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2-1-1.zip
惠庵 門人 청봉청운 선사 의역 강설
般 若 波 羅 密 多 時
반 야 바 라 밀 다 시
밝은 지혜로 구경에 이르렀을 때
반야바라밀다시는 지혜(반야)로 한없는 구경의 경지(밀다)에 깊이 이르러(바라) 체달할 때(시)이다.
[반야바라밀다시는 거짓 내가 참나(절대 근원체인 나)를 깨달음(不二)으로 확철하게 되는 때이다.
따라서 자아의 의심(초발심, 因)으로 참 나를 깨닫게(변정각, 果)되는 것이다.
공부는 사량분별, 지식(알음아리)이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니
실답게 깊고, 칼날같이 깨어 있어 물에 빠진 자가 살아 나오려는 듯이, 잊은 물건 찾듯, 어려운 일 당했듯이, 은산철벽을 뚫고 나가듯이 해야 성취되는 것이다.
상근기는 말 없이도 알고, 중근기는 말을 듣고 알며, 하근기는 칠일 내에 깨친다고 했는데 이렇게 듣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너무도 가련한 일이 아니겠는가?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뒤의 색신(有餘涅槃)의 나는 변함이 없으되
깨닫기 전에는 업신의 노예로 욕망 속에 살고,
정각(부처님) 후에는 깨달은 자의 행으로
걸림 없는 보살행과 참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름 붙이기 전 부처(법성)와 온 몸으로 깨달아(體得: 몸소 체험하여 얻음 곧 증득) 인격 혁명을 한 부처님(정각인)과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반야(般若)
바라(波羅)
밀다(密多)
시(時)
照 見 五 蘊 皆 空
조 견 오 온 개 공
비춰 보니, 몸과 마음의 근본 다섯 가지가 모두 비었음을 깨닫고
조견(照見)은 비춰본다는 것(觀)이다.
[상대적인 자아가 절대아를 비춰(觀) 자아가 절대아(자성, 진성, 진여)와 둘 아닌 때이니 따라서 상대지를 집착하고는 절대(본원)를 깨달(견성)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접 이르러 보지 않고는 지식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견성{보는 나(見)와 보이는 나(性)가 있는}이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쓰는 용어일 뿐 맞는 말이 아니다]
오온은 오중(五衆), 오음(五陰), 오취(五聚)라고도 하며 色 . 受 . 想 . 行 . 識으로 인식케 하는 근본 뿌리가 모여 있는 것을 일컫는 명칭인 것이다.
[색온(또는 색근)은 몸을 포함한 물질의 유형의 현상이며,
수상행식의 오근과 오경을 모두 포함한 말로 쓰이기도 한다.
수온은 느낌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며,
상온은 소리 빛을 포함한 지각에 의한 표상이며,
행온은 생각 움직이는 공간이며,
식온은 알고 분별하는 것으로 이 네가지 모두 무형(상이 없는 것들)이다.
마음(본체인 자성) 가운데는 비어 공적하여 오온이 실체가 없건만 일체를 갖추어 쓰니 오묘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묘유(妙有)하고 묘용(妙用)한 것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좀더 설명하면 6근(인식기관인 주체)인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이 대경(對境)인 6경(대상인 객체)
즉 색경, 성경, 향경, 미경, 촉경, 법경에 응하여 6식(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인 인식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6 × 3(근, 경, 식) = 18(계)이라 하는데 뒤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으므로 줄인다.
여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의심이 눈, 귀, 코, 혀, 몸 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눈 등의 물체는 6근에 경계를 인식 작용케 되는 기계적(색) 존재임으로 6근, 6경, 6식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色의 실상은 空이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본성의 형상은 비어 없으니 그 가운데 있는 형상없는 육근 또한 없이 존재함(진공묘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개공은 따라서 일체가 비어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