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토요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정기 고연전 럭비경기에서 고려대는 연세대를 상대로 8-5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정기전에서 3년만에 럭비부에게 승리를 안겨준 김성남(체교 94) 감독을 만나 보았다.
김혜진 기자 / 사진 성현준
정기전을 승리한 소감?
우선 좋다. (웃음)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선수들이 큰 경기인 만큼 긴장했을 텐데 침착하게 잘 하였다. 또 올해 서울시장기 때와는 달리 큰 부상을 당한 선수가 없어서 다행이다. 나를 믿어줘서 고맙다. 문익수 체육위원장님, 김용회 코치, 트레이너들 모두 다 정말 고맙다. 처음 스타트를 1학년(장성민)이 끊고, 마지막을 4학년(김민우)가 장식해주고, 중간에 2,3학년이 받쳐준 최고의 경기였다.
승부처를 꼽자면?
후반 20분 지나고 나서 연세대가 센터나 사이드에서 킥을 노리지 않고 라인아웃과 스크럼으로만 득점을 노릴 때 우리에게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결국 김민우가 페널티 킥을 성공하면서 우리가 승리하게 되었다.
MVP는?
딱히 한 명을 꼽을 것이 아니다. 15명 모두가 너무 잘했다. 특히 디펜스가 그렇게 강할 줄 몰랐다. 또한 우리가 이긴 것은 스크럼에서 너무 대등했기 때문이다. 이번 승리의 일등공신은 스크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학교 체육교육과 최형준 박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최형준 박사님은 럭비부 선수들의 심리 치료를 3년째 하고 있으시다. 사실 심리 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빠져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내가 승리할 수 있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 시절이 나에게 너무 힘들었다. 그럴 때 최형준 박사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선수들과 상담도 하고 하나하나 체크까지 하며 신경 써 주셨다. 특히 올해 서울시장기 럭비 대회에서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경기를 지기는 했지만 경기 자체는 잘했다는 생각을 선수들이 가지면서 이번 정기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선수들 사이에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이길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선수들 모두 다 한마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소리칠 정도였다. 박사님 또한 작년과 올해 정기전을 앞둔 선수들의 분위기가 다르다, 이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이 변했다. 정기전 전 마지막 미팅에서 최형준 박사님께서 매직 펜을 가지고 오셔서 선수들을 다 불러놓고 선수들 손바닥에다가 ‘힘’이라는 글씨를 일일이 써주셨고, 그게 정말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정말 최형준 박사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예상 라인업과는 다른 선수들이 있었는데?
(9번 이명준, 13번 김기성, 14번 백현수 선수가 예상 라인업과는 달리 선발로 나왔다)
모두 다 전략이었다. 사실 처음 SPORTS KU에서 선발 라인업을 부탁하였을 때 많이 당황하였다.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웃음) 그래서 일부러 조금 숨겼다. 김기성, 백현수, 이명준을 숨긴 것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성공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기전을 앞두고 삭발을 했는데?
필승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주장 최민석과 함께 송추 목욕탕에서 하였다. 주장이 나의 마음을 알고 함께 해주어서 참 고맙다. 사실 이번 정기전을 위해 최민석은 허리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뛰었다. 정말 수고하였다.
내년에도 삭발 할건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웃음) 머리가 너무 안 긴다.
경기 당일 날 분위기가 정말 좋던데?
사실 나도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애들이 경기를 앞두고 웃으면서 연습을 하니깐 괜히 이러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분위기가 승리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놓은 연세대, 우리학교 인골라인 주변의 존(ZONE)에서는 무조건 킥을 차라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법’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격하게 명령한 것이다. 연세대 진영에서도 무조건 킥, 우리학교 진영 존(ZONE)에서도 킥을 위주로 경기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김민우에게도 특별히 존(ZONE)을 만들어 주었다. 이 존 안에서는 킥을 무조건 넣을 것을 부탁하였다. 정기전 당일 김민우와 골킥을 연습하였는데, 평소보다 각도의 변화가 있음을 눈치 채고 각도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처음 김민우(사체 07) 선수가 페널티 킥을 실패했을 때 어땠는지?
실패하는 것에 대해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실패하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게임에만 집중하라고 하였다.
김민우가 킥을 실패했을 때도 실망하지 않았던 게 사실 우리가 만든 존(ZONE)에서 킥을 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반 연세대에게 트라이를 허용하였을 때?
장성민의 실책으로 트라이를 허용하게 되었다. 사실 조금 황당하기는 했다. 장성민이 공을 잡아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라이 허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장성민이 트라이를 성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성민이 우리를 울리고 웃게 만들었다.
전반전을 마치고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불안해하지 말고 서로서로 믿으라고 하였다.
실수했을 때도 비난하지 말고 위로해주고, 잘했을 때도 칭찬해주라고 말이다.
후반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많았는데?
디펜스를 믿었다. 디펜스가 너무나도 잘해주었다.
연세대의 마지막 공격을 디펜스가 잘 막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이길 것을 직감하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특히 연세대의 박종렬을 막은 것은 대단하였다.
특히 경계했던 연세대 선수는 누구였나.
제갈빈, 박종렬이다.
하지만 이 두 선수가 생각보다 힘을 못 써줬다. 연세대 쪽에서는 매우 안타까웠을 것이다.
라이벌로 꼽힌 제갈빈 선수와 김남욱 선수를 평가해 본다면?
제갈빈은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를 뛴 참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다. 사실 그 당시에만 해도 김남욱은 제갈빈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김남욱의 장래성을 보았다. 그 때 나는 김남욱이 3학년 때부터는 제갈빈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번 정기전에서 김남욱이 그것을 증명하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정기전 준비하느라 마음고생도 심했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피곤하였다. 우선은 조금 쉬고 싶다. 한 달 정도 재정비 한 후 10월 말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다. 선수들도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니만큼 학업에 열중하도록 부탁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과 뉴질랜드와 같은 해외에 나가서 럭비부들에게 더욱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을 겪어보면서 글로벌한 인재로 만들어 주고 싶다.
마지막 한마디
응원해줬던 우리학교 학우들이 정말 고맙다. 우리 럭비부를 위해 응원하고 우리를 봐주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것을 보답하는 방법은 앞으로도 우리가 이기는 것이다. 이번 승리가 터닝 포인트가 되어서 내년에는 새로운 전략과 전술,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좋은 경기를 펼치도록 하겠다.
사실 외부에서 보면 럭비부 선수들이 좋게 보여도 비인기 종목이니만큼 외롭다. 언론의 취재도 야구, 축구, 농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관중도 적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지도자로서 과연 선수들에게 잘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고, 항상 선수들을 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이번 정기전을 뛴 유제민, 김집, 김명환, 최민석, 신관수, 이상효, 최목환, 이학섭, 이명준, 추호영, 김민우, 유성용, 김남욱, 김기성, 백현수, 장성민과 그 뒤에서 함께 한 우리 럭비부 아이들이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