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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시조집 평론 때 인용한 글
1. 이명희, 제3시조집 『바람의 랩소디』, 2021,10.
1) 먼저 ‘바람의 랩소디’라는 표제에서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랩소디(rhapsody)’는 악곡의 형식 중의 하나이며 광시곡(狂詩曲)이라고도 불린다. 주로 서사적· 영웅적 · 민족적 색채를 갖는 환상적인 자유로운 기악곡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자유로운’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표제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2)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며,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고 했다. 즉 나의 주체는 무의식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3) 그만큼 시인은 투철하게 온 몸을 던져 시조를 쓰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시인은 ‘전생이 무사인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털 한 올을 칼날에 올려놓고 불면 잘라진다는 취모검(吹毛劒)을 연상케 한다.
4) 조지훈은 “시는 우선 지어지는 것이다. 시적 가치를 의욕하고 기도하는 의식적 방법론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이것은 김기림이 말한 “시인은 무엇보다 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명희 시인은 시는 감정의 발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제목에서 말하고 있다.
5) 성경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1서 2:17)라고 하고 있다.
6) ‘애증’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것인지는 선불교 삼조(三祖)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라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 중에서 ‘사랑함’과 ‘미워함’이 핵심이며 이것에서 벗어나면 중도(中道)를 얻은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는 것이 중도가 아닌가. 현재 대한민국은 편가르기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정치지도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국민들을 편가르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자신과 한 패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부조건 옹호하는 정신병적 상태에 빠져 있다.
7) 이런 시대에 이명희 시인의「삶이란」 작품은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종교를 떠나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늘 말씀하시며 국민들을 깨우쳐 주신 “내 탓이요”라는 말씀이 아직도 쟁쟁하다. 그러나 지금도 ‘남 탓’을 외치고 남북 분단에다가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지도자들이야 말로 ‘바람’처럼 지나가는 존재이리라.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애증’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8) 시인들은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 관념을 표현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사물을 구체화하여 드러내는 것을 엘리어트는 ‘객관적 상관물’이라 하였다. 상징주의에 맥락이 닿아 있어 독자들은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9)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이 ‘사바세계’를 ‘감인계(堪忍界)’라고 번역한다.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세상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시선을 외부로 향하기 전에 내부로 향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내 탓이요’의 기도이다. 한때 민주화를 외치던 시인,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던 문인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권력에 취해 정의를 잃어버린 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결국 ‘애증’으로 한 쪽에 치우쳐 버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순에 눈을 감아라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맑혀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넉넉함을 마음으로 품”는 일이라고 하였다.
10) 화엄경에 “생숙위노(生熟爲老)”라는 말이 있다. 나서 성숙한 것이 늙음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늙음이란 우리의 삶이 더욱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감동을 주고 있다.
11) 난 아주 오래부터 “하느님은 고요할 때 나타내신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클라우드-귄터 파헤(Klaus-Gunter Pache)가 지은 묵상록인『하느님은 고요할 때 임하신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절대자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이든, 명상이나 참선을 통하여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장소이든 어떤 장소여도 상관 없다. 다만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시 된다.
12) ‘만다라’는 불교에서 모든 것이 완전하게 구비된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는 온갖 감정으로 가득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뜻한다.
2. 玄松 임형기 제2시집, 『거미줄에 걸린 情』, 2021, 11.
1) 그래서 이룩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양극화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지난날의 땀 흘린 노인들의 역사는 망각하고 오히려 노인들을 적대시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들도 있다.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프레드는 자신에게 죽음의 주사를 놓으려는 젊은이를 향해,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2)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사랑은 생명이다. 모든 것은 한결같이 이 사랑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3) “코울리지(S.T. Coleridge)는, 예술적 상상력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일상적 인식의 세계와 같은 것이기는 하나 재구성하기보다 고도한 보편의 차원으로 승화된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박명용, 『현대시창작법』)고 한 것처럼,
4) ‘인간주의 비평’으로 유명한 이기철 교수는 “시는 특수한 감정의 무늬를 가질 때도 간혹 있기는 하나 그보다는 보편적 감정과 정서를 노래할 때 오히려 좋은 시 혹은 감동적인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참인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눈먼 사랑’은 임형기 시인이 사랑의 시인임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5) 스위스의 성자 카를 힐티(Carl Hilty)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에서 “사랑은 그 무엇보다 사람을 현명하게 해준다. 오직 사랑만이 사람들의 본질과 사물의 실상, 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과 방법에 대한 진정한 통찰을 준다.”라고 하였다. 그리움과 사랑은 상사화의 잎과 꽃과 같이 애절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도 종교적인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라서, 그것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6) 흄(Hulme)은 “새로운 제재를 노래한 시가 반드시 새로운 시는 아니다. 그 제재를 보는 눈이 새로워야 한다.”라고 했다. 현송(玄松) 임형기 시인은 ‘김장 배추’라는 일상의 제재를 가지고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7) 카를 힐티(Carl Hilty)는 “위대한 사상은 오직 크나큰 고통으로 깊이 정화된 마음의 토양에서만 성장한다.”고 하였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것처럼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던 그 사랑은 바로 ‘위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에서는 그것을 노예적인 사랑이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이문열의 소설 『선택』에서는 모성애는 가장 위대한 것 말하고 있다.
8) 유성호 교수는 “세계(대상)와 자아(주체)가 자기 표현적 정조의 고조 속에서 융합하고 상호 침투하는 것, 혹은 정조의 순간적 고조에 따른 대상성의 내면화가 ‘서정’의 본질이라는 미학자들의 오래된 서정시 규정은 이제 그 효용성의 종언에 다다라 있다. 오히려 우리 시에 나타나고 있는 ‘서정’의 초점은, 대상과 주체의 합일이라는 동일성의 원리는 넘어서 대상과 주체가 하나의 사물을 통해 동시에 묘사되는 접점을 향하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김장 배추」는 ‘대상과 주체가 하나의 사물을 동시에 묘사되는 접점’을 형상화하여 높은 시적 성취를 구현하였다.
9) 임형기 시인은 비극적 현실을 그리움과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나아가 자연을 사랑함으로써 진정한 서정시인이 된 것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은 중편 소설 「토리오 크뢰거」에서 “문학 애호가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적인 것, 생명이 있는 것, 그리고 평범한 것에 대한 저의 시민적 애정, 바로 그것이니까요.”라고 하였다. 임형기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 된 것에도 이 말이 통하는 것 같다.
거미줄에 걸린 情/ 玄松 임형기 시집 평론 참고 자료
1.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유성호)
1. ‘서정’은 주체가 사물을 통해 겪는 순간적 경험에 관심을 가지며 거기서 비롯되는 추체의 인지적·정서적 반응에 가장 직접적인 자기 근거를 둔다.
2. 우리는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하는 현실 지향의 시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서사적 요청과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20쪽)
두 번째로 우리 시단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주류적 현상의 하나는, ‘자연(풍경)’의 발견과 그것을 향한 동화(同化)의 지향이다.(20쪽)
3. 자연은 선하고 인간은 악하다는 자연 절대화의 생태 시편은 그 자체로 반생태적이 아닐 수 없다.(22쪽)
4. 그동안 우리가 살핀 ‘기억’과 ‘자연’의 과잉 곧 침잠과 동화를 통한 평균적 범속화 경향은 시적 주체가 ‘현실’의 치열한 응전을 택한 결과라기보다는, 자연 · 기억 · 감각 등의 새로운 시적 권역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육체 안에 끌어들이면서 ‘현실’을 일정하게 비껴간 결과라 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세계내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 혹은 사물들과 상호 의존적 연관성을 맺고 살아가듯이, 그 필연적인 연관성이 초래하는 힘과 슬픔, 깊이와 역동성을 암시하는 것은 서정시의 불가피한 과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만연해 있는 ‘기억’과 ‘자연’ 과잉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방법론에 강력한 시사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5. ‘시적 우리는 현실’이, 역사와 일상이라는 두 가지 시간 양식을 통합하면서 우리의 삶의 존재 조건을 근원적으로 환기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24)
6. 이렇게 한 시대의 가장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공동체적 경험을 들추어내는 노력은 우리 시대의 시편들에 가장 결핍된 기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24)
7. 그러나 장르 교섭이나 통합의 기획이 시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유력한 대안 양식이 되었다기보다는 시의 고유한 정체성을 균열시키는 역기능을 상대적으로 행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이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방법은, 시 고유의 독자적인 ‘서정’의 원리를 더욱 완성도 높게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 뿐이라고 할 수 있다.(39쪽)
<디지털 시대, 서정시의 운명>
1. 외적 현실에 비해 사소하게 치부되었던 주체의 내면 세계도 서정시의 가장 중요한 권역으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그들은 자임하였다.(47)-‘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2. 세계(대상)와 자아(주체)가 자기 표현적 정조의 고조 속에서 융합하고 상호 침투하는 것, 혹은 정조의 순간적 고조에 따른 대상성의 내면화가 ‘서정’의 본질이라는 미학자들의 오래된 서정시 규정은 이제 그 효용성의 종언에 다다라 있다. 오히려 우리 시에 나타나고 있는 ‘서정’의 초점은, 대상과 주체의 합일이라는 동일성의 원리는 넘어서 대상과 주체가 하나의 사물을 통해 동시에 묘사되는 접점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시인들은 지나친 내면으로의 경사를 오히려 경계하고 있으며, 외연적 현실과 내면의 파동을 동시에 묘사하는 작법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살아 있는 전체로 파악하면서도 그것과 주체의 내면(시선)을 잇고 있는 시인들의 작업은, 기억 혹은 체험의 등가물로서 나타나는 ‘자연’의 구체성과 자신의 ‘내면’의 시적 표상을 아울러 의식하면서 창작을 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유력한 대안적 시쓰기의 한 유형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시작 방향이 우리 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서정’의 새로운 출구가 되리라 전망한다. (49쪽)
또 하나의 최근 씌어지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보이는 서정의 원리 가운데, 실물적 감각과 경험을 질료로 삼아 서정적 주체의 진정성을 섬세하게 설파하는 시편들 또한 많다. 서정적 주체의 경험과 인식이 구체적 대상을 통해 아름답고 화해로운 하나의 화폭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52쪽)
<현대시에 나타난 도시 형상과 근대 비판>
1. 해방 후 우리가 치른 도시화 과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외관을 띠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거대한 규모의 외자를 바탕으로 한 중앙 집권적 정치 권력이 강력한 드라이브 정책에 이해 급진적 도시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근대화=산업화=도시화’의 등가적 과정은 곧바로 점진적인 농촌 해체와 물적·인적 구성의 현저한 도시 집중이라는 기형적 병리 현상을 낳는다. 우리가 요즘도 체감하듯이, 이처럼 정치 권력과 자본의 요구가 결합하여 빚어낸 저 화려한 도시의 외관은 익명성에 의한 범죄 만연과 환경 오염, 인간 소외와 고독 같은 심각한 사회적 결손을 불러왔고, 나아가 전통적 공동체의 붕괴나 정체성 상실 등을 연쇄적으로 이끌어냈다.(59쪽)
2. “오늘보단 나을 거라는” 슬프고도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우리 서정시는, 비인간화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그 도시적 삶의 조건을 실존의 차원에서 승인하고 견뎌가야만 하는 근대인의 모순을 날카롭고 아름답게 노래해갈 것이다.(70쪽)
<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시적 비전과 아이러니적 상상력>
<시적 ‘시간’의 세 가지 형식?
‘세월’이 일정하게 경험적이고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것이라면, ‘역사’는 좀 더 이념적이고 집단적이고 의지적인 것이다.(116쪽)
그동안 우리 근대사를 규율해 온 ‘시간’ 감각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주류 형식이 아마도 ‘역사’일 터인데, 그만큼 우리의 경험은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이 서로 상응하고 길항하는 곳에서 줄곧 형성되었고, 그럴 때라야만 높은 문학적 진정성이 확보되곤 하였던 것이다.(116쪽)
<생태적 사유와 근원의 천착>
원래 시간이란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 한계 지평으로서의 물리적 조건이지만, 서정시라는 구체적 현장에서 그것은 시인들의 상상력 속에서 재구되는 자족적이고 유기적인 상상적 실체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서정시는 그러한 사유를 통해 근원을 따져 묻는 생태적 상상력을 강렬하게 선보이고 있다. (142쪽)
<사물들이 출렁이며 내는 은빛 ‘소리’들>
‘기다림’이야말로 사랑과 소통에 대한 열렬한 욕망을 내면화한 행위가 아닐 것인가.(170쪽) 결국 시인이 도달한(다시 돌아온) 시적 권역은 그 기다림을 완성하는 ‘사랑’의 시학인 것이다.(170)
<어둠의 순간에서 발화하는 기억의 형식들>
원래 ‘기억’이란 주체의 창조적·조절적 기능의 일환으로, 통일되고 일관된 주체의 사유 구조를 드러내는 기능을 떠맡는다. 또 ‘기억’을 거치지 않고는 시간 속에 잠겨 있는 사물의 형식을 경험적으로 회복할 수 없기도 하다. (213쪽)
“그립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다가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의 형식일 것이다.(215쪽)
<통증과 죄, 기억과 성찰의 시학>-이재무
“서정시는 기억에 의하여 한때의 정서를 고정시키거나 영속화하려는 기도”라고 하는 빌헬름(W. Wihelm)의 정의에 저항하는 시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타자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인의 냉엄한 관계론적 시각의 반영일 터이다.(259쪽)
<운명과 현실에 대한 ‘인식의 시’
우리가 잘 알 듯이, 전통적인 ‘서정(抒情)’의 원리가 어떤 상황이나 가치를 파악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간접화하는 데 있다면, 김백겸의 시편들은 서정적 주체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판단 과정이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의 시’라고 명명할 만한 것이다.
3. 원정호 제2시조집, 『한때는 사랑이었네』, 2023.4.
1) 화엄경에 ‘생숙위로(生熟爲老)’라는 말이 있다. ‘생이 성숙한 것이 늙음’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정신은 늙음이란 감이 홍시가 되듯이 덞은 맛이 달콤하게 향기를 내면서 익는 것이다. 두 번째 시조집을 읽으면서 첫 시조집보다 더욱 ‘성숙한 사랑’이 물씬 풍겨왔다. 그것은 ‘화엄’, ‘사랑’, ‘조화’라는 세 단어가 이번 시조집의 지하수로 흐르고 있다.
2) 존 핸즈(John Hands)는 『코스모사피엔스』(우주․인간)(소미미디어, 2022)에서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세계화와 그와 관련된 융합의 트렌드가 생겨났고 이는 반성적 사고로 말미암았다.”라며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즉시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인류를 “호모사피엔스 : 반성적 의식을 가진 유일한 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반성적 의식을 소유하면 집단주의(본능적이고, 조건이 지워져 있고, 강제적인 협력)와 구별되는 협동(이성적이고 의지적인 협력)을 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반성적 의식이란 인간이라는 종의 독특한 특징으로, 자신의 의식을 알 뿐 아니라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신적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있다.
3)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간택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조(三祖)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 첫머리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라고 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살이에서 갈등을 겪고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미움’의 감정은 세월히 흘러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범인들도 자연에서 자아성찰을 하거나 깨달음을 얻는다. 원정호 시인은 퇴직 후에 주변을 산책하거나 여행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작품들이 많다. ‘자아성찰’보다 ‘깨달음’은 한 차원 높은 것이다.
4)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수메르의 신화「길가메쉬」에서도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있다. 미움이나 분노의 마음을 내려놓기는 깨달음과 굳은 각오가 아니고는 버리기 어려운 일이다.
5) 이 작품은 “계곡 물소리는 모두가 부처님 법문이며/ 산색은 그대로 청정법신이다(계성변시장광설(溪聲便是長廣舌)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靜身)”라는 소동파의 오도송을 연상케 한다. 소동파가 어느 날 말을 타고 폭포를 지나다가 ‘무정설법’을 듣고 깨친 것이다. ‘신록’이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 잎이다. 가뭄이 심한 날에도 때가 되면 나날이 변해가는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기가 나날이 변해가는 모습처럼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원정호 시인은 “목마른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사는 것”을 ‘신록의 숲’에서 깨달은 것이다.
6) 원정호 시인의 시조 세계가 생태시조로 인식이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 DNA는 약 6% 정도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모든 존재가 함께 살기 위한 생태 의식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반성적 사유이기도 하다.
7) 원정호 시인은 지난날을 돌아보니 모두가 사랑이었다고 한다. 그 사랑은 현재 충만한 것이다. 그게 바로 화엄세계가 아닌가. 무비 큰스님은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이라고 노래한 경지와도 통하는 것이다.
8) ‘산 아래’와 ‘산 위’에서 바라 본 세상이 다르다고 했다. 소동파의 오도송을 듣는 것 같다. ‘코스모사피엔스’ 시대에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마음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확증편향의 정신병적 현상이 너무나 심하다. 이것은 탐욕에서 일어난 마음들 때문이다. 이럴 때 원정호 시인의 노래들은 찌든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감로수이다.
9) 소설가 문순태 님은 그의 장편소설에서 “기다림은 기도이고 생명이며 희망이고 삶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소쇄원에서 꿈을 꾸다』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 안강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유금리가 있다. 어른들은 모두 ‘뱀이다’라고 했지만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할머니 등에 엎혀서 “용이다”라고 외치니, 큰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꼬리로 형제산 쳐서 갈라놓아 형산강 물줄기가 포항으로 흘러가게 한 전설을 소재로 했다. “인습에 사로잡혀 아픔을 눈감지 말고” “순수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11) 시조는 문학진흥법의 일부 개정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6개월 후, 2021년 11월 19일부터 문학의 독립 장르가 되었다.
4. 신규법 첫 시조집, 『늪의 소리』, 2023, 8.
1) 임종찬 교수는 “시가 외형의 묘사에만 치우치면 시의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 거꾸로 시가 의미에만 치우치면 그 시는 맹물맛이다.”(『시조에 담긴 주제와 시각』)라고 하였다.「늪의 소리」는 각 수마다 초장 ‧ 중장이 묘사이며, 종장에서 의미를 진술하여 묘사와 진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절창이다.
2) 연꽃이 진흙 속에서 물들지 않듯이, 우리들은 번뇌 망상의 늪 속에 살고 있지만 실상을 바로 보면 이 세상이 밝고 아름다운 곳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늪의 소리」는 “(산새가) 때때로 봄 산골짜기에서 우네: 時鳴春澗中”라는 왕유의 선시 「조명간(鳥鳴澗)」을 연상시킨다.
3) T.S.엘리어트의 시를 평생 연구한 영문학자 김양수는 “문학과 예술은 주관의 객관화이며 개성의 보편화이다.”라고 했는데, 위에 인용한 수필은 과거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시적으로 그려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4) 시인은 참선과 경전 공부를 꾸준히 하는 불교 수행자이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은 “거대한 신을 섬기는 종교들은 소방관인 동시에 방화범이다.”(『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다른 종교인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5) “심해는 속울음을 하얗게 토해내고”는 변형 묘사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안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기법인데, 흔히 ‘낮설게 하기’로 불리기도 한다. 시인의 입장보다 사물의 편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 시적 효과는 크다.
6) 삼청정은 시인의 생가 마을인 거창 신씨(居昌 愼氏) 집성촌인 경남 거창군 거창읍 양평마을에 있다. 지붕은 와송이 우거지고, 대청마루에는 먼지가 쌓여 있다. 시인은 고향을 찾아가서 “둥근기둥 얼싸안고 뛰놀던” 유년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움은 끝이 없고 그 시절이 아름답다.
7) 아월천 기슭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음석이 있는 터에 형제간의 우애를 바탕으로 가문 자손 번창을 이루는 인간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형제가 어깨를 겯고 가는 길이 환하다”라고 하며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을 10년 넘게 강의하시는 무비 큰스님께서는 “화엄경에서는 우리 전체의 삶이 그대로 삼매다. 현상 그대로가 삼매다. 각자의 삶에 충실한 그것이 그대로 진정한 삼매의 모습이다.”라고 하셨다. 모든 부모는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천상의 세계일 것이다.
8) 저 유명한 방거사는 신통과 묘용, 즉 요즘 말로 기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기를 “물을 긷고 땔나무 해오는 일이다.”(神通竝妙用 運水及搬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다 기적이라는 것이다. 밥 먹고, 이야기 하고, 걷는 것이 다 기적이라는 것이다.
9) 포르투갈의 리스본 서쪽에 있는 땅끝 마을인 ‘까보다로까’의 여행을 제재로 한 기행시조이다. 흔히 기행시조는 새로움에 취하여 찬탄으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위 작품은 사유적이다. 일몰을 보면서 반대편인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울산시 울주군의 간절곶을 떠올린다. “밤낮이 바뀌어도 중심 잡는 수평선”이라면서 불교의 중도 사상을 노래하고 있다. 중도 사상이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10) 어떤 사물에서 묘사와 진술을 통하여 하나의 주제가 완성되는가 하는 순간에 다른 것으로 비약하여 치환하면서 이미지를 교차, 중첩시키면서 강조하는 기법은 신규범 시조시인만이 가진 독특한 빛깔이다. 또한 감각적 이미지와 추상적 이미지를 교차시켜 서술하는 중층 묘사(multiple description)는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