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년도 : 1892
연고지 : 뉴캐슬
홈구장 : St. James' Park
프리미어 리그 우승 : 4번(04/05, 06/07, 08/09, 26/27)
FA 컵 우승 : 6번(1910, 24, 32, 51, 52, 55)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01/02시즌 득점2위)가 소속된 팀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가 이적하기 전에도 여러 유명 선수를 보유한 명문팀이었다.
비록 지금은 중위권 팀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90년대 중,후반에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도 노려 볼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을 갖춘 강팀이었다.
또 뉴캐슬 지역은 '자기 아내보다도 축구를 우선시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열정이 가히 폭발적이다.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본격적으로 '프리미어 리그팀'으로 부각된 것은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캐빈 키건의 지휘 아래
93/94 시즌 프리미어 리그 3위 (이 해에 앤디 콜(Andy Cole)은 뉴캐슬 팀 최다골인 41골, 득점왕에 오른 해였다)에 오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6위, 그리고 그 유명한 95/96 시즌은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해로 맨체스터에게 밀려 아깝게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이었다.
사실 뉴캐슬로서는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시즌 내내 맨체스터를 압도하며 한 때 승점 10점 이상의 차이를 벌려
많은 전문가들이 이변이 없는한 뉴캐슬의 우승을 점쳤는데 정말 이변이 일어났고 결국 준우승에 머물었었다.
사실 뉴캐슬이 우승을 거의 헌납한 것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맨체스터 역시 대단했다.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맨체스터의 퍼거슨 감독과 당시 뉴캐슬 감독이었던 캐빈 키건 감독 간의 자존심 싸움도 굉장했던 한 해였다.
그 당시의 뉴캐슬 팀을 좀더 살펴보면, 지놀라(David Ginola), 페르디난드(Les Ferdinand), 아스프리아(Asprilla), 바티(David Batty), 비어즐리(Peter Beardsley), 알베(Albert)
그리고 롭 리(Rob Lee)까지 화려한 선수 구성에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저돌적인 공격 축구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해였다.
그 유명한 칸토나가 절정의 기량으로 맨체스터 공격 라인을 이끌던 때였지만 공격력 만큼은 뉴캐슬이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들었다.
지놀라는 프랑스에서는 94년 미국월드컵 진출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어 사실상 프랑스에서 뛰기가 힘든 상황이라 뉴캐슬로 이적했는데 잠시 주춤했던 그의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고,
페르디난드는 지놀라, 비어즐리가 만들어 준 찬스를 놓치지 않으며 팀내 최다골인 27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뉴캐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비어즐리는 선수들의 정신적인 기둥 역할까지 해주며 팀 분위기를 이끌어 주었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선수지만 당시 뉴캐슬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전체에서도 지명도가 상당히 높은 전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 공격수 출신으로 그 유명한 게리 리니커(Gary Lineker)와 함께 잉글랜드 대표팀 공격을 주도한 선수이다.
지금은 시어러가 팀의 간판 선수라 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뉴캐슬이 고향인 비어즐리가 팀의 기둥이었다.
아스프리아 역시 유명한 선수로 전 콜롬비아 대표팀 공격수 출신이다. 리그 우승을 위해 시즌 중간에 이탈리아 파르마(Parma)에서 영입, 화려한 개인기로 팬들의 시선을 끌었으나 팀 플레이를 중시하지 않아 비판도 많이 받던 선수였다.
비록 리그 2위에 머물렀지만 유로96 이후,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자리에 오른 시어러를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영입에 성공, 96/97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뉴캐슬이 리그 우승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시즌 초반에는 페르디난드와 시어러의 콤비가 골 사냥을 해주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11월, 12월 부진이 계속되어 키건 감독은 97년 1월에 결국 감독직을 그만 두게 되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큰 쇼크였다.
캐빈 키건 감독은 뉴캐슬, 리버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선수 생활을 한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약체 뉴캐슬을 일약 강팀으로 재건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감독직 사임은 뉴캐슬 팬뿐만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키건은 막대한 돈을 들여 일류급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 간혹 그의 감독 역량을 낮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비록 그가 시어러, 지놀라, 아스프리아 등을 영입한데 많은 돈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아스프리아, 지놀라 같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 능력을 극대화시킨 것은 정말 높이 평가한다.
또한 그가 영입한 선수 중 실패한 케이스도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그의 선수 보는 안목과 선수들을 적절한 포지션에 적절한 시기에 기용하는 용병술 또한 칭찬 받을 만하다.
키건이 물러난 뒤, 95년 블랙번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감독으로 키건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캐니 다글리쉬(Kenny Dalglish)가 새로운 감독 자리에 앉는다.
96/97 시즌 시어러를 영입하며 우승의 꿈을 키운 뉴캐슬이지만 키건의 중도 하차, 다글리쉬 새 감독 영입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리그 2위라는 대단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그러나 예전의 그런 화려한 공격 축구는 어느덧 사라져 갔고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다글리쉬 스타일로 전환하게 되어 아스프리아, 지놀라 같은 선수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97년 리그 준우승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또 한번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길레스피의 정확한 어시스트로 아스프리아는 PK를 포함해,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를 3-2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비록 그 경기 외에는 이렇다할 경기를 못 보여주고 조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깊은 인상을 받은 경기였다.
이 후, 97/98, 98/99 시즌 2년간 리그 13, 12위에 머물며 대대적인 선수 물갈이에 실패, 그 결과 다글리쉬에서 첼시를 FA 컵 우승에 올린 굴리트로 교체, 그러나 그도 오래 가지 못하고 99/00 시즌 초, 굴리트에서 또 다시 보비 롭슨으로 감독이 바뀌게 되었다.
키건 이후, 여러 감독이 거치면서도 선수 영입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키건이 영입한 선수처럼 그런 폭발력은 없었다.
개중에는 많은 돈만 들이고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도 많은데 크로아티아 국가 대표 출신 마리치와 던컨 퍼거슨이 그 예다.
02/03 시즌 뉴캐슬 스쿼드
GK : Steve Harper, Shay Given, John Karelse
DF : Titus Bramble, Andrew Griffin, Aaron Hughes, Stephen Caldwell, Nikos Dabizas, Elena Sierra Marcelino, Gary Caldwell, Robbie Elliott, Andrew O'Brien
MF : Jamie McClen, Laurent Robert, Jermaine Jenas, Kieron Dyer, Diego Gavilan, Gary Speed, Christian Bassedas, Nolberto Solano, Brian Kerr, Stuart Green, Hugo Miguel Viana, Wayne Quinn, Clarence Acuna, Olivier Bernard
FW : Lomana Tresor Lua-Lua, Carl Cort, Alan Shearer, Shola Ameobi, Craig Bellamy
뉴캐슬 02/03 시즌 주요 이적 사항
Hugo Miguel Viana: 스포르팅 리스본(포) --> 뉴캐슬 유나이티드(잉)
Titus Bramble: 입스위치 타운(잉) --> 뉴캐슬 유나이티드(잉)
뉴캐슬 최근 5년간 성적
01/02 4위 승점 71 (우승 : 아스날)
00/01 11위 승점 51 (우승 : 맨.유)
99/00 11위 승점 52 (우승 : 맨.유)
98/99 12위 승점 46 (우승 : 맨.유)
97/98 13위 승점 44 (우승 : 아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