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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샤논 맥거프이고,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가 고향입니다. 1964년 천주교인의 아일랜드 가족에서 4째 아이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은행가이셨고, 어머니는 천주교학교에서 선생님이었습니다. 제 숙부는 카르멜파의 수사 승려였고, 저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카톨릭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니 저는 종교에 대해서 낫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 열살때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댄스가 내 생업이 되었습니다. 나는 20대일때 댄스경력을 쫓기 위하여 뉴욕으로 이사갔습니다. 1986년, 뉴욕에 산지 한달되었을 때, 일본 “대승”불교의 한 갈레인 니치렌 불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묘호렝교”를 많이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약 1년 후 “돈을 위한 독송”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그냥 나하고는 안맞는다라고 느꼈어요. 영성을 찾는 사람으로써 나는 탐색을 계속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게 해줄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20대 중반 때 뮤지컬 배우로 뽑혔는데, 그때 매우 흥미로운 여배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가를 했는데, 인도에 갔었고, 배우들이 모여서 요가, 힌두 그루들, 명상과 왕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을 여러번 참여하면서 내가 마치 건망증이 있어서, 내가 누군지 잊었던 것처럼 느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안개는 거쳤습니다.
My name is Shannon McGough and I am from Philadelphia, Pennsylvania in the USA. Born into an Irish Catholic family, in 1964, the fourth of five children, my father was a banker and my mother a Catholic school teacher. My uncle was a Carmelite Monk and I went to Private Catholic Schools from Kindergarten through High School. So you can see I am no stranger to religion. In fact, my favorite subject in school was Religion. When I was ten years old I began to study ballet. Dance became my vocation. I moved to New York City when I was twenty to pursue a dance career. In 1986, my first month living in NYC, I was introduced to Nichiren Buddhism, a branch of Mahayana Buddhism from Japan. I remember doing a lot of chanting of “nam myoho renge kyo.” After about a year of this I started to feel that all I was doing was “chanting for dollars.” It just wasn’t working for me, but being a spiritual seeker, I continued my quest. I knew there was something out there that would help me remember who I was. In my mid-twenties I was cast in a musical where I met a very interesting actress. Verna practiced yoga, had travelled to India and hosted weekly gatherings where we actors would discuss yoga, Hindu Gurus, meditation and re-birthing. In many of these gatherings I felt as if I had amnesia and had forgotten who I was. But little by little the fog was lifting.
아사나 요가를 시작하면서 춤과 마음에 진짜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댄서로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고, 브로드웨이 쇼를 위한 오디션하는게 극도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나는 원래 내성적인데, 내가 선택한 직업은 외향적이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나에게 무용수라는 직업이 아주 잘 맞는다는걸 모릅니다. 하지만 춤을 출 때면, 난 내 스스로 영혼과 내가 늘 찾고 있던 무언가와 연결된다고 느껴졌습니다.
I began to practice Yoga Asana which really helped my dance and my mind. Being a dancer in NYC was very demanding and auditioning for Broadway shows was extremely stressful for me. I was an introvert whose career choice demanded I be an extrovert. Looking back, I don’t know that a career in dance was a great fit for me. But when I danced I could really feel myself connect to my soul, something I was always looking for.
30대 후분에 남편과 나는 벌몬트주에서 살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부부에게 집을 팔았는데, 그 부부가 나에게 뉴욕주 폴스버그 남부에 아쉬람을 갖고 있던 그루(영적 지도자)에 대해 말해줬습니다. 이 그루의 이름은 구루마이 치드빌라사난다입니다. 나한테 명상 리트리트를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런 리트리트는 처음 가보았고, 그 경험이 날 영원히 변화시켰습니다. 마지막 삿상(Satsang, 집회)에서 구루마이가 복도를 따라서 춤추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나를 지나가면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고, 난 샤크티팟(영적 에너지)을 받았습니다. 그건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었고, 그때 그녀의 눈에서 내 눈으로 천둥번개가 들어왔고, 내 가슴 샤크라가 폭발하듯 열렸습니다.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장 엄청난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In my late thirties, my husband and I were living in Vermont. We’d sold our house to a couple who told me about their guru who had an ashram in South Fallsburg, NY. The guru’s name was Gurumayi Chidvilasananda. They encouraged me to go for a retreat. I had never been to a retreat like this and the experience changed me forever. I remember at the last satsang Gurumayi was dancing her way up the aisle. As she passed me, she looked into my eyes and I received Shaktipat. It was a true spiritual awakening where “lightning bolts shot out of her eyes into mine and my heart chakra exploded open. I started crying.” It was one of the most incredible experiences of love I’ve ever felt.
우리는 40대에 플로리다로 이사했습니다. 나는 늘 아사나 요가를 수행했고, 아행가와 푸르나 스타일을 정통했고, 지도할 수 있는 인증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하늘이 나를 이끌어서 이번엔 아쉬탕가 요가 스튜디오로 갔습니다. 난 늘 가장 어려운 아쉬탕가가 무서웠었습니다. 수업을 좀 듣기 시작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난 원래 현기증이 심하게 있었는데, 아쉬탕가 요가 자세를 시리즈로 하면서 다시 현기증이 돌아왔습니다. 운이 좋아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는데, 마르가리다 트리라는 요가 선생님이 이 현기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속 수업에 오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녀는 이 문제를 다른 학생들에서도 봤다고 했고, 현기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시켜줬습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했고, 진짜로 현기증은 사라졌습니다. 나에게 있어 이 아슁탕가 요가가 전에 해봤던 다른 형태의 요가와 다른 것은 호흡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In my forties, we moved to Florida. I’d always practiced asana, and had become adept at Iyengar and Purna styles, even becoming certified to teach. But once again the gods lead me, this time to an Ashtanga Yoga Studio. I’d always been scared of Ashtanga because it is a very rigorous form. I started to take some classes and I really liked it. I used to have bouts of vertigo which came back when I started doing the Ashtanga Yoga asana series. My good fortune was to meet an awesome teacher, Margarida Tree who told me to continue taking class as a way to overcome the vertigo. She had seen this before in pupils and she assured me the vertigo would go away. So I persisted and indeed the vertigo disappeared. For me, what set this yoga practice apart from the other forms of yoga I had practiced was the focus on the breath.
아슁탕가 요가를 할 때, 호흡에 집중을하고, 각 호흡이 요가 자세에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각각 한 숨에 해당합니다. 요가 수행에서 경험한 그 집중은 매우 차분했습니다. 아쉬탕가 요가에서도 또한 신체적인 자세 뿐 아니라 호흡제어(프라나야마)와 명상 (선호적으로 결가부좌)를 강조합니다.
When you do Ashtanga Yoga you concentrate on the breath and each breath is accounted for as you move in and out of the asanas. The concentration that I would experience in my yoga practice was so calming. Ashtanga yoga also emphasizes that it’s not just the physical postures, there’s also pranayama and meditation (preferably in full lotus).
그때쯤, 아마도 2015년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용학회에서 현안 스님 (출가 전)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 당시 에너지 주얼리 (여러 염주,팔찌 등)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현안스님이 회사 이름에 “치 (기)”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부스에 구경하러 왔었습니다. 우리는 만나자 마자 바로 친해졌습니다. 에너지(기운), 요가, 명상에 대한 대화를 했습니다. 당시 현안 스님이 나한테 결가부좌로 앉아서 명상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오른쪽 무릅 인대 수술 (슬관절 치환술)을 했었고, 그 무릎에 완전한 움직음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가부좌로 앉지 않았었습니다. 오른쪽 골반도 매우 뻑뻑했습니다. 스님은 나한테 반가부좌로 시작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나는 하는둥 마는둥 했지만 그때 당시 영화 스님의 참선 지침서 (Chan Handbook)을 인터넷에서 주문했습니다.
Around this same time, I think it was 2015, I met Venerable XianAn (before she left home) at an esthetic convention in Florida. I was working for a company that made energy jewelry. Venerable saw that our company name had Chi in it so she came by our booth to check it out. We had an instant rapport. We spoke about Energy, Yoga and Meditation. I remember her asking me if I meditated sitting in Full Lotus. I did not at the time, because I’d had my right knee ligament replaced and had never recovered full range of motion in that knee. My right hip was also very tight. Venerable encouraged me to start to sit in half lotus. I remember making a halfhearted attempt, but I did buy Master Yonghua’s Chan Handbook online.
그 후 몇년간 (2015년 이후), 나는 여러 학회에서 현안 스님 (출가 전)을 보았고, 현안 스님은 항상 날 찾아서 결가부좌 수련이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일하는 회사 사장님에게 잠깐만 학회 부스에서 나간다고 허락을 받고, 내 가부좌에 대한 점검을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몇분만 이야기한게 아니라 오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스로 다시 뛰어서 가보니 손님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For the next several years I would see Venerable XianAn at different trade shows and she would always find me and check how my full lotus was coming along. I remember one time I asked my boss if it was okay to leave the booth for a couple minutes so I could show Venerable my lotus. Of course we talked way beyond a few minutes and I ran back to the booth to find it swamped!
일년 전 즈음 현안 스님은 나에게 머리깎은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그녀가 드디어 불교 승려가 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나한테 삼보에 귀의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스님은 나한테 오계, 불살생, 불투도, 불망어, 불사음, 불음주에 대해서도 설명해줬습니다. 처음 네가지 계율은 문제가 없었지만 다섯번째 불음주는 술을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내가 18세가 되는날부터 평생 매일 매일 와인 한잔씩 한것 같습니다. 스님은 나한테 원하지 않는다면 다섯번째 계율을 반드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네 하겠어요”라고 답했고, 계율을 받고 싶었습니다.
Over a year ago Venerable sent me a photo of her with a shaved head! She had become a Buddhist Nun! I was so happy for her. She asked me if I wanted to take Refuge in the Buddha. I didn’t even know what that really meant. She explained that I would take some Buddhist Precepts. No killing, no stealing, no lying, no sex outside marriage and no intoxicants. The first four precepts were no problem but the fifth one meant no drinking. I think I’d had a drink every day of my life since I was eighteen! Venerable said that I didn’t have to take the fifth precept if I didn’t want to. I said yes, I wanted to take the precepts.
2020년 4월 나의 계율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 수계식은 7월 30일로 정해졌습니다. 나는 플로리다에 있었기 때문에, 가상회의로 참석했습니다. 내 기억에 수계식하는 동안 땀이 많이 흘렀는데, 나는 원래 보통 땀이 잘 안나는 편입니다. 수계식 중간 정도가 되니 배가 막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5번째 계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다섯번째 불음주를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불음주 계율받는 순서가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계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땀이 흐르던게 멈췄고, 배가 아픈 것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이제 술 마시는것이 그냥 습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 한잔씩하는 것을 포기하는게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I got a message in April 2020 that my precept application had been received. My precept ceremony would take place on July 30th. I was in Florida so it was done virtually for me. I remember that I was sweating a lot during the ceremony and I am not usually prone to sweating. Halfway through I started feeling sick to my stomach and I think it was because I was stressing about the fifth precept! I didn’t know if I was going to take it or not. Finally it came time for the no drinking precept and I found myself taking it! After that I stopped sweating and my stomachache went away. I realize now that drinking was just a habit. I had no problem whatsoever giving it up!
수계한 후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불교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나는 매일 참선하기 시작했으며, 스님은 나에게 42수안도 가르쳐줬습니다. 나는 2년 전부터 현안 스님이 권해서 영화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서 듣기 시작했지만, 내 어리석음은 완전히 만개했었습니다. 그건 마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율을 받은 후 나는 다시 유튜브로 법문을 듣기 시작했고, 이제 나는 덜 멍청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I felt different after taking the precepts. I was so happy that I’d made that commitment to Buddhism. Immediately, I started meditating every day and Venerable was so gracious to teach me the 42 Hands and Eyes. I had started watching Master YongHua’s YouTube dharma talks at Venerable XianAn’s suggestion a couple years ago but my stupidity was in full bloom. It was pearls before swine! But after taking the precepts I started watching the YouTube talks again and now I’m beginning to feel less stupid!
2020년 여름 내가 매일 참선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겨우 반가부좌로 앉을 수 있었습니다. 한달 후 나는 결가부좌를 2분 정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조금씩 늘렸습니다. 하면서 좀 좌절도 있었지만, 2021년 3월 13일 이 글을 쓰는 동안 한시간 결가부좌로 앉을 수 있었습니다.
When I started my daily meditation practice in the summer of 2020, I could only sit in half lotus. After a month I could manage full lotus for a couple minutes. I kept increasing the time. I had some setbacks but as of writing this March 13, 2021, I can sit for one hour in full lotus!
나는 평생 수많은 영적 수행을 시작하고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챤(선)은 다릅니다. 내가 내 스스로에서 본 변화들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선에 내 자신을 전념합니다. 내가 전에 한번도 느끼찌 못했던 내면의 고요함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먹었던 기억상실을 위해서 내 평생을 보냈지만, 선을 통해서 그걸 기억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I have started and stopped many spiritual practices in my life, but Chan is different for me. It has my full dedication because the changes I see in myself are extraordinary. There’s a calm inside me that I’ve never felt before. My whole life has been spent seeking a balm for my amnesia of forgetting who I am, and through Chan I know I’m on my way to remembering.
2020년 8월의 샤논
2020년 수계식 후 매일 결가부좌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영화 스님의 법문을 쉬지 않고 들으며 매일 참선했습니다. 다리가 아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그녀의 모습이 아래와 같습니다.
2021년 3월
2021년 결가부좌 수행하는 샤논