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략을 받고 1년간 저항한 끝에 항복했다. 두 나라는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한반도 남쪽의 진국1) 과 한나라의 직접 교역을 막고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게다가 고조선과 흉노가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한 무제는 사신 섭하를 보내 우거왕을 복종시키려 했다.
우거왕이 거절하자 섭하는 귀국 길에 고조선의 비왕을 죽였다. 한 무제는 그런 섭하를 요동군 동부도위에 임명해 고조선을 자극했고, 우거왕은 자객을 보내 섭하를 죽였다. 마침내 한 무제는 육군과 수군 5만 7000명을 파견해 고조선을 공격했다.
한나라 군대가 왕검성을 포위한 가운데 전쟁이 길어지자 고조선 지배층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조선상 역계경은 강화를 맺자고 건의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0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내려갔다. 조선상 노인, 상 한음, 장군 왕겹 등은 왕검성을 나가 항복했고, 우거왕은 이계상 참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대신2) 성기가 백성을 이끌고 끝까지 항전했으나, 왕자 장과 노인의 아들 최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하고 왕검성은 무너졌다. 한나라는 고조선 땅에 낙랑. 임둔. 현도. 진번 등 4군3) 을 설치해 직접 다스렸고, 수많은 고조선 유민이 남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삼한이 발전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참조]
1.시대 구분은 한국사의 흐름에 맞추었다.
2.서기 1년 이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쓰이는 ‘기원전’ 대신 ‘서기의 앞 시기’ 라는 뜻에서 ‘서기전’으로 표기했다.
3.한국사의 연대는 1895년까지는 음력, 태양력을 도입한 1896년 이후는 양력으로 표기했다. 세계사의 연대 표기는 중등 교과서에 따랐다.4.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중등 교과서와 국립국어원에 준하되 편집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화를 줬다.
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