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은 논산에서 공주로가는 23번 국도와 대전으로 가는 4번 국도를 약10리 지점에서 트라이앵글로 엮으면 그 삼각형의 한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쉽게 얘기해서 이쪽으로가나 저쪽으로 가나 교통에 있어서는 오지다.
마을에 시내버스가 다니기 전까지 왕전이나 부적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부황역에 가서 기차를 타야만 논산도 가고 대전도 가고 공주도 갈수 있었다.
옛날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충청도 마지막 주막이 있던 곳이었고 이몽룡이 과거를 보러갈때도 또 암행어사가 되어서
관군을 이끌고 남원으로 향할때도 우리 동네 풋개주막을 거쳐 풋개다리를 건너 갔다.
아뭏튼 옛날에는 교통의 중심지 였는데 근래에는 오지가 되었다.(개인 차량이 생기면서 지금은 오지가 아님)
호남.전라선 기차길이 공주가 아닌 논산을 거쳐 가기까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기차길이 논산쪽으로 뚫리면서 우리 마을은 많은 혜택을 보게 되었다.
부적까지 걸어서 갈것 같으면 부황역에 가서 기차를 타면 되었으니까!
어릴적 못을 갈아 칼을 만든다고
우리 마을에서 냇물 건너고 들판지나 덕평리 건널목까지 가서
기차 레일위에 대못을 올려 놓고 기차가 지나간후 납작해진 대못을 찾느라 ...
명절이 다가올때면 서울사는 우리 삼촌
혹시나 맛있는 과자나 내 꼬까옷이라도 사올까봐
막연하게 부황역까지 마중 나갔던 철없던 시절...
소가 한 식구였고 농사일을 맡아하던 시절
데보뚝(표준말:제방)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는게 방과후 일과 였었는데...
누구는 염소에게 풀을 뜯기기도 하고
누구는 깔(표준말:꼴)을 베기도 하고 ...
우리 카페지기의 상추 팔러가던 그 길도 부황역 가는길 이었고
나도 아버지의 리어카 뒤를 밀며 눈길을 따라 가던길이 부황역 가는길 이었는데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니면서
이 부황역 가는길이 나에겐 더욱더 소중하고 추억많은 길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길을 따라 집에 왔다 기숙사로 간다.
고등학생 이었지만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그것도 군대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고향집을 찾을때면 정말 좋았다. 그 부황역 가는길을 따라 집에 갈때면...
그 부황역 가는길이
요즘 꽃밭으로 바뀌었다.
제방 증개축 공사를 한후 옛날에 소가 풀을 뜯던 그 데보뚝이 꽃밭으로 바뀌었다.
요즘 우리는 매일 꽃을 보며 일을 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부황역 가는길을 좋아 졌는데 부황역 갈일이 없어졌다.
기차를 타려해도 부황역이 없어 졌으니 기차를 탈 수도 없고
나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던 부황역은
다만 아직도 남아 있는 선로 보수반 창고만이 나의 추억을 위로 한다.
첫댓글 도순이형 체조하던 나무도 그대로 있네.
어떤 나무가 도순이형 체조하던 나무인지? 내가 쓴글중 23시 이후에 쓴글은 거의 취중에 쓴 글이다. 왜냐하면 일 끝나고 모임 갔다와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쓴 후에는 다음날 반드시 퇴고를(내용을 확인해야) 해야 한다. 혹시나 취중에 실수한 내용이 있지나 않을까해서!...
8번째 사진, 플라타너스 나무인데 칡넝쿨에 둘러쌓여 있네. 도순이형은 아침 일찍 조깅을 한 후 그 밑에서 맨손체조를 하셨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금계국과 망초(풍년초) 꽃이 참 예쁘네. 우리 어렸을 적에는 풍년초는 있었지만, 금계국은 없었는데....추억의 부황역 가는 길 사진, 무척 감사. (바탕화면으로 지정함ㅋㅋ)
이젠 고속철이 쌩~하고 지나가는 부황역에는 추억 속의 기차만 서게 되었네. 아침 출근길마다 만나는 고속철이 부황역을 지나간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네 *^^*
달라진 것-오고미(?)쪽에서 부황리로 건너가는 고가도로가 우뚝 서 있다는 것. 또 리어카를 밀고 넘어가던 철길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으로 막아놨다는 것(안 그러면 정말 위험하겠다. 비둘기보다 더 오래된 완행열차가 달리던 길에 고속철이 달리니까....)
조금이나마 추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뿌듯!
데보뚝!!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아득한 추억이 숨쉬고 있는곳입니다.동네 형아들을 딸아서 데보뚝을 넘어 강안에서 모래무치 빠가사리 뺌치 메기 그이 를 잡던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군요. 【언젠가 꼭한번】 강안에 가서 세수대야를 물위에 뛰워가면서 물고기를 잡아 세수대야에 잔뜩 채워 보고싶읍니다 .
천동리에서도 냇물에까지 와서 놀았나봐요.냇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