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뉴욕에서 투자은행맨으로 일했던 N씨.
스트레스가 가득한 생활이 탈이 되어 우울증에 걸리고,

한 때는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할 만큼 침울해졌다.

그럴 때 행복의과학과 만나, 인생재건의 길로―.

이번 회에는 우울을 극복한 감동의 체험을  보내드립니다.


실화 체험담 : 우울이 나았다!


투자은행맨에서의 전락


「N씨는 중증의 우울이네요. 바로 입원해 주세요.」 
1995년, 내가 40세였을 때였습니다.

의사로부터 들은 병명은 나로선 평생 관계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병」이었습니다. 

15年ウツだった僕が銀座で英語講師をするまでの話【体験談】


나는 1955년에 니다타껜(新潟県)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시절부터 영어가 자신있었고, 대학에서도 외국어학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졸업 후에는 증권회사에 취직했습니다만,

「더욱 상위의 커리어를 지향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퇴사하고,

33세로 미국의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MBA를 취득하고,

다시 취직하게된 곳은 뉴욕에 본거지를 둔 세계적 투자은행이었습니다. 

하루에 2~3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할만큼 다망한 매일이었습니다만,

세계에서 모여든 초엘리트들과 함께

나도「엘리트」로서 일하는 기쁨,

동경하던 월가를 검은 가방 한손에 들고 걷는 충실감으로 마음은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입사 4년째.

나는 회사의 시스템을 개량한다는 큰 프로젝트를 손에들고 성공시켰습니다.

그 공적이 평가되고, 부사장으로 승진이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이른바 “성공한 그룹”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성공과 승진에 의한 달성감을 느낀 저는

투자은행맨으로서의 기력이 소진되었던 것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이 이상의 일은 이제 할 수 없는가.)
 

아쉬워하면서 퇴사하여 뉴욕을 뒤로 하고,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일단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커리어 상승을 위해 내가 다음 목표로 한 것은 공인회계사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엘리트다. 금방 할 수 있다)


한층 빨리 결과를 내려고 나는 극한까지 짜내어 공부했습니다.

스트레스도 쌓이고, 만성 수면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아침 무언가가 뚝 끊어진 것처럼,

아무리해도 기력이 올라오지 않게 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자 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많은 양의 약이 처방되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원래로 돌아갈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약을 입에 넣으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고조되지만,

약효가 없어지면 원기가 없어지고, 또 약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약물과다」상태가 되었습니다.


부작용으로 밥이 입에서 흘러나와도 모르고, 침이 멈추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일찌기 매일 체크했던 신문이나 뉴스를, 아무리 보고 들어도 내용을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이 몇일인지, 몇시인지 알수없었습니다.

오로지 집에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면실에 섰을 때였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은 얼굴도 옷도 침으로 얼룩지고,

말라서 뺨이 늘어진 처량한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아니야...)
 

투자은행맨으로서 뉴욕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그립고 마음둘 곳이 없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절망.


한편 죽어버리는 편이 편하겠다고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만큼이나 막다른 곳까지 가있었습니다.   


「마음의 의지처」를 찾아서

조금 회복했다고 생각하고 재취칙해보았지만,

언제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우울증에 한번 걸리면 좀체 낫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평생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가 」생각하면 한층더 기분이 다운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였던 1999년,

지인에게서 행복의과학 세미나를 권유받았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인생의 좌절도 양식으로 하여 성공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소개되었습니다.


(행복의과학의 가르침을 배우면 무언가 변할지 모르겠다)
 

세미나의 내용에서 희망을 찾은 나는, 회원이 될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내가 45세되던 때,

같은 신앙을 가진 R씨와 알게 되어 결혼했습니다.


오오카와 총재의 가르침으로 「병은 낫는다」고 배우고 있었던 그녀는

나의 미래를 믿어주고 내가 정식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해 주었습니다.


나는 결혼한 후에도 몇번이나 기분이 침울해져

공원 벤치에서 하루종일 보내고 마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문득 처가 생각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돼」하면서 신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현관의 도어를 열면,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돌아오시나요」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처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지처가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R、권하고 싶은 경전이 있어?」
「지금의 당신에게 딱 맞는 것은. . .」
 

저녁밥을 먹으면서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처는

언제나 오오카와 총재의 경전이나 법화의 이야기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부부의 단란함이 나에게 있어 둘도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약의 부작용으로 불법진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나도

처의 덕으로 조금씩 가르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항상 사랑받아 왔다. . .」

15年ウツだった僕が銀座で英語講師をするまでの話【体験談】


2004년 10월의 일입니다. 

내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메이컵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처가 가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한심하여,

「나를 바꾸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를 본 처가,

「행복의과학의 닛꼬정사는 자기자신을 들여다보기 좋은 곳이예요」라고

연수를 권해주었습니다.

나는 혼자서 전차를 타고 닛꼬로 향했습니다.


연수는 불교의 가르침인

「인(因: 원인) · 연(縁: 조건) · 과(果: 결과) · 보(報: 결과의 영향)」의 프로세스로

괴로움을 바라보고 바로잡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예배실의 의자에 걸터앉아,

본존이신 엘 칸타아레상 앞에서

왜 내가 우울증이 되었는기 생각해보았습니다.


조용히 합장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돌연 우울하게 된 것은 공부의 스트레스와 수면부족 때문었구나.

그러나 애초에 왜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마음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차, 알아차렸습니다.

우울증이 되기 전의 나의 마음은

어쨌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도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사람으로부터의 평가가 나에게 있어 “식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幸福の原点그것은 결국, 스스로 자신이 없었으므로

「사랑받고 있다, 필요로 되고 있다」고

실감할 수 있기를 바랬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시절부터

그 경향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항상 엄격했던 아버지나 학교 선생에게

평가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오오카와 총재의 『행복의 원점』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은,

받는 사랑만 생각하고 있는 일이 많으리라.

이런 사람은 발상을 바꾸어

주는 사랑의 소중함, 무상의 사랑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 . . 오오카와 총재님은

「사랑을 주는」것이 행복하게 되는 길이라고 설하고 계신다.

나는 완전히 거꾸로된 삶을 살아왔구나. 바뀌자.)


나는 이제부터는 누구에게 칭찬받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자고 맹세하고 닛꼬를 뒤로 하였습니다.


운명을 바꾼 운수수행

그러나 그때까지 50년 간 항상 사랑을 바라며 살아온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런 것을 괴로워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월간「행복의과학」을 읽고서 운수수행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운수수행이란 정사에서 작무 등을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바라보는 수행입니다.


(이거다!)
 

나는 2005년 8월부터 3개월간, 동경정심관에서 주말운수에 착수했습니다.


원래 성실하고 꼼꼼한 나는

작무도 노르마(최저 노동책임량)라고 생각하고

시간 내에 완벽하게 끝내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습니다.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철저히 닦고, 반짝반짝하게 해서 만족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 중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N씨, 언제나 고맙습니다.

그러나 작무는 마음을 바라보는 수행이므로,

일처럼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기의 페이스대로 해나가면 됩니다.

온 힘을 쏟으며 작무하는 것은 수행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 그러나, 그렇게한다면 끝낼 수가 없습니다.」
 

「끝내지 못하면 제가 할께요.」
 

그런 말을 들어도 나는 좀체 긴장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세면대를 닦으면서 강사에게 들은 한 마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이 계기가 되어 자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우울하게 되기 쉽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투자은행맨 시절부터 일이 완벽하지 않으면 자기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 . . 뭐든지 완벽하게 하고 싶어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벽한 일을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평가절하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벽주의」라고 하는

나의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닦아내는 듯한 이미지로

작무에 몰두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운수를 하는 동료나 행복의과학 직원의 모습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모두들 「정사를 이용하시는 분이 행복하게 될 수 있기를」,

「참배하러 오시는 분이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주는 사랑」이구나.)
 

나도 가령 화장실 작무를 할 때는

「다음에 사용하시는 분이 기분좋게 사용할 수 있기를」이라고

조끔씩 마음을 집중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나 자신이 기쁨과 행복감으로 충만되어 갔습니다.


사랑을 주는 만큼, 부처로부터 빛이 주어진다. 

행복의과학의 가르침대로임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정사의 바닥을 닦고 있을 때의 입니다.

무언가 이유도 없이 이상하게 눈물이 흘러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부처의 사랑에 감싸여 있는 듯한,

무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안심감을 느끼며 울음이 나는 것입니다.


(부처가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다.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면서

나는 마음 속에서 부처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등을 덮쳐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떨어져나가고

신체가 확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복의과학에서는 우울의 원인에 악령의 빙의가 있다고 합니다만,

틀림없이 나에게 빙의되어 있던 것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수수행을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난 무렵,

기분이 침울해지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부적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약도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운수 마지막날에는 본존에 마음을 집중하여 배례하고 정사를 뒤로 하였습니다.


50세에 다시 챌린지

15年ウツだった僕が銀座で英語講師をするまでの話【体験談】


운수수행을 끝낸 나는

이 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일하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 .)
 

그리고 어느 날, 처를 보면서

문득 「좋아하는 것을 일로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라왔습니다.

메이컵 아티스트인 처는 

자기가 몹시 좋아하는 메이컵의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 . 그렇다, 영어다.)
 

영어는 나의 원점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만난 영어선생의 영향으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눈떴을 때,

나도 예전에는 영어교사가 되고싶었다는 것 등

잊고 있던 기분이 떠올라왔던 것입니다.


나는 먼저 가정교사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했던 탓으로

그렇게나 자신있던 영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된 것입니다.


단어도 문법도 모두 지우개로 지운듯이

내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몇살부터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오오카와 총재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부터 복습하고,

영어력을 하나에서부터 바로잡았습니다.

가정교사와 경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어교수법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우울을 극복하고,

마침내 긴자에 자신의 영어학원을 열었습니다.


긴자는 내가 니다타에서 상경했을 때의 동경의 거리였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가르치려면

일본의 중심지에 학원을 열고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어학원은 세상에 많이 있다.

그러나 나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는 영어가 있을 터...)


 MBA취득이나 뉴욕 투자은행에서 일했다고 하는 강점을 살려서

실제로 영어논문을 쓴다거나 비지네스로 리포트를 쓴다거나 할 때에 사용되는

아카데믹 라이팅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좋아, 인생재출발이다)
 

개원에 즈음하여 광고는 내지 않았지만,

고맙게도 인터넷으로 나의 블로그나 경력을 본 분들로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원생이 몰려들었습니다.


「인생」을 가르칠 수 있는 영어강사로

실제로 영어를 가르치게 되어 알아차린 것이 있습니다.

교사란 자기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아이가 자기를 넘어서서 더욱 위대해지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칭찬받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전의 자기라면

절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N선생의 수업은 이해하기 쉽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라는 원생의 말은

대단히 격려가 되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점점 우수하게 되어

영어검정 1급을 취득하기까지 성장했을 때는

나의 일 이상으로 기뻤습니다.

이러한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제각끔 꿈을 이루고,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영어력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내면을 닦는다거나

종교나 역사의 교양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류 인간은 “속“이 꽉 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뉴욕 근무시절 성공자들과 접하면서 실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내가

솔선해서 영어력을 연마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오카와 총재님의 경전으로 마음을 계속 일구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무치게 느꼈습니다.


오오카와 총재의 경전 한 권에는

교양서 100권 분량의 엑기스가 꽉 차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N선생님같은 영어력을 몸에 익히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등의 상담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은 영어보다 인생에 고민하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 미래는 “지금의 자기의 연장선상”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좌절이나 막다른 길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만,

오오카와 총재님은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길은 무한히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정말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영어강사라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금까지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행복의과학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언제라도 몇번이라도 개척해갈 수 있습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이제부터 세계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이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書籍で学ぶ완전한 인생 따위 없다


『미래의 법』(오오카와 류우호오 저 / 행복의과학출판)

제 2장 기가 꺾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기가 꺾이는 사람의 특징②──완전주의자에서 발췌한 멧세지


인생의 어떤 국면을 보아도,

「완전한 인간」따위는

세상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누구도 불안전한 것입니다. 


가령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은

초등학교 1, 2학년의 덧셈이나

뺄셈 정도까지이며,

그 후에는 그리 간단히 받을 수 없습니다.

대개, 나눗셈 부근에서부터 틀리기 시작합니다.

나누기를 틀리는 것은 보통 두뇌이며,

전부 할 수 있으면 수재겠지요.

대개는 나눗셈 부근에서

감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덧셈이나 뺄셈까지 100점을 받았으니『대수재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눗셈부터 90점밖에 받지 못했다. 유감이다」등으로 말하기 시작할 터입니다.

그 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인생」따위 살고 있을리가 없습니다.


인생은 뒤로 가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공부도 어려워집니다만,

인간관계도 어려워지고, 일도 어려워집니다. 

회사 등에 들어가도 위대해질수록 일은 어려워집니다.

그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완전을 추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세상」에「불완전한 인간」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보다 나은 인생을 산다」는 것을 선택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의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기가 꺾였다」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완전한 인생, 완벽한 인생이 있었습니까.

또는 다른사람에게도 그러한 인생이 있을까요.

『완벽하게 살고 있다』는 사람은, 가령 누구일까요. 말해보십시오.」

라고 물어보면 좀체 이름을 들수가 없습니다.


현대는 그만큼 어려운 시대가 되어 왔습니다만,

다른 말로「챌린지 정신, 벤쳐정신을 가지고,

챌린징한 삶을 살지 않으면 미래는 개척되지 않는 시대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어느 정도의 실패는 짜넣어,

그것을 헤쳐나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문제집」을 바라보고 해결하지 않으시렵니까

心の力を、あなたも使おう마음의 힘을 사용합시다

당신의 마음의 힘을 배우고, 운명을 역전시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