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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형성사
성서의 정신과 한국교회의 관계 (문제점)
첫째, 한국교회는 성서를 읽는것, 그자체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것으로 가르친다.
둘째, 성서를 읽기는 하지만 바른 성서관을 가지지 못하므로 여러가지 괴현상을 일으킨다.
(연애편지 예화) 구약(구약 - 구약), 신약(신약-신약)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결국 성서의 역사를 읽게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성서 역사의 해석은 가장 필연이다.
제 1 장 :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
히브리서 1:1-2 을 읽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되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인간역사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그 속에서 구체화하여 인간 에게 말씀하셨다.
-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역사속에서 사건을 일으키셨다.
- 인간이 주역인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셨고, 구체화하 셨다.
그러므로 역사는 역사로, 시는 시로, 비유는 비유로, 격언은 격언으로, 이야기는 이야기로, 희곡은 희곡으로 분류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해석의 방법에 따라 그 계시의 참뜻에 접근하여야 한다고 본다.
제 2 장 :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
성서는 역사적인 검토와 문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약성서는 유대교경전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구약성서 경전화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요세푸스(Josephus, 100 A. D.)라는 유대인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므로 일정한 계시의 기간에만 이루어 진 것이다. 즉 모세로 부터 아닥사스(Artaxerxes, 465 - 424 B.C.)왕 때까지 기록된 것이다. 가 성서는 그 내용 자료의 거룩한 성격때문에 세속적 문헌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치기만 하여도 손이 부정을 탄다고 보았다.
가 성서에 포함된 책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가 단어는 하나도 변해서는 안된다. (Contra Apionen I, 8)
이와같은 전통적 관점에서 성서는 신인적 권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관점은 에스라 4서 14장 18 - 48절(100 A.D.)에 의하면 경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에스라때 단번에 이루어 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예루살렘함락 후 30년이 되는 해 (557 B.C.)에 에스라가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으로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을 입어 이미 불타서 없어진 구약성서를 40일간에 걸쳐서 다섯명의 조수에게 불러 주어 받아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때에 쓴것이 정경 24권, 비밀서가 70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약전체를 암송하여 불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관점은 역사적 증거로 인하여 상당히 신빙성이 적다고 하겠다. - 사마리아의 5경만의 정경설에 참조.
1. 구약성서의 세구분
우리나라의 성서는 모두 39권으로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히브리 성서의 원어 성서는 율법(토라), 예언서(느비임), 성문서(케투빔)의 세부류로 구분이 된다.
'율법'속에 구약의 첫 다섯권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들어 있다.
'예언서'라는 부분은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구분이 된다.
전기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본래 한권), 열왕기(본래 한권), 이렇게 4권이 속하여 있고,
후기예언서는 이사야, 예례미야, 에스겔, 12소선지서(짧은 12예언서가 한권으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비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속하여 있다.
성문서 부분에는 더욱 복잡한 책들이 모여 있다.
시편, 잠언, 욥기, 전도서, 솔로몬의 아가, 룻기, 예례미야 애가, 에스더, 에스라 - 느혜미야(본래 한권),
역대기(원래 한권), 다니엘 이상 열 한 책이 있다.
그중에 특별히 면절과 관계있는 성서는 다음과 같다.
솔로몬의 아가는 유월절에, 룻기는 추수감사절인 오순절에, 예례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를 기념하며 금식하는 압(Ab)월 9일에, 전도서는 장막절에, 에스더는 부림절에 각각 읽는 것이다.
2. 율법서의 형성
유대인들은 서서를 모두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중에서 특별히 율법서를 가장 귀중한 책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흔히 성경을 예루살렘의 성전과 비교하며, 성문서를 성전의 바깥뜰, 예언서를 성소에,
율법을 지성소에 비교하곤 하였다.
율법은 온통 그리고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다고 하였다. 따라서 한 글자라도 모세가 만들었다고 하면 벌을 받는 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율법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대로 불러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율법서를 가만히 보면 분명히 합성 문서인것을 볼 수 있다. 신명기 34장은 모세가 죽은 후이 일을 말하고 있으니 모세가 썼다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모세5경에 여러 블레셋사람이 언급되어 있지만(창21:34, 26:14-18, 출13:17) 실은 기원전 1200년경까지는 그들은 팔레스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정설이다. 그러므로 모세시대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 모세 5경안에는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창조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성경의 자료를 정직하게 취급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하나님 이름의 서로 다른 경우이다.
출애굽기 6 : 2-3 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야훼라하고, 창15:2, 8 12:2, 24:31에서는 여호와 창 4;1에서는
야훼등을 사용한다. 이렇게 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성경의 오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성경이 취급하는 자료나 문서에 대하여 지나치게 꼼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세 5경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는가 ? 모세가 오경을 다 썼는가 ?
1611년에 출판한 최초의 영어 완역성경을 King James Version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James가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가 번역한 것이다.
그들의 국부요 민족의 법을 제정한 모세를 그 저자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모세5경이 기록되었는가 ? 아무도 정답을 줄 사람이 없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의 율법서나 예언서를 막론하고 그런 문서가 생기기 전에 히브리민족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
문자도 발달하지 않았다. 문서도 문헌도 발달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문헌작업은 다윗시대에(1010 - 970 B.C.) 여러 뭉치의 성문된 자료들이 수집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헌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먼저 남쪽나라 유대왕국에서 설로몬왕의 사망후 (970 - 931 B.C.) 고대 이스라엘의 문서가 이루어 졌다고
본다. 이 때의 문서에는 하나님을 여호와(Jehovah)라고 불렀다. 그래서 소위 J문서 라고 불린다. 유대와 이스라엘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나님의 단순성과 순진성을 드러낸다. 창 2:7, 창 2:22, 창 3:8 창 7:16
하나님의 천진성을 표현하고 있다. 북쪽에서도 하나의 문서가 이루어 진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고 엘로힘Elohim이라는 신명을 사용한다. 이렇게 시작한 북쪽의 기사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족장 역사에서 부터 시작한다. 에브라임의 여호수아가 특별히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데체로 북족 지방인 벧일가 세겜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 초기의 역사의 편집으로 (750 B. C.) J보다는 1세기가량이 뒤떨어져 있으며,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J. 와 E가 하나로 편집되어 JE문서라고 호칭된다.
한편 주전 621년 유대에서 대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은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 인 것이다.
성전에서 발견된 책을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왕하 22 : 8 - 20). 학자들은 이 책을 신명기와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신명기를 영어로 Deuteronomy라고 부르는데서 D문서라고 호칭되었다.
이 때 발견된 문서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되었다. (왕하 23 : 3)
다시 말해서 어떤책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수락하고 법도로 삼는 일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끝으로 이스라엘이 포로기에 들었을 때 비록 민족의 독립은 상실하였지만 민족의 의식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제장들에게 의해서 이루어 지게 되었다. 이것에 레위기등 소상하고 엄숙한 제사의 법도등 율법의 진수가 담기게 되었다. 이것이 에스라시대에 완성(주전 444년)이 되었고 에스라가 읽어 준 것이 아마도이 문서였을 것이다.
그후 약 100년동안(주전 400년경) 하나님의 인도아래 5경은 완전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를 살펴 보면,
첫째로, 주전 285 - 246동안에 애굽왕으로 있던 필아델포스의 톨레미2세의 후원으로 구약이 희랍어로 최초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 때 번역된 것이 5경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주전 250년경에 5경은 확정되었다고 보겠다.
둘째로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민족적 분열이 생겼다. 이 때에 사마리아인과의 분열과정에서 사마리아인들은 경전으로 오직 모세 5경만을 수락하였다. 그 때가 약 주전 400년 경이었다.
셋째로 느헤미야 8-10장에 의하면 세기관과 에스라가 백성을 모아 놓고 성경을 읽었는데 이 때 읽은 것이 모세 5경의 율법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가 약 주전 400년 경이다.
3. 예언서의 형성
유대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중 남자 예언자는 40명, 여자는 7명이라고 한다. 그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힘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 그것에 의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예언이란 말은 시간적 미래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언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시각속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참 목적은 하나님의 행동으로서의 역사를 이해하였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참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 완성된 형태는 그들이 가장 왕성하게 행동하였던 주전 650 - 550년에 낙착 된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예언자의 글은 극히 중요했다. 왜냐하면 예언자의 시기는 영감의 시기이었기에 그 시기가 지난 이후의 인간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영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4. 성문서의 형성
그것들은 오랜동안 성서라기 보다는 종교적 문헌으로 이해되었다. 이와같은 성문서의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의 절대적 가치가 인정되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익명의 책이어서 영감이 작용했던 시대의 책으로 취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후 90년경 현재의 얍바Jaffa인 해안도시인 얌니아(Jamnia)에서 유대랍비와 학자들의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구약 정경의 확정이 이루어 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과 같은 것이 이루어 졌다 .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책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역사와 경험이 명백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증명해 주기 때문에 성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구약성서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된 것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만나셨기 때문이다.
제 3 장 신약성서의 형성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서를 가지지 않고, 아니 아직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였다. 구약의 계시의 시대를 이어 아들을 통하여 가장 효과적이고 거창한 역사속의 사건을 일으키었다.
보혜사 성령이 사도들과 초대교회에서 강림하심으로써 그리스고의 사건은 올바르게 이해되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신약성서의 어떠한 부분도 가지지 않고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1. 초대교회는 신약정경이 필요하지 않았다.
1) 그들은 이미 정경을 가지고 있었다.
-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성취와 조속한 재림의 약속과 기대
2) 그들은 그대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그와 관계를 가진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그리스도의 사건이 생생한 역사였던 것이었다.
3)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전으로 전해져 복음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는 사도들의 증언이 절대적이었다.
예수의 사건에 대한 사도들의 해석도 절대적이었다. 신약성서의 문서화 이전에 복음 사건에 관한 해석의
시대
4) 사도 교회가 종말의 기대를 강하게 가졌다.
5)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
2. 구두전승의 신빙성
마가복음의 저술연대가 주후 60년 구전시대가 약 30여년이 된다. 과연 구전은 믿을 만 한가 ?
1) 기억력의 차이
2) 공동의 기억과 보존과 전승
-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초기 전승은 처음부터 일정한 형태로 거의 고정되어 거의 변함없이 구전
의 시대를 통과하였다고 보아야 하겠다.
3. 그전시대의 종결과 신약성서의 형성시기
1) 역사는 흐르기 마련이다. 주후 70년경 사도 요한을 제외한 사도들이 모두 죽자, 따라서 그들의 생생한 증언 을 들을 수 없었다. 복음의 문서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2) 기독교의 확산, 더우기 로마로의 확산은 문서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3) 선교의 확장에 잇어서의 절대 필요성
4) 재림의 희망의 현실화로 교회사업의 필요성
5) 교회는 거짓복음들과 왜곡된 신학과 비윤리적 윤리를 판단하고 가려내기 위해 표준적이고 공동적인 문서
복음의 필요성 대두.
6) 호교적 입장에서의 필요. 이스라엘 유대교의 도전과 로마의 순교를 통한 호교의 필요성
7) 역사의 활발한 진행
4. 복음의 형식
첫째, 형식을 범례혹은 경구, 또는 선언적 이야기라고 한다. 막 2 : 23-28, 마 9: 9-13, 막 12 : 13-17
둘째, 설화 또는 이야기이다. 요 5 : 1-9, 막 4 : 35-41
셋째, 교설이라는 형식 마 5 - 7 장의 산상수훈이 대표적인 예이다.
넷째, 성전 Ligent이다. 예수의 탄생과 같은 이야기들,
다섯째, 신화이다.
5. 신약성서의 실제적 출현
기독교사회에서 어떤 책에 권위와 명성을 가지게 하고 마침내 성서로 채택되게 길을 열어 준 것은 오직 한가지 조건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책이 교회의 공중예배에서 읽혀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성령충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행 15 : 28
그리하여 성서선택의 표준은 두말할것도 없이 그 책이 사도적 권위를 가졌는가 아닌가에 있었다.
6. 사도적 권위의 정당성
1) 히브리사상에 있어서는 보냄을 받은자는 어떤 의미에서 보낸자와 동등하다고 보았다. 사도는 예수의 최고 대표자들이요, 그의 메세지를 전하는 최고의 기관이요, 그의 목적의 해석자로서 응당 존경을 받을 사람들이었다. 눅 22 : 29, 마 10 : 40 ,
2) 기독교는 사실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역사적 정황에 들어 오셨다는 사실위에 세워진 종교가 기독교이다.
이 사실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이 절대시 되어야 했으며, 이것이 사도의 글을 표준으로 삼아 정경으로 이루어 졌다. 어떤 책이 정경이 되기 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먼저 그것이 기록되어야 하고, 다음에는 그 기록된 것이 교회에서 널리 읽혀야 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리에 유용한 것으로 인정되고 수락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의 공동예배에서 읽히고 사용되어야 하며, 온 교회가 채택하고 수락하여야 한다. 끝으로 교회의 결정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7. 바울 서신의 집성
신약성서중 제일 먼저 이루어 진 것이 바울 서신이다. 약 100년경에 이루어 졌다고 본다. - 자연적 성장과 편지를 사용한 양식
8. 바울 서신의 집성의 장소와 책임자.
바울서신 집성의 장소는 아무래도 에베소인 것 같다. 당시에 가장 커다란 무역항구였기 때문이었으며,
골 4 : 16에서의 교환하며, 널리 읽히기를 바란 바울의 희망, 바울의 사후 더욱 활발해진 흥분 등등,
9. 복음서의 형성과 집성,
예수의 사건 자체가 복음이고 그의 가르침이 복음이다.
마가의 원저자설을 주장하며 Q(Quelle)를 사용한 복음의 완성, 거의 완전한 승리로 기록된다.
- 모두 사도적 권위에서의 완전한 인정과 완성
10. 밖의 책들의 수집
4복음서와 함께 특히 누가복음과 연결되는 사도행전의 발견, 계시록은 처음부터 사도의 권위와 묵시적 분위기에서 널리 인정되었다. 약 200년간의 치열한 싸우w로 연상되는 성서 채택의 역사./
11. 성서로서의 인정
그 책자체가 사도적 저작인 동시에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증적인 품질이 독자에게 자연이 신의 말씀으로 권위를 보여 주어야 했다.
마르시온의 영지주의에 따른 성서해석, 바울에 대한 마르시온의 비난, 새 율법의 창시자요 큰 원수다.
이단 스스로가 성경을 결정하여 정경이라고 주장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때 교회는 정경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2세기에 이르러 강렬한 예언과 성령의 교히의 시대는 점차 식어가고 제도적 교회가 출현하게 되었다.
몬타니우스의 이단시비, 2세기 말에 이르러 교회는 정경화 작업이 초기 작업을 완성하게 되었다.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4복음서를 이의 없이 사용하였다.
사도행전, 바울서신 13권, 베드로전서, 요한 1서을 정경으로 소유하였으며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는 완전한 전 교회작 일치를 보지 못했다.
그 후 3 - 4 세기에 이르러 정경화의 거의 완성된 단계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393년 힙포 레기우스와 397년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대회로 모여 27권의 성서를 정경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인간의 말에 담아, 오고 오는 인간에게 전달하고 계시는 것이다. -
박창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