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감독 이준익)을 보고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건 '절망'입니다. 현실이 지독하게 외롭고 슬프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상영관을 걸어나오는 순간, 언짢은 마음을 지울 순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 찜찜함 때문에 이 영화가 정말 싫기도 할 겁니다.
이야기를 써낸 작가의 상상이 돋보입니다. 박흥용이 그린 동명 만화가 원작이죠. 세상이 마치 지금처럼 어지럽습니다. 현실을 아예 젖혀둔 상상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동인과 서인은 당론이 아니라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에 열을 올립니다. 어리석은 왕이 백성을 버린 지는 오래입니다.
왕이 백성을 외면하는데, 세상마저 버린 이도 있습니다. 기생 뱃속에서 서자 신분으로 태어난 견자(한견주). 물론 허구 인물이지만, 첩의 아들로서 실제 다른 사람들보다는 억압을 갑절 넘게 받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정여립 역모 사건으로 파벌 표현
만화는 그이를 통해 권력과 계급의 불평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소외된 자들의 아픔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답니다.
이 작품은 당시 조선 사회에 광풍을 몰고 온 정여립 역모 사건을 중요한 동기로 삼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일로 서인과 동인의 다툼은 극에 달합니다.
밖에선 왜놈들이 쳐들어오고, 안에서는 양반들은 지지고 볶고 싸우는가 하면, "이 썩어빠진 조정을 가지고 왜놈들 막을 수" 없다고 여기는 백성들이 존재하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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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 <왕의 남자> 이야기가 김태웅 극작가에 의해 "優人(우인, 배우와 광대를 일컫는 말) 공길이 왕에게 직언을 하다 참형을 당했다"는 실록의 '단 한 줄'에서 출발했다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국사 교과서에는 '단 한 줄'로 적혀 있는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정여립(鄭汝立, 1546~158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혁명가, 공화주의자'이고,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천하공물설, 天下公物說)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현(聖賢)의 통론(通論)이 아니었다"(하사비군론, 何事非君論)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사상을 표방했습니다.
또, 그는 '대동계'를 조직해 무력을 길렀다고 전해지는데요. 왕에게는 모반 단체가 되는 거죠. 눈먼 칼잡이 황정학(배우 황정민)과 야망을 품은 칼잡이 이몽학(차승원)이 바로 이 대동계에서 정여립과 함께한 걸로 나옵니다. 정여립은 초반 잠시 나오고 맙니다. 그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지요.
정학은 자살이 아니라 몽학의 짓이라고 계속 의문을 품습니다. 조정이 대동계를 궁지로 몰아넣고 소탕하자 대동계도 가만있진 않습니다. 이몽학을 주축으로 대동계는 양반들을 비롯해 심지어 관아까지 치기에 이릅니다.
'개의 아들'로 불리는 견자(백성현) 역시 이몽학 때문에 아버지를 잃습니다. 정학이 견자의 집 싸움터에서 몽학 칼에 찔린 견자를 구하고, 둘은 몽학의 연인 기생 백지(한지혜)를 찾아가죠. 이렇게 정학, 몽학, 견자, 백지 네 사람이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룹니다.
이준익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1000만 영화' <왕의 남자>를 느낀다면, "난 실패한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로 빼어난 산과 들을 거니는 견자와 정학의 모습에서 <왕의 남자> 광대 장생과 공길은 너무 쉽게 떠오릅니다. 네 사람은 똑같이 외로웠지만, 둘로 함께했기에 되레 쓸쓸함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양반은 권력 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고, 칼잡이는 칼 뒤에 숨는다고"라는 몽학의 대사에서도 광대라는 말 때문에 <왕의 남자>가 스치듯 생각납니다.
허황한 꿈 좇는 자와 그를 막는 친구
<왕의 남자>에서 이병우의 음악을 못 잊는 이들이 있습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음악감독 김수철·김준석)에서도 '님도 나를 찾아갔나? 엇갈린 우리 사랑/ 꿈에라도 보고 싶어 깊은 잠 독촉하네'라는 노랫말로 몽학을 사랑한 백지의 맘을 대변하는 노래 '상사몽'이 애잔하게 들립니다.
정학과 몽학은 대동세상을 '꿈' 꾸던 이들입니다. '왕이 되겠다'는 허황한 꿈을 좇아 한양으로 가는 몽학을 두고, 끝에 정학이 남기는 말이 심오합니다. "떨어지는 해를 쫓아간 몽학이가 구름이냐 달이더냐." 제목처럼 의미가 다소 불확실한 이 말을 곱씹다 보면, 마지막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황정민과 차승원의 강력한 카리스마 때문인지 백성현과 한지혜의 카리스마는 미성숙해 보입니다. 백지는 견자에게 "넌 그(몽학)를 이길 수 없어. 꿈이 없으니까."라고, 몽학에게는 "꿈속에서 만나요."라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했던 게 빠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백지가 몽학을 좋아하고 꿈꿨는지는 과감히 생략돼 있습니다.
짙은 여운을 기대해선 안 됩니다. 어쩌면 혼란스러움만 안겨다 주는 게 의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준익은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바닥을 치는 절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없이는 희망을 얘기할 수 없으니까." 세상이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꿈이 없던 견자는 차츰 성장해 갑니다. 이것이 희망이었을까요. 영화가 개봉한 지난 28일 밤, 달이 참 둥그렇고 밝았습니다. 마지막 꿈속에서의 그 달처럼.
첫댓글 원작이 만화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