겠다며 수성못 포장마차에서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남자를 앞에 두고 심각하게 담배를 빼물고 인생관이 뭣이냐? 누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거냐?며 건방을 떨어도 조용조용 들릴 듯 말 듯한 충청도 말투로 손에 잡히지 않는 논리를 펼쳐며 여유롭게 넘겨 치는 것이다. 화통하고 성질 급한 경상도 남동생의 얼굴엔 갑갑함이 묻어있었다. 내가 봐도 별 매력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와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는 그 기준에 딱 맞지 않는가? 늘 봐오던 아버지와 180도 다른 남자.
다른 성격에 서로 홀리고 홀기기
내 마음을 홀딱 빼앗아간 것은 아무 말 없이 헤어지고 난 이 삼일 후면 나를 풍자한 익살스런 그림과 글을 담아 보낸 편지였다. 읽고 또 봐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명작이다. 가끔 받침이 맞지 않은 부분에선 마음이 걸리지만 이 또한 결혼하면 내가 교정해주면 될 일이다.
조잘대며 별 일 아닌 것도 재미있게 떠들고 교사를 하다 보니 많아진 말 수에 이 남자는 그냥 듣기만 하고, 나만 신나게 말하게 하네. 거기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치밀함까지 있네.
시골벽지학교에서 당직을 하고 있는데 점심 김밥을 사가지고 나타나 것이다. 시골 장터 김밥집에서 말아왔다는데 그 당시 맛보기 힘든 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큰 가게에 가서 햄을 따로 사가지고 특별히 넣어 달라고 한 ‘주문 김밥’이라네 ‘나를 위한 특별 김밥’이런 감동이!!
그리고 앙케이트 조사까지 만들어 와서 결혼에 앞서 집은 몇 평에서 시작하고 싶냐? 아이는 몇을 낳아 기르고 싶냐? 어떤 남편이 되 주길 원하느냐? 지금은 다 기억조차 해낼 수 없는 4지선다 조사서를 만들어 온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채워 줄 수 있는 재치와 유머 있고 자상한 남자에게 나는 계획적이지 않은 엉뚱하고도 뒤통수치는 깜짝 이벤트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아보니 남의 편 남편이네
결혼해 살아 보라지
과묵한 남편은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마루 밑에서 놀았던 최강의 내향에 무언가 이야길 좀 할라치면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리고 게다가 마음이 편치 않으면 입에 힘을 주어 작은 입을 더 작게 오그리며 옹고집장이 티를 내고, 물건 하나를 옮겨도 자를 들고 한 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네.
마음에 품고 있지 못하는 외향의 난 내 속을 다 보여주며 옆을 돌아보면 남편은 내 말을 듣고나 있는지 그 때마다 난 밑지고 장사하는 시장 통 아지매가 된 기분이었고 내 다시 말하나 봐라 하면서도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여전히 어제와 같았다.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쯤 TV아침마당에서 부부공동명의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은 저녁, 슬쩍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번거롭게 무슨 공동명의야! 남편 명의 하나면 족하지”하며 한 칼에 잘라버렸고,
농담 속에 진담이 묻어있다고 집들이 온 동료의 인사에 “결혼 전과 좀 다르네요.”했더니
“잡은 고기 미끼 주는 것 봤느냐”고 하질 않나 주방 근처에 오는 세 살배기 아들 손목을 잡아 끌며 하는 말 “아들아! 남자는 부엌 근처에 가며 고추 떨어진다.”
명절에 손위동서와의 미묘한 감정을 이야기 할라치면 “감정 빼고 있는 사실만 이야기 하세요”
그 말에 감정이 빠지긴 커녕 감정의 도가니에 빠져 폭발한 지경을 만드니 이 남자 내편 맞나?
그래요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대표 남자 맞네요.
내편이 아니라 남편 맞으시군요.
부부 마주보니 닮아 있네
이런 남편 대동하고 외출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오누이냐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뭘 닮았다는 거지? MBTI 성격유형으로 남편은 시간 약속 철저히 지키고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결과중심의 과학자형 INTJ, 난 약속은 그 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과정중심의 스파크형 ENFP라네. 하기야 현실보다 미래가능성과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건 공통분모이지. 하지만 우린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가구 옮기는 것만 봐도 다르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 아무리 무거운 것도 질질 끌고 다니며 여기 놓았다가 저기 놓았다가 침대며 피아노가 자리를 바꿔 앉은 모습을 보고 출장 갔다 온 남편 “ 내 없는 동안 외간 남자 왔다 갔나?” 왠 걸 애꿎은 장판만 찢어 놓고 있는 모습에 기가 막힌다는 듯 쯧쯧!!!
그러는 남편은 이사를 여러 번 다녀도 현장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날 이유도 없거나와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 공개 전단지에서 많이 봄직한 도면을 두 장 그린다. 한 장은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장은 이사 갈 집을 그리고 가구를 자로 재어 가구모형을 만들고 여기저기 놓아보고 완성된 가구배치도를 이삿짐센터에 던져주면 남편 임무 완료다.
대청소했다고 생색을 내면 남편 사전엔 대청소란 용어가 없다며 대청소한 나의 수고는 온 데 간 데 없다. 평소에 정리정돈하고 살면 대청소가 필요 없다는데 할 말이 있겠는가?
이렇듯 한 남자와 여자는 부부란 이름으로 서로를 선택했으나 한 집 한 이불을 덮고 살아도
다른 세상 사람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았다.
그런데 결혼 10년이 훨씬 넘어서 이사를 한다고 새집 청소를 하러 가는 내 손엔 자가 쥐어져 있었고, 그 말 없던 남편의 말문이 틔면서 나만 푼수데기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이 자리 저 자리 만들어 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남편을 보면 푼수데기 아줌마 저리가라다. 어 저건 내 메뉴인데 !!
남편의 밥이 되어주리
잘 다니던 대기업에 미국현지전문가과정, 승진한 후 한 턱내고 사업을 한다고 사퇴하여 가정경제는 날 보고 책임지라는데 아버지와 다른 남자를 찾았는데 그 남자는 어디 가고....
그 놈의 계획서 한 장만은 완벽 그 자체였다.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은 날개를 달고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내 자유로운 영혼은 새장에 갇힌 채 더 이상 날 수 없다는 무게감에 어금니가 들썩거리고 노후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 싶어 몸이 아파오면서 중년 가장들이 쓰러지는 이유도 알게 되고...
아버지가 사업부도에 빚보증으로 가정경제를 마비시키더니
이젠 남편도 사업에 가끔 시동생 사업에 없는 자금 빌려주고 난감해하는 꼴 지켜 보다못해
"이러면 나 산으로 갑니다요" 했더니
" 나도 따라가지 뭐" 하는데 밉지가 않은 걸 보면 부부가 맞기는 맞나 보다.
사업 시작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삼 만원짜리 중고 책상으로 시작하여 몇 년 뒤 창고에 기계 한 대로 시작한 사업,
이젠 계획서가 보이기 시작한다.
ME부부들과 함께하면서
젊은이를 위한 선택주말과 부부여정 봉사를 하면서
영성체 때 주님은 나의 살과 피
나의 빵이며 양식이 되어 우릴 살리러 오시는 것처럼
나는 한 남자의 밥이 되기로 했다.
같은 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마냥
부부가 있는 곳이면 부부일치의 불을 붙히러 달려간다.
죽을 것만 같았던 우리부부를 살린 것 처럼
저녁이면 지어미 婦가 있는 동굴로 돌아와 夫婦가 되어 주는 지아비 夫
마주봐도 앞으로 봐도 뒤도 봐도 우린 부부
아침이면 서로 축복하며 중요부위를 맞추며 뜨거운 포옹을 한다. 夫婦 란 이름으로
탁월한 선택의 안목을 안겨주신 아버지 감사 합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위하여 묵상글 하나 드립니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을 포기하고 버리라는 요구입니다.
결혼은 당신 하나만을 선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당신들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출발합니다.
우리의 삶은 수 없이 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결단하는 연속입니다.
하루를 살면서도 선택과 결단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결혼 역시 그러합니다.
세상의 모든 남성과 여성을 나의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팔이 두 개인 까닭도 오로지 당신만을 안아서 포옹하라는 하느님 섭리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너라고 부르는 당신을 나의 배우자로 선택하면
이제 더 이상 당신이 아닙니다.
너라는 당신은 나로부터 태어난 또 다른 나입니다.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나가됩니다.
<나>는 <너>가 있음으로 그 존재가 시작되고
<나>가 <나>일 수 있는 까닭은 오로지 <너>에 의해서 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의 메아리요
<너>는 <나>의 산울림입니다.
<너>는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입니다.
<나>는 <너>를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로 만납니다.
그 선물을 향해 나는 나를 물처럼 흘러 보내고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 관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너를 나의 가슴에 앉아버립니다.
안명옥마산교구주교님 < 결혼과 부부일치> 묵상 中에서
첫댓글 좋은 글 소개합니다.
좋은 글에 잠시 더위를 몰아줍니다. 특히 잡힌고기 미끼줄리없다는 유모어.
무더운 날씨 방콕하며 내일을 준비 합니다 감사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