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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昌寧) 관룡산(觀龍山:745M), 화왕산(火旺山:757M)을 가다.
글쓴이 고 학영
10월26일, 화창한 가을 날씨다. 산천은 단풍으로 물들어 대지를 수(繡) 놓으며, 들녘에는 가을 걷이가 한창이다. 산행때는 언제나 들떠 있지만, 오늘 따라 기분은 최고다. 처음 산행에 동참하신 분들도 많아 분위기도 한결 새롭도다!
어느새 현풍(玄風) 휴게소에 도착하니, 잔디 밭에는 이슬 기운이 보인다. 조식을 간단히 하고 주위를 조망하니 동쪽 방향에는 비슬산(대견봉)이 우뚝 솟아 조화봉으로 이어져 창녕 화왕산 방향으로 달리니...
현풍면, 유가면, 구지면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평화롭고, 서쪽 방향으로는 태백의 황지(黃池)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안동과 상주, 구미를 거쳐 3개(현풍, 유가, 구지)면을 휘감아 흐르니... 주민들의 삶은 풍요롭고, 인걸(人傑)들의 보고(寶庫)가 돼고 있어라...!
풍요의 들판을 가로 지르고, 울긋 불긋 산천의 단풍잎들이 대지를 수(繡) 놓으니... 윤회의 섭리를 피부로 느끼노라...! 언덕위에 코스모스는 하늘거리며, 나그네의 연정(戀情)을 더욱 부채질 하는구나...!
창녕읍에 이르러 다시 국도로 내 달으니, 왼쪽으로는 저만큼 화왕산이 우뚝솟아 ‘불뫼’의 명성답게 아름답기 그지 없고, 계성면(桂城面)을 돌아드니 관룡산의 암봉(岩峰)들이 공룡의 등뼈처럼 이어져 내려 영취산(682M)까지 내달으니...
관룡산(745M), 화왕산(757M)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계성천이 옥천 저수지에서 잠시 머무러다가, 다시 계성리를 적시고 남지로 흘러 낙동강에 이르니 계성면의 젖줄이 돼고 있어라...! 물좋고 경치 좋은 옥천리 계곡을 따라 오르니, 산수의 경치가 아름답고 빼어나 가을 정취에 험뻑 젖는다.
주차장에 이르러 계곡으로 걸어 오르니, 태풍 매미호의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개울은 패여 있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고, 제방들은 다 유실되어 축대들이 허물어져 복구 공사가 언제나 다 이뤄질지...
무전기로 선두와 후미에서 서로 연락하며 줄지어 걸어 오르니, 볼수록 장관이다. 이름난 화왕산의 억새풀을 구경하기 위해 산행에 동참한 산악회도 여럿이다. 형형 색색의 등산복 차림이 가을 단풍과 어우러지니, 산에도 울긋 불긋, 계곡에도 울긋 불긋...
관룡사 근처에 이르니 진입로는 다 패여져, 동구밖의 일주문을 대신해 서 있던 석장승 두 기는 태풍에 쓸려 가버려 흔적을 찿을 수 가 없다. 새 길이 나기 전에 옛 진입로 길 입구에 여장승과 남장승 두 기가 일주문을 대신해 지키고 있었으며, 창녕군에서 보물로 지정 받도록 추진할 정도로 조각기법이 우수하고 조성연대도 영조49년(1773) 경으로 추정하니, 역사성도 간직 하여 일주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으니...
태풍피해로 볼 수 없음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관룡사 산문에 들어서니, 고만고만한 크기의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사각 돌 기둥으로 가로 질러 얹은 위에 기와지붕으로 덮었으니, 여느 절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산문이다.
일주문을 대신 하였던가? 원음각(圓音閣)을 지나 경내로 들어 서니 대웅전이 정면에 마주한다. 우주의 본체 소리를 듣는다는 전각이라, 진리의 법왕이신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세계를 전한다는 말씀이신가?
대웅전(보물제212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의 건축 양식을 하고 있으며, 태종원년(1401)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것을 광해군 9년(1617), 영조 25년(1749)에 중건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 진평왕 5년(583)에 증법국사(證法國師)가 처음 절을 지었다 하며, 신라 8대 사찰의 하나로 원효대사가 제자 1 천 여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 이라 하신다. 관룡사(觀龍寺)라는 이름은 증법국사가 절을 지을 당시 화왕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연못에서 용 아홉 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보았던 것에 연유 한다 하시니...
이래 저래 1400 여년의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임을 믿지 못한다 하드래도, 600 여년의 세월을 전법 도량으로서 자리 매김 하고 있으시니... 어찌 불법의 영험이 없을 쏜가? 법당 내부의 불단위에는 닫집도 마련했고, 빈 공간이 없을 만큼 단청이 빽빽하고 매우 화려 하며, 수미단의 조각 기법이 뛰어나서 해오라기로 여겨지는 물새가 연밭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것인가?
예배를 드리고 물러 나오니 관룡산의 암봉(岩峰)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어,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의 주산을 방불케 한다. 청룡과 백호도 포근히 감싸 주시고, 주산은 암봉들로 둘러 쳐져 빛나고 있으니... 산지 가람으로는 더 없이 수행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웅전의 안마당에는 석조물은 보이지 않으며, 요사채 옆으로 가서 서북쪽 방향으로 올려다 보면 용선대가 멀리서 도량의 돛대처럼 솟아 보인다.
서남방향의 약사전(보물제146호)은 사방이 한칸이면서 배흘림 기둥에 주심포계 맞배지붕으로된 작고 독특한 집이다. 도량의 전각 배치도 아기자기 하거니와 약사전의 건물도 앙증 맞다고나 할까? 참으로 아담하고 소박하며 아름다운 전각이다.
뜰앞에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조그만 3층 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이 한기 있는데,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약사전의 건물이나 내부의 석조여래좌상 보다 조성연대가 훨씬 앞선다고 하니... 아마도 독립된 구조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제519호)이 연화좌대 위에 모셔져 있으며, 불상의 양식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 불상의 양식이라 하신다. 바닥에는 전돌로 깔아져 있고, 내부공간이 협소해 참배할 공간조차도 없으니...
문밖에서 예를 올리고, 명부전 옆길로 돌아 용선대로 향한다. 솔밭사이로 난 길이라 솔 향기도 좋고, 오솔길이라 기분도 상쾌하다. 다행히 절 도량과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태풍의 피해가 없으니, 이것도 불력의 힘이신가...?
20 여분을 줄지어 오르니 선착객은 탄성을 지른다. 관룡산에서 내려오던 능선이 용선대에서 바위군으로 뭉쳐있어, 좌선대로는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평한 바위 위에 사방이 탁 트여 있어 그야말로 속이 다 시원하고, 시계(視界)에 걸림이 없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제295호)은 동향으로 정좌하고 있으며, 연화좌대의 하대석과 그 위에 안상이 조각된 팔각중대석, 다시 그 위에 앙련을 화려하게 조각한 상대석이 놓여 있는 평범한 양식이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닿아 있어, 세상의 모든 덕을 갖춘 듯 하고, 당당한 위엄과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여 마귀를 다스리고 있는 모습이며, 통일 신라시대 9세기 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1100 여년의 장구한 세월속에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 무언(無言)의 설법(說法)을 하고 계신다. 천 여년의 풍우를 견뎌 내시고, 돌에 혼을 불어 넣어시니... 장인의 정신이 영원(永遠)의 미소(微笑)로 떠 오르는 구나...!
그 모양이 큰 바다를 가르는 배의 모습에 비유하여, 반야용선(般若龍船) 이라고도 하시니, 사바세계의 미혹한 중생들의 등대불이라 함이 더 옳겠도다. 가까이서 보는 경치보다, 얼마간 떨어져 주위를 조망하니 더욱 장엄하고, 사바세계를 향하여 장광설(長廣舌)을 하시는 모습이 선명하다.
고개들어 하늘을 보고, 머리숙여 땅을 보니...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 한 구절이 떠 오른다.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요, (계곡의 물소리 그대로 부처님 설법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이라. (푸른 산빛은 청정한 부처의 법신이 아닌가)
기다리는 회원님들에게 차례 차례로 촬영을 해 드리니, 가을 소풍을 나온 학동들 마냥 기쁨에 들떠 있다. 대자연의 품속은 언제봐도 푸근 하지만, 오늘 따라 더욱 푸근함은 계절이 주는 특별한 선물인가?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솔밭사이로 능선을 따라 오르니... 40 여분을 걸었을까? 관룡산(745M)의 바위 능선들이 줄지어 나타 나는데... 정상으로 부터 차례로 물들어 내려가는 단풍의 모습들이 장관이다.
사계절에 어느 계절인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마는, 특히 가을 단풍은 그 중에 제일이라...! 하늘에서 오색의 비가 내렸는가? 형형 색색의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이, 마치 서로 서로 때때 옷으로 갈아입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 하다...
앞다투어 물들어 내려가니... 대자연의 파노라마요...! 하늘의 섭리인가? 가을 정취에 험뻑 젖어 사람들도 향기에 취하니... 산행의 즐거움도 배(倍)가 되어 동심의 세계요...! 선계(仙界)의 신선(神仙) 이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행길이 쉬워서 수월하기도 하고, 전국에서 모인 산행객들이 줄을 지어 화왕산으로 대닫는다. 1 시간여를 더 걸어 화왕산(757M)에 이르니... 산행객이 어찌나 많던지... 온산에 사람이다.
억새풀밭을 조금 걸어 나아가니 수년전 드라마 ‘허준’에서 촬영장으로 활용되었던 세트장이 오두막집으로 남아 있어, 영상속에 아름다움이 현장에서 보는 느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슴을 느낀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요, 현장이라, 몇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다.
얼마를 더 나아가니 언덕배기 아래 창녕조씨득성비(昌寧曺氏得姓碑)가 있어 자세히 살피니...둘레에는 철책으로 보호되어 있고, 음각되어 있는 글씨에 붉은 칠을 하여 1897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창녕현읍지(昌寧縣邑誌)에 “창녕조씨”가 성을 얻게된 내력이 기록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성씨가 그러하듯, 고대 사회로 거슬러 갈 수 록 조상에 대한 신성시 함은 여느 가문이 다르지 않을터... 대개는 땅에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내려 오시니...
끝없이 이어지는 억새풀밭에 울긋 불긋 산행객들도 한이 없어라...! 산성은 잘 보수되어 튼실하고, 늪지대와 비슷한 연못도 여러 곳에 보인다. 안내판에는 5만 6000 여평이 넘는 규모라고 하며, 둘레는 높고 가운데는 낮아있어 산성의 조건으로는 천혜의 요새지라 느껴진다.
동쪽 관룡사 방향으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병사들의 물자 공급 하기에 용이 하겠고, 남 서 북 방향에는 절벽이라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격하기에 적당하니... 군사 훈련장으로서, 피난처로서, 적병을 맞아 싸우기에 좋은 형세다.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에 홍의장군 곽재우는 왜병들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셨다 하니... 이 평화로운 곳에서 전쟁이 있었다는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배바위 방향으로 20 여분을 더 올라 평평한 곳에서 회원님들과 점심을 드시다. 산행에 처음 동참하신 조여사님, 신여사님은 맛좋은 반찬들을 권하시며 어찌나 즐거워들 하시는지... 오늘따라 날씨도 얼마나 화창하여, 이 즐거움과 기쁨을 다 표현키 어렵구나...!
저만큼 정상에는 산행객이 줄을 지어 오르고, 억새풀밭 여기 저기에는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다니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기념촬영도 해 드리고, 배바위로 올라가서 움푹 움푹 패인 바위홈에 몸을 담아 앉으니...
우주를 향해 항해하는 배의 형국이라... 나는 선장이요! 우주는 바다라...! 아득히 펼쳐지는 산 능선들이 끝없이 다가오고, 돌배는 소리없이 항해하니... 배바위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알겠도다.
관룡산(745M), 영취산(740M)이 눈앞에 잡힐듯 하고, 밀양 방향과 청도 방향은 짐작은 되나 가늠하기 어렵고,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모를 연봉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주신다. 그 옛날 임진란(1592), 정유재란(1597) 당시의 의병들의 함성이 울려 오는듯... 님들의 구국 일념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슴이요...! 그 은혜 무엇으로 보답하고 갚으리요...! 유명 무명의 선열들이여 청사에 길이 길이 빛나소서...!
화왕산(757M)은 비슬지맥의 한 기점으로서 비슬산, 조화봉을 거쳐 천왕산(619M), 열왕산(663M) 기점에서 다시 서북방향으로 관룡산을 지나 화왕산에 이르러, 그 맥을 떨구며 높이 솟아 천하의 영기를 머금고 계시니... 또다른 이름이 ‘불뫼’라...!
서북방향에는 상주, 구미에서 흘러 내리는 낙동강이 창녕벌을 휘감아 흐르니... 이고장의 풍요와 젖줄이 되고 있으며, 화왕산과 관룡산의 영기가 합류하시니 천하의 인재들의 보고(寶庫)가 되고 있습니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오후 일정에 우포늪을 답사할 계획이 있어, 하산길로 접어들어 정상 표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산행객이 여전히 많아 밀려 오르고, 밀려 내려 가는 기분이다. 정상표석에 기념촬영을 하려고 기다리다 못해 하산길로 접어든다.
창녕방면의 하산길은 경사도 가파르거니와 가을 날씨가 가물어, 등산로는 먼지로 뒤 덮이고 자욱해 입안에도 모래가 버적 버적 거린다. 산기슭으로 거의다 내려 올 때 까지는 송림사이로 내려오는 여유로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람 사이로 차 사이로 논두름 길로 접어들어 차에오르다.
창녕읍의 진산인 ‘불뫼’는 볼 수 록 아름답고, 창령의 옛 이름은 빛벌, 빛불로 불리워 졌다 하며, 그 외에도 불사(不斯), 비화(非火),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 비자벌(比子伐) 등 등 으로 명명되어 창녕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니...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라는 것이 증명되도다...!
우포늪에 이르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여름장마 홍수때 물담아 잠겼던 흔적이 높은 언덕에 까지 남아 있다. 고산지대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비포장길로 대대제방에 올라 우포늪을 바라보며, 추강(秋江)에 날아드는 철새들이며, 이름모를 물풀들이 수면위를 가득메우고 있어... 산에서는 억새풀에 감탄하고, 늪에서는 석양에 노을진 우포의 가을 풍경에 놀라도다...!
다시 동쪽으로 향하여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을 바라보니... 석양빛에 물들은 암봉(岩峰)들이 타 오르는 불꽃 같으다. ‘불뫼’ 라고 이름 지어진 뜻이 산의 형세에서 온 듯 하기도 하고, 풍수적(風水的) 의미로 본다면, 장마에 물이 불어 잠긴 우포늪 일대와 창녕 들판을 상상 해 보면, 수기운(水氣運)을 누르고자 ‘불뫼’ 라 이름 하였다는 생각도 든다.
이래 저래 옛 선현(先賢)들의 지혜에 감탄하면서... 다시 쪽지벌 방향으로 내닫는다. 산행의 피로도 풀겸, 산보하는 기분으로 회원님들과 열지어 정담도 나누며 걸으니...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으시다.
뜻이 통하는 도반이나, 친구, 연인 등 등 모든이들의 산책 장소로는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포늪은 ‘수생식물의 교과서’요, ‘종다양성의 보고(寶庫)’, ‘살아있는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 ’생태계의 자궁’ 등 등 아무리 수식 하여도 부족한 천혜의 보물이다.
또한,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제일큰 우포(牛浦), 목포(木浦), 사지포(沙旨浦), 쪽지벌 로 부르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등 4개 면에 걸쳐 있어, 그 면적이 70 여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10 여일전 답사때 한바퀴 도는데 6~7 시간이 걸려, 하루 해를 보낸 기억들을 떠 올리면 감회가 더욱 새롭다. 제방을 따라 돌며 갈대숲 사이로 걷는 재미도 쏠쏠 하고, 송림숲 언덕배기에 앉아 사색의 장소로도 적당하고, 다정한 벗들과 정담을 나누기도 더 없이 좋은 곳이며, 주말에 가족들과 소풍나와 자연 학습장으로도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포늪에 깃들어 사는 생물의 종류가 1000 여종이 넘는다고 하니... 생물종의 다양성이 얼마나 풍부 하겠는가? 가을 가뭄이 심해 물이 다 빠져 이외로 답사처가 넓어 있어, 가시연꽃의 마른 줄기도 볼 수 있고, 물닭 종류와 왜가리, 황새 등 등 수 많은 조류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날아 오르고, 다시 사뿐히 내려 앉는다.
우포늪의 생성 연대는 대략 1억 4천만년 전으로 추산하고 있으니... 백년도 못사는 유한한 인생의 시각으로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요...!
늦가을 단풍으로 대지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석양에 노을지는 우포늪은 태고의 신비가 깃들어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 우포는 한국의 보물이요...! 인류의 보물이며, 국내 최고의 자연사 박물관이며, 천하 모든 중생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으니... 아~아~ 계미년 늦 가을의 남산의 최고 선물 이어라...!
단기4336년(서기2003년) 10월26일, 창녕(昌寧) 관룡산(745M, 화왕산(757M)을 가다.
첫댓글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과 '우포늪'을 동시에 답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