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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년
1월 26일 토요일.. 그날은 마이산에 놀러가기 했다.
아침 7시까지 강남고속센트럴시티에서 애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7시까지 갈려면
5:20분까지 일어나야 된다. 그래서 자기도 어정쩡하고 해서
밤을 새기로 했다.
새벽3시까지 채팅하고 놀다가,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세수를
하니 어느덧 5:30분이다.
아침을 먹고 5:50분에 집을 나섰다.
아직 날은 어두웠다. 해가 뜰려면 아직 멀었으니.. 날씨두
춥구..
우리집 부근 버스정류장(서울 상계1동)에서 한성여객
소속 서울15번버스(하계동-신설,중화동) 을
타고
도봉동,방학동,창동,수유리,미아리,길음동을 지나
미아리고개에서 내렸다. (6:20분도착)
이른아침인지라 승객은 별로 없다.. 6명정도 탄거 같다..
미아리고개에서 내린이유는 여기서 강남고속터미널가는
버스가 2노선이 있기 때문에
미아리고개에서 강남고속으로 운행하는 노선은 다음과
같다.
미아리고개에서 강남고속으로 운행하는 노선 | |||||
노선번호 | 운행회사 | 노선길이 | 운행대수 | 배차 간격 | 주요경유지 |
서울1번 | 대진여객 | 25.9 km | 34대 | 3~5분 | 정릉,돈암동,창경궁,청계천,미도파, 서울역,강남고속,압구정동,청담동, 삼성역,개포동 |
서울710번 | 대진여객 | 38.6 km | 61대 | 3~5분 | 정릉,돈암동,성북구청,신당동,한남동, 신사동,강남고속,반포,방배동 |
버스에서 내린지 몇분안되어
대진여객소속 서울710번(정릉동-고속터미널-개포동)이 왔다.
그넘을 잡아타고 돈암동,삼선교,창경궁,청계천,미도파,서울역을
지나 남산3호터널을 통과하여
이태원을 지나서 반포대교를 건넌다. 이른아침인지라
승객은 별로 없다.
반포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2층다리로 1층은 잠수교, 2층은
반포대교(제3한강교)이다.
잠수교는 심심하면 물에 잠기는 말그대로 잠수교이다.
반포대교를 건너 강남고속 센트럴시티앞에서 내렸다. (6:50분)
2.
강남고속터미널은 경부선과 호남선 2개로 나눠져있다.
그중 우리가 갈 전주방면은 호남선이다. 호남선을 타는곳은
센트럴시티 1층이다.
센트럴시티안으로 들어가서 약속장소로 가보니 아직 아무도
없군..
그래서 전화를 때려보니 지금 오는중이라고..
6:55분이 되자 같이가기로 한 친구넘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동기인 봉준이와 주홍이 그리고 81년생인 윤선이등 3명이
왔다.
그런데 1명이 아직 안왔다. 그래서 전화를 때려보니 지금
일어났다고 ...헉~~
그래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했는데.. 그 분은 그냥 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늦어도 좋으니 나오라고 계속 설득을 하니
결국은 나온다고.. (의리 짱..)
우리는 그동안 음료수를 사먹으며 나머지 1명을 기다렸다.
원래는 7:15분에 전주가는 고속버스를 탈려고 했는데.. 그건
못타게 되었다.
강남고속에서 전주가는 고속버스는 10~15분간격으로
운행한다.
운임은 일반고속은 9700원, 우등고속은 14200원, 심야우등은
15600원이다.
자세한 시간표는 이곳을
참조
7:40분이 되니 나머지 일행 1명이 왔다.
그래서 매표소에 가서 전주행 고속버스표 5장을 구입했다.
마침 7:50분에 일반고속이 있었다.
일반고속은 배차간격이 거의 1:00 이상이다. 우등고속은 10~15분간격이다.
버스표를 구입하고 6번승강장으로 나가서 버스를 탔다.
이번에 탄 버스는 천일고속소속
서울->전주행 일반고속 그랜버드이다.
7:50분이 되자 승객 30여명을 태우고 터미널을 출발한다.
3. 버스는
센트럴시티를 나와서 반포I.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졀라게 달린다. 판교,분당,신갈을 지나쯤해서 잠이 들었다.
밤을 샜으니...
얼마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잠이 깨니 청주근처에 옥산휴게소이다.
이곳에서 10여분간 쉬었다 간다고 하는군..
그래서 휴게소에 들어가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고
버스안으로 들어가서
부지런히 먹었다. (9:20분)
10여분뒤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금강을 건너
대전광역시에 진입..
회덕에서 경부고속국도를 버리고 호남고속국도로 진입한다.
유성,논산,여산을 지나 전주I.C에서 국도로 나온다.
이때쯤 해서 불청객 하나가 우리를 맞이하는데.. 그놈은
바로 비였다.
비가 쏟아지는것이다. 여행갈때 비가 오면 그 여행은 거의
망치게 된다. (졀라 열받는다..)
그런데 비가 조금 내리는듯 싶다.
전주I.C를 나와서 전주시내로 진입..
전주공단,전주월드컵경기장을 지나서
10:40분에 전주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4.
전주는 거의 5개월여만에 와본다.
(제일 처음으로)
전주는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가 있는 전북최대의 도시로
약 50여만명이 살고 있다.
전주는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도읍이 있던 곳이다.
후백제는 견훤이 세운 국가로 892년에 왕을 칭하고 900년에
완산주(지금의 전주)로 도읍을 옮겨
국호를 백제라고 했다.
그리고 전주는 전주이씨의 고향이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사당인 경기전이
이곳 전주(이성계의 고향임)에 있으며 경기전(사적339호)내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의 사당인 조경묘가 있다.
그래서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조선조정의 각별한 대접을
받으며 전주는 전국주요도시중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제법 내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철수할 수는 없다.
전주고속터미널에서 운행하는 고속버스노선 운임,시간은
-> 이곳을
참조하기 바람..
고속터미널을 나와서 부근에 위치한 시외터미널로
이동했다.
거리는 도보 10분거리이다.
시외터미널로 들어가서 진안가는 버스표를 구입했다.
진안까지는 2700원이다. (2700*5)
전주시외터미널에서 운행중인 시외직행노선은 -> 이곳을
참조
그런데 일행들이 우산을 구입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는데..
그 이유는 비가 와서 우산쓰고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비도 별로 안오는데다가 괜히 가져가봤자 귀찮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거절했다.
5. 버스표를
구입하고 승강장으로 나가니 진안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군..
이번에 탄 버스는 전북고속소속
진안,무주행 직행버스 am928a이다.
전주에서 진안가는 직행버스는 15~2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11:00가 되자 버스는 슬슬 출발하고.. 터미널을 나와서
전주시내를 가로질러
전주역근처인 인후동에서 승객 10여명을 태우고 소양,화심리를
지나니
험준한 고개가 하나 나온다. 이고개 이름은 모래재이다.
마치 한계령,대관령을 넘는듯한 기분이다.
모래재에 이르니 이제부터는 비대신 눈이 쏟아진다.
눈도 제법 쌓이기 시작하고..
험준한 모래재를 넘으니 이제부터는 완산군이 아닌
진안군땅이다.
산정리,연장리를 지나 마이산입구를 지나니 어느덧
진안읍내에 진입..
쌍다리교차로를 지나 진안읍내를 가로질러 11:50분에
진안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때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6.
진안군은 처음
와 본다. 진안군은 전라북도 내륙에 위치한
산간지역으로 (처음
화면으로)
인근의 무주,장수지역을 통칭하여 무진장이라고 부른다.
무진장이란 무진장 많다는것이 아니라 무주,진안,장수의
앞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무진장지역은 산악지대로 소백산맥이 남북을
관통한다.
이들지역의 교통도 상당히 불편하다, (강원도
정선,양구보다는 좋음)
진안 같은경우 전주가는 버스는 많이 있으나 그외에 지역은
별로 없다.
무주와 장수는 중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서
서울,대전,진주방면으로 나가는것이 예전보다
쉬워졌다.
진안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마이산도립공원이 있다.
마이산도립공원에는 그 유명한 탑사가 있다. (자세한내용을
보고 싶다면..)
마이산 외에는 운일암,반일암이 있는데 여름에 놀러오기
아주 좋은 계곡이다.
7. 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안으로 들어가서 마이산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12:00에 있다. 운임은 군내버스 기본요금인 650원이다.
터미널밖에는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고 있다. 이미
진안읍내와 길거리는 눈으로 뒤덮였다.
진안터미널에서 운행중인 시외노선은 서울강남(고속),대전동부,전주,대구,장수,무주등이다.
자세한 시간표와 노선은 ->
이곳을..
버스표를 구입하고 타는곳으로 나가니 마이산가는
군내버스가 대기하고 있군..
이번에 탄 버스는 무진장여객소속 진안터미널->마이산행
진안군내버스로 차종은 로얄미디이다.
무진장여객은 무주,진안,장수지역을 운행하는
농어촌군내버스회사이다.
회사이름치고는 좀 특이하다.. 지역색이 풍긴다..
*
진안에서 마이산북부주차장까지는 진안군내버스가 3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처음
화면으로)
*
진안에서 마이산남부주차장까지는 진안군내버스가 1일4~5회
운행한다.
12:00가 되자 버스는 승객 8명을 태우고 진안터미널을
출발한다.
진안읍내를 나와서 눈으로 뒤덮인 고개를 하나 오르니
어느덧 마이산북부주차장종점에 도착했다.
진안읍에서 여기까지 소요시간은 10분정도..
종점에서 내리니 주차장과 산주위 모두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때도 눈은 부지런히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일행들이 눈싸움을 시작하는데..
나두 눈싸움을 하다가 벌렁 넘어져서 부상?을 입었다는
안타까운 일화가 지금도 전해져 온다.
북부주차장에는 주차장과 식당,기념품가게,숙박업소등이
들어서 있다.
눈이 와서 그런지 관광객은 별로 없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부근 식당에서 된장찌게와 비빔밥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 식당은 KBS에 나왔다고 함)
점심을 먹고 눈으로 뒤덮인 마이산으로 올라간다.
8.
마이산은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해 있다.
(처음으로)
산의 모습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해서 마이산(馬耳山)이란
이름이 생겼는데
산의 모습이 완전 엽기 그 자체이다. 대자연이 빚어놓은
걸작품중의 걸작이라 평할수 있을것이다.
마이산은 전라북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해마다 국내외에서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중 한곳이다.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또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는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것을 안 남신이 화가나서 "마누라 말을
듣다 이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자리에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이산에는 화암굴,은수사,금당사,탑사가 있는데
그중 탑사는 마이산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절이다.
(탑사로
이동)
* 마이산의
모습
마이산은 전북지방기념물 66호로
지정되 있으며
보물1점과 천연기념물 2점, 전북지방문화재 5점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산의 문화재현황은 다음과 같다.
(처음
화면으로)
구 분 | 문 화 재 명 | 소 재 지 | 관리자 |
천연기념물 제380호 | 줄사철나무군락 | 마령면 동촌리 산18번지 (은수사 경내) |
진안군 |
천연기념물 제386호 | 청실 배나무 | 마령면 동촌리 3번지 (은수사 경내) |
은수사 |
보물 제1266호 | 괘불탱화 | 마령면 동촌리 41번지 (금당사 경내) |
금당사 |
지방유형문화재 제18호 | 목불좌상 | 마령면 동촌리 41번지 (금당사 경내) |
금당사 |
문화재자료 제122호 | 금당사 석탑 | 마령면 동촌리 41번지 (금당사 경내) |
금당사 |
지방유형문화재 제73호 | 강정리 5층석탑 | 마령면 강정리 산2-1번지 (보흥사 경내) |
보흥사 |
지방기념물 제35호 | 마이산 탑군 | 마령면 동촌리 18번지 (탑사 경내) |
탑사 |
지방기념물 제66호 | 마이산 | 진안읍 단양리 마령면 도촌리 |
진안군 |
9.
점심을 먹고 관광단지 뒤쪽으로 나 있는 마이산 등산로로
올라갔다.
등산로는 계단으로 되있는데 눈이 덮여 있어서 올라가기
좀 힘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눈에 덮힌 평탄한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도 눈싸움을 하면서 부지런히 올라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오늘같은 날도 입장료를 받나?
그래서 남자들은 모두 군경으로 속이기로 하고 군경(공익)3장,어른2장
달라고 하니
매표소아저씨가 우리의 계략을 간파했는지 "그냥
어른5장으로 끊어!"
그래서 군경맞다고 계속 우기니. 매표소아저씨도 꼬랑지?를
내리면서
"그러면 학생5장으로
끊어라.. 오늘 눈도 오는데.."
그렇게 해서 학생 5명분을 구입했다.(표는 달랑 1장) 그런데
이곳 입장권은 자동판매기에서 나오는것이다.
* 입장권에 나와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이산 입장권을 그대로
표현해 보았음 )
입 장 권
< 군경,학생 5명 >
입장료:
\2500원 |
마이산
입장료는 어른이 2000원,
군경,학생이 1500원,어린이는
900원이다. (처음
화면으로)
자세한 입장료,주차료 정보는... ->
입장료정보
입장권을 구입하고 매표소아저씨한테 금당사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1시간이면 간다고 그런다.
10. 매표소를 지나 눈길로 계속
올라가니 계단길이 나온다.
그런데 계단길이 거의 끝이 안보일정도로 길다.
서울 남산의 계단길은 저리가라군... (계속 눈은
쏟아지고 있었다.)
눈덮힌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면서 눈세상이 되버린
마이산을 바라보았다.
겨울산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계속 올라가니 계단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덧 계단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계단의 꼭대기는 고개정상이였다.
여기서 정면으로 내려가면 탑사,은수사등이
나오고.. 왼편으로 가면 화암굴,
오른편으로 가면 마이산정상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마이산정상으로 가는길은 폭설이 내리는 관계로
출입이 금지되있다.
마이산 정상은 바위로 된 암산(岩山)이다. 그래서 이런
날씨에는 갈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왼편에 화암굴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화암굴로 올라가는 길도 장난아닐듯 싶은데...
산길인데다가 눈이 두껍게 덮여 있어서.. 위험할듯 싶지만..
불굴의 의지로 올라가기로 했다.
눈으로 덮힌 산길을 겨우겨우
올라가는데.. 장난아니였다.
미끄러지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나는 안넘어짐..)
겨우겨우 마이산 왼편에 위치한 화암굴에 도착했다.
11.
화암굴(華岩窟)은
마이산 왼편봉우리인 수마이봉 중턱에 있는 굴이다.
(처음
화면으로)
굴안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우리가 갔을때는 약수는
나오지 않았다.. (왜 안나왔을까?)
화암굴 약수를 마시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쩝.
화암굴약수를 마시고 정성껏 기도하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화암굴에서 사진 몇방찍고 반대편에 보이는 암마이봉을
바라보았다.
암마이봉도 완전 눈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12. 화암굴에서
볼일이 끝나자 이제 내려가기로 했는데..
눈으로 두껍게 덮힌 산길을 내려가는것이 문제였다.
내려가다가 잘못하면 환상적인 광경?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나무와 돌같은 잡을 수 있는것은 다 잡고 내려갔는데..
몇명은 그 와중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나도 무사히
내려갔는데
다 내려올쯤해서 넘어졌다. 간신히 나무가지를 잡아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간신히 고개로 내려와서 고개에 있는
마이산관광안내판앞에서 사진을 찍고
탑사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계단길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내려가면서 눈덮인 설원을 배경으로 사진좀 몇방찍고 계속
내려가니
이제부터는 계단길이 아닌 그냥 길이다. (눈에 덮힌 길)
그런데 장난아니게 미끄럽다. 그래서
조심조심내려갔는데..
일행중 2-3명이(이름 밝힐 수
없음) 벌렁 넘어졌다.
그중 1명은 완전 360도 돌면서 아주 스릴있게 넘어졌는데..
거의 보통사람이 따라하기 힘든
고단수의 기술로서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아무나 따라하지
말것..)
넘어진 넘은 약간의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집에 잘들어감)
눈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니 절이
하나 나온다.
그절은 은수사이다.
13.
은수사(銀水寺)는
수마이봉 기슭에 위치한 산사(山寺)이다.
(처음
화면으로)
은수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조선19대왕 숙종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庵)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黃惠修)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 은 5획으로 오행, '明'
은 일월이므로 정명암 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李主簿)라는
사람에 의해 중창되었고, 이때
은수사(銀水寺)로 개칭되었다. '은수사' 란 이름은
한글학회의<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山紳度閣)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태극전,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햐흐로 대가람으로 도약을 발전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 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 기념물 386호) 이다.
은수사 경내에 들어서니 천으로 만든 깃발들이 많았다.
이것들은 모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앙요
깃발들이다.
밤에 오면 왠지 분위기가 음산할것 같군
대웅전을 지나니 저쪽 종각에 큰 북이 걸려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북이다.
한번 쳐보고 싶었으나 다음에 치기로 했다.. (다음에
언제 올까?)
종각을 지나니 저쪽에 보호책으로 둘러싸인 나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14. 그것은
청실배나무이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와 비슷한
종으로 집 근처나 산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잎은 타원형으로
톱니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면에 털이 없고 단단하다.
열매는 갈색 또는 녹색으로 가을에 황색으로 익는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은수사 절 안에서 자라고 있는 진안 은수사의 청실배나무는
나이가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8m, 둘레는 2.8m이다.
나무의 모습은 커다란 줄기 하나가 위에서 네 줄기로 갈라져
윗부분을 떠받치는
듯한 특이한 모습을 하다가, 다시 두
줄기가 서로 붙은 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수사의 청실배나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하고 그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것이 싹을 틔어 자란 것
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이곳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곳은 지형과 지세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면 청실배나무의
단단한 잎이 흔들리면서 서로 마찰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에는 청실배나무 밑동 옆에
물을 담아두면 나무가지
끝을 향해 거꾸로 고드름이 생기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매우 희귀한 한국 특산종으로 현재까지
은수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학술적 가치
및 종(種)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은수사 경내에 있는 청실 배나무 ) * 사진을 클릭하면 나무의 자세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침 겨울철인지라 나무에는 가지와
약간의 나뭇잎 밖에 없었다.
여름에 오면 맛난 배를 따먹을 수 있는데. 아쉽군..
15. 청실배나무옆에는
약수터가 하나 있다.
약수터옆에는 '섬진강발원지'라고
쓰인 비가 하나 서 있다.
여기가 섬진강의 발원지인 모양이다.
섬진강은 진안지역에서 발원하여 하동으로 흐르는 500여리의
강(江)이다.
섬진강발원을 기념하기 위해 약수를 마셨다. 음 왠지
맛이 있는듯 하다..
'섬진강발원지'라고 쓰인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 몇방
찍은다음..
뒤쪽으로 가니 마이산신단(馬耳山神檀)이
나온다.
이곳은 마이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신단앞에는 흰색의 깃발들이 달려 있다.
청실배나무,약수터를 뒤로 하고 은수사를 나오니 길가에
무슨 안내판이 있다.
그것을 보니..
16.
그것은
줄사철나무군락이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나는 뿌리가 나무나 바위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사시사철 잎이 푸르러 낙엽이 진 겨울철이면
삭막한 주위환경과 대조를 보이며 장관을 이룬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마이산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으며 다 자란 줄사철나무와 어린
줄사철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줄사철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한계선이 되고,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므로 천연기념물
38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은수사
경내에 있는 줄사철나무군락 ) * 사진을 클릭하면
나무의 자세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 줄사철나무군락을
지나 탑사쪽으로 내려갔다.
길은 좀 평탄하지만 눈길인지라 조심해야 했다.
좌우로는 마이산의 엽기적인 두 봉우리들이 있고. 길
오른편으로는 시냇물이 흐른다.
계속 내려가니 가까운곳에 탑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탑사는 마이산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곳이다.
평탄했던 길이 탑사못미쳐에서 미끄러운 눈길로 변했다.
겨우겨우 기어가다 싶이하며 탑사로 들어갔다.
탑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탑사가 유명한 이유는 절이름 그대로 탑때문이다.
기묘하게 생긴 탑 80여기가 이곳에 있다.
지금부터 탑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8.
탑사는 마이산 기슭에 위치한 산사(山寺)로서
(처음 화면으로 가기)
사는 마이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아래의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높이 15m의 천지탑(天地塔)을 중심으로 80여개의
크고 작은 탑들이 세워져있는데,자연석으로 쌓은 원추형과 기둥모양을 한 돌탑들을 보고
있으면 신비함과 절묘함에 저절로
경탄이 나온다.
마치 아라비아 궁전의 지붕모양을 한 이 탑들은 1860년에
전북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이갑룡(李甲龍) 처사(處士)가
25세때인 1885년에 마이산에 들어와 수도하던 중 마이산신의
계시를 받아
이 탑들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지방에서는 '도사(道士)'로 불리는 이처사는 중생을
구제하고 백성들이 짓는 죄를 대신 속죄하는
마음에서 만불탑(萬佛塔)이라고도 불리는 이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처사(이갑룡)는 전국 명산의 돌 하나씩을 날라다 마이산
주변의 돌과 함께 10여년에 걸쳐 혼자서
정성스럽게 쌓았다는데, 이 탑들은 돌을 다듬어서 쌓은 것이
아니라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것으로
기하학의 원리로써는 도저히 축조가 불가능하고 또한
존립이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흔들거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멎어
더욱 신비를 느끼게 해 주는 진짜 신기한 돌탑들이다.
탑사의 돌탑들은 전북지방기념물 35호이다.
( 마이산 탑사 경내에 있는 돌탑들 마치 아라비아 궁전의 지붕 모양같다.)
19.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와서 겨우 탑사경내에 들어섰다.
탑사는 말그대로 탑이 있는 절이다. 탑의 모양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라비아 궁전의 지붕같다.
탑사는 마이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아래의 위치해 있다.
그래서 절벽위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눈도 계속 내리고 있었음..
탑들이 있는곳으로 들어가니 80여기에 달하는 기묘한 탑들이
우리를 반긴다.
탑을 한번 만져봤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탑 하나 무너뜨리고 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안될듯 싶군..
좀 올라가니 이갑룡처사의 좌상이 나오고 비가 나온다.
비의 내용은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 그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난다.
이갑룡처사의 좌상은 수염이 긴 이갑룡처사가 지팡이를
왼손에 짚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저 기묘한 탑들을 쌓았을까? 혹시 마이산
신의 아들인가? 아니면 그 자신이
마이산신인가? 진짜 알 수 없다. 이 탑이 세워진것은
지금으로부터 110여년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뿐이다.
탑들을 지나서 마이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름이 맞나
모르겠음)으로 갔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길인데 졀라 미끄러웠다.
대웅전에 가니 탑사와 마이산에 관련된 사진들과 화보들이
걸려 있다.
사진들과 화보들을 주의 깊게 본 다음 대웅전안에 있던
과자들을 몇개 집어 먹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탑앞에서 사진좀 몇방 찍고 탑과 마이산의
풍경을 바라본다음
탑사전방에 있는 3층짜리 휴게소로 갔다.
날씨가 추운지라 오뎅이나 라면이라도 먹을려고 했더니만
그런것은 안판다고..
할 수 없이 그냥 가기로 했다.
20. 탑사를 뒤로 하고
남부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탑사부터는 길이 평탄하다. 차가 들어올정도로
길상태는 양호했다.
그리고 눈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좀 걸어가니 오른편으로 저수지가 하나 나온다.
저수지이름은 모르겠으나 얼음에 덮여 있었다.
여기서는 보트나 뱃놀이를 즐길 수 가 있는데. 얼음이
얼어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길양쪽으로 나무들이 서 있고 신비스러운 마이산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길을
계속 걸어가니 전방의 절이 하나 나온다.
그 절은 무엇일까? (나는 알고 있다.)
계속 걸어가서 절경내에 진입했다. 경내는 썰렁 그자체였다.
요사채와 대웅전같은 건물이 있고 연못가운데에는 석탑이
서 있다.
그리고 마당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이절은 바로 금당사란 절이다.
21.
금당사(金塘寺)는 마이산
탑사에서 약 2km떨어진 절이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금당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고구려 28대왕
보장왕(재위642-668) 때의 열반종의 종조 보덕화상의 제자인 무상화상과
김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중기의
지리서에는 금당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마이산에는 상원사,
혈암사, 쇄암사만 있는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이 중
어느것이 금당사의 전신인지 또 언제 현재의 자리에
건립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가 없다. 아무튼 금당사는
매우 퇴락하여 1978년에 지장전을 중건하였고 뒤 이어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금당사에는 보물 1점과 지방문화재 2점이 있다.
( 금당사의 모습. 연못가운데에 석탑이 있다.)
22.
눈으로 뒤덮힌 금당사 경내에 들어서니 요사앞에 어미개와
새끼개가 있었다.
새끼개는 우리일행을 보더니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어미개가 자꾸 짖어대며 우리들을
경계했다. 윤선이는 자꾸 새끼개를 유인하는데.. 결국
새끼개를 만진 모양같다.
새끼개는 참 귀여웠다. (부디 여름에
조심하렴..!)
나와 몇명은 대웅전으로 갔다. 대웅전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괘불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앞에는 이들 문화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넘어져 있는 상태였다.
완전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였다.
우리는 대웅전안에 모셔진 보물들을 관람했다.
먼저 대웅전불단에 모셔진 금당사목불좌상(木佛坐像)은 금당사의 주존불상이다.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상이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본존불은 아미타불상이고 좌우불상은 관음보살 과 세지보살로 이른바 아미타 삼존불상이다. 네 모지고 평판화된 얼굴, 당당한 체구에 움츠린 어 깨, 경직된 양감 그리고 도식적이고 단순화된 법 의의 표현으로 조선조 후기의 불상양식을 잘 표현 하고 있다.
그러나 둥근맛 나는 양감과 온화한 얼굴 표정으로 보아 17세기(1675)에 제작된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 로 평가된다. 좌우보살은 복잡한 보관이나 가슴의 영락장식 그리고 두손에 잡은 연꽃가지등 장식적 요 소를 제외하면 본존불과 흡사하다. 전북지방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당사 삼존불은 불상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은행나무 통나무로 조각되어 있다.
( 금당사 목불좌상 ) * 사진을 클릭하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웅전안에는 보물
1266호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掛佛)이 있다.
괘불은 말그대로 걸어놓는 불화로써 법회나 의식이 있을때
당간이나 당간지주에
걸어서 의식,법회를 개최했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원래는 전북지방유형문화제 제74호로 지정되어
있었다가 1997. 8. 8. 보물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은
숙종12(1686)년에
황화원 (畵員) 인 명 원(明遠), 조지연(趙志淵), 비구(比丘) 3인이
마포(麻布)위에
진당채(眞唐彩)로 그렸다 한다.
괘불의 크기는 가로 5m, 새로 9m나 되는 거대한 의식용 불화로 단독의 관음보살 입상이 그려져 있다. 화면을 가득메운 이 관음보살상은 약간 비튼 정면상인데 둥근얼굴, 근엄한표정, 당당한 자세,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보관과 천의, 갖가지 무늬들로 수놓여진 광배, 질서있게 배치된 화루과 색색의 불꽃무늬등의 표현으로 보아 17세기 후반기의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이다
현란무비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정교 치밀한 형태 미의 표현으로 더욱 돋보이고 있어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괘불탱화 등과 함께 보살괘불 탱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 보물 1266호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 ) * 사진을 클릭하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괘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사진으로 만족할 수 밖에 쩝..
목불을 보고 눈으로 딮힌 마당을 가로질러 연못으로 갔다.
연못가운데 섬에는 금당사석탑이
하나 서 있다.
3층석탑 같기도 하고 4층석탑 같기도 하고 좀 어정쩡하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이 탑은 현재 남아있는 형태로 보아 이층 기단위에 세운
삼층석탑으로 추정되며 기단부는 중석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 하였으며 갑석을 엊은 위에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쌓아 놓았다. 상륜부는 없어진 것을 후에 올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소형석탑으로 제작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전북지방문화재 자료 122호
( 연못가운데에 서 있는 금당사 석탑 ) * 사진을 클릭하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23. 금당사
석탑은 연못가운데 섬에 서 있다. 석탑을 보고
연못근처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물을 마시고 다시 대웅전쪽으로 갔다.
일행들은 아직도 대웅전쪽에 머물고 있었다
금당사석탑을 배경으로 사진좀 찍고 금당사를 나왔다.
계속 내려가니 집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집들은 거의다
식당아니면 숙박업소 였다.
식당들은 우리들을 보고 먹고 가라고 유혹을 하지만
우르딜은 그것을 뿌리치고
계속 내려오니. 남부주차장이 나온다.
남부주차장은 마이산의 남쪽 입구이다.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되 있었다.
주차장구석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눈에 젖은 머리를 말렸다.
다행히 모자가 달린 잠바를 입고 왔으니 다행이지..
볼일을 끝내고 남부주차장매표소에 가서 진안가는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4:30분에 온다고... (그때 3:10),,
아직도 80여분이나 남았네..
그러자 매표소아저씨가 입구로 나가면 버스가 더 있다고
말을 했다.
그말에 희망을 걸고 입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입구까지는 약 2km의 거리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가니 길옆에 버섯재배단지가
보이고..
계속 내려가니 저쪽의 사당(祠堂)같은것이 보인다.
부지런히 걸어가서 그 사당앞에 있는 안내판에 이르렀다.
24.
그 사당은
이산묘(餌山廟)이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이산묘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임실의 성수산(聖壽山)에서 100일간
기도를 하고 내려와 마이산에 들어설때 바로 이 동구밖에
말을 매어놓고 은수사에 들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마이산주필지지(馬耳山駐畢之址)'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있는 이산묘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이곳 유림회에서 세운것이다.
사묘(祠廟)는 회덕전,영모사,영광사가 있으며, 회덕전에는
단군성조로부터 조선국 태조(1대왕),세종(4대왕),고종(26대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영모사에는 조선개국이래의
명신(名臣)과 거유(巨儒) 40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영광사에는 을사조약(1905년
쪽발이들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사건)이후의
순국 선열 송병선,최익현을 비롯한 33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산묘는 세워진지 100년도 안된 사당이다.
사당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안내판을 읽고 그냥
내려갔다.
안내판옆에는 비석들이 몇기 서 있는데 모두 한문으로
쓰여있다.
이산묘 옆에는 거대한 암산(岩山)이 하나 있는데 아래쪽에
굴이 하나 파여있다.
무슨 토속신앙과 관련된 곳으로 생각되는데..
이산묘를 뒤로한채 눈길을 걸어간다.
( 마이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산묘의 모습 )
25.
이산묘를 지나 계속 걸어가니 길 왼편 바위에 고드름들이
많이 달려 있었다.
그중 큼직한 고드름을 몇개 땄다. 고드름길이가 거의 1m에
이를정도이다.
고드름을 지나니 좀 가니 가까이에 진안-임실국도가
보인다.
이제 다 내려온듯 싶다.
어느덧 '진안-임실국도'에 이르렀다.
입구에 이르렀을때 임실방면으로 군내버스 로얄미디 1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앗차 놓쳤구나.. 언제 버스가 올까? 쩝..
우리는 입구 버스정류장에 있는 대기소에 들어가서 눈을
피했는데.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서 부근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4:10분쯤에 진안가는 버스가 올것 같다고 그런다.. ( 3:40분)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별수가
없었다.
그때마침 택시 1대가 마이산남부주차장으로 들어가는군...
나오는 길은 이길밖에 없으니 곧 나올듯 싶다.
10여분뒤 그 택시는 우리가 있는곳으로 나왔다.
우리는 그 놈을 잡아타고 그곳을 벗어났다.
26. 택시를
잡아타고 마이산동쪽자락을 넘어 다시 진안읍내로 진입...!
진안읍내에 위치한 진안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렸다.
택시요금이 무려 6800원...! 졀라 비싸다..
터미널로 들어가서 대전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5:20분에
있다. (4:00)
아직도 한참 남았군...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무주로 해서 가기로 했다.
마침 무주가는 직행이 4:25분에 있다.
무주가면 대전가는 버스는 많이 있으니까.. 쩝.
무주까지 버스표를 구입(진안->무주
1인당 3000원)하고 과자를 사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때도 눈은 졀라게 내리고 쌓였다.
4:20분이 되자 무주가는 직행버스가 터미널타는곳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전북고속소속 무주경유 영동행
직행버스 am928a이다.
날씨두 춥구해서 버스에 일찍 탑승했다.
4:30분이 되자 버스는 출발하고.. 진안읍내를 벗어나
눈으로 덮인 산간지대를 달린다.
수동을 지나 강을 하나 건넌다. (강이름은 구리황천인가
그렇음)
강을 건너 설원을 졀라게 달리다가 안천정류장에 이르렀다.
정류장이라고 하지만 간이건물 달랑 1동이 전부이다.
정류장은 완전 눈으로 덮여있었다.
여기서 10분간 짱박다가 출발.. 험한 고개를 구비구비
넘는다.
그런데 운전사가 뽕짝을 시끄럽게 틀어놓는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최신가요까지 엄청난 볼륨으로 틀어놓아서 잠이
깰정도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버스는 달려서 적상을 지나 무진장지역의
북쪽에 위치한
무주읍내에 진입하여 무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린다.
(5:50분)
27.
무주는 처음 와본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무주는 전라북도 동북에 위치한 고을로 무진장지역(무주,진안,장수)중
한곳이다.
무주는 소백산맥이 지나가는 산간지대로..
주요관광지는 무주구천동과 무주리조트,덕유산국립공원,적상산성,나제통문등이
있다.
무주지역도 눈이 졀라게 내리고
있었다.. 눈도 엄청 쌓였음..
터미널로 들어가서 대전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6:20,6:25분에
버스가 있군..
그런데 5:20분은 금산,마전경유 노선, 6:25분은 영동,옥천경유
노선이다.
그중에서 금산,마전경유 노선이 더 빠르다.
그래서 대전입구인 마전까지 버스표를
구입 (무주->마전 1인당 2700원)하고
부근 분식집에서 오뎅을 몇개 집어 먹었다.
대전까지 안하고 마전까지
구입한 이유는 대전동부까지 운임은 4400원,마전까지는 2700원이다.
마전에서 대전시내로 운행하는 대전시내,좌석버스가
운행중이며 운임은 시내는 600원,좌석은 1200원이다.
그래서 운임을 최소한 500원까지 절약할 수가 있다.
그래서 마전까지만 구입한것이다.
오뎅을 먹고 버스 타는곳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무주터미널에서 운행중인 시외노선과 시간표는 -> 이곳을
참조
6:10분이 되자 대전동부로 가는 직행버스 한놈이
들어왔다.
우리는 날씨도 춥구해서 버스안에 곧바로 들어갔다.
버스안은 히터를 뜨끈뜨끈하게 틀어주고 있어서 졀라
따뜻했다.
이번에 탄 버스는 전북고속소속 대전동부행 직행버스이다.
6:20분이 되자 버스는 무주터미널을 출발하여. 무주읍내를
지나
북쪽으로 달린다.
이미 밖은 어둡다. 보이는것은 어둠과 빛뿐이다.
부리를 지나 금산에 이르렀다.
금산은 인삼으로 유명한 동네이다.
금산터미널을 출발하여 700의총입구를 지나 7:10분에 마전에
도착하여 내렸다.
28.
마전은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의 중심마을이다.
(처음 화면으로 가기)
금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마전에서 대전으로 운행하는 대전시내버스노선은 다음과
같다.
마전(추부면)에서 대전으로 운행하는 대전노선 | |||
노선번호 | 운행회사 | 배차 간격 | 주요경유지 |
520 |
공동배차제 운행 |
1:10~1:20 | 중부대,구도,산내,부사동,원동,대전역,중리동,농수산시장 |
좌석109번 |
공동배차제 운행 |
10~20분 | 중부대,구도,산내,부사동,유천동,변동,둔산,갑천대교 |
좌석501번 |
공동배차제 운행 |
15~20분 | 중부대,구도,산내,부사동,원동,대전역,동부,고속터미널,법동,중리동 |
마전에서 내려서 부근 버스종점으로
갔다.
이곳에는 대전시내버스뿐만 아니라 옥천,금산,진산방면
군내버스가 운행한다.
이곳도 눈이 졀라게 내리고 있었다.
잠시뒤 대전좌석버스 501번이 들어왔다.
우리가 탈버스는 바로 이놈이다.
이번에 탄 버스는 경익운수소속 대전좌석501번(중리동-마전)이다.
대전좌석요금은 1200원이다.
버스운전사는 타는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승객 20여명을 태우자, 마전시내를 나와서 중부대입구를
지나 터널을 통과하니
이제부터는 대전광역시땅이다.
만인산휴양림,상소,구도,산내,효동,원동을 지나 대전역에 도착하여 내린다. (7:50분)
29.
대전은 10여일만에 와본다. 대전은 우리나라 6번째
대도시로 (처음 화면으로 가기)
1993년에 엑스포가 열렸던 과학,첨단도시이다.
대전역에서 내린다음 대전역사(大田驛舍)로 들어갔다.
대전에서 서울까지는 철도로 가기로 했다.
대전->서울 철도표는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열차표를 구입하고 부근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열차를
기다렸다.
대전시내는 눈 대신 비가 내리는군...
8:50이 되자 우리가 탈 열차의 개표를 시작하구.. 개표를 받구
열차 타는곳으로 갔다.
그런데 5명중 3명은 7호차, 2명은 1호차로 좌석이 배정되
있었다.
할수 없이 여기서 헤어졌다.
열차타는곳에서 몇분 기다리니 우리가 탈 열차가
대전역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제248열차로
운임은 6300원이다.
대전역을 21:03분에 출발하여 서울역에는 23:09분에 도착한다.
좌석은 1호차에 2명, 7호차에 3명이다. 나는 7-68에 앉았다.
열차는 대전역에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로 향해
달린다.
잠시뒤 신탄진역에 정차하고 금강을 건너 조치원역에
이른다.
나는 피곤한지라 잠이 들고 꾸벅꾸벅~~
잠이 깨보니 어느덧 서울역에 이르렀다.
서울역에는 약 6분정도 지연되어 도착했다. (23:15분)
30.
서울역에서 내린다음 지하철4호선 서울역으로 갔다.
여기서 남은 일행 3명과 헤어지고 나는 당고개행 열차를
타고 쌍문역에서 내려서
한성여객소속 서울15번(하계,상계동-신설,마장동)을 타고
집에 오니 자정이였다.
31. - 마무리 -
이번 여행은 전주,진안,무주,마전,대전지역을
둘러봤으며
진안에 명산인 마이산을 관람했다.
그리고 마이산에 있는 은수사,탑사,금당사를 관람했다.
-기념품으로 가져온것들-
1. 서울->전주 고속버스승차권
2. 전주->진안 직행버스 승차권
3. 마이산입장권
4. 무진장여객 버스승차권(회수권) * 마이산 내려오다가
습득
5. 대전->서울 무궁화호 승차권
* 이 여행기는 2002년 2월 2일에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