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의 상흔, 미 하야리아 부대
부산 주둔 56년, 2006년 8월 10일 공식 폐쇄 행사를 마치고 미 ‘하야리아
부대’가 부산진구를 떠났다. 조국 해방의 진주군으로 부산에 왔던 때로부터
치면 61년 세월이다.
하야리아 부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강점기 경마장이었던 범전동․
연지동 일대에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미군의 물자 및
무기 보급․관리 등의 전투 지원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야리아(Hialeah)’라는 명칭은 미국 플로리다 주(州)에 있는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인디언 세미놀
족의 말이라 한다. 부대의 핵심 부지는 일제강점기 조선경마협회 소유지로서
경마장으로 사용되었는데 한때 장교클럽이었던 ‘헤븐클럽’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가 경마트랙이었고 클럽 건물의 둥근 부분은 돈을 걸거나 입장권을 판매
하던 장소였다. 2차대전 중에는 일본 학병(學兵)이 훈련과 야영지로 사용하기
도 했다.

[하야리아부대 주변 일대, 1960년대] [이전 직전의 부대 전경]
8․15 해방 후 미 육군이 캠프를 차렸다가 그 다음에는 미국 영사관과 UN산하
기구들이 시설을 활용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경 미군이 재
입성하여 주한 미군의 보급품을 수령, 발송하는 터미널 역할을 담당했다.
최종 부대 이름은 ‘부산지구 20지원단’, 부대장 계급은 소령이었다.
1999년에 미군장교 숙소로 사용되던 USOM(미국 대외원조처) 부지가 반납
되어 2008년 부산국립국악원을 건립하였고, 2004년에는 한미간의 연합토지
관리계획(LPP) 협정을 최종 확정지어 54만 8천여㎡(약 16만 6천 평)의 땅이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 땅에는 뉴욕 ‘센터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부산시민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민공원 조감도] [하야리아 부대의 독립기념일 축제]
하야리아 부대가 도심 부적시설로서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긴
했지만 부근에는 기지촌이 들어서서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후문 근처에는 의류와 액세서리, 화장품 등의 가게가 늘어서서
성업을 이루었고, 정문 건너편 도로변에는 UN클럽 등의 바(BAR)가 생겨나
미군 손님을 끌었다.
군부대 매점이나 내부인과의 검은 거래를 통해 뒷구멍으로 빼돌린 통조림
이나 캔맥주, 군복, 군화, 화장품, 의약품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장사꾼이
있어 제법 많은 미제 물품이 시중에 유통되기도 했다. 양공주 색시들은
더러는 미군 병사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리기도 하고 그들이 제대하면 함께
미국 땅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버림을
받은 여성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미군만 보면 “헬로! 기브 미 껌(gum), 초콜릿”하며 고사리 손을
내밀기도 했고, 온통 새까만 흑인 병사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다가오면
겁먹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부대는 일년에 딱 두 번, 일반인에게 개방
했는데 미국독립(7월 4일)를 기념하는 ‘스펙타큘라’와 추수감사절 전후
며칠간이었다. 그 기간 중에는 불꽃 축제와 낙하산 시범, 장교 부인들의
바자회, 시식 코너, 장교식당 개방 등의 풍성한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미국독립기념일의 솜사탕 장수] [기지촌 주변의 사람들, 1951년]
첫댓글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기 까지가 1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실로 감개 무량한 일이다
하야리아부대 문여는때가 독립기념일이었군요 ,,
안에들어가 여기저기 구경,~~ ( 외국인이많아 미국온기분이엇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