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아청 박혜정
한국 문협 밴쿠버 지부회원/순수문학 등단
캐나다 뮤즈 청소년 교향악단 지휘자
새해가 되면 우리는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새로운 결심을 해 본다. 새해에는 새로운 결심 중에 하고픈 것에 미쳐보면 좋겠다. 여기에서 “미치다”라는 뜻은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비정상적인 상태”의 뜻 보다는 “무언가에 몰입하여 매우 열심히” 라는 뜻이다. 젊었을 때는 전공이외에 한 가지에 시간을 내서 미쳐보기가 쉽지 않다. 졸업 후 사회 초년생이 되면 사회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결혼을 하면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면 관심이 가는 것은 있어도 한 가지에 미칠 정도로 힘을 쏟기가 어렵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 때는 한 가지에 미쳐보면 좋을 것 같다. 골프에 미치면 누워있을 때 천장에 골프공이 떠다닌다고 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 사진에 취미가 있다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생활 속에서 멋진 장면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출사를 통해 머리도 식히고 마음에 드는 사진까지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는데 사진클럽에서 만난 낯익은 분이 주유를 하다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꺼내 순간 포착하는 것을 보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새해에는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한 가지에 몰두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요즘에 하이킹에 조금은 미쳐있다. 건강 때문에 시작한 것인데 일주일에 2-3번 하이킹을 가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힘들다고 반응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비가 오면 우산과 우비로, 눈이 오면 아이젠(크렘폰)이나 스노우 슈즈가 있으면 해결된다. 얼마 전 하이킹 멤버 중 한 분이 “언니,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가? 미쳤어.” 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다른 때 같으면 이상하게 들렸을 텐데 ‘오히려 기분이 좋은 것이 남에게 미쳐 보인다니 나도 뭔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주 때 영화 “Sound of Music” 중에 나왔던 “MY FAVORITE THINGS"를 연주했다. 그 곡의 가사를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개에게 물려도, 벌에 쏘여도 슬프지 않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곡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좋고 비싼 것이 아니다.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 새끼 고양이 수염, 따뜻한 털장갑, 바삭한 사과 파이, 달밤에 높이 나는 갈매기들 등이다.
곡을 연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곡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더욱 떠오르지 않는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산타를 기다렸던 순수한 마음의 눈으로 보면 많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 “힘든 일이 있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난 국수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라고 말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도 단순한 것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도 새해에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해 주는 무언가를 찾아보면 비오는 밴쿠버의 우울증을 쉽게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에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낮은 자리에서 깊은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자” 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말이 좀 더 실용적으로 적용이 된다면 위의 문장은 문장을 되뇌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러 나옴이 느껴진다. 겸손하게 낮은 곳에서 그냥 있음으로써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나도록 처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만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은 그 정도의 나이가 아니어서 깊이 생각 해 본 적이 없기도 하다. 이 이슈(ISSUE)는 은퇴할 때쯤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한 번 곱씹어보려고 한다.
새해 2020년에는 무엇을 해 보겠다고 작심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천천히 준비하고 생각해서 낮은 곳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며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미쳐본다면 큰 어려움 없이 밝고 힘찬 2020년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