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잔잔한 스즈키 바이올린 곡이 허공을 날아다닌다.
욕실에서 새어 나오는 수도꼭지 속의 뽀그락 소리,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화음이 되어 한 곡의 악보를 그려 나간다.
습관처럼 거실을 지나 옹기종기 진열해 놓은 식탁 위 미니 선반에 있는 휴대폰 뚜껑을 열어본다.
9월29일 월요일 pm 12:55분... 손에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시대에 나도 살고 있다.
얼마 전 새로 구입한 휴대폰은 요즘 구미에 맞게 색상도 세련되고 디자인도 톡톡 튄다.
휴대폰 때문에 우리 집 남자와 한판 심하게 한 탓인지 벨 소리에도 나는 고도로 긴장하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우리 집 남자가 사다놓은 정열에 흠뻑 젖어있는 와인을 허리가 잘록한, 무늬 없는 글라스에 한잔 가득 따랐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수면제라며 가끔씩 사다주곤 한다.
옅은 녹색의 체크 무늬가 있는 정감이 넘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혼자 분위기와 와인을 마시고 있으면 눈치도 없이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숨가쁜 일과가 연기처럼 사라지면 까닭 없이 밀려오는 그 무엇이 나의 숨통을 조여 온다.
2-1
벌써 새벽 쪽으로 시계바늘이 기울어 1시를 치는 괘종 소리가 옆집에서 어렴풋이 들려온다.
거실로 나와 보니 창호지 한 장 정도로 보이는 하늘에 별 몇 개가 졸린 듯 흐릿하게 깜박거리고 있다.
몇 시간 전 카페에서의 그와 만났던 시간들이 기차의 여운 마냥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져 밀려온다.
벌써 9월의 막바지가 되어가니 하늘빛과 공원의 나무 잎새 빛깔이 어둠과 합작하여 분위기를 무겁게 해 준다.
그와의 해후가 얼마 만인가?
아마 한달 전이었을 것이다.
그를 출근시키고 아이 마저 학교에 보내고 나니 항상 돌아오던 매일의 일상적 시간 속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끼곤 했었는데 그날 따라 널따란 거실 창으로 조각 보 크기로 쏟아지는 햇살이 싱그럽게 비치고 커피 한잔을 꼭 마셔야 한다는 심정이 절박하게 느껴졌다.
막 커피 물을 불에 올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전화 밸이 고요를 깨고 울린다.
친구들이나 이웃 학부모라면 의당 핸드폰으로 할 텐데 유선 전화라니?
그러니까 참 오랜만에 전화 밸 소리를 듣는 것 같아 생소하다는 느낌과 정감 어린 옛 친구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여러 번 울릴 때까지 선뜻 수화기를 들지 못하게 했다.
또 한 가닥 불안감까지 합세하여....
여보세요.
남자의 약간 떨리는 듯한 탁음의 둔탁한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뇌리를 치고 심장에 와 박힌다.
순간 현기증이 스쳤다.
3-1
단지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던 건 어떤 심리였을까.
"이 순옥씨 댁입니까?"
전화기를 타고 남자의 음성이 귀에 흘러드는 순간 식도를 통과해 뜨거운 김이 역류하는, 비정상적일 만큼 과도한 생기가 발생한다 .
그 생기에서 깃털 마냥 참기 힘든 존재의 가벼움에 관한 조소와 느닷없는 배신감이 동시에 출몰한다.
순간, 그가 떠오르고 그를 떠올리자 그를 향해 선지 나를 향해 선지 모를 격렬한 배신감에 전율한다.
내 사고의 모든 코드가 그에 연결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가 있음에도 그 아닌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에 기대를 갖는 내 은폐된 배신에서 나는 나 아닌 또 다른 여자를 향해 기대를 가질 수도 있을 그의 심리를 유추하고 지독한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무슨 논리인가. 논리적이긴 한가.
그와 사이가 깊어진 이후로 내게 타당한 논리란 가능하긴 했던가.
극도의 불안정에 휘몰 리는 내가 있을 뿐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승인 없이 초소 문을 부수고 나간 트럭이 통제불능인 것처럼 도덕적 논리가 내 부도덕한 기대를 설득하지 못한다.
철커덕, 심장박동 기어에 갑작스런 변속이 일며 리드미컬한 비발디 사계가 흐르는 가운데 네 계절 대지의 변화를 담은 초고속 필름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영상이 머릿속에 환영으로 흘러가고 기대와 조바심이 전파처럼 지직거린다.
"네, 제가 이 순옥인데요?
팽팽해지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깊이 없는.
이미 시동이 걸린 기관차, 가속도가 붙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것에 중독이 된, 경적을 뿍 뿍 울려대는...
그를 알게된 이후 나는 내내 그런 상태였다.
끓는 알코올, 달리는 기관차.
석탄이 바닥나고 알코올이 증발하면 멈추거나 식어버릴 미래가 어디선가 이미 대기 중임을 알기에 혼란스런, 그러므로 더욱 강렬한.
그 날 역시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밀도가 팽팽해진 대기에서의 의식의 공중부양 상태가 계속되었고 내가 기관차가 되어 이미 달리고 있음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내게 와 주기를 바라는 혼돈의 극치였다.
정현우, 그의 목소리는 여전한 탁음임에도 기억 속 그 때보다는 울림이 깊어진 듯도 하다.
4-1
"여보세요, 이 순옥씨...맞나..요?"
"네, 저예요. 현우씨.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현우씨 목소릴 제가 어찌 모르겠어요?!"
"그래, 반가워. 말 놓아도 될까?"
"이미 그러고 있잖아요."
"그런가...하여간 반가워...이게 얼마만 이지..11 년쯤?"
"네.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기억하지. 그때가 92년 중국과 수교되는 해였거든. 그 바람에 회사에서 중국으로 파견 나갔을 때였으니까...그래서 당신이랑 헤어진 거고."
"그거 핑계 아녔나요?"
"핑계...그래, 뭐 아니라고 할 순 없지..."
"건데, 제 번호는 어찌 아셨어요?"
"그거야 쉽지. 마음만 있으면 뭐든 다 알 수 있어."
"그렇게 다 알면서 어떻게 그 동안 전화 한 통 없었어요? 사는 게 재미있었나 보죠?"
"미안해...재미라...글쎄, 살다보니 그냥 그렇게 됐어."
"계속 중국에 계셨던 거예요?"
"아니, 잠깐 우리 이럴 게 아니라...좀 나올 수 있겠어? 여긴 전에 당신이랑 자주 가던 곳이야. 알지?"
"어디... 바닷가요?"
"그래. 옛날 생각이 나서... 보고 싶어.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고. 여전히 예쁘겠지? 가끔 당신 생각 날 때마다 사진 꺼내 보며 옛날 생각하곤 했지."
"무슨 사진? 아! 그..."
5-1
아름다운 '돌섬' 언약의 장소''현우씨는 지금 거기에 있군요! 1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곧 그리로 갈게요!,
현우는 그녀의 목소리가 감미로운 듯 껌을 씹으며, 지난 날 사진을 찍었던 돌섬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현우는 어릴 때부터 바다가 좋았다. 모두의 꿈을 싣고 출렁이는 바다 그 꿈이 지금 현우 에게도 순옥 에게도 힘차게 출렁이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는 와삭! 와삭! 모래알을 씹으며 흰 거품을 토해 내면서 현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 에게 전화를 받은 순옥은 마음이 급했다. 화장이며 옷을 골라 입 는 일도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있는 모습 그대로 현우씨를 만나기로 했다.
처음 현우씨를 만날 때도 '얼굴에 분칠하지 마십시오! 자연 그대로가 신선합니다.'이렇게 강조하여 왔기 때문에 현우씨의 의사를 존중하는 뜻에서 옅다.
돌 섬을 향하여 달리는 차장 밖에는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황금빛 벼 알이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강 어구를 지나면 끼룩! 끼룩! 철새들이 제 갈 길을 찾아오고 가는 모습이 분주하다.
순옥은 순간 순간 현우씨의 얼굴을 그리면서 타고 온 차는 선착장 공터 에 세워놓고 배에 오르니 배는 이내 돌 섬을 향하여 출발했다.
오랜만에 바다 특유의 짭질한 내음이 현우 씨에게 풍겨오는 남자의 구 수한 멋이라 생각하며 마음껏 향유했다.
배가 돌섬 선착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현우가 눈동자를 제 빠르게 굴리며 순옥을 찾기 시작했다.
순옥도 고개를 들고 현우를 찾았다.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유성이 빤짝이듯 머리에 현기증이 생겼다.
'현우씨!!ㅡ' '오! 순옥씨!!ㅡ'두 사람의 목소리에 놀란 듯 선착장 주변을 날고 있던 갈매기도 두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1-2
적당하게 그을린, 운동으로 단련된 남성미가 넘치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이다.
카메라 줌이 목표물을 잡아당기듯 우리의 시선이 좁아질수록 가슴속에서는 연거푸 찰떡을 찧어대는 떡 매질 소리가 내 살갗을 뚫고 민망하게 고요를 흩으러 놓는다.
여전히 예쁘구먼!
현우 씨도 그대로군 요. 옷 입는 거랑, 머리 스타일도...
"꼭! 한번보고 싶었어."
그의 눈에서 투명한 작은 알갱이가 하얀 눈동자를 덮고 있음을 느꼈다.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척하며 시선을 멀리 수평선 위에 고정 시켰다.
내 어깨 위에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현우씨 손이 인사를 하듯 다가왔다. 순간, 내 몸을 타고 전류가 한바퀴 돌았다.
순옥씨 머리카락에서는 여전히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군!
그런가요?
머리 속에서는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말들이 혼합이 되어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냥 대답만 할뿐.....
11년 전에 있었던 그 노부부 집은 그대로 있을까?
"글쎄요?" 정말 궁금한데요.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높고 파란 하늘이 오전과는 달리 회색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2-2
오후 내내 갈증 같은 걸 느끼면서도 선뜻 속을 다 열어 보이질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때의 노인네 집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작은 집터엔 공원 매점이 들어서 있었다.
오랜 시간 바람이 바위를 깨어 모래를 만들 듯 현우와 순옥의 사이를 알알이 생각들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때 순옥의 어깨에 맨 가방에서 두 사람의 침묵을 깨우듯 헨드폰이 울렸다.
현우씨 잠깐요!
몇 걸음 돌아서 한 손으로 바람벽을 만들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남편 동욱의 굵은 목소리였다.
어디 갔었어?
집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외출했나보다 하고 핸드폰을 했지.
나 오늘밤으로 LA 지사에 급히 볼일이 있어서 한 보름쯤 출장가야 되는데 짐을 챙겨 주어야 되겠어.
불장난을 하다가 들킨 아이같이 얼굴이 붉어지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순옥씨 무슨 일입니까?
아 아무 일도 아니어요.
바로 집에 가봐야 되겠어요.
그날 밤늦게 동욱은 LA로 향했다.
돌 섬에서 황급하게 돌아오고 난 후 현우로부터는 이상하게 한차례의 전화도 없었다.
아직 중년은 아닐텐데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벌써 순옥의 품을 떠난 듯 일절 간섭받기를 싫어했다.
남편은 회사의 초급 간부로 신망을 받아 회사 지사망을 섭렵하며 자신의 야망을 키워갔다
그러면서 순옥의 일을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LA 출장을 다녀 온지 도 2주 정도가 지나서도 요즘은 늦어진 귀가에 침묵과 무관심 정도가 심하다 느껴질 정도이다.
더군다나 아직은 서로가 바라다 만 보면서 삶을 관조할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벌써 새벽 2시가 지났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나절 현우 전화를 받고 서둘러 카페에 갔었다.
카페의 어둔 조명과 바이올린 G현의 음이 익숙해질 무렵 나타난 현우의 모습은 지난번 돌 섬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뭘 숨기고 망설이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3-2
정현우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으며 나는 나의 가증스럼에 대해 생각했고 나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를 정현우의 가증스러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왔네?"
"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바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또 그가 떠오른다.
그 외에 어느 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는 자각이 미세한 좌절을 불러온다.
정현우의 첫 번째 전화에 그렇게 설렜던 건 왜였을까.
발신의 정체가 꼭 정현우 라는 것이 이유였을까...
내겐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원하는 나 자신이 필요했기에 그것이 누구의 전화였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순옥씨, 나 그동안 많이 생각했는데..." 뭘 생각했는데, 쓴웃음을 지을 뻔했다.
"....."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당신을 생각했는가.
생각하긴 했었지, 하지만 다른 여자를 나 몰래 생각할지도 모를 그에 관한 생각을 더 많이 했었고 그 생각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지.
"서로 가정이 있어 무린 줄 알지만 순옥씨 다시 만나고 싶어 아무래도 만나지 않고는 견딜 자신이 없어.
쉽게 내린 결론은 아냐,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그래야 갰다고 결론을 내렸어..."
심각하고 진지하다.
누구 맘대로 결론을 내렸단 거지...
나를 설레게 하던 전화, 기대에 들떴던 돌 섬에서의 만남, 그러나 지금 그 앞에서 갑작스런 답답함에 가위눌림을 느낀다.
제법 절박한 눈빛을 건네는 정현우를 보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탈출을 모색하는 내 의식을 뚜렷이 느낀다.
그러며 어쩌면 내 절박감으로부터 탈출을 꿈꾸게 된지도 모를 그를 병치시키며 전율한다.
하마터면 그 앞에서 도리질을 할 뻔했다.
현우 앞에서도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현우를 만난다
하더라도 내 의식은 깊은 골방 속에 있는 그를 찾아가고 있을 시간이 예상되는 것이다.
"전 생각을 더 해봐야겠어요, 시간을 줄래요?"
무슨 생각을 더 해볼 의욕이 있긴 한가...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은 남편, 그러나 나는 이 시간이 되도록 잠자지 않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나는 남편을 기다리지도 않으며 이른 귀가를 종용할 의욕도 사실은 없음을 알지 않는가.
그에 대한 열정이 가혹할수록 나는 제어되지 않는 나 자신이 점점 두려워졌고 불안감에 시달린다.
남편에 대한 의욕이 생기는 것에 초조하게 기대를 걸어봐도 이미 불가능함을 깨달을 뿐이다.
오랜 공허한 삶을 각자 살아오던 중 서로를 기적처럼 만난 것을 확신했던 그와 나, 감정이 열렬함을 향해갈 때 우리는 같은 코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서로가 서로의 쌍둥이임을 확신하기도 했었다.
안정감이 없는 깊은 혼돈, 차라리 현실이 아니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를 것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날이었다.
4-2
몸과 마음이 안개에 갇힌 것처럼 눅눅한 아침을 맞았다.
아래로만 파고들던 미묘한 생각들을 털어 내듯 집안 대청소를 하였다.
정리되어 있는 이불장을 뒤엎어서 다시 정리를 하고 손이 잘 가지 않았던 배란다 구석구석을 솔로 문지르며 물 청소를 했다.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는 것이 물리적인 힘으로라도 산란한 마음을 정리해 보려는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닿자 잡았던 물걸레를 빨래 통에 냅다 던져 넣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손을 얼른 씻고 허리에 둘렀던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수화기까지 가는 동안 생각은 만 갈래로 나뉘어 서로 누가 힘이 세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 응, 나야, 뭘 하고 있었어.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남편이었다.
냉정을 찾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 아니요 청소 하다가..."
어젯밤엔 어디서 잤느냐고 물으려다가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고는 말끝을 흐린 채 수화기를 귀에 대고만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제는 일이 너무 밀려서 회사에서 밤을 새었어.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 모르고 앉았다가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지 뭐야!.
기다리다 잠들었지 싶어서 전화 안 했어!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엔 부부 동반 계모임 있는 것 알고 있지.
저녁 여섯시까지 집으로 갈게 준비하고 있어!"
"네 알겠어요"
전화기를 내려놓고 무슨 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장식장에 아기자기 꾸며진 석고로 만든 천사 인형이 멍하게 앉아 있는 순옥을 배시시 웃으며 내려다보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은 움직이는 거야!
물위에 떠다니는 무수한 생각들은 시시각각 현상에 따라 변하지만 눈에 먼저 띄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다 착각하기 쉬워!
하지만 더 아래엔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들이 고형 체로 남아 있지.
그것이 지금까지 너를 지탱해준 것이란 걸 알기까지는...
혼란은 새로운 나를 찾는 지름길인 거야.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 나가 끝내 가지고 있는 의문이 아닐까?
순옥은 신에게 마음을 내어놓듯이 천사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5-2
순옥은 며칠동안 "현우의 만남" "남편의 외박"으로 인해, 심사가 뒤틀렸으나 더러운 곳을 구석구석 청소하듯 마음에 먼지를 조금씩 털고 나니 다소 안정이 되었다.
미꾸라지들이 흐려 논 우중충한 구정물이 조금씩 맑아질수록 순옥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마음을 비우고 감정을 땅에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편하다.
신은 모든 사람에게 감정과 생각을 주어 누구나 자유롭게 느낄 수 있게 하였지만 행동만큼은 한계선이 있다는 것을 순옥은 잘 알고 있었다.
일상의 매사가 그렇지만 악행을 잉태하면 결국 악을 출산하고 선행을 잉태하면 선을 출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옥과 현우의 사이에는 서로 건너지 못할 강이 있었고, 칼날 같은 시퍼런 물살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었다.
저녁 계모임 때문에 평소보다 일직 돌아온 남편은 "당신 준비 됐어! 모이는 장소는 바닷가 오륙도 횟집이야!"
다소 생기를 되찾은 순옥은 남편에게 생긋 웃어주며 "그 횟집 당신 친구 집 아닌가요"
"그래 맞아 좋은 친구야! 출발하자고,"
오래 만에 남편의 계모임은 성황을 이루었다. 15명 이나되는 계군들이 모두 부부동반 이다, 쌍쌍이 마주보며 삥 둘러앉은 넓은 객실에는 막 건져 올려 군침 도는 횟감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식탁위로 오고가는 눈길과 손길이 번거롭다.
단숨에 소주잔이 한 바퀴 돌고 나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객실 안은 호호!! 하하!! 웃음으로 가득 찼다.
계장인 유영철은 순옥을 힐금힐금 쳐다보며 동욱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동욱아! 너 요즘 사귀고 있는 애인 몇이나 돼?
"동욱이 영철을 흘겨보며 "자식! 어디 한 두 명 가지고 마음에 차겠어! 연필 한 타스 정도는 되어야지!" 동욱의 말이 끝나자 모두 순옥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한 동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다소 잠잠해 지자 영철은 정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야들아! 내 친구 중에 11년 만에 중국 상해에서 입국한 대학 동창을 며칠 전 만났는데 참으로 안됐어!
그 친구 말이야! 부인이 상해에서 사스로 죽었다더군!
옳지 그 친구 이름이 현우!
정현우 맞아, 10여 년 만에 만나 술 한잔 나누다 그 이야기 듣고 보니 눈물이 술잔을 득 채워 버렸어!
그 친구 상해 병원에서 국적이 한국 여자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더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있던 동욱은 "참 안됐네!
그래! 자네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던가?
입국했다니 자네가 재혼 할 여자 있는지 알 아 봐 주게나!"
"취중에 하는 이야기 들었는데 그 친구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 하더군!"
무의식중에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던 순옥은 두어 잔 마신 술이 입에서 울컥 치솟아 올랐다.
순옥은 목줄을 타고 오르는 욕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동욱에게 "여보! 속 이 무척 거북하네요!
잠깐 밖에 바람 쐬고 올게요!" "뭐! 두어 잔 마시고 그래! 그러면 먼저 가! 우린 노래 한 곡씩하고 갈 테니! "순옥은 동욱을 힘없이 돌아보며 " 동욱씨! 많이 마시지 마!" 이렇게 말하고 횟집에서 나왔다.
지옥의 굴에서 탈출하듯 콩알처럼 튕겨져 나온 순옥은 즉시 핸드백에서 폰을 꺼내 현우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남기고 *표나 #정자를 누르세요!!]
다음 날 현우에게 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순옥이가 잠에서 깨어난 오전 10 시였다 .
"순옥! 메시지 고마워! 어제 밤 많이 마셔 전화 온 줄 몰랐어!
난 내일 상해로 돌아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10시 30분 대한항공 김해공항이야!" "현우씨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돌 섬의 약속 때문에 내일 공항으로 나갈 깨요!" "그럴 필요 없어! 남편한테 잘 해줘! 그럼-"
현우는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렸다.
순옥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11년 전 현우가 상해로 떠 날 때 준 십자 목걸이를 꺼내보며 쪽지에 몇 자 적어 예쁘게 포장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가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었지만 순옥의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눈언저리가 촉촉이 젖어왔다.
시야가 흐려왔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는 것이 윈도 브러시 스위치를 눌렀다. 찍! 찍! 윈도브러시는 마른 유리를 닦고 있었다.
순옥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합실 안으로 뛰어갔다.
여기 저기를 찾아 봐도 현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2층 계단으로 오르려다 발을 헛디뎌 그만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구두와 핸드백이 계단 밑으로 굴려 내렸다.
잠시 정신을 잃은 순옥은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간신히 몸을 세우고 계단을 올라 대합실 의자에 앉았다.
공항 대합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2층 계단에서 십자 목걸이를 잃어버린 분은 공항 대합실로 와서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순옥의 핸드백에서 빠져나온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우씨! 사랑해!
십자 목걸이 알지!
당신 꺼 돌려 드립니다.
현우씨! 행복을 위해 매일 기도할 깨요!
순옥이가 -
정신을 차린 순옥은 시계를 보니 10시 32분이다.
창 밖을 보니 비행기는 독수리가 비상하듯 서서히 이륙하더니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순옥은 반쯤 눈을 감은 채 한동안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
현우씨!
행복 해야돼! 끝
egg님(안태운) 까지 7.5쪽이 써 졌습니다. 그러니 짧게는 두분 길게는 한분 만 더 써서 마무리 해 주십시오. 강홍준님 바쁘시면 진용숙님과 안수정님 이어서 마무리 해주십시오. 그래서 월요일 까지 마무리 하고 수요일 수업에, 출력하여 제출하고 한부 씩 뽑아 드리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첫댓글 지금 껏 수고해주신 연작 작가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애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사랑해 주시고 격려바랍니다. 다음 쓰는데로 정리 해 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11포트로 6.5쪽을 썼습니다.안태운(4-2), 강홍중님(5-2) 또 진용숙, 안수정님 정도로 8-9쪽 정도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egg님(안태운) 까지 7.5쪽이 써 졌습니다. 그러니 짧게는 두분 길게는 한분 만 더 써서 마무리 해 주십시오. 강홍준님 바쁘시면 진용숙님과 안수정님 이어서 마무리 해주십시오. 그래서 월요일 까지 마무리 하고 수요일 수업에, 출력하여 제출하고 한부 씩 뽑아 드리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앤이 사라져서, 이제 이 방에 오는 재미도 시들하다. 앤, 또 하나 맨들모 안 되까...
또 조를 짜서 해 보죠. 마무리 하신 강선생님 수고 많았습니다. B조 님들 그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