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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14. 수(水)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특강, 은하문화학교강좌에 참석하다. 오늘의 테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오딧세이아』-.(Homer의 Illiad와 Odyssey) 강사는 정암학당 연구원 강대진교수. 정암학당은 희랍과 로마의 문헌을 연구하는 학당이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문학의 기원은 시이고 그중 서사시가 먼저인데 그것의 최초의 것이 희랍의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였다. 바로 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에 대한 강의다. 너무나 신비로운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고 감히 어려워 읽을 수 없으리라 싶어 근접하지도 못했던 일리아스, 그리고 오딧세이아, 나는 기대에 차서 박물관 대강당으로 갔다. 청중이 가득, 빈 자리 없이 오히려 강당 바닥에도 앉은 이들이 있고, 계단의 보조의자에까지 꽉 차 있다. 좀 흥분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다.
희랍은 Helas를 영어로 표기한 것인데 그리스인들이 자기네 나라를 칭하는 말이다. 오늘날 세계문화의 중심적인 흐름을 알아보자면 희랍과 로마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서양문화가 이 두 문화의 유산을 응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시대적으로 더 앞선 것은 희랍문화이다.
그리스 역사에서 이른바 암흑시대인 중세의 미케네시대는 문화적으로 불모의 시대여서 건축물은 파괴되었고 문자도 사라졌고 미술공예도 쇠퇴했다. 그러나 토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암흑시대를 견딘 가장 커다란 문화유산은 서사시였다. 미케네시대의 왕들을 주제로 한 설화는 가인(歌人)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가꾸어지고 발달하여 마침내 기원전8세기경 위대한 시인에 의해 방대한 서사시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로 이는 암흑시대에 일구어진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며 또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상징하는 횃불과 같은 존재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던 날부터 40일 간의 이야기이다. 호메로스가 트로이전쟁 당시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까닭은 그가 마치 그 전쟁을 직접 목격한 듯이 너무도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의 출생지가 키에스라는 설이 있는데 이것도 일리아스에서 이 지역 지리가 자세히 묘사되고 또 호메로스의 자손이라 자칭하는 낭송자의 일족들이 키에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는 24권, 1만5693행으로, 『오딧세이아』도 24권, 1만 2110행으로 된 방대한 서사시인데, 세계문학 최초의 것이면서도 구성이나 언어, 작시의 기교 등이 최고도로 완성되어 있다. 이런 걸작이 홀연히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전 상당한 기간의 세련기를 거쳤을 것으로 보이며 시의 내용도 미케네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시의 배경에 수세기 동안의 서사시 전통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리아스』의 줄거리를 간추려 보면 희랍군의 용사 아킬레우스가 자신을 무시하는 아가멤논에게 화가 나서 전투를 거부하고 여신인 자기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자기편이 지도록 일을 꾸민다. 희랍군은 아킬레우스가 없어도 한동안 잘 싸우지만 결국 엄청난 위기에 처하고 그것을 보다 못해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도 세우고 적도 격퇴하지만 결국 헥토르에게 죽고 만다. 거기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친구를 죽인 핵토르에게로 방향을 돌려 신이 만든 새로운 무장으로 친구의 원수를 죽이고 장례까지 치른다. 그러나 화가 풀리지 않아 날마다 핵토르의 시신을 학대하다가 나중에는 신들의 중재로 그 시신을 돌려보낸다는 이야기이다. 전투장면이 굉장히 많아 좀 지루한 감도 있으나 직유법을 많이 쓰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구절들(공식구)를 많이 쓰며 음율이 있는 긴 이야기 형식을 따른다. 제목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시’라는 뜻이다.
『오딧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역에 참여하느라 집을 떠난 왕이 온갖 모험을 하고 20년만에 혼자 돌아와, 자기 아내를 괴롭히며 집안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흉포한 무리들을 처단하는 것을 줄거리로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주제를 보여 주는데 젊은이의 성장담, 뱃사람의 모험이야기, 그리고 집 떠난 이의 귀향,이다 한 가지 주제의 『일리아스』보다는 시를 쓰는 작업이 더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두 작품을 같은 사람이 쓰지 않았다는 학자들도 있는데 여기에도 쟁쟁한 학자들이 설득력 있는 논거들을 갖고 있어서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앞으로도 논쟁이 될듯하다. 흔히 『일리아스』는 비극적이고 『오딧세이아』는 낭만적이라고 한다 또 『일리아스』는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표하고 있다고 하고 『오딧세이아』는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하기도 한다. 또 『일리아스』가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는 반면 『오딧세이아』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이도 있다.
“아테네 인의 조상은 호메로스를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 4년마다 개최되는 판아테나이마 제례에서 호메루스의 시를 낭송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판아테나이마 제례는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기원전 6세기경 시낭송경연이 개최됨으로써 확실한 원본의 필요성이 절실해져 각지에서 전송되던 시를 모아 오늘날 전해지는 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호메로스의 시는 그리스인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리스인의 사유와 세계관(신과 인간관, 생활관)을 나타내며, 그것은 그 후의 문학과 청년의 교육, 성인의 정치, 윤리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호메로스의 시는 전쟁의 노래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전쟁을 예찬하거나 전사의 무용을 찬미하는 전송가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재앙과 비참함을 얘기하고 죽음을 애통하는 조가와 같은 울림이 있다”
“ 이 시인이 그리스를 교육했으며 인생살이와 교육을 위해서 그에게서 배우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생활 모든 것을 설계하여 살아가야 한다.”
호메로스의 윤리사상은 헤시오도스(그리스 최초의 농민사상가, 서정시인)는 물론 문학의 다른 장르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정시의 주제도 호메로스에게서 얻었고 비극의 모티브도 호메로스에게서 빌렸다. 말하자면 호메로스는 비극의 아버지요 그리스 사상의 원천이다.
나는 오늘 그리스의 기원전 9세기 8세기 작품과 작가 호메로스를 통하여 지금부터 3천여년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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