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스티그마
예수의 흔적을 가졌습니까 ?
사람들은 무엇에 열중하다 보면 몸에 무엇인가 표식을 하고 싶어합니다.
월드컵때 사람들은 얼굴에 작은 태극기를 그려넣거나 화이팅 등 여러가지 문구를 써넣기도 하고 심지어는 얼굴전체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는 사람도 있고 상반신을 전체에 태극기나 여러가지 색채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려넣은 사람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얼굴에 문지려면 태극기가 새겨지는 조그만 판박이를 하나 어디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주워서 가져와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해 두었어요 왜냐하면 나도 한번 해 볼까하는 마음이 있어서 입니다. 아쉽게도 해보지 못했지만 지금도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냐ㅎ면 4년 후에 혹시 쓸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왜 몸에다가 그렇게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넣고 응원하는 것일까요 ?
여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첫번째 부류는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열정이 뜨거워서 그 열정을 표출하고 또 그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부류는 저 같은 경우의 사람들입니다.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사람들마다 얼굴과 몸에 뭔가 그리고 색칠하고 응원하니까 ? 그 분위에 편승해서 나도 한번 해볼까해서 얼굴이나 몸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경우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시애틀에서 문신을 새겨주는 '수퍼 지니어스'라는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타투 아티스트
데이먼 컨클린(43)은 기독교 신자이며, 그의 손과 팔, 등, 목 등 몸의 여기 저기에 기독교적 내용을 담은 문신이 새겨져 있다.
타투 아티스트였던 그가 알콜중독에 빠졌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몸에 성경구절과 복음에 관한 문신으로 채웠고 또 타투기술을 통해서 선교하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 기독교계에 찬반의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러한 행위를 하지 말라고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레19:28)에 “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너희 몸에 아무 무늬를 새기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고 강하게 문신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 몸에 문신을 금하셨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몸에 문신이 아닌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예수의 흔적을 카톨릭 교회에서는 스티그마 성흔이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13세기 카톨릭 교회의 공식 기록에 의하면 이탈리아 Assis의 성자 프란시스의 몸에 성흔이 나타난 것이 최초의 기록입니다. 프란시스가 예수님 닮기를 사모하며 예수 말씀대로 철저히 살려고 노력하며 온전히 제자의 길을 걷기를 말씀과 기도에 힘쓰던 중에 1224년 십자가의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 성흔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주님의 형상을 입기를 사모했으면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그런생각을 합니다.
이런 성흔이 카톨릭교회에서 공식화되면서 20세기에만 이런 성흔에 대한 보고가 50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카톨릭에서는 성흔을 가진 사람들을 성자로 추앙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성흔을 가지고자 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고도의 속임수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에 성흔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정말 내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내 인격과 삶에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주님의 형상을 이루고자 사모해야 합니다.
성흔을 가지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외형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추앙받고자 하는 허영심이 들어 있습니다.
유대에서 갈라디아에 온 교사들이 갈리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할례를 강요하고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격분했습니다.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적 의를 강요하는 것이 때문입니다. 율법적 의는 무엇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할례를 행하고 겉으로 보이는 형식적 규례를 지키고, 율법의 의를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했으면서도 이방인들에게 율법적 의를 행하라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여 의를 이루고 자랑할 것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엡 2:8-9]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아멘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기를 [갈 6:14]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 [표준새번역(개정)]에 보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이 말씀을 이런 뜻입니다 - 이제는 나에게는 나를 나타내고 나를 자랑하고자 하는 욕망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나타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 사도바울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정말 입을 열면 예수님, 십자가을 전하고 자랑하는 것으로 넘쳐나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새로 지으심을 받아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행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흔적’ - ‘스티그마타’는 말의 본래의 뜻은 소나 양 또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어서 소유주를 나타내기 위하여 자국이나 소인 또는 문신을 새기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문신을 새기려면 실에 물감을 묻혀서 바늘로 찔러 피부에 착색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감이 피부에서 오래동안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몸을 화학용액에 담그기도 합니다. 그때 그 고통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몸에 지워지지 않은 문신을 새기는 데도 오랜시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언어와 행동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려고 하면 오랜 시간 엄청난 노력과 인고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일상생활 중 90%는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고 합니다.
경영학 교수이자 경영 컨설턴트였던 스티븐 코비 박사가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해보니 그들이 성공하게 된 것은 7-8가지 습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①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주도적이 되는 습관 ②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는 습관 ③우선 순위를 정하고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는 습관 ④상호이익을 모색하는 습관 ⑤남의 말을 먼저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키는 습관 ⑥시너지를 활용하는 습관 ⑦심신을 단련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으로 그쳐서는 절대 삶이 근본적인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이 삶이 변하고 말씀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며 하나님 앞에 설때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결론적으로 습관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톱날을 갈듯이 매일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잎파리 몇개를 쳐낸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을 완전히 새로운 습관이 정착될때까지 피흘리는 노력과 고통을 참아내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하면 처음에 느꼈던 구원의 감격가 기쁨이 희석이 됩니다. 설교를 들어도 다 아는 말씀이라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설교내용도 알고 결론도 알고 다 아는 뻔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범사에 감사하라 다 아는 내용아닙니까 ?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 5번 감사제목을 노트에 기록하자는 새로운 구체적 방안을 강단에서 선포하면 새로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감사를 차원과 강도를 높이기 위해 감사노트를 만들고 감사를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도록 새롭게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화요일 10여년만에 우리 교회 개척할때에 교회의 터를 함께 놓셨던 정양근 권사님을 뵈려 권사님들과 같이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치매가 5년정도 진행되어서 친 자식들도 못알아 보시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습니다.
저도 못알아 보고 사장님 방갑습니다.
우리 권사님들을 보고 아주머니 방갑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방갑다고 하시고 평안을 빌어 주시고 말끝마다 축복을 해 주시고 그리고 또 수시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치매가 걸리면 모든 기억을 상실한다고 했는데 성경구절은 줄줄 외시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 곽집사님이 이제 와서 보니 어머니의 그 신앙이 존경스럽고 그 신앙이 오늘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하였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정말 듣기 싫었던 말이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신앙은 토하여 내친다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기도할때마다 ‘믿음없는 며느리에게 믿음 달라고 거실에서 크게 기도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해야 된다고 자꾸 말씀
그래 신앙은 듣던지 아니듣든지 전해야 하는구나
에수님의 흔적을 가지려면
귀에 새겨라 - 앉았을 때에든지 - 내 귀에 새겨야 합니다.
두번재 눈에 새겨라
세번째 마음에 새겨라 - 묵상해야 합니다.
네번째 영혼에 새겨라 - 기도하고 또 전하고 실천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 흔적을 가지기 위해서 목표를 정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노력 수고가 필요합니다. 많은 투자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 고통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새신자와 헌신자만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영혼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육체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며,
시간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물질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참된 헌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1완판.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