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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른 삼매(정정)
팔정도의 여덟 번째 요소는 ‘바른 삼매’인데 빠알리어로는 ‘삼마 사마디’이다. 삼매란 집중하는 마음부수인데, 마음이 생길 때는 항상 함께 생기는 것이다. ‘마음의 하나 됨’인 이 요소는 다른 마음부수들을 인식 작업에 통합시키는 기능을 한다. 모든 마음(찟따)으로 하여금 그 대상에 집중되도록 해서 마음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이 요소이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은 무언가를,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들리는 것이든, 냄새든, 맛이든, 촉감이든, 정신적 대상이든 간에, 한 가지는 인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집중’이라는 이 요소는 대상을 인식하는 작업에 마음과 그 마음부수들을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인지활동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대상 위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기능까지도 수행하는 셈이다. 마음이 한 점에 겨냥되어 있다는 말은 어떤 의식 활동이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집중되는 중심 초점이 있기 마련이며, 의식의 대상이 되는 자료는 외곽 주변에서 그 내면의 핵에 이르기까지 이 중심초점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점에 모아지고 있다 해서 모두 삼매일 수는 없다. 삼매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종류의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앞에 둔 식도락가, 누군가를 죽이려 하고 있는 암살자, 전쟁터에 나간 군인, 모두가 집중된 마음으로 행동을 하지만, 이때의 정신집중은 삼매의 특성을 갖추지 못한다. 삼매는 오로지 선(善)한 면에서의 한 점을 겨냥하고 있음, 선한 마음상태에서의 집중인 것이다. 그런 경우 중에서도 다시 그 폭은 더욱 좁아진다. 선한 집중이라 해서 모두 삼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더 높은, 보다 더 순수한 알(awareness)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적인 시도의 결과로 생긴 집중만을 의미한다.
주석서들은 삼매를,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한 대상에 똑바로, 그리고 고르게 집중된 것이라 규정한다. 선한 집중으로서의 삼매는 보통 흩어져 분산되어 흐르는 마음상태를 모아 내적 통일을 이루어낸다. 집중된 마음의 두 가지 두드러진 특성은 대상을 향해 부단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과 그 결과 정신적 기능들이 편안해진다는 점인데 이 두 특성은 집중된 마음과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집중 훈련이 되지 않은 마음은 분산된 채 요동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물에서 건져 올려 마른땅에 던져진 물고기가 팔딱거리는 것에 비유하셨다. 그런 마음은 한 곳에 붙박여 있지 못하고, 이 관념에서 저 관념으로,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가눌 길 없이 내닫는다. 그처럼 흐트러진 마음은 전도된 마음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걱정과 관심에 휩싸여 항상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은 사물을 온전하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두서없는 생각의 잔물결에 일그러진 상태로서만 본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훈련된 마음은 대상에 초점을 맞춘 상태로 흐트러짐 없이 머물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단 흐트러짐이 없어지고 더 나아가 유연함과 고요함이 생기게 되면 마음은 매우 효과적인 통찰 도구가 된다. 집중된 마음이야말로 미풍조차 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눈앞의 사물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신뢰할 수 있는 반사경이다.
7.1 삼매의 계발
삼매는 다음 두 가지 방법에 의해 계발될 수 있다. 하나는 선정의 경지에 해당하는 깊은 본삼매를 목표로 하는 수행에 의해서 계발되며, 다른 하나는 통찰지(위빳사나 지혜)를 얻기 위해 팔정도를 닦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전자는 사마타(고요함)의 계발(samatha-bhāvanā), 후자는 통찰지의 계발(vipassanā-bhāvanā)이라 한다.
하지만 이 두 길은 모두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예비적 요구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계를 잘 지킬 것, 각종 장애 요인들을 제거할 것, 자신에 알맞은 (가급적이면 스승으로부터 직접 받는) 가르침을 반드시 찾아낼 것, 그리고 수행에 도움이 되는 장소에 머무는 것이다. 이런 예비조건들이 일단 갖추어지면, 사마타를 닦는 수행자는 사마타를 계발하는 데 필요한 수행의 대상, 즉 집중의 초점을 맞춰야하는 대상을 결정해야 한다.
자격 있는 스승이 있으면 스승이 수행자의 근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수행대상을 정해 줄 수 있다. 스승이 없는 경우에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스스로 대상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수행 안내서들은 사마타 수행을 위한 주제를, 수행자가 ‘수행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업처(業處 kammaṭṭhāna)’라 부르는 것 마흔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그 마흔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열 가지 까시나(dasa kasiṇā)
열 가지 부정(dasa asubhā)
열 가지 계속 생각함(dasa anussatiyo)
네 가지 신성한 머묾(cattāro brahmavihārā)
네 가지 무색계(cattāro āruppā)
한 가지 인식(ekā saññā)
한 가지 분석(ekā vavaṭṭhāna)
‘까시나’는 본원적 성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 중 네 가지는 지수화풍 까시나로 사대(四大)를 나타내는 것이고, 다른 네 가지는 청황적백 까시나로 색깔을, 그리고 다른 두 가지는 빛과 공간을 나타내는 까시나이다. 각 까시나는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어떤 보편적 성질을 대표하는 구체적 대상이다. 그래서 진흙을 다져 만든 둥근 판을 땅 까시나로 쓸 수 있다. 땅 까시나로 집중을 계발하려는 수행자는 그 둥근 판을 앞에다 놓고 거기에다 시선을 고정하고 “땅, 땅…” 하면서 관찰한다. 다른 까시나도 그에 맞도록 적절하게 조정해서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열 가지 ‘부정(不淨)’은 부패 단계별로 본 시체들이다. 이 주제는 몸 관찰에서 몸의 부패를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옛날에는 화장터가 이 두 가지 수행을 위해서 가장 적합한 장소로 권장되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강조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몸 관찰은 숙고를 강조한다. 시체가 부패해 가는 광경은 언젠가는 자기에게도 닥칠 죽음과 붕괴를 생각하게끔 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열 가지 부정에서는 그런 숙고를 하지 않도록 한다. 대신에 한 점에 모아진 마음이 대상에 고정되는 것을 강조하며, 생각은 적을수록 더 좋다.
열 가지 계속 생각함은 여러 가지로 구성된 혼성체다. 처음 세 가지는 불법승 삼보의 성질에 관한 경건한 수행으로, 경전에 나오는 정형구를 기초로 한다. 그 다음 세 가지 상기도 역시 옛날의 문구에 의존하는 데, 지계, 보시,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천신과 같은 자질에 대한 수행이다. 그 다음이 죽음에 대한 사띠, 몸의 부정함을 관하는 일[不淨觀], 호흡 사띠이고, 끝으로 고요함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열반에 대한 추리적 수행이다.
네 가지 무량 즉 신성한 머묾[梵住]은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을 말하는데, 이것들은 밖을 향한 사회적 태도로서 점차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 마침내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다 포용하는 보편적 방사(放射)로 발전된다.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가지 무색계는 특정한 본삼매를 위한 객관적 기초가 된다. 이것들은 이미 삼매에 숙달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한 가지 인식’은 음식의 역겨움에 대한 인식으로, 미각의 즐거움에 대한 애착을 줄이고자 의도된 추론적 주제다. ‘한 가지 분석’은 몸을, 이미 바른 사띠에서 논의한 대로, 지수화풍의 네 가지 기본 요소[四大]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행주제가 다양하게 제시되면 수행하고자 하는 강한 열의는 있지만 의지할 스승이 없는 경우에는, 이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여러 지침서들은 이 마흔 가지 주제를 성격 유형에 따라 적합하게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몸속에 있는 혐오스러운 대상과 몸의 각 부분에 관한 수행은 관능적 유형의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며, 자애관은 남을 잘 미워하는 유형에게, 삼보의 특성에 관한 수행은 헌신적 유형의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수행을 할 때 초심자에게는 일반적으로 추론적 사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단순한 주제로부터 시작하도록 권하고 있다. 들뜨고 생각이 산만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성격 유형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직면하는 공통된 문제이다. 따라서 사유과정을 늦추고 조용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수행주제는 기질에 관계없이 모든 수행자에게 도움이 된다.
방황하는 생각들을 마음에서 쓸어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것이 호흡 관찰이다. 이것은 초심자에게는 물론, 능숙한 수행자가 깊은 삼매에 들고자 할 때에도 가장 적합한 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일단 마음이 가라앉아 자신의 사고성향을 관찰하기가 쉬워지면, 그 때에는 어떤 특별한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다른 주제들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성냄과 악의를 꺾기 위해서는 자애관을, 관능적 욕망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한 사띠를, 믿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부처님 상기하기를, 절박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수행을 택할 수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은 수행주제를 택하는 데에는 숙련이 필요하지만 이런 숙련 역시 실제 수행을 통해, 때로는 시행착오를 하면서 발전될 수 있다.
7.2 삼매의 단계들
삼매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삼매의 모든 단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사마타 수행의 전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밟고 있는 수행자의 경우와, 이런 보통 수행자들보다 훨씬 더 빠른 진전을 보이게 될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스승으로부터 수행 주제를 받거나, 아니면 자기 스스로 주제를 택한 후, 수행자는 조용한 곳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올바른 수행 자세를 취한다. 다리는 가부좌나 반가부좌나 편안하게 평좌를 하고, 상체는 똑바로 꼿꼿이 세우고, 양손은 포개어 배꼽 아래에 놓거나 무릎 위에 놓고, 머리는 바로 세우고, 입은 다물고 눈은 감고(까시나나 다른 시각대상을 사용할 경우를 제외하고), 호흡은 콧구멍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규칙적으로 한다.
그 다음에 마음을 대상에 집중한 후 거기에 계속 고정시킨 채 깨어있도록 노력한다. 마음이 빗나가면 이내 알아차리고 그것을 붙들어서 부드럽게, 그러나 확고하게 대상으로 되돌려 놓기를 거듭거듭 한다. 이 초기 단계를 ‘준비단계의 삼매(parikkammasamādhi)’라 하고 그 대상을 ‘준비단계의 표상(parikkammanimitta)’이라 한다.
초기의 흥분 상태가 가라앉고 마음이 본격적으로 정진하게 되면, 다섯 가지 장애가 깊은 곳에 숨었다가 부글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욕망, 분노와 후회, 혼침, 들뜸, 의심들이 때로는 생각으로, 때로는 이미지로, 때로는 강박감으로 나타난다. 이 장애들은 무서운 장벽처럼 보이지만, 인내심과 지속적인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 그것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정 장애가 강력해지면, 주된 수행 주제를 제쳐 두고 그 장애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계속 장애에 부딪치면서도 원래의 주제를 견지하여 마음을 그 주제로 되돌려 놓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때도 있다.
삼매라는 외길을 따라 계속 분투 계발해 나가노라면 마침내 이러한 노력이 ‘다섯 가지 선정요소’를 활성화시켜 수행자를 돕게 한다. 이 요소들은 평상시의 이렇다 할 목적이 없는 의식에서도 간헐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그때는 이 요소들이 결속력이 없기 때문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행에 의해 활성화되면 이 다섯 요소들은 조금씩 힘을 얻게 되고, 서로 연동되기 시작하여 마음을 삼매 쪽으로 이끌고, 마침내 이들 각각이 선정 요소(jhānaṅga)가 되어 그 삼매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이 다섯을 일반적인 순서대로 열거하면 ‘일으킨 생각(vitakka)’, ‘지속적 고찰(vicāra)’, ‘희열(pīti)’, ‘행복(sukha)’, 그리고 ‘집중(ekaggatā)’이다.
‘일으킨 생각’은 마음을 대상 쪽으로 데리고 가는 일을 한다. 이것은 마음을 붙잡고, 들어올려, 목재에 못을 박듯이 마음을 대상에 박는다. 이것이 되면 ‘지속적 고찰’이 특유의 검토 기능을 통해 마음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함으로써 대상에 붙들어둔다. 이 두 가지 요소 간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일으킨 생각’은 종을 치는 것에 비유하고 ‘지속적 고찰’은 종의 반향음에 비유한다. 세 번째 요소인 ‘희열’은 대상에 대한 호의적 관심과 함께 나타나는 기쁨과 반가움인 한편, 네 번째 요소인 ‘행복’은 성공적인 집중과 함께 나타나는 유쾌한 느낌이다. 희열과 행복은 유사한 성질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혼동이 되기 쉽지만, 이 두 가지는 같지 않다. 그 차이는 ‘희열’을 사막을 가다 지친 여행자가 멀리 오아시스를 보고 반기는 것에 비유하고, ‘행복’을 못에서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쉬는 만족감에 비유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선정 요소인 ‘집중’은 마음을 대상과 일체화시키는 결정적 기능을 한다.
집중이 발전되면 이 다섯 선정 요소[禪支]가 생겨서 다섯 장애들에 대처한다. 각 요소가 특정한 장애 하나씩을 떠맡는 것이다. ‘일으킨 생각’은 마음을 대상 쪽으로 들어 올리는 일을 통해 ‘해태와 혼침’을 약화시킨다. ‘지속적 고찰’은 마음을 대상에 정박시킴으로써 ‘의심’을 몰아낸다. ‘희열’은 ‘악의’를 가로막고, ‘행복’은 ‘들뜸과 후회’를 배제한다. ‘집중’은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가장 큰 유혹인 ‘감각욕망’에 반격을 가한다. 이처럼 선정의 요소들이 강화되면 다섯 장애는 힘을 잃고 누그러진다. 그렇지만 장애들이 아직 근절된 것은 아니다. 근절되려면 팔정도의 세 번째 부류인 지혜의 무더기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장애들이 약해져서 집중이 더 강화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뿐이다.
안에서는 선정의 요소들이 장애들을 짓누르고 있는 동안 대상 쪽에서도 역시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집중의 초기 단계 대상인 준비단계의 표상은 순전히 물리적 대상이다. 까시나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어떤 선택된 요소나 색깔을 나타내는 둥근 판이고, 호흡 관찰인 경우에는 숨결의 접촉 감각이다. 그러나 집중이 강화되면 원래의 대상은 ‘익힌 표상(uggaha-nimitta)’이라고 하는 또 다른 대상을 발생시킨다. 까시나의 경우, 대상은 마치 눈으로 원래의 대상을 보는 것처럼, 마음속에 분명히 보이는 원반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고, 호흡은 콧구멍 근처에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과의 접촉 감각에서 생긴 반사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다.
익힌 표상이 나타나면, 수행자는 예비표상을 떠나 주의력을 이미지에 고정시킨다. 머지않아 다시 익힌 표상에서 새로운 대상이 나타난다.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이라고 하는 이 대상은 익힌 표상보다 몇 배나 더 밝고 분명한 순화된 심적 영상이다. 익힌 표상을 구름에 가린 달에 비유한다면 닮은 표상은 구름에서 벗어난 달에 비유한다. 닮은 표상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다섯 선정 요소들은 다섯 장애를 진압해 버린다. 그리고 ‘근접삼매(upacāra-samādhi)’라는 삼매단계에 들어간다. 바로 이 근접삼매 단계에서 마음은 본삼매상태에 가까워진다. 이제 마음이 본삼매의 ‘이웃(upacāra의 의미를 살려서)’이 되긴 했지만 진정한 본삼매, 즉 대상에 완전히 몰두하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한다.
수행이 더 진전되면 집중의 요소들이 힘을 얻어, 마음을 본삼매(本三昧. appanā-samādhi)로 이끈다. 근접삼매처럼 본삼매도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삼는다. 삼매의 이 두 단계는 장애의 유무나 대상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양쪽에 공통된다. 이 두 단계의 차이는 선정 요소의 강도에 있다. 근접삼매에서는 선정 요소가 있지만 힘과 견실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단계의 마음은 걸음마를 갓 배운 아이에 비유된다. 이 시기의 아이는 몇 발자국 걷다가는 넘어지고 일어나서 또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진다. 그러나 본삼매에 들어간 마음은 걷고자 하는 어른과 같다. 그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마음대로 일어나서 앞으로 똑바로 걸어간다.
본삼매 상태의 집중은 여덟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지며 각 수준은 그 전 수준보다 더 깊고, 더 순수하며, 더 미묘하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 네 수준은 네 가지 선정(jhāna)이라 부른다. 나머지 네 가지 수준은 네 가지 무색계(四無色界 āruppā)라 한다. 이 여덟 가지는 앞의 것을 통달해야 뒤의 것을 성취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얻어질 수 있다.
경전에서는 보통 바른 삼매를 정의하여 네 가지 선정이라 부른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삼매인가? 이 교법에서 감각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살아간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살아간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사띠하고 분명히 알면서[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사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말한 제3선에 들어 살아간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사띠가 청정한 제4선에 들어 살아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삼매이다.
선정 단계는 그 구성 요소에 의해 구별된다. 초선은 원래의 다섯 본삼매요소를 한 벌로 해서 이루어진다. 즉, 일으킨 생각, 지속적 고찰, 희열, 행복, 그리고 집중이다. 초선을 성취한 후에 수행자는 그것에 통달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 뭔가 이뤄냈다는 자기만족에 빠져서 수행을 계속하는 일을 등한히 하지 않아야 하며, 또 한편으로 지나친 자신감으로 다음 선정을 얻으려고 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선정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문제나 어려움 없이 선정에 들고 선정에 머물고, 선정에서 나오고, 선정을 되돌아보며 점검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선정에 들어 선정에 능숙하도록 하여야 한다.
초선에 숙달한 다음에 수행자는 자신이 성취한 것에 결함이 있음을 숙고한다. 비록 초선이 보통의 감각 의식보다 월등하며 더 평화롭고 행복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은 여전히 감각 의식에 가까운 것이고 장애들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 요소들 중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의 두 요소는 이내 다른 요소들만큼 정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조악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수행자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넘어서기 위해 집중 수행을 계속한다. 수행을 통해 그의 기능들이 숙달되면 이 두 요소가 잦아들면서 수행자는 제2선에 들게 된다. 제2선은 희열, 행복, 그리고 집중이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만으로 되어있다. 또한 제2선은 이 세 가지 외에 많은 다른 구성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확신이다.
제2선에서 마음은 더 평안해지고 더 철저히 통일된다. 그러나 숙달되면 이런 선정의 상태마저도 조악해 보인다. 제2선에는 기분을 돋우어 흥분으로 기울게 하는 요소인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수행자는 이번에는 희열을 극복하겠다는 결의로 수행 과정에 임하게 된다. 희열이 사라지면 제3선에 든다. 여기서는 행복과 집중의 두 본삼매 요소만 남는 반면, 몇 가지 다른 보조적 상태들이 대두되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사띠와 분명한 앎, 그리고 평온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이 성취에도 여전히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즐거운 느낌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라는 중립적 느낌에 비해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제3선의 고귀한 행복마저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에 성공하면 그는 제4선에 들게 되는데 제4선은 집중과 중립적인 느낌의 두 요소로 규정되고, 고도의 평온에 기인하는 특별히 청정한 사띠를 지니고 있는 선이다.
이 네 가지 선정 너머에는 네 가지의 무색계[四無色界]가 있는데 이 본삼매의 경지에서의 마음은 네 가지 선정에서 여전히 가끔씩 나타나곤 하는 시각화된 이미지들에 대한 미세한 인식마저도 초월한다. 이 무색계들은 선정처럼 마음부수들을 순화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순화시킴으로써, 비교적 조악한 대상을 더 미세한 대상으로 대치함으로써 얻어진다. 이 네 가지 성취는 각기의 대상에 따라 공무변처(空無邊處 ākāsānañcāyatana), 식무변처(識無邊處 viññāṇañcāyatana), 무소유처(無所有處 ākiñc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라고 한다. 이 상태들은 너무나 미묘하고 아득해서 도저히 말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는 수준의 집중 상태들이다.
그 중 마지막 네 번째는 정신 집중의 정점으로서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절대, 극한의 통일 상태다. 그러나 사마타 수행으로 도달한 이러한 본삼매의 상태는 한껏 고양되어 있긴 하지만 통찰의 지혜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해탈에 이르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논의한 삼매는 마음을 오직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는 것으로서 다른 대상들을 얼마나 배제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앎의 범위를 제한하는 데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삼매가 있다. 이것을 찰나 삼매(khaṇika-samādhi)라고 한다.
찰나 삼매를 계발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다양한 현상을 관심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몸과 마음이 변하고 있는 상태로 사띠를 향하게 하여,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든 가리지 않고 주시한다. 즉, 해야 할 일은 인식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체 집착함이 없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렇게 주시하기를 계속해 나가면 집중력은 순간순간 강화되고 마침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건의 흐름을 탄 채로 한 곳을 향해 겨냥되어 있는 경지에 들게 된다. 대상이 아무리 변화해도 정신통일은 굳건히 유지되어 조만간에 근접삼매에서와 같은 정도로 장애를 누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처럼 융통성 있는 유동적 집중은 통찰의 길을 따라 사념처를 수행함으로써 발전된다. 이 집중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드디어 지혜가 생기는 도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사두사두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