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보낼 '서희의 미소'
고려와 거란은 본래부터 사이가 좋질 못했습니다.고려는 태조 왕건 시절부터 '동족인 발해를 멸망시킨 원수'라 하여 거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공개적으로 표하며 거란에서 보낸 선물로 보낸 낙타를 다리에 묶어두고 굶겨 죽였다고 합니다.(사실 저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진위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는 편입니다.당시 강대국이던 거란이 고려의 이러한 '무례'를 가만히 넘겼을 리가 없었을텐데 거란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고려는 북진정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였고, 거란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송나라와 친교를 맺으며 노골적인 친송정책을 추진합니다.송과 고려의 연합을 두려워 한 거란은 장수 소손녕에게 80만 군사를 주며 고려를 치게 합니다.('80만'이라는 이 숫자 역시 진실일지 의문입니다.)
고려조정은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뒤늦게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병사를 모집하였다는데 이렇게 모인 병사들을 이끌고 북계로 출정을 나간 것은 내사시랑 서희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거란은 남진하며 개경으로 쳐내려오기보다 항복을 강권하며 무력시위만을 전개했습니다.사실 거란으로서는 전면전을 벌일 필요는 없었겠지요.그들에게 당면한 목표는 일단 송나라를 쳐 중원을 통일하는 것이었던만큼 고려에서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메시지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평양) 이북 일대를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서희는 거란의 출병 목적을 완벽하게 간파한 채 자신이 거란과 담판지을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그리고 서희는 소손녕과 마주앉은 채 역사에 길이남게 되는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소손녕은 서희에게 쫑코를 주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서희에게 신하의 예를 받기를 원했다가 한방 단단히 먹게 됩니다.속으로 혀를 내두른 소손녕은 대등한 예로서 마주앉게 되었는데, 소손녕은 여기서 군사를 일으킨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거란은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소이다.그런데도 고려는 마땅히 거란이 소유하고 있어야 할 고구려 땅을 내놓지 않고 있고, 뿐만 아니라 거란과 땅을 접하면서 오히려 송나라를 섬기고 있소.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고려 조정은 마땅히 강탈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내놓으며 우리 거란에 조공을 바쳐야 할 것이오.그렇게만 해준다면야 내 마땅히 군사를 철수하리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릎꿇을 서희가 아니지요.서희는 피식 웃으며 반박합니다.
"하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이까?고구려의 옛 광영을 이은 것은 마땅히 우리 고려외다.그렇기 때문에 국호도 '고려'인 것이고, 평양 일대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그렇게 되면 거란의 동경도 기실 고구려의 옛 터전이었고 압록강 안팍도 고구려의 영역이었소이다.그렇다면 당신네 요나라에서 우리 고려에게 영토를 물려주어야 정상이 아니겠소?"
'자승자박'의 꼴이 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손녕을 바라보며 서희는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허허 웃었습니다.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그리고 교역을 하지 못한건 말이오.여진이 압록강 일대에서 또아리를 트고 앉아 못된 짓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이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 고려가 옛 땅을 되찾아 길이 뚫리게 되면 교역을 하지 못할 이유가 뭐에 있겠소?"
서희는 곧 "여진족의 평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합하자고 제의한 것이지요.그러면서 거란의 80만 군사를 몰아냈을 뿐 아니라, 압록강 동쪽 일대의 280리나 되는 땅을 다시 고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서희의 세치 혀가 100만 대군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고구려사 문제로 요즘 몹시 시끄럽습니다.중국이 고구려사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도 거란과 비슷한 듯 합니다.'고구려'라는 그 자체보다 침략의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중국의 진정한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고구려사 문제를 접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태도일 것입니다.사태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중국의 진정한 의도를 확실하게 분석하면서 그에 대한 맞대응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