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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새를 앉히다
날마다 새장 속에 손을 넣고 휘젖고 새를 붙잡으면 새는 나를 아프게 쪼고 달아나지요.
그러던 어느날 부터 새가 내 손바닥에 앉아요.
우리 학원생 모두 새장 속에 손을 넣고 새를 손에 앉게 해주지요.
미술공부 했던 건 기억이 안 나도 새를 손바닥에 앉혀 준건 아마 늙어도 기억에 남겠지요.
그 선생님 되게 아이 같았어. 미꾸라지 어항에 손 넣어 미꾸라지 잡고.
매일 새한테 쪼이면서 새 쓰다듬고..
토요일이면 개 두 마리 자전거에 태워 아이들 모두 안아보게 해주고..
미술선생이 아니라 생태학 선생님 ㅎㅎㅎㅎ
강아지들은 내가 안방에서 남편하고 둘이 있는 꼴을 못 본다우 즈이들 까지 같이 놀재요.
밤이면 내가 작은방에 자러 가면 둘이 다 나를 따라 들어와 한 놈은 침대위로..
한놈은 침대 밑으로 .. 혼자 자는게 아니라 셋이 잔다우.
근데 어항에 가물치 넣어두 될라나?
조그만 가물치는 없나요?
어시장에 나가서 한번 활어 구경 해봐야 겠어요.
2003년8월19일
호접란
문구사 가는 길에 누군가 내다버린 호접란 세 뿌리를 주워 왔어요.
아마도 개업선물로 받았다가 꽃이 지고 나니까 내버린 것 같았어요.
꽃집에 가지고 가서 이거 살겠느냐고 물어보았죠.
썪은 뿌리 하고 잎을 가위로 잘라내고
바크(나무껍질) 만 채워서 물잘 빠지게 하면 살겠다고 하네요.
집에도 호접란이 아주 잘 크고 있는데
이것도 정성을 들이면 잘 클려나 하고 이것도 생명이다 싶어서 살려 보려고 합니다.
개업인사로 주고받은 화분 이지만
그 꽃이 피기 까지 얼마나 보살폈어야 했나를 생각한다면
쉽사리 꽃이 졌다고 내다 버릴 순 없을 겁니다.
한번 꽃이 진 것은 꽃대에서 쉽게 다시 꽃을 피우더군요.
그리구 호접란 꽃은 한번 피면 거의 백일이나 피어 있잖아요?
나두 꽃 화분 죽이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점점 잘 살려 놓거던요.
잘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길 바랍니다.
하마터면 거리의 청소부가 쓰레기로 담아갈 뻔 했던 귀한 꽃이죠.
2003년8월31일
부모님께 감사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옷 장사를 하고 있었죠.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와 5시간 이나 걸려 물건을 해오고
정리 하고 하루 종일 팔고 밥 먹다가도 수없이 일어나 말상대 해주고.
저녁이면 빨리 퇴근도 못하고 밤 10시를 채우도록 손님을 기다렸죠.
그러다 가게 에 있는 의자에 누워 잠간 잠이 들 때도 있죠.
밤거리에 행인들이 드문 드문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왜 내가 여기 누워 있나?
왜 나 혼자 밤에 여기에서 왜 떨고 있나?
우리 엄마 아버지께서 날 이런거 하라고 낳으셨나?
언제 까지 난 이런 생활을 해야 하나?
수없이 많은 날을 그렇게 보냈었습니다. 무려 15년이나...
지금은 나를 찾았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부모님께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릴 수 있게 해 주셨던거 무지 감사드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행복 하게 살고 있지요.
나는 이렇게 살다가 가는구나.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구나.
늙어서도 소일거리는 있겠구나. 매일 그림 속에서 기뻐합니다.
아직 부족하니 열심히 더 공부해서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충실히 살려고 합니다.
2003년9월5일
나 홀로 배낭을 메고...
여름휴가에도 보문사에 못가고 추석 연휴 에도 또 남편하고 같이 갈수가 없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나 홀로 배낭을 메고 보문사를 향했다.
마침 이곳에서 강화 가는 직행버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계산동에 20년을 살면서도 보문사를 가보지 못한 것이다.
언제나 보문사 간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전등사만 여러차례 가게 된것이다.
그림 그릴 소재도 바닥이나니 나도 모르게 스케치 도구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섰다.
홀로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어쩐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과부는 어찌 살꼬?
과부는 애인이라도 만들어서 이따금 이라도 놀러 가겠지.....
버스로 한시간 반을 가서 외포리 행 버스로 갈아타고 20분
선착장에서 배타고 10분 또다시 택시로 10여분.
절 밥도 얻어먹고 오래된 은행나무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 했다.
술 먹은 후유증으로 같이 오지 못한 가족 에게는 시간시간 보고를 했다.
목어(木魚)가 있는 절도 나 에게는 처음 이었다.
1000개나 되는 듯한 계단을 헉헉 대며 올라 "마애 석불" 을 만났다.
장엄한 눈섭바위 밑 에 위험을 무릅쓰고 깎았을것 같은 부처상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로서는 거금을 불 전함에 넣고 절은 열 번 만 하였다.
마애불스케치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데 석등만 보면 어찌나
아름다운지 주저앉아 재활용 A4 용지뒷장에 볼펜으로 스케치를 했다.
석등 속에는 옛날에는 뭘로 불은 켰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온통 3파장 전구가 들어 있었다.
수없이 많은 건축물이 오래된 고목나무와 어우러져 산수화 작품 그 자체 였다.
수많은 석등과 목어, 돌계단, 나무와 풀 들이 너무 너무 아름 다웠다.
기다리는 사람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스케치를 하니 혼자 온 것이 어찌나 좋았는지 몰랐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이제부턴 무주 구천동이라도 얼마 던지 혼자 갈수 있을 것이다.
말동무는 어디에 가도 있었다.
내가 계산동 지역에서 유명 하다 보니 보문사 에서 까지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앞으로는 가고 싶은 곳 은 무조건 혼자 갈 것이다.
설악산, 충무, 무주구천동, 방태산 등등을.....
2003년9월14일
봉사활동
팔자에 없던 봉사활동 하루 했는데 휴유증이 심하네요.
지난 일요일 교회에 외국인 선교단 150명이 온다 해서 식사준비 거들은 것이 화근..
오른팔이 원래 시원치 않은 터라 가사 노동 을 많이 하면 병이나죠.
쉬운것만 골라 했는 데도 며칠 째 파스 붙이고 작업도 못하고.
비는 하루 종일 오고 목요일 모임도 오늘은 캔슬 되고 종일 심심 하니
군것질만 이것저것 하게 되고,
팔 아프니 묵은 청소도 못하고..
오늘 뉴스에서 얼핏 들었는데
어떤 주부가 빚을진 것을 갚기 위해 부업을 하는 데 남편이 가사일을 소홀히 한다고 나무라는 과정에서 크게 부부 싸움이 났는데
법정에서 이혼 하라는 판결이 났읍디다.
마누라 바쁘면 지가 하믄 되지..
마누라 종으로 착각하고 부리려다가 이혼 당하는 남자.
이혼남 되면 밥하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몽땅 자기차지 되지 않겠남? 걱정되네 ㅎㅎㅎ
아마 다음 세대에는 맞벌이 부부가 여자에게만 가사 담당, 육아 담당, 시키면
남자에게 벌금 징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아이들 세대가 어찌될 찌 궁금하군요.
우리의 딸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요즈음의 세대를 초월 해야겠죠.
2003년9월17일
샴푸향이나는 늙은개
우리집에 개 두 마리 있는 거 아시죠?
아이들 키우는 것도 부부간에 키우는 방법이 다르듯이 개 키우는 것도
왜 그리 다른지....
모두다 먹을 것만 줄줄알지 씻기지는 않지요.
나이 먹은 놈은 요즈음 따라 왜 그리 개 냄새를 풍기는지...
이걸 그냥 내다버려? 누굴줘?
털깎기, 목욕시키기, 손톱발톱 깎기, 피부병 관리, 귓속청소, 나 혼자 하다가
늙은 개 누구 준다 하면 식구 모두 "안돼! 안돼!!" 이런 소리만 하고 샴프를 바꾸어서 어제 더운물 받아 고급 샴푸로 목욕을 시켰지요.
여자들도 좋은 화장품 쓰면 인물이 달라진다드니 늙은개가 개냄새는 간곳이 없고 은은한 향기가 나지 뭡니까?
아들이 "어머니 우리집에 개 두마리 키운다고 하면 후배들이 학교에 가져와 보라고 난리예요"라고 해서 내가 “일요일날 같은때 어린놈 한번 데리고 가거라"했지요.
남들이 그러더군요 "무척 여유로우신가보다고..."
이놈덜이 안방에 못들어가게 높은 문지방으로 막아 놓았는데요.
즈이덜 하구 나를 동등 하게 칩디다.
옷갈아 입으러 들어갈때나 TV 보러 들어갈때면
꼭 나하고 같이 안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깽깽 하고 소리 치죠.
“아니 이것들이 으째서 내가 안방에 신랑얼굴 한번 볼라치면 날리다냐"
즐거워 하면서 나무라고, 문지방 비켜주고 들어오라 해서 한바탕 이불위에서 뛰어놀죠.
잠잘 땐 나하고 큰놈은 침대위에서 자고 어린놈은 침대 밑에서 잡니다.
아직 오줌을 못가려서.
내가 일어나 부엌 으로 나갈 때면 모두다 일어나 함께 부엌으로 가죠.
그러구보니 나 외롭게 살구 있는 건 아니네요.
아이들이 우리집하고 남의 집 비교 하면서 빈부 차이 난다고 불평할 때
늘 이렇게 말하죠.
“그래두 애완견 두 마리 키우는 집은 별로 많지 않아”
애들은 고개를 끄덕이죠
“그건 그래”
2003년9월18일
화분손질
서투르나마 요즈음은 내가 화분갈이를 하면 식물들이 잘 자라는 것 같다.
시름시름 자라지 않고 있는 군자란을 쏱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뿌리가 챙챙감겨 있지 않은가?
사람도 다리를 오그려 앉히면 저리듯이 말 못하는 식물 또한 얼마나 고통속에 있었겠는가?
누군가 꽃들과 이야기를 한다더니...
식물들은 말로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표현한다.
마르거나, 썪거나, 죽어가거나...
원예전문 상식은 없지만 질척거리는 흙들은 버리고 고실고실하게 여러 가지 흙으로 뿌리가 쭉쭉 뻗을 수 있게 깊은 화분으로 옮겨 보았다.
내친김에 몇 년 전 부터 꽃을 안 피우는 신비디움 화분 몇 개 몽땅 거꾸로 쏟고 오래되고 노근이 된 것들 추리고 뿌리 다듬고 해서 이파리 행주로 닦고 다시 추려 심어 놓았다.
이번 가을엔 분명코 꽃을 한번 피워 보리라.
어린 강아지는 신난다고 돌맹이고 이파리 부스러기를 물고 다니며 어지른다.
시클라맨은 수없이 꽃망울을 만들어 올라오고 있으니 사랑스럽기 짝이없다.
베고니아 종류인데 유별나게 크고 붉은 잎을 자랑하는 것도 하나 있다.
이름도 모르고 한참만에야 이름이 조용필 노래에 나오는 베고니아라는 것을 알았다.
마당이 있고 작은 온실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라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해 하자.
나에게 얼마만에 주어진 휴일이던가.
휴일의 여유를 즐기고 인간답게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2003년9월21일
어쩐지 걱정되드라니
20년전 이 동네 인천 계산동 이라는 곳 아주 변두리였죠.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거긴 지랭이 공장두 있드라"
무슨 소리냐 하믄 수출하는 지렁이를 키우는 곳이 있었어요.
낚시밥으로 파는건지 토룡탕으로 쓰이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주 지렁이가 굵직해서 한 마리 씩 기어 나와 길에서 마주치면 깜짝 놀래곤 했죠.
그리고 젖소 키우는 집오리 키우는 집 거리는 비포장 도로였죠.
이따금 서울 갈때면 신발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채 갈 때도 많았었죠.
서울종로구에서 태어나 30년을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는
여기 이사 와서 마당에 빨래 한번 널고 올 때 마다
화장실 한번 갔다 올 때 마다
슬리퍼바닥에 들러붙는 흙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는 것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러던 동네가 어느 듯 차고 없이 자가용만 계속 생겨나드니
골목골목이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온천지가 음식점으로 변하드니 가족동반 외식을 주말이면 으례 하고..
대우 자동차 같은 대기업 공원으로 다니면 회사 다닌다고 화이트칼라로 착각하고 신사스럽게 살더군요.
더구나 카드의 난발로 유명 브랜드의 의류가게가 줄지어 생기고 카드로 북북 그어 좋은 옷 좋은 신발 사러 댕기겠죠.
시장통에 있을때 부모들이 아이들을 신발가게에 데리고 와서
2만원짜리 운동화 골르라고 하면 중학생만 되면 에미한테 볼부은 얼굴로 퉁퉁대며 나이키, 프로스펙스 아니면 쪽팔려서 못 신는다고 실갱이 하는 것 부지기수로 보아왔죠.
그리구 그담엔 핸드폰이 시작 되드니 우리집만 해두 핸드폰이 4개.
우리집은 순전히 우리 남편 땜에 핸드폰을 소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혀 원하지 않죠.
남편이 호출할 때 빨리 응답해야만 하는 상황..
별것두 안니걸루 대학교 다니는 놈한테 "밥먹었냐? 멧시에 집에오냐?"
그딴 전화 하려다가 안받으면 "핸드폰 깨부셔 버려라" 하고 악쓰고.. .
나는 죽지말고 살아서 돌아와 저녁에 만나자 이런주의고...
그러니 통신비 이외에 연금이니 의료보험이니 자동납부 착착 빠져 나가니..
노력해도 뜻대로 안 벌어지는 사람도 많은데 어찌 살아 남겠나요?
뉴스마다 가정파탄에 투신자살, 폭발자살, 여자강도,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있죠.
핸드폰 없어두되구, 자가용 없어두되구, 외식 안해두되구 집 없으면 노숙자 하면 되지 왜 죽냐구요?
하여튼 어쩐지 돌아가는 통박이 걱정 되드라니 ㅉㅉㅉㅉ
아마도 몇 십 년 후엔 요즈음 재정 파산으로 이산가족 된 아이들이
부모 찾으러 가족찾기에 방송 나올 것 같군요.
오늘 아침에 이산가족 만나는 것 보면서 아들한테 말했죠.
나:"너두 네 살 때 엄마가 버리려고 했었는데 그때 헤어졌다면 오늘쯤 니가 날 찾으러 방송에 나왔겠지"
아들 "왜 버리려고 했었는데요?"
나:''아버지 돈 안벌어서 너 이름표 써서 종로에 내다버렸다가 내가 돈벌어놓고 찾으려했다"
지금이니까 웃고 말할 수 있겠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두 한다 는 말이 꼭 맞죠.
한때 힘들었었기 때문에 정신 차려서 열심히 살아 온 것 같아요.
아직 부자 되진 않았지만 두 남매 공부 거진 다 했고 아직 이혼 안했고...
나 노후엔 용돈 벌어 쓸 정도 능력 해놓았고.
항상 분수껏만 산다면 남들한테 걱정 안 끼치겠죠.
2003년10월1일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하네
남편들 나이 먹으면 왜 그리 마누라 찾는 횟수가 늘어가는지?
핸드폰 울렸다 하면 남편일경우가 90%
퇴근할무렵, 울리는 핸드폰.
"여보 양복점 좀 들렸다가 와. 가봉할 양복 옷감 제대로 해놨나 보구 오란 말이야"
요즘 같은 불경기에 애 등록금 내느라 힘든 때에 48만원짜리 양복 맞추어 놓은것도 속이 안 좋아
죽겠는데...
한술 더 떠서 가봉할 양복까지 나더러 보고오라고 ㅊㅊㅊ
가봉 이래는 건 원래 본인의 몸뚱아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지막 찾는 것 까지 나 혼자 가서 찾아다 주게 될 줄이야!!!
또 "띠리리 리리 리리리리 ~ " 엘리자를 위하여 가 나의 핸폰소리
"여보 올 때 허리아픈데 먹을 진통제 아나프록스 두통하구 개토톱 (파스) 한통사와"
"약국 하구 양복점이 정반대에 있는데 어딜 먼저 가지?"
툴툴거리는 나.
"아 아무데나 먼저 갔다가 왔다가 하믄되지 그 뱃살 빠질까봐 걱정이냐!!!"
침튀기며 악쓰는 소리.
"알았어 참사랑 약국이 이사가서 주유소까지 가려구 생각하니까 헷갈려서 그랬어"
심부름 귀찮게 시키구 뱃살이 무신죄가 있다구 들먹인다냐?
지가 내 뱃살에 보태준게 있나?
꿍시렁 거리며 속 뒤집어질둥 말둥. 하지만 허리 아프대니까 내가 참지. 음 ~참자.
그렇다고 허리 아픈것은 나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자기가 술먹고 강아지 문지방에 넘어져서 아픈겁니다.
하긴 강아지는 나때매 키우고 강아지 안방 출입금지 시키려고 높은 문지방 해놨고 그 문지방 넘어 댕기다 넘어졌으니까 다 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죠.
남정네들 웬만한건 셀프 서비스 제발 하시죠.
뭐든지 예펜네를 불러다 대니 정말 귀찮아 죽겠네요.
지 혼자 붙여두 될 눔의 파스는 꼭꼭 날 불러 붙이라 카고.
비싼 파스는 허리에 꼭꼭 두 장씩 붙이라 카고,
발목 아프다 해서 싸구려 파스 두 장 붙여 줬드니
까무러치게 날리 칩디다.
왜 니 멋대로 두 장씩 붙이냐고?
그날 불고기 해 줄라다가 취소 해 뿌렸죠.
오죽하면 문주란이가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노랠 다 불렀겠나요.
2003년10월5일
장님개를 키우는 여자
잘 아는분이 보살(운명철학)인데요.
바빠서 몇 년 간 못 들여다보다가 최근에 들려보았죠.
보살님한테 손님이 상담중이라 도우미 아줌마가 커피를 타주고 친절히 해줍디다.
마당에서 온갖 화초와 금붕어 사이에서 커피를 맛나게 마시고 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광을 여는데 쌀이 여러 가마 있읍디다.
쌀이 많네요 하니까 "달라고 하면 주시니까 갖다 잡숴요"
원래 보살 딸이 나한테 그림 그리러 다녔었는데 쌀 갖다 잡수란 말 여러 번 했는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지요.
부처님을 모셔놓으니 초하루면 쌀이 많이 생긴다는군요.
노숙자등 어려운 사람들이 와서 얻어간답디다.
차마 "쌀 좀 주세요" 이런 말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줌마가 "선생님 쌀 좀 드리세요 "
이말 한마디에 쌀 한가마니가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지요.
고맙기도 하고 어찌나 흐뭇하던지 다음날 그 여자가 있는 이발소에 가보았어요.
하얀 페키니스 개 한마리와 앉아 있었는데
개의 한쪽눈이없고 한쪽눈은 파란 다마처럼 생겨있었고 전혀 보이지 않는것 같았어요.
"이개는 어려서 심장병을 앓고 장님이 됬어요.
2백만원 들여 수술을 했는데 머리 통증만 없애고 눈알하나 빼고 봉합하고 앞을 못봐요"
나는 할말을 잊고 강아지만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사랑해 사랑해" 그 소리만 했어요.
우리집 늙은 강아지 마음으로 구박 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산부처가 따로 없구나...
어쩐지 하는 행동이 보통사람하고 좀 틀리더라니...
강아지가 앞을 못보니 눈앞에 무엇이 얼씬거리면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진정코 가여웠어요.
그래두 주인을 잘 만나 맛난 것은 많이 먹고 깨끗한 자리에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쌀을 주신 보살님이나 장님개를 키우는 이나 보기 드문 넉넉한 사람들을 내가 알고 지내게 된 것 같아요.
그 후 오늘날 까지 보살님의 쌀을 많이 갖다 먹게 되었죠.
살다보니 이렇게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을 나도 닮아 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2003년10월5일
김치담그기
오늘은 김치 담그느라 분주한 하루였다.
통배추 4개와 알타리 두 단.
배추두 비쌌지만 김치거리 12000원 어치에 쪽파 3000원어치 넣어 보기는 처음.
가을이라 벌써 알타리는 좋아 졌는데 왠 양념값이 그리 비싸졌는지?
몇 번 사먹어 보다가 그래두 내 손으루 한게 제일 난 것 같아 수고스럽지만 일을 해치웠다.
먹어주는 사람은 늘 불평이지만 내가 먹어보면 최고의 솜씨이다. ㅎㅎㅎ
전라도 시골 자기네 큰형수 솜씨와 다르다고...
일반 가정에서 여자에게만 요리를 강요당해온 우리나라 현실에 어쩔 땐 감사를 느낀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크나큰 기술을 습득하게 된것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대단한 요리사나 다름없으니 먹고 살기에 얼마나 좋은가?
음식을 만드는 자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그래서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긴 것 같다.
팥밥에 겉저리, 갓구운 돌김에 멸치볶음, 시레기 된장국에 이게 다 내가 한 요리 아닌가?
열무 같은 것 삶아서 송송 썰어 된장풀어 우거지국 끓여먹어요.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시레기 된장국에 신김치를 조금 넣는거예요.
나두 오랫동안 백반 장사한 사람한테 배운거죠.
한국사람 국한그릇에 김치면 끝이지요 뭐.
2003년10월6일
망둥어
이웃집에서 영종도에 가서 조개와 새우를 잡아왔다.
새우들이 살아서 퍼덕 이는데 그 사이에 망둥어가 살아 있었다.
두마리를 어항에 넣고 바다물처럼 소금까지 섞어 주었다.
그 뒷날 어항에다 손을 넣고 망둥어를 건드려 보니
살아서 쏜살같이 도망치는게 아닌가?
"아하하하핫!! 살아있네"
나의 환한 웃음에 이웃집 아저씨가 놀라
"그렇게두 좋으세요?"
"하여간 무척이나 그런 것 들을 좋아 하십니다"
"예예"
오늘도 손을 넣어 망둥이를 손바닥에 올려보곤 놓아 준다.
왜 살아있는 것들을 그냥 바라보지 못하고 꼭 내 손으로 느껴야만 하는걸까?
심리학 전공 하신 분들 갈켜 주시요.
새 두 강아지두 물고기두...
2003년10월13일
용담초
제법 날씨가 가을다웁게 쓸쓸하다.
작년에 쓰던 전기 라디에이터를 옆구리에 끼고 앉으니 따스한 행복이 스며든다.
꽃집 아줌마가 그림 그리라고 용담초 한 묶음을 가져왔다.
얼마 전 꽃집 아줌마가 불러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나서
새파란 꽃잎을 가진 용담초를 사온 일이 있었다.
꽃봉오리가 잎을 열면 그리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그 꽃은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꽃봉오리를 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아쉬움을 이야기 했더니 오늘 작은 다발 한 개를 들고 온 것이다.
짙푸른 남빛이랄까? 청보라 라고 할까?
꽃 중에는 파란 빛을 띤 꽃이 그리 많지 않다.
닭의장풀, 패랭이꽃, 나팔꽃, 린시안샤쓰 그리고 용담초... 이정도 밖엔 없다.
새파란 물감을 찍어 바른 듯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듯이 용담초가 방긋이 피어있었다.
꽃잎은 도라지 마냥 통꽃인데 5장의 꽃잎 사이사이에 다시 아주 작은 꽃잎이 끼어 있다.
어찌보면 보라색 색종이를 접었다 펴 놓은것 같기도 했다.
요즈음 작업이 많았었던 고로 좀 편히 쉬기로 했기 때문에 연필로만 슬슬 그렸다.
누가 빨리 빨리 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나혼자 분주히 살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살기로 하자.
이 가을이 지나면 또다시 낙엽들은 몸을 모두 날려 땅으로 떨어지고 눈비에 시달리겠지.
그리고 다시 흙이 되어 자기의 모태였던 나무를 위해 썪어 거름이 되고 또다시 다가올 봄의 새싹을 티워내겠지.
10월의 마지막 밤을 위해 누구 빠알간 포도주 잔을 들고 쨍그랑 부딪혀 주실 분 어디 없수?
2003년10월20
하루에 두번 파튀 (파티)
어제는 내 인생에서 쪼매 화려한 날이었다.
향교에서 베푸는 "기로연"이 있는 날이다.
낮에는 부페에서 한복 떨쳐입고 노인잔치 안내를 맏아하고 ..
국밥 한 그릇씩 베푸는 헐벗은 노인잔치가 아니고,
어디서 왔는지 인천전체의 고급 관리로 정년퇴직하신 분들이 한 이백명 쯤...
옛날로 치면 정이품이상의 관리로 퇴직 하신 분들이라 했다.
글씨도 모두 명필로 방명록에 사인하고...
우리는 젊은 축에 속해 있었고 좋은 음식도 많이 먹었다.
저녁엔 계양구 미술인 회식이 있었고.
그동안 다이어트가 허사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이들이 다이어트 했냐고 눈 크게 뜨고 나를 살펴본다.
훌라후프 2월부터 시작 한 덕에 허리는 아직도 34인데 얼굴 하구 목둘레가 쪼매 빠져서 보기가 좋아진 모양이다.
하여간 공사가 다~망 했던 하루였다
2003년10월25일
무 법자 강자형님
향교에서 가르치는 서예교실에 이따금 가는 데요.
분위기가 아주 엄숙 정숙 조용~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비롯하여 지체 높은 머리가흰 여러 어르신 들이 왔다 갔다 하면 혹시 복장검사에 말 들을 쎄라 긴장 하곤 하죠.
여름에 반바지도 금지 민소매 옷도 금지 쫄 바지도 금지......
시아버지 모신 며느리는 저리가라 라니까요.
공짜로 서예공부 하는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그런데 딱 한사람 무법자 최강자 형님이 있어요.
오랫동안 장사한 사람처럼 목소리 는 쉬어 있고 덩치 큰 사람.
그 형님이 잠시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다가 딱 걸렸어요.
"책상위에 왜 올라앉아? 의자가 있는데! 집에서 밥상에도 엉덩이를 올려놓나?"
나이드신 전교님께서 야단을 쳤어요.
"죄송합니다. 조심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 건데 강자 형님에겐 절대 그게 안되죠.
"사실은 제 엉덩이가 이 책상보다 더 깨끗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전교님보다 세배는 더 떠들었죠.
그래두 일단 야단 맞은 후라 에궁~ 하구 있는 판인데
하필이면 선생님께 체본받는 중에 이번엔
“닐니리야 닐니리~닐니리 맘보” 하고 촌스럽고 수선스러운 핸드폰이 울리겠죠.
바로 강자 형님 핸드폰소리.
다짜고짜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도 하지 않고
"야!! 수업중에 왜 전화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ㅎㅎ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 폭소. 쇼킹. 또 쇼킹.
완전 코메디라니까요.
거기다가 뜰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 여러 어르신들이 두어개 씩 드시는걸 보더니
"선생님들 낼 화장실 가서 x 쌀때 힘드시겠다!!"
바로 강자형님의 말솜씨 !!
어제 안보이기에 혹시 짤렸나? 했드니 오늘 여전히 나와 있더군요.
"어제 선생님덜 화장실가서 무사했나?"
이러고 너스레를....
인간미 있고 또 어느면에선 후덕한 점이 있어 보여 웃으면서 강자형님을 바라 봅니다.
2003년10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