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아버지는 몹시 수척한 얼굴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아흔넷의 나이에 폐를 수술했으니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주렁주렁 달고 있는 영양제 주사기도 버거워보였다. 통증이 오는지 간혹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이 나이에 더 살겠다고 수술을 하다니!” 아버지는 여러 번 입속말을 중얼거렸다. 마음으로 겪는 고통이 심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 퍼뜩 일어나셔서 올해도 밤 주워야죠” “그러게!”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작년 이른 가을이었다. 동생으로부터 고향에 밤을 주우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주말로 날을 받아 고향에 도착했을 때는 서울에서, 부산에서, 구미에서 오빠와 동생들이 먼저 와 있었다. 밤을 주우러 가면서 남동생은 집게에다 면장갑, 그리고 여러 개의 포대까지 챙겨들었다. 내게는 이 일이 낯설었다. 친정 나들이가 뜸했던 나는 밤 수확을 거든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다복솔에 오리목만 있는 산에다 밤나무를 심은 것은 내가 결혼을 해서 고향을 떠난 뒤였다. 팔순 가까이까지 아버지는 손수 거름을 하고 풀도 매며 밤농사를 지었다. 목돈을 쥐는 기쁨도 컸겠지만 자식들에게 밤을 보내주는 즐거움 또한 컸을 것이다. 밤산 관리가 힘들어진 아버지는 일정액수의 돈을 받기로 하고 남의 손에다 밤산을 맡겼다. 애초의 계약과는 달리 임대료는 절반이 되기도 하고 아예 못 받기도 했다. 이유도 구구했다. 병충해가 심해 농약값이 많이 나갔다는 해도 있었고 밤값이 폭락해서 인건비도 못 건졌다는 해도 있었다. 오랜 임대 기간 동안 도시에 사는 우리 일곱 남매는 고향집의 밤을 먹을 수 없었다. 재작년에도 아버지는 한 푼의 돈은커녕 한 톨의 밤 구경도 못했다고 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흥분한 우리는 손수 밤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모았다. 마음은 그때뿐이어서 일곱 남매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밤산에 발걸음 한 번 해보지 않았다. 간간이 밤산을 둘러보는 아버지만 속이 탔을 것이다. 밤농사를 짓는다더니 거름도 내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은 자식들이 야속했을 것이다. 농사는 거저 짓는 줄 안다고 몇 번이나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밤산에 도착했을 때는 온산이 밤송이 천지였다. 밤송이가 꽃처럼 예쁘다고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죄를 지은 듯 켕겼다. 아무것도 해준 거 없이 수확을 하겠다고 나선 게 밤나무에게 미안했다. 그새 밤송이가 벌어져 떨어진 알밤이 즐비했다. 건강하고 굵은 밤톨을 손안에 쥐는 기분은 황홀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도 그랬다. 집게로 밤과 밤송이를 포대에 주워 담아 한곳에 모았다. 황홀한 기분은 잠시고, 줍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 줍는 일은 즐거운 놀이가 아니었다. 허리가 빠지는 중노동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부쳐온 밤을 날름날름 받아먹을 때는 이런 고충을 짐작조차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죄스러웠다. 밤송이에서 밤톨을 꺼내는 작업 또한 만만찮았다. 밤송이가 장갑을 예사로 뚫고 들어와 살을 찔렀다. 나중에는 비닐을 입힌 면장갑을 두 개 겹쳐 꼈다. 그래도 밤송이를 완전히 막아주진 못했다. 수확한 알밤은 포대에 담아 생산자 이름을 적어 대문 앞에 내어놓으면 수매하는 상인 측에서 그날로 트럭에 담아 싣고 갔다. 싣고 가자마자 밤을 새워 선별을 끝내 값을 매긴다고 했다. 밤값은 이튿날 밤을 실러 오면서 가져왔다. 생산자는 수확한 다음날 밤에 밤값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런데 밤값이란 것이 수고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도회에서 밤을 살 때의 가격을 알고 있는 우리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큰오빠는 알밤 값이 일곱 남매의 기름 값에도 미치지 않는다며 밤 줍는 일을 당장 중단하자고 했다. 사람을 사는 것이 기름 값보다 싸다는 말도 했다. 차라리 오고 가는 경비를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품을 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뒷산이 전부 밤나무로 뒤덮인 마을에서 그것은 불가능했다.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가치도 있다는 내 의견은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밤 수확은 그만 두는 게 좋겠다는 오빠의 말에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다. 아버지의 묵묵부답은 좋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밤 수확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생활터전으로 뿔뿔이 차머리를 돌렸다. 차머리는 돌렸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툭툭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따라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를 배웅하던 아버지의 기운 빠진 모습이 눈에 밟혔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왔다. 오뉴월 날씨와 노인의 건강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곱씹으며 허겁지겁 고향으로 달려갔다. 몸져누우신 까닭이 당신 혼자 밤을 줍다 얻은 몸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농촌의 일은 시기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제때에 수확을 못하면 다 된 농사 망치기 십상이었다. 겨우 며칠 사이에 밤나무 밑에는 수확기를 놓친 밤송이들이 벌겋게 말라 있었다.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아버지에게 밤나무는 또 다른 자식일 터였다. 자식에 못난 자식과 잘난 자식이 어찌 있으랴. 너부러져 썩어가는 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올밤 몇 그루만 피해를 입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직장이 있는 사람은 주말마다 합류하기로 하고 직장이 없는 사람은 고향에 남아 밤을 줍겠다고 하자 비로소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버지는 이틀 뒤 거뜬히 일어나 우리를 따라나섰다. 한곳에 앉아서 모아온 밤송이를 까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기가 넘쳤다.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는 우리도 기뻤다. 추억을 끄집어내어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는 행복은 덤이었다.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무엇으로 이만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가.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아이처럼 깔깔거리고 재재거렸다. 흩어져 살다보니 일곱 남매가 시간을 함께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함께 마음을 모아 일을 한 기억은 더더구나 없었다. 옹기종기 자라던 어린 날처럼 우애가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했던 내 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축제 중’이라고 동생이 내 귀에다 속살거렸다. 밤은 품종에 따라 수확기가 다르다. 수확기에 따라 8월 말경 수확하는 올밤이 있는가 하면 9월 중순 무렵 수확하는 늦밤이 있다. 올밤과 늦밤 사이에 수확하는 중밤도 있다. 늦밤까지 다 수확하는데 이십여 일이 걸렸다. 밤 수매를 모두 끝내고 벌어들인 밤 값을 합산해보니 우리가 오고가며 들인 교통경비보다는 많았다. 마지막 날, 온 가족이 읍내에 있는 식당으로 외식을 갔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식대를 계산했다. 아흔셋의 아버지가 일곱 자식에게 한턱을 내신 것이다. “너희들 수고 많았다” 말 한 마디에 그간의 노고가 다 날아갔다. 아버지는 언제 준비했는지 기름값이라며 봉투를 앞앞이 건넸다. 우리는 그 돈을 모두 거둬 갑자기 명퇴를 당한 남동생에게 주었다. 대신 우리의 가슴속에는 기쁨과 보람이 한가득 담겼다. 올해는 일찌감치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했다. 다가오는 가을에도 우리 손으로 밤을 수확할 참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아버지, 올해는 밤나무에 거름도 했으니 작년보다 작황이 좋을 거예요. 아버지가 계셔야 알밤 줍는 거 재미가 있지. 그러니 얼른 일어나세요.” “그래!”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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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상작입니다
교수님께서 손수 나르게 해서 죄송합니다.
장면이 훤히 그려짐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이글이 대상이었군요.
역시 읽으면서 기분이 업되는 글이 수상하네요.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실제 경험에 점수를 준 것 같습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올해도 밤 수확을 하셨겠습니다. ^^
김희자 선생님! 익히 명성 들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날씨가 더워 한 주일 정도 수확기가 늦춰진다네요. 올밤은 곧 추수에 들어가겠지요.
,여기서 형님 글 보니 더 새롭네요~ 다시 축하~~
정말 대상작은 확실히 다르네요. 늦게나마 축하 드립니다. 글을 읽을 기회도 없었고, 얼굴을 뵐기회도 없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축하 드립니다. 혹, 울산 홍교수님, 연구반이신지요? 얼마전, 제게 참가상 축하한다고 하셨던분...맞으시면 저의 부족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으니 몰라볼 수밖에요.
햐~ 아주아주~~~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 안 퍼다 놓으셨으면 그냥 지나갈 뻐어언~~했습니다.
여기서 공적으로 글을 보게 되네요.
자알 읽었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요~~
고맙습니다. 시상식에 가서 '울산에 글 잘 쓰는 분들이 많더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말씀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 읽는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밤수확이 시작 되었는데 몸살 중이라 못 갔네요. 에공.
축하가 늦었습니다. 가슴에 잔잔하게 물결이 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