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아나는 세월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양 이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지리산 단풍구경을 모두 하리라. 지난 주 삼신봉에 이어 오늘은 백무동~영신봉이다.
일찌감치 배낭을 챙겨 백무동으로 향한다. 함양 땅에 이르러 백무동에 도착하기 직전 먼저 용유담을 만난다.
이름만큼 신비감마저 간직한 용유담은 물빛이야 두말하면 숨가쁘지만 늦은 가을녘의 단풍 또한 일품이다. 역시 명소는 언제라도 명소인가보다. 차를 멈추고 잠시 안구정화로 마음을 즐겁게 해 본다.
드디어 오늘의 산행지인 백무동에 도착하니 입구에 돌장승이 백무동이란 표석과 함께 제일 먼저 반겨준다. 천왕대선(天王大仙), 백모대선(白母大仙)이란 장승의 이름이 기이하게 와 닿는다. 백무동의 무가 '무당 무(巫)'라고도 한다더니 그랬나 보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주차장 옆에 모셔진 지리산 천왕할매상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백무동이 예삿 골짜기가 아님을 실감한다. 천왕할매전에 다가서서 오늘 하루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게 해 달라고 합장 삼배로 기도를 올린다.
이쯤하면 백무동 터주대감에 대한 인사치레는 다 한 셈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지리산 백무동 아름다운 선경을 감상하러 들어간다. 백무동 들머리에 설치된 세석길이라는 홍예문이다.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썩어도 준치요 멸치도 뼈대가 있다더니 명색이 한국 명산 중의 명산인 지리산인데 단풍 또한 어련할 손가. 여기저기 눈길 닿는 데마다 곳곳이 홍장(紅裝)이요 산마다 금의(錦衣)로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굉음으로 들려오는 백무동 계곡물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소리부터 울려온다. 간간히 나무 사이로 계곡의 물줄기가 신선세계인양 허연 속살을 가까스레 비춰 보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과 천둥같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가랑비 내려 촉촉히 적셔진 호젓한 산길을 혼자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내가 길을 간다기 보다 산이 나를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간간히 설치된 심심풀이 설명문도 읽어가며 입으로는 자왈(子曰), 인자요산(仁者樂山)이고, 지자요수(智者樂水)인데, 군자(君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 중얼거리고, 산이 이끄는 대로 안으로 안으로 쉼없이 빨려 들어간다.
지리산과 백무동이 어우러진 무릉도원 같은 선경(仙景)이야말로 산도 좋고 물도 좋으니 군자라 이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렇게 스스로를 군자라 자인하며 이 순간 홀로 신선이라도 된 양 흐뭇해한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계곡물의 양이 엄청나다. 갈곳을 잃은 듯 미친듯이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처음으로 만난 곳은 "첫나들이 폭포"라 이름지어진곳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기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나보다고 생각하며 잠시 감상에 젖는다.
두 번째로 만난 곳은 백무동 으뜸 폭포인 가내소폭포이다. 곳곳이 물천지요 군데군데 선녀탕인 백무동에 무수히 많은 맑은 소(沼)와 담(潭)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내소가 으뜸이라 생각하며 한참을 머물러 추억속의 한 장으로 담아 간직해 둔다.
가내소를 지나면 그 다음의 절경이 오층폭포이다. 층층이 흘러내리는 폭포의 물줄기가 피아노 건반처럼 하모니를 이루어낸다. 색다른 풍경이요 백무동 선경의 또 다른 모습이다. 여기엔 아예 전망대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 모두가 아름다운 백무동의 자태인데 이를 굳이 어느것이 더 나은가 구별할 필요는 없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물줄기 하나 바위녘 소 하나가 그 어느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백무동 그 자체일 뿐이다.
가을비 궂은 속에 내가 산인지 산이 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너털걸음에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계곡물의 절규 뿐이다. 이것저것 가릴것 없이 눈요기 한번 해 보시라.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조차 할수없는 무릉의 도원경을 신선놀음하듯 온몸으로 느끼던 중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계곡을 다 빠져 나오면 세석산장으로 오르는 깔딱고개가 악마의 이빨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무서워 오를 봉우리를 오르지 못할손가. 더욱 힘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올라간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세석산장이 귀부인처럼 나를 반긴다.
세석평전의 편안함과 살아도 죽어도 천년의 전설을 간직하는 구상나무의 애절함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장면이다.
무아의 즐거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리산 특유의 변덕스런 날씨가 여지없이 방해를 한다. 한순간에 몰아친 먹구름속 안개비가 어느새 싸락눈과 뒤섞이어 진눈깨비가 되어 얼굴을 때린다. 매서운 바람에 흩뿌리는 눈알갱이는 우박처럼 볼에 따갑게 부딪친다.
비가오던 눈이오던 추위가 아무리 매섭다 한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못해서야 되겠는가? 진눈깨비 안개속을 뚫고 촛대봉과 영신봉을 오르락내리고 하산길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안개가 겉히고 맑은 산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놈의 날씨 봉우리 오를 때 이렇게 좀 해 주지... 궁시렁 궁시렁......
덕분에 감기 한번 야무지게 들어 버렸다. 백무동 귀신이 나를 보내기 아쉬워 집에까지 따라왔다.
[가내소 폭포]
[오층폭포]
|
첫댓글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교수님과 동행하여 지리산을 오른 것 같습니다. 늦가을 지리산 참으로 운치있고 멋있네요.
지리산 천왕할매도 뵙고 가내소 전설도 알고... 위험을 무릅쓰고 찍어 오신 동영상은 웅장한 폭포소리에 가슴까지 후련합니다. 명산은 역시 명산 이름값을 하나 봅니다. 교수님 덕분에 가을산행 잘 했습니다. 감기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
공부하다 머리도 식힐겸 가끔 산에 가는 것도 여러모로 좋을거 같습니다. 님께서는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휴식이 필요할 듯...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평생할 공부이니 쉬어가면서 공부할게요.^^ 그래도 교수님 강의를 한 번은
빨리 들어보고 싶어서요. 한 번 듣는다고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몇 번 반복해야할 것 같습니다. ㅎㅎㅎ
세심함 땜에요^^
여기서 거기 다녀온듯한......
동반 산행 했네요~
넘 감사 합니다~
......................................
...................아울러 .........
.........................................
산을 보니 울컥 해지는 까닭을 모르겠네요!!!....
........................................
...............,...........................
감사의 뜻으로 쌍화탕 보내드립니당^^
~~~~~~~감기 빨랑 나아 지시라고요~쌍화탕 그림이 안되서 케익으로 체인~~~ㅎㅎㅎ
아, 쌍화탕 케익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감기 뚝!!! 했습니다.
아 다행이당~~~~~~
백두대간 종주에만 정신이 팔려서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데..
이렇게 백무동 계곡을 자세히 구경시켜 주시어 감사합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종주구간 외에 못가본 곳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감기에는 주장군이 오셔야 하는데요 ㅎㅎ
역학동호회 모임 중간 쯤에 등산모임 한번씩 가져야 할까 봅니다. 언제 한번 등산벙개 공지 올려보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담에 같이 한번 갑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