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85만 명 신청 가파른 증가세
사주 맞는 이름 삶에 긍정적 영향
연예인·운동선수 개명바람 선도
"막연한 기대에 불필요한 개명 많아"
너무 가벼운 결정, 반대 목소리도
·10년간 국민 50명당 한 명꼴로 개명
지난 10년간 이름을 바꾸겠다고 법원에 신청한 사람은 85만 명에 달했다. 우리나라 국민 50명 중 한 명 꼴로 개명을 시도한 것이다. 개명 신청은 2005년 11월 대법원의 '원칙적 허가' 결정 이후 급증하고 있다. 2006년 처음으로 개명 신청이 10만 건을 돌파한 이후 매년 2만여 건씩 늘어 올해는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지역의 경우에도 2006년에 1만 1천796건에서 매년 큰 폭으로 늘어 2009년에는 2만 630건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명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 문규현의 이전 이름은 문재화. 늘 '문제아'라는 놀림을 받다 이름을 바꿨다. 맛집 취재를 갔다 50대의 여주인에게 이름을 물으니 이름이 부끄러워서 죽어도 안 가르쳐준다는 적도 있었다. 개명의 가장 큰 이유는 흔하거나 특이한 이름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시달렸던 놀림이 싫어서이다. 이밖에도 성명학적으로 좋지 않다거나, 사업이나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개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별이나 이혼한 뒤 새로 출발하는 의미로 개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신민아, 강예원, 손아섭 …
개명 바람은 연예인들이 선도하는 경향이 있다. 움직이는 1인 기업인 연예인들에게 이름은 바로 브랜드. 연예인들은 처음부터 예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연예 활동 중간에 과감하게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현재 최고의 톱스타 반열에 오른 신민아는 데뷔 때 본명인 '양민아'를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양미라가 '버거소녀'로 뜨자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름를 바꾸는 승부수를 던져서 결국 성공했다. 영화 '해운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강예원의 개명 전 이름은 '김지원'.
개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연예인들도 있다. '꽃보다 남자' 이민호의 예명은 '이민'. 이민호는 이 이름으로 활동하다 큰 사고를 당했다. 결국 이민호는 본명으로 돌아와 스타가 되었다. 김남길 역시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이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 지난 2008년 본명으로 돌아온 뒤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민선은 그동안 영화배우로 쌓은 지명도를 모두 버리고 갑자기 이름을 '김규리'로 바꾸어 화제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으로 인한 마음고생을 벗어나 심기일전하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연예인처럼 젊은 나이에 목돈을 벌어야 하는 프로 선수들도 이름에 민감하다. 특히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는 개명한 선수가 여섯 명에 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름을 바꾼 뒤 가장 유명해진 선수는 손아섭. 20년 동안 써온 '광민'이란 이름을 지난해 '아섭'으로 바꾼 뒤 올해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이밖에도 투수 오병일은 승리를 지킨다는 뜻의 오수호, 박승종은 박종윤, 박남섭은 박준서, 이웅용은 이도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명한 선수들의 이번 시즌 기록을 찾아보았다. 안타깝지만 개명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추억 속의 이름은 바꿀 수 없는데
시내의 한 작명소를 찾은 김영옥(47) 씨를 만나 이름을 '김소영'으로 바꾸기로 한 사연을 들었다. 김 씨는 10여 년 전부터 고민하던 개명을 결정하고는 굉장히 만족해했다. 김 씨는 "그동안 모든 게 다 안 좋다가 결국 몸에 파킨슨병까지 왔다. 주변에서 이름을 바꿔 잘 된 경우를 많이 보고는 이름을 바꾸라는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이수진(26) 씨는 얼마 전 '이지율'로 이름을 바꿨다. 이 씨는 국립대를 나왔지만 취업 원서만 내면 서류전형에서 전부 고배를 마셨다. 이 씨는 이름까지 바꿔가며 노력을 한 덕분인지 지난달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 취업이 되어 얼마 전 중국으로 출국했다.
쉽게 이름을 바꾸는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김남구(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동창생 명부에서 낯선 이름들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낯선 이름은 개명을 한 친구들. 김 씨는 "어릴 때부터 정겹게 불렀던 이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개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름을 바꿔서 인생도 바꾸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이름을 버리는 것이라면 너무 가볍게 결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개명은 심기일전의 계기
개명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역학이나 성명학 전문가들은 사람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주이고, 그 다음이 이름이라고 본다. 사주는 이미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라 사실 개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름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개명을 통해 좋은 것을 가질 수는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주상 부족한 점을 이름으로 보완한다면, 사주 전체가 좋아질 수 있다고 개명을 권한다.
이름이 심리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은 더욱 솔깃하다. 좋지 못한 이름에 부정적인 선입관이 생기고, 좋은 이름에 긍정적인 선입관이 생겨 생활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겨 모든 일이 잘 풀린단다. 이름은 누군가로부터 부여된 것이라 그걸 자기 의지대로 바꾸면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명을 한 모든 사람들의 일이 잘 풀린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개명이 심기일전의 계기가 된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성명학 관계자들은 주변에 개명한 사람이 있다면 꼭 바뀐 이름으로 불러주라고 권한다. 또 개명한 당사자에게는 예전 이름을 부르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 충고한다. 달라진 이름은 그가 남기고 싶은 이름이기에 그렇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개명시 유의 사항
1.좋은 이름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예쁜 옷이 모두에게 어울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예쁘거나 멋진 이름을 고집하면 성명학적으로 되레 좋지 못하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너무 큰 이름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름을 잘못 바꾸면 별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나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2.유행에 너무 민감하지 말자
이름도 유행을 탄다. 한동안은 순우리말 이름이 크게 유행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성명학계에서는 이를 지탄했다. 요즘에는 순우리말 이름을 거의 짓지 않는다. 또한 순우리말로 지었던 이름도 개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작명은 사주를 바탕으로 해야한다
사람은 내면의 성향이 모두 다르다. 기본 성향을 알고 보충해서 조화롭게 이름을 지어야 한다. 직장인 성향의 사람에게 사업가의 이름을 지어주면 직업이 안정이 안 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기 쉽다.
4.전문가에게 맡겨라
최근에는 개명 바람을 타고 1∼2개월 교육을 통해 이름 상담가를 배출하는 창업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주를 모르고 작명하면 실수를 하기 쉽다. 따라서 집에서 이름을 짓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도움말=정성우·주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