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술수(術數)와 신통력(神通力)이 뛰어난 정도전(鄭道傳, 1337~1398)에 얽힌 전설.
역사
정도전은 고향 단양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삼봉으로 호를 삼았고 박학다식
(博學多識)했다.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을 도왔고, 개국 후 군사·외교
·행정·역사·저술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썼다. 한양
정도(漢陽定都) 문제로 무학(無學)과 논쟁했으며, 한때 명나라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여 신통력을 발휘하는 설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줄거리
태조가 한양 정도에 대하여 무학에게 좌(座, 방향)를 물으니 동향으로 하라
하는데, 정도전은 남향을 주장했다. 실세였던 정도전 주장대로 결정되자,
무학이 “한양 말세에 백성이 배고플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에 정도전은
“남방에 보리가 나니 걱정할 것 없다.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당시 보리가 없었는데 정도전은 몇백 년 후 일을 미리 알았다. 중국 천자의
총희(寵姬)가 정도전이 자기를 죽일 것을 알고, 병이 났다면서 정도전의 간을
요구했다. 천자는 곧 정도전을 호출했고, 정도전은 미리 알고 중국으로 들어
갔다. 천자가 사실을 얘기하니 환자를 보자고 해, 방문을 확 열면서 기침을
세 번 하고 닫아 버렸다. 얼마 후 천자가 방문을 열어 보니 흰 여우가 죽어
있었다. 놀라는 천자를 보고 예쁜 여자와 놀지 말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훈계한 다음 돌아왔다.
변이
『오산설림(五山說林)』에는 정도전 예언은 없고 무학이 임진왜란과
왕자의 난을 예언한다. 요괴처치설화는 예부터 전하던 서사구조에
그를 관련시킨 것이다. 그리고 정도전 부친이 과거 길에 소나기를
피하다 한 여종[婢]과 정을 통하고 갔는데 그 여종이 임신하여 정도전
을 낳았으며, 어릴 적에 기지로 부친을 찾았다는 설화도 전한다.
역시 부친 찾는 전래설화에 정도전을 연결한 구성이다.
분석
정도전이 박식하고 풍수지리에 밝았던 점을 고려하여 무학과의 논쟁
에서 그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흔하게 유포되던 요괴처치설화를 연결
하여 초인(超人)으로 미화하면서 중국의 기를 꺾으려는 내용으로 구성
되었다. 이는 특정인을 미화하기 위해 불특정인 설화를 연관시킨 것이다.
특징
뛰어난 인물로서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중추가 되었지만 말년에
이성계의 아들에게 참수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래서 동향인 또는 아는
사람들이 이를 동정하여 미화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의의
정도전은 결국 정치적 실패를 했지만, 학문이 깊은 유학자였으므로 그의
한문학과 성리학, 문체를 중심으로 연구할 분야가 넓다. 또한 정도전이
지은 건국 찬양 가요며 편찬한 『고려사(高麗史)』가 사람들의 비판 대상
이 되었기에, 그의 설화를 함께 연구하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집필
김현룡(金鉉龍)
참고문헌
三峰集
충주시지(충주시, 2001년)한국문헌설화6(김현룡,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0년)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