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집 밖을 나서기란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날씨는 오락가락하는데, 먼 거리로 향하는 여행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한 달 가까이나 되는 긴 시간을 방구들만 지키며 보낼 수도 없는 일.
이럴 때 추천할 만한 여행길이 31번 국도를 따라가는 경주 여행이다.
멀지 않은 거리라 부담 없고, 동해안을 따라 난 도로는 드라이브 명코스로 언제나 환상적이다.
게다가 경주 국도변 곳곳에는 '천년 신라'의 유적들이 널렸으니, 장마속 가족여행코스로 제격이다.비 개인 뒤 31번 국도는 특히 싱그럽다. 도로가에는 물기를 한껏 머금어 터질 듯 한 신록이 줄곧 상쾌하게 전개된다. 부산 기장을 지나쳐 울산시 울주군 경계를 넘어 다시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방면으로 10여분 달리다 보면 육지에서 200여m 떨어진 앞바다에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로 문무대왕의 수중릉이다. 흔한 갯바위처럼 보이지만 여기를 중심으로 문무대왕의 호국의지가 깃든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대왕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왕의 시신을 화장해 동해에 묻고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킬 것이라고 유언한 것이 대왕암이 생기게 된 유래란다.
대왕암은 새해 해돋이를 보는 장소로 유명하다. 대왕암의 바위 사이에서 떠오르는 불덩이는 새해 첫 날의 희망들을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잠시 비가 그친 사이 바라보는 대왕암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 차분하기만 하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가야할 길을 점검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대왕암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봉길해수욕장 끝자락에 얕으막한 언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이견대'라 불린다. 문무대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수중릉을 망배하기 위해 지었으며, 죽은 문무대왕의 화신이라는 용을 보고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견대와 멀지 않은 곳에 문무대왕의 호국 전설이 깃든 또 다른 유적이 있다. 바로 감은사다. 문무대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자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682년에 완공하였다. 지금은 큰 3층 석탑 2기가 남아 이곳이 옛날 웅대한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