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에스페로 (La Espero)
1960년대 후반 초등학교 시절, 당시 살던 집에는 학교에서 쓰던 교과서외에 읽을 책은 거의없었고 어문각에서 나온 “나의 발명발견이야기”라는 전집류가 그나마 읽을 만한 유일한 책이어서 그 책을 수없이 읽고 또 읽어서 거의 모든 내용을 외우다시피 하였었다.
그로부터 10여년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절(1979년초) 이었다. 종로1가 부근을 홀로 걷던 중 전신주에 붙어 있던 녹색 포스터 한 장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왔다. “에스페란토강습회”, 당시 서대문로타리 부근에 있던 국제대학교에서 개설한 일반시민을 상대로 한 에스페란토 언어강습회를 소개하는 포스터였다. “에스페란토”는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책(나의 발명발견이야기)에서 소개된 내용중 하나였던 것으로 포스터를 보는 순간 오랬동안 잊었던 어릴 적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3주간의 강습회에 참석을 하고 에스페란토를 통한 새로운 세계(Esperantujo)에 입문하게 되어, 이후 상당기간(대략 12~15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젊은 시절의 한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
우리 사다리 회원들을 위해 에스페란토에 대해 좀 더 소개해야 겠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7월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Ludoviko Lazaro Zamenhof, 1859~1917) 박사가 창안한 국제공용어이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는 당시 러시아 지배아래 있었으며 유태인 자멘호프는 유태인, 폴란드인, 독일인, 러시아인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갈등과 불화가 생긴다고 판단하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국제공통어를 고안하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언어에 능통하였던 자멘호프는 그 언어 장점만을 모아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과 알기쉬운 어휘를 기초로 한 언어 ‘에스페란토’(글자는 로마자이며 자음 23자, 모음 5자로 구성)를 창안하였다. Esperanto는 그때 사용하였던 자멘호프의 필명으로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나중에 이 언어의 이름이 되었다.
에스페란토는 인류가 한 형제라는 인식아래 이 언어를 통해 민족간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추구하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사용․발전시키고 말이 서로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중립적이고 배우기 쉬운 “에스페란토”를 쓰자는 “1민족 2언어주의(세계 언어 평등권 운동)”를 표방하고 있다.
에스페란토는 세계 120여개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11개국에서 단파 및 위성방송을 통하여 국제방송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서고금의 많은 작품들이 에스페란토로 번역되었으며 에스페란토를 사용한 원작소설 및 시 창작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 인터넷의 보급확산으로 세계는 지구촌이 되었고 에스페란토는 인종, 종교, 이념, 국적을 초월하여 자유로운 대화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에스페란토가 최초 보급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906년 일본에스페란토협회의 기관지에서 고종황제가 에스페란토를 연구중에 있다고 기록된 것이 참고가 될 수 있으며 1920년 김억의 지도로 서울 YMCA에서 최초의 에스페란토 공개 대중강습회가 개최된 이후 1924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고정란에 김억, 이광수에 의한 에스페란토 논문들이 다수 지속적으로 게재되었다. 현재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에스페란토문화원에서의 언어강습 및 일부 대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 등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La Espero”는 “희망” 이라는 뜻을 가진 Esperanto 단어이다.
이미 중년을 맞고있는 사다리 회원들에게 삶의 무게가 나날이 무거워 지는 시기이다. 어려울 때 어렵게 가져보는 희망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에 글을 써 보았다.
첫댓글 이미 중년의 끝을 맞고있는 사다리 회원들에게 삶의 무게가 한참 무거워진 시기이다. 어려울 때 어렵게 가져보는 희망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에 글을 써 보았다는 말에 상당히 공감한다..
“La Espero” 희망을 갖어라~~~~~~~~~~~~~~~~~
우와~~~ 거사 글 솜씨 대한하네`~~~~!!!
롱간텐폰
기억력 좋은 물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