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동역자(몬 1:17)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기도 하고, 병들어 몸이 허약해지기도 하고, 진로가 막히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업이 부도나기도 하고, 돈이나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들을 중도에서 포기해야 하기도 하고,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는 일도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을 고난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이와 비슷한 고난들이 다 있습니다.
고난은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이긴 뒤에는 큰 성장이 기다립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고난의 배경에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잘 극복한 사람들은 그 고난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고난이 축복의 통로였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감옥에서 만난 두 사람, 인생의 밑바닥과 같은 고난의 현장에서 만났지만, 감옥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고 동역자를 만난 하나님의 은혜의 터전이었다고 말하는 위대한 동역자 바울과 오네시모를 볼 수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나는 너의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나 바울에게 하듯 하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빌레몬은 동역자입니다. 그 동역자의 관계를 오네시모에게도 적용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형제로 받아주고, 또한 동역자로 받아주기를 그를 받아 줄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란 동일한 생각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절친한 동무를 말합니다.
동역자란 힘들고 지칠 때 같이 있고 싶은 사람입니다. 기대고 싶은 사람, 기대올 때 안아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동역자입니다. 예전에는 종이었기 때문에 동역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종이 아니라 형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동일한 꿈을 꾸어가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빌레몬서 1:24절을 보면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곁에는 그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단지 시종드는 종이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요,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꿈꾸는 동역자 관계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오네시모는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빌레몬과 바울은 동역자였습니다. 몸은 멀리 떠나 있지만 빌레몬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보고 싶구나. 빌레몬. 나의 사랑, 나의 동무, 나의 형제, 나의 동역자”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만 해도 기뻤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7절)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오네시모도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났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고난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생 밑바닥에서도 여전히 주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거기서 주님의 이름을 붙들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동역자가 있었기에 고난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며, 주님이 주신 꿈들을 함께 이루어가자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오네시모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동일하게 동역자로서 오네시모를 영접해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영접”이란 극진히 맞아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