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지구와 안드로메다, 그 막막한 괴리
SF+스릴러+블랙코미디+하드코어=컬트??
2003년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의 장르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개봉 당시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일찌감치 극장에서 내려졌지만 소수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거쳐 '재개봉'이라는 신화를 창조한 영화.
아직도 '대작'과 '졸작'이라는 상반된 평가 사이를 열심히 오르내리는 영화.
독특한 내면세계를 가진 장준환 감독, 그가 말하는 '지구를 지키는 방법'은 참으로 황당하고, 기발하고, 비장하고, 어둡고, 슬프다.
병구(신하균 분)는 태백 폐광촌에서 수제 마네킹을 제작하는 청년, 동춘 서커스 곡예사 순이(황정민 분)와 함께 늙은 삽살개 '지구'를 키우며 부업으로 벌도 친다.
이 친구의 중요한 임무는 바로 지구인으로 위장한 외계인들을 찾아 섬멸하는 것.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안드로메다 PK45 행성 외계인들의 수장인 '왕자'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자는 다름 아닌 한 때 병구와 그 어머니가 몸담았던 대기업 '유제화학' 사장이자 경찰청장의 사위인 강만식(백윤식 분)이다.
강사장의 지구인 위장법은 '적당히 튀는 지위, 돈만 아는 아내, 못돼먹은 자식들' 이란다.
어쨌거나 오늘은 개기월식 7일 전, 월식이 시작되면 안드로메다에서 왕자가 오고 지구는 끝장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십중팔구 이 영화가 가벼운 코미디라고 확신해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에 텔레파시 차단용 헬멧을 뒤집어쓰고 검은 비닐 망토를 걸친 병구가 심각한 대화 끝에 순이에게 내뱉는 "너 왜 우니?" 라는 대사의 무너지는 억양, "무서워, 오빠..."라고 울먹이는 순이의 더 무서운(?) 범상치 않은 외모.
그런데 납치당하기 직전 술 취한 강사장의 행태는 병구의 과대망상에 작은 동조의 여지를 주고 있으니, 한 손을 뻗고 주먹 쥔 한 손은 머리에 댄 채 듣도보도 못한 외계어를 중얼거린다.
"오 무취 으 파치 오이무치 옴 마흐크..."
게다가 "어머니 생일은 매년 있냐?" 라니...
이제 용감한 지구 청년 병구의 손에 붙들린 13번 째 외계인(?) 강만식의 앞길에도 암담한 개기월식이 시작된다.
헌데 순이는 아직 용감한 지구인으로서의 정신무장이 덜 된 듯하다.
기절한 채 '텔레파시 용 안테나'인 머리칼을 면도당한 강사장을 보고 한다는 소리,
"오빠, 이렇게 하니까 진짜 외계인 같애..."
"외계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외계인이야~!!"
비록 사지를 묶여 무장해제 된 상태지만 이 지긋지긋한 외계인들의 신경 시스템을 약화시키려면 물파스에 함유 된 '말레인산클로르페니라민'을 그들의 세 군데 약점(각자의 상상에 맡김)에 발라야 한단다.
흡수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이태리타월로 적의 발등을 벅벅 문질러대는 그들, 상당히 낯선 폭력이다.
한편 강사장의 실종으로 발칵 뒤집힌 서울.
사고 현장 주차장에서 알약 '인텐쯔'(우울증과 화학병 치료제, 일명 '병원에서 주는 히로뽕')를 찾아낸 '개코 반장' 추형사(이재용 분)와 그의 추종자인 신참 김형사(이주현 분), 그리고 이반장(기주봉 분)까지 모두의 관심은 이 사건에 집중된다.
그런데 300볼트 전기 충격에도 달랑 이 한 개 빠지고 나머지는 멀쩡한 강사장.
'고통이란 건 절대로 익숙해질 수가 없는 것' 이라는 병구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진 고문을 꽤나 잘 견딘다.
관객들은 병구의 과대망상과 강사장의 외계인스러운 맷집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때 은행 감시카메라에 강사장의 카드로 400만원을 인출해 간 소박한(?) 범인의 모습이 찍히고, 같은 시기에 병구 어머니의 입원비 377만원이 지불된 것을 알게 된 추형사는 몇 년 전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인텐쯔'가 도난당한 사실까지 밝혀낸다.
"너, 내 IQ가 얼만지 아냐? 강릉공장 이병구 맞지?"
강사장의 추궁에 안절부절 못하며 안정제를 삼키는 병구.
강사장의 말대로 병구는 공장에서 화학약품에 중독 돼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와 파업을 하다 죽은 전 애인의 복수를 위해 그를 납치했던 것일까.
영리한 강사장은 병구와 순이를 이간질 시키고 갈등하던 순이는 병구를 떠난다.
개기월식 3일 전, 탈출 시도에 성공한 강사장은 쓰러진 병구의 가슴을 마구 짓밟는데 심장 마사지 200줄 차지의 효과를 발휘한 그의 쓸데없는(?) 폭력으로 기사회생한 병구.
이제 강사장은 그보다 좀 더 영리한 지구인에게 한층 강력해진 제제를 받게 된다.
병구를 코앞까지 추적해 온 추형사는 '지구'가 물어뜯고 있는 인골을 발견하지만 이를 눈치 챈 병구의 벌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추형사를 찾아온 김형사는 지난 5년 간의 실종사건들이 모두 병구가 저지른 연쇄살인임을 알아챈다.
광부였던 아버지의 다리 절단과 사고사.
어머니를 괴롭히던 깡패를 죽이고 교도소에 갔다 온 병구는 광부들의 목욕탕이었던 자리에 집을 짓고 고교시절 악랄했던 담임선생과 폭력 교도관, 애인을 죽인 경찰과 어머니의 상관이었던 공장장을 차례로 납치, 고문하고 살해했던 것이다.
병구가 없는 사이 그의 지난 흔적을 모두 읽고 오열하는 강사장의 변화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비열한 권력자였던 그의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자신이 안드로메다 외계인임을 자백하고는 어머니를 살리려면 해독제인 '벤젠'을 먹여야 한단다.
병구는 어이없게도 그 말을 믿고, 독극물을 마신 어머니는 곧 숨을 거둔다.
"내가 미쳐갈 때 어딨었어?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 거야, 니들이 다 죽였어!"
이렇듯 병구가 스스로를 '미친 사람'으로 인정해 버렸으니 이제 강사장은 무고한 피해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감독은 넋 놓고 있던 관객의 뒤통수를 보란듯이 내리친다.
강사장 왈, 사실 자신은 외계인인데 이제껏 병구가 납치한 사람들 중 진짜 외계인은 두 명 뿐이고 나머지는 개인적인 복수의 상대가 아니었냐며 호통을 친다.
그러면서 75대 선왕이 지구를 발견하고부터의 인류 역사를 줄줄이 늘어놓는데 그 레퍼토리가 영락없는 어떤 신화의 패러디다.
다시 돌아온 순이는 "아무도 없어, 오빠가 지구를 지켜야 돼" 라며 병구의 손에 물파스를 쥐어주지만 강사장의 말대로 병구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다.
강사장은 순이를 죽이고 병구는 김형사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바비인형으로 상징되던 순이의 지고지순한 사랑도 병구를 지켜주지는 못한다.
"순이야...엄마...이제 엄마한테 갈 수 있어, 그런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병구의 죽음 끝에는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구출 된 강사장의 머리 위로 한 줄기 빛이 비치고 그 빛 속으로 가볍게 빨려들어가는 강사장, 지구의 생사를 결정할 '왕자'(메시아의 이미지)는 바로 강사장이었던 것.
그는 새로운 유전자를 실험해 인간들의 광폭한 공격 유전자를 없애려던 노력을 포기하고 희망을 상실한 지구를 파괴해 버린다.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할리우드 식 결말을 기대하던 관객들에게 이 패기 넘치는 신인감독은 보란듯이 엿을 날린다.
이 영화는 극도의 폭력성을 도구로 하여 힘의 논리와 파괴로 얼룩진 인류의 비극적 종말을 만화적이고 코믹한 방법으로 풍자하고 있다.
'병구'는 '병든 지구'를 대변하지만, 얼핏 정당한 원인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병구의 피해의식마저도 폭력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결국 어떠한 폭력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니,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또한 '절대 이길 수 없는 무서운 외계인'으로 표현되는 강사장의 승리는 병구와 같은 사회적 약자와 대립되는 대표적인 자본가의 이미지와도 중첩된다.
어쨌거나 오랜 폭력의 결과는 선한 자(어머니, 순이)나 악한 자(깡패, 선생, 교도관, 경찰), 가해자(자본가)나 피해자(노동자), 방관자(추형사, 김형사)나 제 3자 까지도 예외 없이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같은 운명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지구는 피괴되어 버리고 만다)
엔딩, 티브이 박스 안에 비춰지는 슬프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모습들은 우리가 끝내 지켜내지 못하고 스스로 파괴해 버린 소중한 현재이며 잃어버린 미래인 것이다.
글/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