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일행들은 쉴 겨를도 없이 계속 오른다.
그들은 늘 1진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연산사람들이다.(특히 박씨 삼형제)
너무 쉬었는가 보다.
여자 회원들이 앞서간다.
앞서간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신설등산로>로 들어선다.
여유있게 틈만나면 경치를 살핀다.
덜장을 올라 바위사이 좁은 통로를 오르니(통나무 계단은 상해있다)
이정표가 앞을 막는다.
<하이애향회>에서 설치한 이정표로 <전망대>와 <상두바위>를 표시하고 있다.
이 곳은 도립공원도 군립공원도 아니라 그런지 지자체에서 설치한 안내물은 보이지 않는다.
바위전망대다 (아마 이곳이 <까마귀바위>인 모양이다)
향로봉에는 전망대로 알려진 곳이 여러 곳 있는데, 모두 바위전망대로 시야가 트여 충분히 전망이 된다.
모두가 즐거워하며 포즈를 취한다.
바위 밑의 소나무도 일품이다.
저 밑에 낙서암도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에 너무 오래 있었다.
다들 떠나고 나와 <하늘바라기>님 뿐이다.
이제 우리도 출발한다.
어느 바위가 상두바위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큰 바위가 있어 그러려니 해본다.
상두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바위 밑을 돌아 올라가니 위험한 모습이 눈에 띤다.
바위가 오르기는 쉬웠는데 내려오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 더 가니 주황색 칠을 한 철다리가 보인다.
애향교다.
이 다리는 <하이애향회>에서 설치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름도 애향교(愛鄕橋)다.
여기서 사고가 날 뻔했다.
애향교 다리 입구 바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중심을 잡으려다 카메라가 손에서 빠져나갔다.
카메라는 바위에 한 번 부딪히고는 다리 밑 숲으로 날라갔다.
서둘러 다리를 내려가 카메라를 찾으니
다행히 나뭇가지에 걸쳐 있었다.
깨지지도 않았고 작동도 된다.
불행 중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웬지 기분이 찝찝히다.
이미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배는 고픈데 점심은 아무래도 정상에 가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정상에 오르며 한려해상을 눈여겨 본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시원한 구경거리가 될 터인데, 아쉽다
정상에 오르니 (12:30) 1진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하산하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상에서 표지석도 살펴보고
저 멀리 풍경도 구경하고
길가에 자리를 잡는다.
점심은 늘 김밥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 싸온 점심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식구에게 부담주기 싫어 나는 늘 판매김밥으로 해결한다.
오늘 목사님 부부는 특별히 묵을 많이 싸오셨다.
식사 도중 먼저 출발했던 1진이 되돌아 온다
길을 잘못들었단다.
그러니까 같이 행동하지....
산대장은 우리 식사 끝날때까지 기다리라는데 기다릴 그들이 아니다.
다시 상의 끝에 그들은 출발한다.
혼란의 내려오는 길
이제는 하산길이다.
산행시작시 산대장은 하산길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는데
우리는 산대장과 같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내려오는 길 전망대 바위에 붙은 바위손을 보았다.
암에 좋다해서 많이들 따 간다고도 들었다.
1시간 정도 내려오니 임도(林道)가 나온다.
우리는 여기가 와룡재라고 생각했다.
임도에는 우리 산악회의 방향안내지가 돌에 눌려있다.
최후미는 나와 회장, 그리고 계룡에서 타신 선생님 부부, 그리고 젊은 회원 한 분
방향을 따라 조금가니 먼저 갔던 산대장 일행이 되돌아 온다.
길을 잘못든 모양이다.
산대장은 길을 살펴보고는 가던 길이 맞다고 다시 돌아간다.
일행 모두 따를 수 밖에
이러기를 여러차례 반복하였다.
이제 큰 일이다.
임도를 따라 1시간30분여를 오락가락한 끝에
우리는 공사장 트럭기사의 자문을 구한 후
바른 방향을 따라 걸었다.
<방황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2시간 30분여를 지체한 끝에
목적지인 와룡리 내촌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버스가 도착해 있고, 일찍온 사람들(1진도 길을 헤맸으나 우리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막걸리와 소주로 뒷풀이를 하고 있었다)
<와룡리 내촌마을>
4시50분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삼천포 회타임 건에 대하여 산대장이 의견을 물으니
시간관계상 이번엔 생략하고...
여하튼 이번 산행은 산대장이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초행길이고, 이정표가 부실한 탔인지
무척 고생이 많았다.
우리는 오늘 삼천포로 빠졌다.
대신 아주머니 들은 그 바람에 임도를 걸으며
취나물도 뜯고, 잔대도 캐고, 소득이 짭잘했다.
이 곳 산골마을들은 친환경영농을 하는 것 같다.
논에는 사료로 쓸 귀리, 밀 등이 자라고 있었다.
귀향
돌아오는 길, 사천시내는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길이 막혔다.
삼천포에서 초산진(북한)까지 이어지는 국도가 3번국도인데
한 참 확포장 공사중이었다.
연산에 8시 도착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길를 기대하며 갈 길로 갔다.
<여기 곁들이지 않은 사진은 (사진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첫댓글 마음이 조급했겠다 당황스럽기도하구 에..구 고생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