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French Heroes
코트여 안녕 - 파브리스 산토로 & 아밀리에 모레스모 은퇴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왜 시작부터 문자 쓰냐고? 요즘의 테니스계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렇다. 린제이 데이븐포트, 킴 클리스터스, 기미코 다테, 쥐스틴 에넹. 그들은 코트를 떠났고 다시 돌아왔다. 진정한 주인이 없었던 여왕의 자리가 탐이 났던 걸까. 수많은 관중에 둘러싸인 테니스 코트가 그리웠던 걸까. 아무튼 ‘회자정리’라는 슬픈 이별에 ‘거자필반’이라는 기대감을 짝지어준 옛 성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허나...
스타들의 복귀와 함께 은퇴도 잇따르고 있다. 정말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이들이다. 안드레 애거시 - 두 번째 공식 은퇴다. 마라트 사핀 - 테니스 외에 다른 무엇으로든 즐기며 살 것 같다. 대한민국 테니스의 별, 이형택 - 그도 이제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파브리스 산토로와 아밀리에 모레스모. 그들 역시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만큼 모든 것을 쏟아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산토로와 모레스모 둘 다 17살의 나이에 주니어 프랑스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장선수로 은퇴하기까지 각각 21년, 17년을 줄기차게 달려왔다. 그리고 매일같이 아침을 알리는 닭(프랑스의 국조)처럼 부지런히 프랑스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전해왔다. 무시무시한 프로의 세계, 쟁쟁한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많은 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코트 위의 마술사 산토로
The Magician. 2002년 인디안 웰스 3회전에서 산토로와의 경기를 마친 샘프라스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토로 만큼 특이한 선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른손잡이면서 양손 혹은 왼손으로 포핸드를 친다. 강력한 포핸드로 파워 테니스를 구사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슬라이스 위주로 끈질기게 수비하며 코트 구석구석을 누빈다. 발리 역시 양손, 한손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예상치 못한 코스로 볼을 보내거나 변칙적인 플레이로 상대방을 당혹케 한다. 그를 마술사라 부르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산토로와의 상대전적 2승 7패인 사핀은 “그와 경기할 것이란 말을 듣는 것은 내가 곧 죽을 것이란 말을 듣는 것(Being told I would play Santoro was being told I was to die)”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사핀의 2승 중 1승은 산토로가 다리 부상으로 기권했을 때였다.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하며 다시없을 진기록도 양산했다. 단식 경기에서 470승 443패, 복식 경기에서 381승 263패로 무려 1557회의 투어 경기를 치렀고 2009년 US오픈에 참가하며 그랜드슬램 69회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사상 가장 긴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같은 프랑스 선수 아르노 클레망과의 2004년 프랑스오픈 1회전 경기로 6시간 33분간의 대혈투를 벌였다. 전 세계랭킹 1위 선수 20명과 겨뤄 그 중 17명을 이겨본 선수이기도 하다. 1990년 4월부터 지난해까지 단 79주를 제외하고 세계랭킹 100위 안에 머물렀다. 그에게 ‘달콤한 휴식’ 이외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근육질 여전사 모레스모
현대 테니스에서 여자로서는 드물게 한손 백핸드를 구사하며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에넹만은 아니다. 모레스모 역시 아름다운 한손 백핸드의 소유자며 2004년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총 39주간 자리를 지켰다. 남녀 통틀어 프랑스 선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신체적 능력은 운동선수로서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75cm의 키에 69kg의 몸무게로 다부진 체격, 넓은 어깨, 온몸을 휘감은 탄탄한 근육, 날렵한 움직임 등. 오뚝한 콧날과 강한 턱 선, 시원하게 큰 입까지 지녀 남성적(?) 매력을 더한다. 비록 같은 키에 비슷한 몸무게(믿을 수 없지만)를 지닌 ‘근육질 여동생’ 세레나 윌리엄스에게 단 2번만을 이기고 10차례나 패하긴 했지만.
모레스모에게 운명적인 순간은 1983년의 프랑스오픈 결승, 자국의 테니스 스타 야니크 노아가 마지막 챔피언십 포인트를 따낸 순간이다. 그녀는 ‘그 순간’ 때문에 테니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그녀는 라켓을 쥐었다. 당시 모레스모의 나이 겨우 4살. 그리고 15년 후, 바로 그 야니크 노아가 모레스모를 페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선발했다. 정말 멋진 ‘순간’이지 않은가. 세계랭킹 1위 등극, 25번의 단식 우승, 2006년 호주오픈과 윔블던 석권 등의 감격도 그에 비하면 아무렇지 않았을 순간이다.
그들이 남긴 것
경기 중의 산토로는 언제나 즐거워 보였고 믿을 수 없는 트릭키 샷을 성공시키고 난 후엔 함박웃음을 지으며 관중의 박수를 즐겼다. 그리고 그는 마치 초콜릿 하나에 만족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모레스모의 눈에는 정해진 목표만이 가득 차 있었다. 어린 시절의 영웅을 좇았고 결국 그를 넘어섰다. 자신이 곧 영웅이었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질문 하나를 던져 본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미쳐 일로매진(一路邁進)하다 떠날 것인가? 자신의 뒷모습에 대한 평가가 두렵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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