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요금
이번에는 전기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전기는 220~230V, 50 Hz 입니다. 전압은 우리나라와 같아서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교류(모터)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세탁기, 전축 등)을 여기서 사용하면 수명이 단축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자동차 모양의 비디오 테이프 되감기가 여기서 3달 사용한 후에 고장 나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CD player, 청소기, 노트북의 냉각 팬 등은 고장 없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유럽 내에서 각 나라마다 콘센트 모양이 각기 달라서 루벵 시내 전파상에 가면 International Jack 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앙에는 벨기에 콘센트가 있고, 주변에는 유럽 각 나라의 특이한 모양의 플러그가 방사형으로 5~6개 달려 있어서 실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독일에서 그런 Jack을 사면 중앙에는 독일의 콘센트가 있겠지요. 각 나라간 이동이 잦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물건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벨기에의 콘센트 모양과 우리나라의 모양은 문제 없을 정도로 거의 동일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가전제품을 International Jack 없이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벨기에라는 조그만 나라가 남아도는 전기를 주변국으로 수출한다고 합니다. 혹시 인공위성으로 야간에 각 대륙을 찍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사진에서 한반도를 보면 남한은 밝게 보이지만, 북한은 전체가 까맣게 보입니다. 물론 유럽 쪽도 밝은 색으로 보이는데, 특이한 점은 유럽 내에서도 벨기에 지역이 가장 밝게 보입니다. 그 이유는 벨기에의 고속도로에 있습니다. 벨기에의 고속도로는 “모든” 구간에서 야간 가로등을 켭니다.
예를 들어, 야간에 주변국인 독일, 네델란드, 프랑스 쪽에서 운전을 해 오다가 보면 갑자기 고속도로가 환해지는데 그러면 국경을 넘어 벨기에 내로 진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간에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벨기에 고속도로는 환하기 때문에 운전하는데 주간과 차이가 없습니다. 야간에 전체 국토의 고속도로를 밝히고도 전기가 남아서 수출까지 하는 나라에서 전기요금이 비싸지 않아야 정상인데, 여기 사람들 불만 중의 하나가 전기료가 비싸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여기에 와서 IMEC 임시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IMEC 담당 직원이 첫날 저한테 신신당부한 것 중의 하나가 벨기에에서는 에너지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난방을 꺼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제가 현재 사는 아파트는 난방 Heater, 주방 Heating Plate 등 모든 시설이 전기로만 동작됩니다. 지난 1년 동안 제가 낸 전기료는 매달 15만원 정도였습니다. 벨기에 전기요금 징수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달 전기 계량기를 검침해서 달마다, 계절마다 전기요금이 다르지만, 우리 아파트는 1년 동안 매달 동일한 요금을 냅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1년에 한번만 계량기를 검침한 후 12달 평균을 내어 다음 1년간 그 요금을 적용합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제가 매달 낸 전기료 15 만원은 실제로 제가 사용한 양에 근거해서 계산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저희 집에 살았던 가족이 1년간 사용한 전기료를 12로 나눈 수치입니다. 좌우간, 전에 살았던 가족은 난방/주방까지 합쳐서 1달 전기료를 15만원 지불했으니 전기를 매우 절약했다는 결론입니다. 실제로 여기는 겨울에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춥지 않기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정말 춥지 않으면 겨울에도 heater를 오래 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중앙난방 아파트에 살다가 여기에 온 저희 가족 경우는 지난 1년간 전기를 실제로 얼마나 사용했을까요? 여기 사람들은 춥지 않다고 하는데도, 저희 가족들은 heater를 켜지 않고 집안에 있으면 추위를 느낍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10년 동안 중앙난방 아파트에서 겨울에도 반팔 옷으로 살았기 때문일 겁니다. 전기료가 비싸다는 소문을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 동안 긴 팔을 입고 최대한 전기를 아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난 올해 2월에 날아온 새로운 청구서에는 매달 약 25만원이 청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 가족이 지난 1년간 매달 20만원어치 전기를 사용했다는 의미입니다. 나머지 5만원은 지난 1년간 매달 15만원 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덜 지불한 전기료를 1년간 분할해서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이 집을 이사 나갈 때는 특별히 계량기 검침을 해서 제가 쓴 전기료를 정확하게 정산하게 됩니다.
그럼 저희 가족이 2년 살다가 한국으로 이사간 후 다음에 우리 아파트에 들어오는 가족은 전기요금을 어떻게 낼까요. 새로 이사 들어오는 가족은 제가 쓴 전기료를 기준으로 해서 계산된 요금을 1년간 지불하게 됩니다. 만약 그 가족이 우리 이전에 살았던 가족처럼 실제로 매달 15만원어치 전기를 쓰는 가족일지라도, 첫 1년은 매달 20 만원을 내게 되고, 2년차에는 매달 10만원 (매달 실제로 쓰는 전기료 15만원에서 지난 1년차에 더 많이 낸 5만원을 뺀 액수)을 내고, 3년차에 이르면 실제로 자기들이 사용하는 15만원을 매달 지불하게 됩니다. 3년 이상 같은 집에서 살아야 실제로 본인이 사용한 액수만큼 전기요금을 지불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정서로 벨기에의 전기요금 징수 시스템을 보면 불합리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지난 1년간 매달 5만원어치 전기를 무이자로 쓴 경우가 되고, 제 다음으로 이사 들어오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매달 5만원을 1년간 전기회사에 무이자로 빌려주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한국전력 사장님이라면 국민정서를 극복해서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라고 지시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미리내는 사람과 나중에 내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익은 동일하면서도, 매달 검침하고, 액수가 매달 다른 고지서 만드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2. 0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